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비평, 칸트, 18-19세기 영국사상사에 대한 대화

Critique 2014. 5. 11. 23:57

* 아래의 대화는 한 지인이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 및 해당 글에 리플로 논의된 내용을 리플 수록자들의 허락을 받고 옮긴 것이다. 내용은 거의 손대지 않았고, 대화 참가자들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몇몇 대목에 미세한 수정을 가했다. 본래 이 정리는 나중에 혹시라도 해당 내용에 대한 참조가 필요해질 때를 위한 것이었으나, 혹시나 싶어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참고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아래의 글()에 누차 언급되는 바와 같이 참여자들은 현재 해당 영역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아직 자신의 주장을 완결짓기보다는 지금까지 세운 가설/독해를 공유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을 감안하길 바란다. 즉 대화 참가자들은 아래의 내용을 자유롭게, 제약없이 논의했으며 발언의 잘못된 인용 및 이해에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A(불문학 전공 대학원생)의 본문:

 

프랑스 비평사 배우던 기억을 꺼내보면... 귀스타브 랑송은 과학인 척하는 결정론적 비평과 노가리에 가까운 인상주의 비평을 동시에 극복한다고 하는데 이건 둘의 단점을 겹쳐놓는 것일 수도 있다. 그의 비평이 최대한 실증적으로 작가를 사찰한 다음에, 공정한 취향(gout)을 가지고 작품을 음미, 평가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취향'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랑송 불문학사를 읽다보면 요령있게 정리가 잘 된 팩트를 열심히 줍다가, 취향이 개입하는 부분에 오면 좀 허탈해지게 된다. 백 년 된 책이니까, 백 년 전 사람들의 삶이 상상이 잘 안 가듯 그의 평가는 낯설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의 취향 얘기를 무시한다. 그건 학문적인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그에게 동의할 마음이 없으니까. 다시 말해, 난 내 취향이 있으니까.

 

취향은 나 자신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 하지만 정당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의 대상이긴 해도 공유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정당화가 되면 주의나 사상이지 취향이 아니다. 취향은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것이 내 존재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정말 정당화가 안 되는 취향, 예컨대 일베나 나치 같은 것에 대한 취향은 버리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취향은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잘 해봐야 취향을 억압하는 셈이지, 마음을 어떻게 먹는다고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이 취향을 계발할 수 있다고 믿고, 믿음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 비뚤게 보면 나는 한국의 예술 전문가들이 취향을 계발하는 데 소홀했다고 줄기차게 비난했고, 그래서 죽으면 지옥에서 그들에게 얻어맞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내 취향을 바로 보고 분석한다... 이건 쉽지 않았고 난 별로 성실하지도 못했다. 왜 취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그게 내 취향이라는 것 이상의 답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취향'은 오늘날 예술 비평을 하는 자리에서 사라진 말이다. 취향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개념이고, 랑송이나 같은 세대인 프루스트도 그 개념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요새 띄엄띄엄 보는 괴테는 진짜 이 개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이 개념이 담론의 세계에서 추방된 것 같다. 하지만 죽은 건 아니다. 취향은 우리가 각자 숨겨놓고 남이 건들지 못하는 세계에 살게 되었다.

 

'이건 내 취향이거든?' 언젠가부터 개인의 취향...이란 말은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주문이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당신과 얘기할 영역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우리는 취향이라는 말을 쓴다. 취향은 남들 앞에 언어를 통해 드러내놓지 않는 어떤 억압된 것을, 그 억압 자체를 정당화하는 질서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숨기면서 그걸 캐는 사람들에게 입 다물라고 말하기 위해서도, 내가 좋아하는 걸 숨기면서 이걸 가볍게 스치고 넘어가기 위해서도 취향이란 말은 요긴하게 쓰인다. 하지만 한 프레이즈를 해석하기 위해서,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 우리가 정말로 취향이란 개념을 버릴 수 있을까?

 

취향이 정말 역사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면, '취존'이라는 말로 상대의 입을 막는 동시에 생각하기의 귀찮음을 공모하는 오늘날 이 사회의 모습도 역사적으로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취향은 괴테와 랑송의 시대를 거쳐 지금 한국의 상황을 관통하는 근대(?)의 한 징후일 것이다. 서로의 취향에 대해 서로 입을 다물자는 얘기는, 정치적 판단을 아무데서나 내놓으면 불편하다는 얘기와 겹쳐놓고 보면 또 걱정스러운 징후이기도 하다. 아무튼 공부가 필요한 지점이고... 문학과 떨어져 있는 얘기가 아닌데 접근을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이하 리플]

B(영문학 전공 대학원생):

...프랑스에도 어느 정도 해당되지 않나 싶은데, 영문학에서는 18세기부터 취향이 굉장히 중요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면 혹은 내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하나의 증거로서요. 하녀로 일하고 있지만 좋은 책을 읽는다든가, 나쁘고 멍청한 애는 책을 안 읽거나 이상한 책만 읽는다거나...류의 설정이 19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왕왕 나옵니다(부분적으로는 책읽는 거 말고는 잘난 게 없는 현실의 찌질이(...)들의 원한도 반영되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요...;;). 다만 이때 취향 혹은 취향으로 드러나는 내면은 엄밀히 위계 혹은 좋고 나쁨의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포스트모던적-자유주의 시대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러한 판정 자체를 포기한 셈이기도 한 거죠.

 

그런 면에서 사실 취향의 판정과 도무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개념이 비판/비평critique/criticism이라고 할 수 있고 실제로 18세기부터 '판정을 위해 주어진 근거는 없지만 마치 근거가 있는 것처럼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비평에 관한 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는 것은 눈여겨 봐야 할 현상입니다(영국은 확실히 그런데 프랑스는 어떤지 모르겠군요). 뒤집어 보면, 오늘날 취향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것은 그 취향에 계속해서 날을 들이대고 '한계지으려는'(저는 여기서 분명히 칸트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노력, 다시 말해 비평이라는 것 자체가 바닥으로 추락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오늘날의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비평의 쇠락은 그저 고급취향/엘리트주의의 쇠퇴와 등가가 될 수 없고, 그 자체가 따로 고찰해야 하는 현상인 거죠. 이 지점을 다시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필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존재'가 된다는 건 굉장히 제약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C(불문학 전공 대학원생):

반가운 글이네. 나도 요즘 Goût 에 대해, 물론 루소 안에서지만 좀 보고 있고, 또 사실 뭔가 길을 잘못 택한 거 같아서 무척 난감해 하는 중... Goût 라는 게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관념이라서 논점을 분명하게 잡지 않으면 길 잃어버리기 딱 좋은 문제인듯해, 내가 그 사례.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Goût 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는 건 재밌는 주제다. 그런데 프루스트가 Goût 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게 무슨 말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는지?

 

[B에게] / 글 잘 봤습니다. 제가 프랑스쪽 얘기밖에 몰라서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18세기에서 목격되는 신분에 맞지 않는 취향의 등장(하녀의 식견), 취향을 통한 개인의 판단(이상한 책만 보는 멍청한 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고, 개인주의가 팽창하고, 취향을 통제하는 권력이 약화되고(17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취향"의 절대왕정과의 관계), 인간본성에 대한 역사적 관점이 강화되는 등의 현상들과 관련된 매우 복합적 현상인 것 같아요. 이와 관련해서 프랑스에서는 "petit goût"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칸트를 언급하셨는데, 아마 '한계짓는다'는 의미의 칸트식 '비평/'을 염두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맥락을 확실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리고 이미 잘 아시겠지만, 칸트의 취향논의는 그보다 훨씬 풍부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칸트는 취미판단을 17세기의 위계적 구도에서도 18세기의 역사적 구도에서도 모두 구해내고,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능력으로서의 취향이 어떻게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면서도 어떤 보편성을 가지고 소통될 수 있는지 모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렌트는 칸트의 이러한 취미판단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에서 진정한 정치적 다원주의의 가능성을 보고 있고요.

물론 이러한 시도가 완전히 성공했다면, 지금처럼 취향이 소통의 장애물이 되고, 정치적 편협함의 방어도구가 되진 않았겠죠. 이런 사태는 칸트. 아렌트와 정반대의 길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취향이라는 것이 더 이상 아름다움 혹은 쾌락(이미 18세기에 일부 프랑스 철학자들은 취향을 아름다움보다 쾌락 자체에 연결시킵니다, 칸트를 포함해서)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이제 파괴, 추함, 고통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취향의 고유한 대상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비평에서 취향논의가 약해진 까닭인 듯합니다. 이미 칸트는 취향을 판단력이라는 더 기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미학과 윤리를 연결하려는 의도입니다만.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요, 전적으로 동감하는데 저도 아직 잘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좀 더 얘기를 듣고 싶고요. 결론없이, 이리 저리 얘기했는데, B에게도 사소한 한 가지만 질문할게요. "'판정을 위해 주어진 근거는 없지만 마치 근거가 있는 것처럼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비평"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작은 따옴표 안에 있는 표현이 원래 있는 건가요? 아니면 취미판단의 직접성, 주관성, 비추론성 등을 나름대로 표현하신 건가요? 매우 미묘하고 재밌는 표현이네요.

 

 

A:

[C에게] 프루스트의 위치는 완전히 가설. 취향 문제가 완전히 상대주의가 되고 각자 개인의 어쩔 수 없음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항 또는 조정을 시도했던 사람 중에 하나가 프루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보려구요. 데카당스와의 관계설정, 딜레탕티즘에 대한 태도 등을 봐야 할 것 같고...

 

 

D(철학 전공 대학원생):

[A의 초대를 받고 등장] 과문한 탓에 bon sens 또는 gout 라는 개념이 대두된 것은 C가 쓴 것처럼 절대왕정의 해체와 민주적 사유의 맹아가 등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어. bon sens을 가지고 있음이 신분에 관계 없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의 증명이 되는 거지. 그 점에서 오늘날 취향이 보편성을 잃고 주관적인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고 말야.

 

근데 취향을 평등성하고만 연결시킬 수는 없는 것이 gout 는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자질이니까. gout에 보편성이 있다면 그 보편성은 천재가 포착해 낼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위계의 계기가 있고.

 

칸트의 도덕철학은 아무런 설명 없이 가정되었던 인간의 동일한 도덕적 감각()에 합리적인 기초를 부여한 것이라 볼 수 있을텐데, 이렇게 마감된 논의가 미학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면 다시 열리게 되는 것 같아. 그 자체로 완결된 것처럼 보이는 도덕의 문제가 정치와 엮이면 그 완결성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B:

[C에게] 저는 아렌트의 칸트에 대한 논의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취미판단 및 공통감각에 기초해 사회를 구축한다는 정도의 대략적인 함의만 알고 있는데, 제게는 이게 아담 스미스, 특히 <도덕감정론>에서 공통적인 판정기준에 기초해 사회를 구축하는 작업과 근본적으로 구별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특히나 미적인 것의 감각과 내셔널리즘을 연결지어 비판하는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겠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칸트의 취향판단에 여러 맥락이 걸쳐 있다는 걸 부인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첫 번째 리플의 해당괄호에서 덧붙이고자 했던 뉘앙스는 칸트의 비판이 (그런 점에서 저는 여기에서 취향판단과 일치하지는 않는 비평/판을 상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어떤 '한계짓기'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취향의 무제약적인 자기주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맥락이나 강조지점은 다르지만 C이 놓으신 구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하고요.

 

여쭤보신 부분은 저 혼자 발명한 표현은 아니고, 한두군데가 아닌 몇몇 텍스트에서 비슷한 뉘앙스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동시에 <판단력비판>을 포함한 칸트의 비판들을 읽으면서 제가 이해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지금 고향에 내려와 있어서 특별히 전거를 찾기가 힘들군요. 기껏해야 가라타니 고진(<트랜스크리틱> 정본판 국역본 61-73) 정도가 그런 함의를 전달하는 텍스트 중에서 당장 인용할 수 있는 거긴 하네요. , 데리다도 파레르곤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얘기를 하긴 합니다. 여튼 해당 표현을 직접 인용한 건 아니지만 대략의 함의는 여기저기에서 봐두었다는 것만 당장은 얘기할 수 있겠네요. 여튼 잉글랜드/스코틀랜드에서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취향과 비평의 문제는 개인적으로 한번 정리해볼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 유효한 문제제기라고 보기도 하고요.

 

취향 혹은 평가와 대상의 문제는 조금은 돌려서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홉스와 로크의 시대 이후로 영국의 비평은 기본적으로 대상 자체보다는 대상을 인식하는 주관에 집중하는 편이었으니까요(흄도 그렇고, 칸트와 동시대인이었지만 따로 숭고에 대해서 말한 에드먼드 버크도 그렇죠). 물론 한편으로 그들이 무엇이 미적판단의 대상인가에 대해서는 꽤나 자명한 합의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요. 사실 취향과 미에 대한 주요한 논의의 흐름이 주관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꽤 의미있는 일일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는 말씀하신 내용 대로라면 18-19세기에 쾌락 자체에 대한 포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벤담은 18세기 말에 쓴 텍스트에서 쾌락이 대상의 속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주관이 쾌락이라고 인지하는 것으로 상정하면서--그래서 저는 칸트, 사드, 벤담이 꽤 흥미로운 묶음이라고 생각하는데--어떤 면에서 주관주의를 '완성'시킵니다. 이 점에서 (공리주의의 직접적인 후신이기도 한)실증주의를 자신의 가장 큰 적수로 꼽았던 아도르노가 대상의 문제에 천착한 것도 그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한 거죠...프레드릭 제임슨이 아도르노를 포스트모던 비판에 끌고 들어오는 것은 저는 이런 다소 거친 스케치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틀이 좀 과대하게 커졌는데, 제가 상정하는 시간대 자체가 17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the big modern era 안에서 다른 시대들을 연결시키려는 작업을 위한 것입니다^^;;)

 

동시대에 대한 언급..., 개별적인 작업들이야 언제든 할 수 있겠지만 좀 더 큰 역사적인 퍼스펙티브를 갖고 얘기하려면 개인적으로는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요. 한편으로 포스트모던에 대한, 그리고 포스트모던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들을 조금 정리하면서 말이죠(책장에 꽂아놓은 제임슨의 _Postmodernism_을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네요-_-;). 저는 미적인 것들이 동시대의 이데올로기들과 어떻게 관계맺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물질적인 층위'와 어떤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취향의 무절제와 비평의 쇠락은 그것들의 분석에서 꽤나 중요한 사례라고 여기고는 있습니다.

 

 

C:

[D에게] 우리가 얘기한 대로, 18세기에 goût '작아져서' 개인들에게로 귀속된 것을 사회적 평등의 확산으로 볼 수 있어. 한 가지만 덧붙이면 그런데 이 과정에서 취향이 중세봉건사회의 mérite 와 같은 지위를 가지며 개인들로 들어간다는 거. 단절이긴 한데 도식 자체는 과거의 것을 쓰면서... 너무 뻔한 얘긴가. 그런데 내가 취향을 mérite 하고 연결시켰듯이, 최소한 18세기의 상황은, 취향을 누구나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들 사이에 위계를 따질 수 있다는 거였던 거 같다. 그러니까 모든 취향들 사이의 평등은 아니라는 거지. 모든 취향이 자신만의 가치를 갖는다는 극단적 상대주의의 관점은, 비록 그것이 처음부터 예감된 결론이라 하더라도, 언제부터 어떻게 사회적으로 작동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한데 더 봐야 할 것 같고.

 

goût génie 만이 가질 수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이 생기네. 루소랑 칸트만 하더라도 감상과 사용의 영역인 취향과 창작과 제작의 영역에 있는 천재를 구별하려는 것 같아서. 창작은 아무나 못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보고 느끼는 건 보편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물론 잘 느끼는 사람이 있고, 못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기본능력 자체는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 같아. 이게 goût 가 가진 평등성이고, 천재와 다른거지. '취향'을 뜻하는 유럽어들(goût / taste / Geschmack)이 모두 '미각'의 비유적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될 거 같아. 아기들은 태어날 떄부터 김치보다 모유를 더 좋아하는 미각/취향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지성적이지 않지만 즉각적인 판단능력으로 주어져. 이 능력은 보통 모든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지, 없으면 뭔가 문제 있는 거고. 18세기에 (그리고 지금도) 취향에 대한 논의들에서 미각과의 관련성을 계속 얘기하는 것을 보면, 보편적 능력으로서의 취향에 대한 믿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아.

 

나는 칸트 논의가 지금보면 기초적이고 순진할지언정 모든 취향비판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 기본적인 전제들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제일 큰 이유는 다른 사람은 읽은 게 없어서지만...)

 

 

[B에게] 제가 칸트를 (비롯해서 모든 글을) 좀 순진하게 읽기도 하고, 아담 스미스의 논의를 직접 본적이 없어서, 무척 조심스럽네요, 그냥 결론만 쓸게요. 칸트의 취미판단 분석은, 모두가 '자유롭게' 판단하는데도 그것을 보편적으로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선험적으로' 인간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밝히려고 애쓰죠. 칸트의 취미판단은, 물론 여러 '한계짓는' 제약들이 추가되긴 하지만, 적극적인 자유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칸트의 '선험성'은 실증적인 방향이 아니라 차라리 인류학적이기에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도덕감정'과 분명하게 구별된다고 보여요.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은 그 자체로는 사회나 윤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그러한 실천적 자유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해주고, 일종의 준비과정이 되는... 그래서 칸트에서는 다른 감정과 달리 이 취미판단이 (숭고판단과 함께) 인간이 도덕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특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 같습니다.

 

, 주관주의로의 이행에 대해서는 저도 이견이 없습니다. 프랑스도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이미 지적하신 대로, 주체에 대한 고려에는 대상에 대한 암묵적 합의, 비록 그것이 대상의 이념화라 할지라도(루소와 칸트의 '자연'), 어떤 공통전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체나 대상에 대한 논의는 무엇이든 반대편의 것에 대한 논의를 함축하고 있고요. 제가 너무 원리적인 수준에 있네요. 19세기 프랑스의 (그리고 칸트 이후 독일의 경우에도 대충 그렇다고 보이는데) 쾌락에 대한 관념은 무슨 특별한 게 있을까 싶네요. 최소한 "영혼의 쾌락"과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읽은 게 별로 없어서 분명하진 않아요. 뭘 좀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B:

[C에게] 저는 혼자서 필요에 따라 읽으며 정리한 것일 뿐 애초에 해당 텍스트에 대한 전공자라고 말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 적당히 걸러주시면^^; 제가 더 감사할 일이죠- 칸트의 경우 저도 취미판단은 다른 <비판>들에서 언급되는 내용과 쉽사리 일치시킬 수는 없다는데 동의합니다. <판단력비판>은 확실히 좀 더 읽어보아야 할 것 같네요. 제게는 다른 비판들만큼 명료하게 다가온 텍스트는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칸트의 '선험성'의 인류학적(anthropological 이라면, 한국에서 보통 인간학적이라고 번역되는 부분을 말씀하신 건가요?) 성격과 스미스의 '실증적' 성격의 대립은 조금 세심하게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인간학>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만(존재론적인? 실증적이지 않은?), 스미스의 도덕감정을 실증적이라고 판정하려면 추가 진술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실제로 스미스의 도덕감정/공통감각 같은 개념들이 원래 추상물인 것도 있고, 예컨대 실증적 태도 하면 어디가서도 밀리지 않을 벤담은 대놓고 도덕감정 같은 건 허구라고 비판하니까요.

 

스미스의 경우는 애초에 칸트처럼 인식/윤리/미적판정을 그렇게 분명하게 나누지는 않습니다. 대신 모든 인간이 전범으로 삼을 수 있는 "불편부당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시각을 내재하고 있고 그것의 매개를 통해 상호교감이 가능하다고 말하죠(AB는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내재된 IS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또 서로를 위해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찰자는 (신의 의지가 반영된)사회를 통해 인간에게 습득되고--저도 이 부분은 읽은지 좀 되서 다시 살펴봐야 하긴 합니다만--... 여튼 도덕감정 혹은 공감을 통해 인간사회 자체가 도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간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칸트적인 인간 인식의 형식보다는 감각론에 조금 더 가까운 면모가 있기는 합니다. 만약 '실증적'이 감각에 논의를 집중하는 것을 가리키시는 것이라면 스미스가 칸트보다는 확실히 그쪽에 가깝지만, 나름대로의 인간학을 세우기도 한다는 점에서 철저히 감각에만 집중하는 벤담에 비하면 훨씬 반실증적이죠. (그래서 경제이론이 스미스에서 벤담-한계효용학파로 가는 것, 사회이론에서 미시이론으로 이행해 간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취향 및 인식론에서 주관주의로의 이행과 연결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칸트에게 있어 미적 영역이 일종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은 동의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흄의 논의("Of the Standard of Taste")가 미적 판단의 기준을 묻는 거라면 <판단력비판>(물론 칸트가 지나치듯이 그런 기준을 말하는 때도 있긴 하지만) 기준보다는 그러한 인식의 근거를 묻는 텍스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흄이 명시적으로 판단주체들이 속한 사회의 영향력을 인정했다면, 칸트는 개개인의 판단근거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역으로 '도덕'(윤리와 구별되는)의 영역을 지워버리는 게 아닌가하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식론에서 헤겔이 칸트를 비판한 방식처럼요. 다시 말해 <판단력비판>은 훨씬 더 강한 형태로, 근본적인 차원에서 주관주의적인 텍스트로 이해될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예상가능한 비판에 어떤 반론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주관주의의 경우... 일단 영국의 사례에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스미스식 입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폐기한 벤담 이후로 '도덕철학'moral philosophy 자체가 꽤나 힘을 잃어버린다고 얘기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의 전성기가 끝난 것도 한 이유겠지만요). 영국에서 프랑스혁명을 두고 한 차례 진통을 겪은 다음에는 형이상학적/인간학적인 논의보다는 정치경제학(우리가 "고전파 경제학"이라고 부르는)적인 논의가 사회적으로 훨씬 강해지죠. 미와 취향에 대한 논의는 문학으로 옮겨가긴 하는데 이게 이론적으로 어떤 공통된 이념형을 구성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P.B. 셸리를 포함해 낭만주의자들 중 일부가 칸트를 공부하고 공리주의랑 대립적이면서도 어떤 것은 공유하는 구도른 만들어내긴 합니다...주지하다시피 낭만주의자들에게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관조자로서 자신의 내면이라는 쌍이 중요하다는 건 유명한 도식인데, 셸리는 대놓고 사회비평논문도 쓰고 그래서 제가 한번에 정리하긴 힘드네요. 여튼 낭만주의(문학)VS.공리주의의 (살펴볼수록 복잡한) 구도가 있는데 이건 저도 박사에서 공부해야할 과제 중 하나라 당장 지도는 그리긴 어렵습니다...

 

딱 이 정도까지가 말씀하신 미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는 영역입니다. 다른 흐름들이 이후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이 시기부터 학문이 본격적으로 쪼개지면서 철학/미학이랑 연결된 논의 자체가 중요한 논의의 무대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지금 제가 19세기 영국의 사상필드를 간략히 기술하는 중심축은 공리주의 및 공리주의비판입니다(E. P. 톰슨이나 레이먼드 윌리엄스 모두 첫 작업을 이런 틀에서 시작했고, 저도 큰 틀에서 이 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있고, 문필가들, 노동운동가들이 있고, (톰슨이나 윌리엄스는 거의 다루지 않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도덕철학자들이 있고. 스미스나 흄, 조금 더 쳐줘서 (거의 안티테제에 가깝지만) 벤담 때까지가 한 사람이 사회/경제/인간학/예술 같은 주제를 전부 다루는 게 가능했던 때고, 이후에 (영재조기교육을 받은) J. S. 밀 정도를 빼고는 한 사람의 논의에 이런 주제들이 집약되는 게 거의 없습니다. 학문의 분화 및 전문화가 시작되는 거죠.

 

자유주의-공리주의자들이야 정치경제이론이나 행정개혁으로 들어가면서 영국 전체에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고요(J.S. 밀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뭐 여기에도 좌우파가 나뉘어서 윌리엄 톰슨 같이 노동문제 제기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맑스에게 혹독하게 비판당하긴 하지만 여튼 사회주의를 얘기했던 밀 이후 정치경제학이 한계효용혁명을 거치면서 '정치'를 떼어버리고 오늘날 이해되는 경제학의 그림이 점차 나옵니다. 인간학의 수준에서 이야기한다면 훨씬 근본적인 수준에서 벤담을 다시 도입하죠. 콜리지나 시 갖고 글 썼던 밀이 좀 특이한 사람이고, 큰 흐름에서는 벤담과 그 후계자들이 훨씬 중요합니다. -제번스의 '단절' 혹은 '혁명'을 기점으로 한동안 주요한 사회이론가는 (케인즈가 나오기까지) 없습니다.

 

공리주의 비판가들, 그러니까 문학하던 사람들의 후신은 토리 느낌으로 가면 매튜 아널드나 존 러스킨, 토머스 칼라일 쪽으로 가고요, 이 사람들은 철학자는 아니고 문명비판가 쪽에 좀 더 가깝습니다. 대신 사회, 문화, 문명 같은 개념들이 이 사람들에게 중요하고 여기에 근거해서 공리주의를 비판합니다. 좌파, 그러니까 사회주의 계열로 가면 제일 특이한 사람이 윌리엄 모리스죠. 낭만주의-라파엘 전파랑 놀다가 사회혁명으로 가니까요(그래서 E.P. 톰슨의 모리스 전기 부제가 From Romantics to Revolutionary 입니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의 계보는 공리주의자들이랑 낭만주의자들이 섞이는, 또 토리랑 새로이 등장하는 노동자들이 섞이면서 복잡해집니다. 러스킨은 예술과 관련해서 굉장히 많은 글을 썼는데 저도 거의 커버가 안 되는 부분이라 있다는 것만 얘기해둡니다. 나중에 유미주의까지 가면 헨리 제임스나 오스카 와일드가 나오지만 아직 제 시야 밖입니다.

 

이렇게만 쓰면 도덕철학은 다 망한 것 같아뵈는데, 19세기 중후반쯤 와서 T. H. 그린이나 F. H. 브래들리 같은 칸트-헤겔 독자들, 즉 영국관념론British Idealism이 다시 튀어나와서, 꺼져가던 도덕철학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는 합니다. 이 사람들이 공리주의-경험주의-개인주의-자유주의(그러니까 주관주의의 정치경제적 표현태라고도 할 수 있는)에 비판적이었다는 것도 짚어둬야겠죠. 그리고 이 헤겔리안들을 치워버리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영미분석-실증주의VS.대륙형이상학의 구도를 만든 인물들이 버트란드 러셀이랑 G. E. 무어고요. 여담으로 T. S. 엘리엇의 하버드 박사논문이 바로 이 브래들리에 관한 것입니다^^. 저도 이쪽에서는 기본적인 기술밖에 못 해서 여기에서 주체-대상 문제가 어떻게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린은 예전에 한번 읽기는 했는데 너무 급하게 읽었고 칸트를 읽기 전이라 정리가 안 되서 기억이 없네요. 여튼 영국관념론자들이 정치적인 주제에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었고 사회개혁을 얘기하기도 했다는 것만 말해둡니다.

 

개인적으로, 그러니까 가설적으로 19세기 영국 지성계를 정리해본다면 미학의 주체-대상의 문제가 사회이론에서의 개인(주관)-사회의 문제틀로 이동하는 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합니다. 굉장히 큰 이야기들이고 적어놓고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도 많습니다만, 여튼 보통 단순하게 잘 먹고 잘 살아서 공리주의-경험주의-실증주의를 꺼냈다고 오해받는 영국도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C:

[B에게] , 어쩌면 이렇게 많은 것을 다 정리하고 있는 건가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저도 혁명 이후 프랑스 학문이 우리가 지금껏 얘기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어떤 흐름들을 형성했는지 간략하게 정리해드려야 하겠지만, 도저히 그런 능력은 안 되네요. 조만간 A가 해줄 거라 믿으며 저는 간단하게 제가 했던 말에 대해서만 부연하겠습니다. 사실 부연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영미철학의 실증적 성격에 대해 모호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네요. 그리고 스미스나 벤담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몇 가지 지점을 제 입장에서 짚는다는 정도로 봐주세요. 할말이 없으니 쓸데없는 말이 길어집니다.

 

일단 저는 실증성을 아주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주관적 감각이나 사회적 소통수단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것 이상 혹은 이하로 관심을 확장하지 않는 태도, 혹은 그런 것에 우선권을 주는 태도 정도로요. 제가 잘 모르면서 마음대로 언뜻 보기에는, 스미스의 도덕감정이나 불편부당한 관찰자는 공감을 통한 사회적 관계의 형성을 말하면서 그 조건을 실증적으로규정하기 위한 한계 같아요. 만약 불편부당한 관찰자양심이라는 예로도 이해할 수 있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인정되고 개인 안에서 보편적 판단을 한다고 전제되는 양심은 우리가 죄책감 등의 감정으로 그 존재를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실증적으로 확인되는 기본요소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 구조와 원리는 무엇이냐고 물을 때 벤담의 불만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어떤 답변들이 가능할까요? 하나는, 이미 스미스가 말하고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회가 양심을 형성하고 교육하고 그 판단기준들을 마련한다는 것이겠죠. 이때 이 대답은 도덕감정이나 불편부당한 관찰자라는 관념을 이중으로 실증적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신이 그것을 그렇게 주었다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18세기는 이런 초월적 구도에 만족할 시대가 아니죠. 이런 맥락에서, 칸트의 선험성은 신학적 초월성이나 실증적 순환과 대립한다고 생각됩니다. 칸트 또한 양심이라는 경험에서 출발하고 그 경험을 최대한으로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인간들의 도덕적 소통의 조건이 되는 그 양심의 조건을 다시 그 소통의 장에서 찾지 않습니다. 칸트의 초월철학은 양심이라는 경험이 가능하기 위한 논리적 범주와 이성, 지성, 감각, 상상력 등의 능력들 사이의 관계가 인간 일반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고 이때부터 칸트의 논의는 실증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추론해내려고 합니다. 제가 칸트를 너무 기초적으로 정리하고 있어서 민망합니다만, 이 정도로도 제가 칸트의 선험성과 스미스의 실증성의 대립에 대해 가진 편견이, 정당화는 힘들더라도 이해는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성, 지성, 감각, 상상력, 그리고 감성의 형식과 이념과 순수개념들이런 것들은 분명 인간의, 인간만이 가진 주관성을 형성하는 요소 혹은 능력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칸트는 분명히 주관주의이지요, 물자체는 알 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주관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어떤 개인 혹은 개인들의 감정이나 감각, 이성에 의존하는 주관주의는 아닙니다. 칸트가 잘 쓰는 말로, 경험 일반의 가능조건을 인간주체 일반의 선험적 구조에서 찾는 주관주의입니다. 칸트는 개개인의 감각이나 지성에 도덕적, 인식적, 미학적 심급을 심지 않는 것 같아요. 대상에서도 사회에서도 개인에서도 소통의 근거를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칸트와 실증성과의 거리가 다시 한번 확인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당하게 이렇게 되물을 수 있죠. 그런 인간 일반이 경험 일반을 위해 가졌다고 추론되는 능력들, 형식과 범주들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이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칸트는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니까라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칸트 해석자들의 의견입니다. 칸트는 조건을 말한 것이지 본질을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게, 칸트 <인간학> 서문에서 푸코가 강조하는 지점 중 하나죠. 그럼 그 조건의 조건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사회도 아니고 개인도 아닌 인간 일반이란 어떤 주체일까요? 여기에서 이성, 지성, 상상력과 같은 정신능력들이 지금의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의 근거는, 넓은 의미의 인류학 혹은 문화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리고 인간 일반이란 인류사의 특정한 문화적 시기들을 뜻한다는 것이 제가 동의하는 생각입니다(Alexis Philonenko). 우리는 구석기 시대의 인간들이 남긴 유적들을 가지고 그들이 가진 정신능력의 내용과 관계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필로넨코는 자연에 대한 관조를 취미판단의 모델로 삼는 칸트의 논의를 해석하며, 그것이 신석기 시대 이후의 인간에게 가능한 능력들의 조화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칸트의 비판과 한계짓기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단순한 규정이 아닌, 넓은 의미의 문화사를 구성하는 요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인류학적이라는 말을 인간학이라고 구별해서 옮겨야 하는 그런 철학적이고 특수한 의미로 쓰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 정도지만, 한국에서 칸트의 anthropologie 인간학이라고 옮기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칸트가 그냥 인간학이라고 하지 않고 실용적 pragmatique 인간학이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기도 하고, 칸트와 그 이후의 철학적 인류학이 기존의 사회학적, 민속지적 인류학과 전혀 별개로 형성되고 발전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한 단어를 여러 단어로 옮겨야 할 경우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경우에는 오히려 그것이 이해의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여요. (칸트 <실용적 인류학>을 아직 안 보셨다니 오해하실까 해서 첨언하자면, 이 책이 칸트의 선험성을 문화사적으로 위치시키는 그러한 작업은 결코 아닙니다.)

 

미적 취향과 <판단력비판>의 특수성에 대해서 얘기해야 하는데 갑자기 체력이다음 기회에;

 

저 또한 전공자도 아닌데, 읽은 게 몇 개 되지 않아 그것만 가지고 계속 얘기할 수밖에 없네요. 칸트와 18-19세기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보면 너무 서툴고 피상적인 요약 이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쓰면서 반성이 많이 됐어요.

 

 

B:

[C에게] 중요한 주제들을 공들여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학>은 새 번역이 나올 때까지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푸코의 독해 때문에라도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한번 보기는 해야겠네요. 저의 18-19세기 영국사상 정리는 다시 한 번 강조해두지만 어디까지나 사견에 가까운, 가설적인 것입니다. 이후 특히나 영국경험론-스코틀랜드 계몽주의-공리주의(효용주의)의 큰 계보는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볼 예정이고, 그 과정에서 지금 정리해놓은 내용들의 많은 부분들을 수정하게 될텐데 단지 지금 너무 틀린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1. 말씀하신 대로라면 칸트에 비해 스미스가 보다 '실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주장에는 그럭저럭 동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주장을 보완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질문들은 달 수 있을 것 같아요.

 

1) 피터 게이가 말하듯, 홉스와 로크의 시대 이후 영국의 지배적인 사조는 기본적으로 '스콜라철학'에 대해 강력히 비판적인 입장을 기초로 합니다. 데카르트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에 거리를 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홉스가 '학자들'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이었는지 (거의 형이상학 및 관념론에 대한 실증주의자들의 비난이 연상될 정도로) 역시 잊혀져서는 안 되겠죠. 그리고 그 비판의 주축이 감각에 기반한 사고, 우리가 보통 경험주의라고 부르는 틀 안쪽에서 진행되었다는 것도요(물론 스타로뱅스키도 암시하듯 로크는 분명 소박한 의미에서의 경험주의자는 아닙니다-). 로크의 직접적인 후계자들에 속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 영국인들을 통채로 경험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단순히 감각적인 것만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개념들에 대한 추구가 있었으며 스미스가 (칸트처럼 철저하지는 못했으나) 그 사례에 들어간다고 덧붙일 수는 있을 듯 합니다. 요컨대 이들이 이미 경험주의적인 인식틀 위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18-19세기 영국의 사상적 운동이 겉보기보다는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이죠.

 

2) 만약 흄-스미스-벤담-JS(저는 아담 퍼거슨과 같은 인물을 부당하게 빼놓고는 있습니다...) 같은 패턴을 그려본다면, 보다 래디컬한 차원에서의 주관주의-감각론과 보다 상식적이고 '중용적인'(한국에서 스미스를, 특히 <도덕감정론>의 스미스를 독해하는 방식과 J S 밀을 이해하는 방식은 굉장히 닮은 면이 있죠), 그리고 제 표현을 덧붙이자면 감각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분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것을 도입하는 입장들이 엇갈리며 나타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부분적으로 정치경제학자/사회이론가들이라는 것도 이들이 속한 지평이 사실상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그러면서도 (개인의 차원에서는) '감각적이지 않은' 사회를--경제이론으로 이야기한다면, 효용가치VS노동가치의 문제를--어떻게 해명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조금 더 세심한 포커스를 요구한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겠죠.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것은 어떤 면에서 개개인의 감각을 초과하는 무언가가 현실적인 결과물, 다시 말해 생산물의 형태로 되돌아온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상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물론 <도덕감정론>이 이론적으로 스미스에게 가장 중요한 텍스트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국부론>이 갖는 '실용적인' 성격이 TMS를 어떻게 보충하는가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3) 만약 영국 정치경제학의 시점에서 칸트를 바라본다면, 어떤 면에서 칸트는 되다만 사회이론가이기도 합니다--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덧붙인다면, 저는 칸트의 본령이 비판과 (말씀하신 표현을 따라)인류학에 있었음을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그가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일종의 사회이론의 구축에까지 진지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리형이상학>에서 볼 수 있듯 칸트가 스미스의 독자였다는 점, 하지만 적어도 헤겔이 자신의 체제에 스미스적 문제의식을 투영한 만큼에 비해서 사려깊은 독자는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 (적어도 우리의 감각으로 볼 때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보이는) 정교의 분리불가능을 이야기할 때라든가, <속설에 관하여>에서 홉스를 비판하면서 "펜의 영역"을 약간은 고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게 강조한다거나...그리고 곳곳에서 나타나는 공리주의(라고 명시적으로 쓰지는 않아도 분명히 그런 입장을 겨냥한)에 대한 비판과 같은 것들을 보면, 어쨌든 칸트에게 있어서 사회의 문제가 영국적인 것과 어떻게든 얽혀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습니다. 약간 비약해서 질문한다면,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칸트를 실증적인 것들에 대한 대립항으로 간주할 때, 그러한 칸트에게 사회이론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인가를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영국 도덕철학-정치경제학의 맥락에서는 앞서 언급했듯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이들의 주관주의적 시작지점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때로는 상충하는 사회이론으로 이끌고 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저는 칸트에게 '사회'란 어떤 것이었는지는 물어볼 가치가 있는 질문이라 느낍니다.

 

2. 인류학에 대해선 푸코의 텍스트를 포함해 소개해주신 논의가 무척 흥미롭군요. 저는 프랑스에서 칸트가 설명한 조건들의 기저를 어떻게 역사적인 퍼스펙티브 안에서 해명하는지는 몰랐고, 대신 알프레트 존-레텔 및 아도르노처럼 칸트의 선험적 개념들을 시민사회의 역사적 조건들 안에서 설명하려 했던 독일의 비판이론가들이 떠오릅니다. 아도르노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놓고 따로 강의를 한 텍스트도 있는데, 아직 읽어보질 못해서...나중에 푸코의 서문과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겠네요.

 

 

C:

[B에게] 다시 좋은 설명을 덧붙여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영국쪽 사정을 좀 더 세심하게 편견 없이 봐야 한다는 요구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흄의 분서선동에 이르러 영국의 형이상학은 일단락되고, 흄 자신의 여정처럼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경험과학과 사회학이 영국의 주류를 이루게 되고, 이 형이상학의 위기를 칸트가 자신의 초월철학을 통해 극복한다는, 너무나 도식적인 철학사의 요약에 만족하고 있었네요. 이러한 큰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속에도 여러 결들이 있고 그것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적극 동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로크와 뉴튼 등의 영국경험론이 또 다른 맥락과 만나 조율되는 과정이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라는 걸 알면서도 프랑스와 영국이 어떤 유비와 대조를 보이며 경험론을 전개시켜 나가는지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일 게 없는 제가 전공자로서 참 한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루소도 경험론의 영향 아래에서 형이상학을 거부하지만, 그것을 또 다른 차원의 인간이론으로 연결하거든요. 칸트가 이런 루소를 좋아하고 루소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렇게 루소에서 칸트와 독일 관념론으로 가는 흐름에 집중해서 영국쪽 이야기에 소홀했던 것 같아요.

 

칸트와 영국사회이론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던 것이라 호기심이 생깁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지금까지 말한 칸트는 형이상학자이자 문화학자로서의 칸트이고, 사회학자 칸트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어요. 아마도, 칸트에게서 영국식의 사회이론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고, 푸코의 예에서 보듯이 (칸트 <실용적 인류학> 서문을 발전시킨 게 <말과 사물>임은 유명하죠) 칸트의 실용적 사용들을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인데, 저의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프랑스, 영국과 달리 '실증성'에 맞닥뜨린 현대사회가 아직 등장하지 않은, 당시 독일사회의 특수성도 고려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교분리나 사상과 언론의 자유와 같은 문제들이, 철학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해결을 본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칸트의 독일은 여전히 이런 문제들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칸트를 비롯한 독일관념론에게 기본적으로 사회란 '이미 있는', 즉 실증성의 대상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아직 있지 않은' 건설해야 하는 사회로 접근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여전히 거친 추측일 뿐이네요. 프랑스, 독일, 영국, 모두 역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는 건 분명한데, 독일 놀러갈 땐 그냥 편하게 가도 되지만 영국 갈 땐 환전도 해야 하고 출입국절차도 까다롭고 해서, 학문적 풍토 차이에 심리적 거리감까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재밌네요.

 

 

B:

[C에게] 확실히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어쨌든 제게 매우 중요한 인물인--한편으로 동족과 같은 친근감을 주는, 다른 한편으로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자신의 '악마적인 분신'과 같은--벤담의 지적 이력 때문에라도, 그리고 영국과 독일의 연결고리 때문에라도 언젠가 기본적인 수준에서라도 정리를 하고픈 분야이긴 합니다. 영국을 공리주의-자유주의의 발전과 여기에 대한 각양각색의 저항이라는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영국의 독일철학 수입사도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어쨌든 영국낭만주의의 거물들 상당수가 독일철학, 특히 칸트를 읽고 자기 식대로 소화했다는 사실은 부인될 수 없지요--저는 낭만주의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당장 더 나가기는 어렵습니다만. 아직 피터 게이의 _The Enlightenment_ 2권을 못 읽었는데 읽고 나면 조금 더 도움이 되겠지요^^.

 

벤담이 참고한 엘베시우스와 함께 말씀하신 루소도 언젠가 한국어로나마 기본적인 저작을 얼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 스타로뱅스키의 <투명성과 장애물>_Jean-Jacques Rousseau: La transparence et l'obstacle_을 무척이나 감명깊게 읽었고, 군데군데 스타로뱅스키가 로크-루소-칸트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꽤 인상깊었습니다. (적다보니 결국 언젠가는 카시러를 읽긴 해야겠네요...) 여튼 저도 루소를 포함하여 프랑스 계몽주의사/지성사 쪽에 관련된 말씀을 기회가 되는 대로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영국은 그나마 제가 기본적으로 속해 있는 분야고, 독일은 그럭저럭 번역된/지명도 있는 저술가들이 많은데, 프랑스는 의외로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공백지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저는 일단 세 가지 지점들을 근시일(?) 내의 공부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헤겔과 헤겔리안들이고, 둘째는 프레더릭 바이저Frederick Beiser와 같은 철학사가들이 최근에 제시하는 것처럼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맥락을 도입하는 것, 셋째로는 조금 시간을 건너뛰어서 어떻게 독일에서 행정국가로의 진입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는가--물론 헤겔에게서 이런 사고는 한발짝 앞서 나옵니다만, 역시 반세기 넘게 뒤의 베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죠--입니다. 마지막 것은 푸코가 통치성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잠깐 힌트를 주긴 했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고, 어떤 면에서 독일이야말로 징글징글한 사회이론가들이 넘쳐나는 곳이니까...하여간 길고 험난하지만 배울 게 없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영문학은... 확실히 공부하다보면 자신이 유럽의 촌동네/변방에 있다는 걸 망각하기 쉽고 또 토속적인(?) 면모가 꽤나 강하다보니까 외부의 맥락을 잊어버려도 될 것 같은 유혹을 많이 받지요. 저의 근본적인 성향이 계속해서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인데, 영국의 '지적인' 외부로서 프랑스와 독일, 이 세 지역간의 상호작용은 굉장히 주목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 이런 간략한(?) 대화를 통해서나마 앎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저는 공부는 서로 다른 영역의 연구자들끼리 협조하지 않는 이상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마 박사과정 때까지는 17세기 말-19세기 중반 정도(소설가로 치면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가 제가 추상적으로나마 다룰 수 있는 시간범위일 것 같은데 (이중에서도 결국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의 텍스트들이 중요한 초점이 될 것이고요) 그 과정에서 섬과 대륙의 교류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계속 주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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