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_Modern Social Imaginaries_ 인용

Reading 2014.03.18 12:01

* 2013년 9월 22일 페이스북.

사회적 상상이라는 용어를 통해 내가 의미하려고 하는 바는, 사람들이 흔히 사회적 현실에 관해 자유롭게 생각할 때 떠올리는 그런 지적 도식보다는 훨씬 폭넓고 심층적인 어떤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실존에 대해 상상하는 방식,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방식, 사람들 사이에서 일이 돌아가는 방식, 통상 충족되곤 하는 기대들, 그리고 그러한 기대들의 아래에 놓인 심층의 규범적 개념과 이미지들이다. // 사회적 상상과 사회 이론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내가 '상상(적인 것)'이라는 용어를 쓰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 논의의 초점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환경을 '상상하는' 방식에 맞추어져 있으며, 이는 이론적인 용어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미지와 이야기, 그리고 전설 속에 담겨 있다. 둘째, 이론은 소수의 전유물이기 쉽다. 하지만 사회적 상상에서 흥미로운 / 점은 그것이 사회 전체는 아닐지라도 폭넓은 인간 집단에 의해 공유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세 번째 차이가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상상이란 공통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고 정당성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공통의 이해라는 점이다. (43-44)


이러한 규범의 이해에는 잠재적으로 이상적인 경우들(예컨대, 개별 시민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판단력을 최대한 행사하고,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선거)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그러한 이상 너머에는 어떤 도덕적 혹은 형이상학적 질서관이 존재한다. 그리고 규범과 이상은 그와 같은 질서관의 맥락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 내가 사회적 상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특정한 실천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즉각적인 배경 이해를 넘어선 곳에까지 펼쳐진다. 그것은 개념을 자의적으로 확장한 결과가 아니다. 지식 없이 이루어지는 실천이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따라서 가능하지도 않은 것처럼, 이러한 이해 역시 우리가 처해 있는 총체적 상황에 대한 더 폭넓은 인식--가령 우리가 서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위치에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지, 우리가 다른 사회집단들과는 어떤 식으로 관계 맺는지 등--을 전제할 때에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 이러한 더 폭넓은 인식에는 명확한 한계가 없다. 바로 그것이 동시대 철학자들이 '배경'이라고 표현했던 것의 본질이기도 하다. 사실 그것은 우리의 총체적 상황에 대한 구조화되지 않은, 불분명한 이해라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 세계의 특수한 형상들은 우리에게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드러낸다. 그것은 결코 명백한 학설의 형태로 적절히 표현될 수 없다. 그 자체가 본래 무한하고 불확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여기에서 이론이 아닌 상상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45)


...어떤 주어진 행위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배경은 넓고도 깊다. 물론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들이 제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의미 부여란 세계 전체, 즉 시간 속에서, 공간 속에서, 타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우리의 총체적 상황에 대한 감각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이 확장된 배경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 내가 앞에서 도덕질서에 대한 감각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을 통해 나는 사회적 실천 아래 놓인 규범들에 대한 단순한 인식 이상의 무엇인가를 의미하고자 한다. 그 규범들은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즉각적인 이해의 일부이다. 내가 앞서 언급했듯 그러한 규범들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어떤 감각이 존재하는데, 그 역시 행위의 맥락을 구성하는 아주 본질적인 부분이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 유토피아적인 것을 위해서는 시위하지 않는다....// 도덕질서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들이 어떤 행동들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현 상태에 기울어 있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역시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도덕질서에 대한 근대적 이론은 점차 우리의 사회적 상상 안으로 침투/하며 그것을 변형시킨다. 이 과정에서, 원래 이상화된 관념에 불과했던 것이 사회적 실천들에 흡수되고 그것과 연관되면서 복합적인 상상이 된다. 그때 연관되는 실천들은 부분적으로는 전통적인 것이지만, [상상과의] 접촉에 의해 변화되는 것들인 경우도 빈번하다. 이는 내가 앞에서 도덕질서에 대한 이해의 확장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상상의 이러한 침투/변형이 없었더라면, 우리 문화에서 지배적인 시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49-50)


하나의 이론이 사회적 상상으로 침투하여 그것을 변형시킬 때는 정확히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실천들을 받아들이거나 즉흥적으로 수행하거나, 또는 전수받는다. 그러한 실천들은 새로운 사고방식에 의해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그 사고방식은 처음으로 이론 속에서 명확하게 표현된다. 달리 말해, 그러한 사고방식은 새로운 실천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맥락이 된다. 따라서 새로운 이해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참여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그 어떤 것이다. 그것이 참여자들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윤곽을 규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서 종래에는 말할 필요조차 없이 명백한, 세상사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형상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 하지만 이론이 사회적 상상을 변환하는 이 과정 역시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행동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면서, 이론이 이러한 실천들의 맥락으로서 특수한 외양을 띠게 되기 때문이다. 추상적 범주가 시공간의 현실에 적용되면서 '도식화된다'schematized고 했던 칸트의 말처럼, 이론은 공동의 실천이라는 빽빽한 영역 안에서 도식화된다. // 이 과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실천은 그것이 낳는 암묵적 이해와 더불어 이론을 수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수정된 이론은 또다시 실천(관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런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50-51)


상상이, 어떤 중요한 현실의 왜곡이나 은폐를 뜻하는, 거짓일 수 있을까? 위의 몇몇 예에 비춰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확실히 '그렇다'이다....//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상상을 규명하면서 얻게 되는 이점은 그것이 단/지 이데올로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상상은 또한 실천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성적 기능을 갖는다. 그것은 실천에 의미를 부여하고[즉 행위자가 실천을 이해하게끔 해주고], 따라서 힘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상상이 전적으로 거짓일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편리한 자기 정당화가 상상하는 대로, 민주적인 자치형식에 참여하고있다. 온갖 인간적인 상상력의 형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상상이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허구와 억압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실재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이다. 그것이 실체없는 몽상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것이다. (272-72)


사회적 상상이라는 개념 및 그것을 통해 사회의 움직임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 테일러는 한 장을 할애한다. 나는 '사회적 상상'이라는 개념으로부터 개별 텍스트 혹은 문화적 실천과 물질적 세계(정치경제적 구조)를 보다 유연하게 연결시켜줄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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