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에티카>. 경찰, 폭력, 기계.

Comment 2014. 6. 13. 23:46

<에티카> 나머지 3~5부까지 다 읽었다. 사실 1, 2부가 진득하게 안 읽히고 3부부터는 조금 속도가 난다. 앞에서 정리해놓은 내용들 갖고 쭉쭉 지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4부에선 갑자기 사회계약론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신학정치론>을 미리 읽어두었으면 잠깐 멈추고 생각해볼 부분도 있다. 코나투스도 있고 해서 스피노자에게 덕성virtue이 중요한 개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3부부터는 줄창 나온다. 덕=선=본질=이성=인간에게 유익한 것=인간의 공통된 지향점=신(=자연)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등등... 인간학(심리학), 세계관, 윤리학, 시민으로서의 삶 등이 한 텍스트에 첩첩이 겹쳐있어서,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과 함께 끝까지 읽으면 (실제로 긴 텍스트는 아니지만...대장정이 끝났다는 성취감과 함께) 나름대로 상당한 감동을 받게 된다. 문학전공이라곤 하지만 사실은 철학, 이론, 역사를 더 많이 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사람들이 조금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철학 텍스트는 철학 텍스트 나름대로 주는 울림이 있다. 특히 고전들은 어떤 이상향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나처럼 굳이 저자가 하는 말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엄밀한지 따지지 않고 죽 이야기 읽듯이 있는 사람들(실제로 당대에는 이런 독자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만 말해둔다.


정리를 해야겠지만 지금 기말페이퍼 준비에 경황이 없어놔서...그래도 읽으면서 페이퍼에 적용할만한 아이디어들이 조금씩 나오긴 했다. 나는 머리가 좀 이상한지 어떤 주제에 관한 아이디어가 전혀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떠오르곤 한다-_-;


오늘 하루종일 처박혀서 스피노자만 읽었으니 운동도 조금 하고...그 다음 Nancy Armstrong의 _How the Novel Thinks_를 읽으려 한다. 원래 이거랑 버틀러(<윤리적 폭력 비판>)까지 읽는 게 무리였지만 현실적으로 암스트롱만 읽으면 오늘은 끝나고 버틀러는 페이퍼 쓰면서 참고해야 할 것 같다. 주말까지 페이퍼 하나는 끝내야 다음 주 중에 하나를 더 쓰고 기일 안에 학기를 마칠텐데...워낙 게을러서 문제다.



일상생활에서 제 역할 해주시는 경찰들 말고... 시위 및 철거에 나가는 경찰들이 자신의 상대를 조롱하고 비웃고 여유있게 기념사진촬영까지 하도록 교육받는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징후라고 생각한다. 군대와 함께 한 사회의 실질적인 물리력을 독점하고 있는 집단이 경찰인데, 자신이 사용하는 힘이 (설령 위계에 의해 피치못하게 따라야 하는 것이라도) 어떤 정당성을 못/갖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지적인 자각은 못 한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명백하게 약자들인 노인들을 들어내면서 업무달성에 따른 쾌감만 느낀다는 건 이 사람들이 사람의 탈을 쓴 기계들(기계에서 괴물까지는 한 걸음밖에 되지 않는다)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앞으로 이런 경찰들이 계속 늘어나고, 계속해서 약자들의 마지막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투입되고, 낄낄거리면서 즐겁고 쿨하게 사람들을 패대기치고... 이런 종류의 소름끼치는 악의는 그것을 품고 있는 사람조차도 망가트린다는 점에서 정말 모두에게 위험한 태도다.


우리 시대 공권력, 혹은 공적인 폭력의 가장 두려운 점은 그들에게 이제 최소한의 예의와 자제, 인간다움을 기대하기 점점 힘들어진다는 데 있다. 그들은 마치 도살장의 칼날들처럼 자신의 앞에 놓인 인간-고기들을 썰어댄다. 국가폭력이 단순한 폭력집단으로 하락하지 않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장치는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다"는 마음가짐인데, 이제 국가는 자신의 손발에게 그런 것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앞에 놓인 사람들에게 어떠한 동류의식도 느끼지 못하면서 "즐겁게 일하는" 기계들의 작동이야말로 우리가 수십년 전의 SF영화들에서 보아왔던 섬뜩함의 창조자들이 아니었던가. 이런 면에서 우리는 진실로 SF영화에 나오는 사회를 따라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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