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에세이 장르의 역사에 관한 짧은 에세이

Reading 2021. 5. 1. 12:12

 

아래는 격월간 문학잡지 《Littor릿터》 26호에 '영어권 에세이 장르의 역사'를 주제로 기고한 원고를 약간 다듬은 글이다(출판된 판본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혹시라도 인용하실 분이 있다면 출판된 내용을 따라주시길 바란다). 8월 중순 릿터로부터 집필 제안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망설였다. 나는 한창 박사논문 첫 장과 씨름 중이었고, 무엇보다 19-20세기 영어 에세이 전통을 거의 모르는 입장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주제를 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탁을 수락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현실적으로, 처음 제안을 받고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19세기 영국문학 전문가 중 한 분인) 윤미선 선생님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희미한 퍼즐조각을 어떻게 배열하면 좋을지 대략의 줄거리를 세울 수 있었고, 그 정도면 원고지 30매를 채우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논문과 병행하면서 새롭게 조사하고 읽어야 할 자료의 양과 난이도를 미리 계산해봤을 때, 내가 감수해야 할 고통의 양보다는 새로운 주제로 소품을 쓸 때 느끼는 즐거움의 크기가 확실히 커보였다.

 

좀 더 근본적인 동기는 우리가 쓰는 글의 장르형식 자체를 역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나의 오랜 문제의식이었다. 아래 글의 서두에서 암시되어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심지어 전문적인 공부를 수행한 사람조차도, 스스로가 사용하는 말과 글의 암묵적인 규범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왔는지, 자신이 선택한 장르가 무엇을 가능하고 불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자의식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특히나 에세이처럼 20세기에 서구로부터 (종종 일본과 중국을 경유하여) 유입된 장르의 경우는 그러한 면이 더욱 크다. 정작 그러한 장르를 만들어내고 사용하고 있는 곳에서는 일순간의 유행으로 스쳐지나갔거나 여러 선택지 중 하나 정도로 남아있는 사항이 한국에서 교과서적인 규정처럼 '주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상식인은 이러한 예가 지나가던 군비행기가 실수로 떨어트린 화물상자를 신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신성한 의례를 제정하는 풍경과 얼마나 다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우리에게 자명하게 통용되는 철학적 글쓰기, 문학비평/연구, 인문학적 글쓰기, 사회비평이라는 것은 과연 화물신앙의 또 다른 사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신화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가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상을 역사화하는 자세다. 우리가 배우고 받아들이는 규범들은, 설령 가장 기초적인 글쓰기의 양식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특정한 시공간에서 특정한 이유에 의해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고, 정착되고, 변화한 것들이다. 역사적으로 단일한 "서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바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단일하게 규정된 모습으로 마주하는 글쓰기 장르와 규칙 역시 실제로는 다양한 요소들이 뒤틀린 채 엉켜있는 시공간적 차이의 축적물이다. 릿터 기고문에서 매우 초보적인 방식으로나마 시도했던 작업은 바로 그러한 태도의 산물이다. 

 

물론, 이 서언의 처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글은 어디까지나 과제에 비해 극히 부족한 시간과 분량, 배경지식 속에서 빚어진 부족한 작업물이며, 영어권 에세이 장르의 다양한 결을 포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문학적 에세이literary essay 같은 독특하고 중요한 장르는 소개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첫 문단에 언급된 대학교 과제물로서의 '비판적 에세이'critical essay는 끝내 다뤄지지도 않았다! 언젠가 더 뛰어나고 해박한 저자들에 의해 좀 더 본격적인 작업이 나오기를 기다려 보자(나는 후속작업에 관심이 있지만, 그럴 기회가 언제쯤 올 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때까지 이 글이 많은 학생 혹은 독자들이 자신의 눈 앞에 놓여진 장르를 시간적으로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여 조금 더 생산적인 방향의 글쓰기를 탐색하는 데 아주 약간의 기여를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원고 작성에 도움을 주신 분들 및 릿터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출판된 글의 서지사항은:

이우창, 「자신을 향해, 모두를 위해: 영어권 에세이 장르의 역사에 관한 짧은 에세이」, 『Littor』 26 (2020년 10월 발행): 30-34.


 

자신을 향해, 모두를 위해: 영어권 에세이 장르의 역사에 관한 짧은 에세이 

 

 

한국의 국어·문학 교과목은 일반적으로 “에세이essay”를 “수필隨筆”, 즉 작자 개인의 체험과 감상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글쓰기와 같은 것이라 가르친다. 배운 바를 성실히 따라온 중등교육의 모범생들은 대학의 첫 글쓰기 과제를 마주하여 뜻밖의 좌절을 맛보게 된다. “에세이”를 제출하라는 요구에 따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스스로의 속내를 (가끔 약간의 ‘문학적인’ 기교를 발휘해보려는 열망을 품고) 솔직하게 적어 낸 보답은, 물론 과제물에 논평을 더하여 돌려주는 수업일 때의 이야기지만, “C+, 학술에세이는 감상문이 아닙니다”라는 심술궂고 무뚝뚝한 평가뿐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영어권의 에세이와 한국에서의 수필이 어느 정도의 교집합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 상기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박애주의적이고 실용적인 동기에서 출발하여 영어권에서 에세이 장르가 어떠한 것인지를 아주 얕게나마 역사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이 짧은 에세이의 목표다. 

 

“에세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을까?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의 “essay” 항목은 “측정하다, 시험하다”는 뜻의 라틴어 “exagĕre”에서부터 기원한 이 단어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시도 혹은 시험하는 행위 또는 과정The action or process of trying or testing”이고 둘째는 “무언가를 시도해보는 일A trying to do something”이다. 글쓰기 장르로서의 에세이는 후자의 파생형으로, “특정한 주제에 관해 적절한 길이로 작문한 글[...], 본래 끝맺음이 부족한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고르지 못한 글’(새뮤얼 존슨)을 뜻했으나, 현재는 어느 정도 잘 다듬어진 스타일의 글을 지칭”한다.1) 사전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면, 현대의 중요한 에세이 저자들은 해당 장르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상황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맨스플레인mansplaining”이란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 리베카 솔닛이나 버지니아 울프, 혹은 (영어로 글을 쓰진 않았지만 영어권 문학연구자들이 종종 인용하는) 루카치, 또 아도르노 등 모두가 하나같이 에세이 장르가 정확히 무엇인지 규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약간은 추상적인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고자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2) 

 

사전적 정의로도, 또 작가들의 장르 규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남은 길은 실제로 “에세이”라는 장르 또는 말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 용례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글쓰기 장르로서의 에세이는 몽테뉴의 《수상록Essais》(1580)으로부터, 영어권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수상록Essays》(초판 1597)에서 출발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베이컨이 쓴 첫 에세이들은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위한 교훈을 담은 아포리즘에 가까웠으며, 이후의 확장된 판본에서도 수신서로서의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1612년 판을 내면서 제임스 6세의 아들 웨일스공 헨리를 위해 준비했던 헌정사에서, 베이컨은 “[에세이라는] 단어는 근래에 나왔으나 그 자체는 오래된 것The word is late, but the thing is ancient”이며, 이는 고대 로마제국의 철학자 세네카의 저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여러 명상들dispersed meditations”과 같다고 말한다.3) 

 

 

베이컨의 저작에서부터 1700년대까지 제목에 “에세이”라는 단어를 넣은 책 수백 종이 출간된다. “에세이”란 말은 더 이상 도덕적 수상록을 가리키는 용법에 국한되어 사용되지 않았다.4) 정치적·종교적·학문적 팸플릿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저작은 “에세이”라는 명칭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수 쪽짜리 팸플릿부터 존 로크의 《인간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1690)처럼 200쪽에 가까운 길고 복잡한 논의에 이르는 이질적인 문헌들로부터 굳이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자신들이 기존의 전문분야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가벼운 논의를 추구한다는 태도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에세이들은 단어 본래의 의미대로 ‘시험삼아 써보는 글’, 즉 시론試論이라 할 수 있었다.5)  

 

기존의 주어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에서 부정적으로negative 정의할 수 있는 시론으로서의 에세이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8세기 영국의 가장 탁월한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철학적 논변을 개진한 《인간론An Essay on Man》(1733)에서처럼 (드물게나마) 운문으로 된 예도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자 애덤 퍼거슨의 《시민사회의 역사에 대한 시론An Essay on the History of Civil Society》(1767),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1798)처럼 학문적이고 정치적인 논의를 개진하는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의 “에세이”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19세기에도, 의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에도 일상적인 풍경이었으며, 오늘날엔 전문분과에 속한 학자·교수가 (적어도 스스로가 주장하기에) 상대적으로 덜 엄밀한 학문적 논의를 “에세이”들로 묶어 내기도 한다. 현재 대학 강의실에서 요구하는 “학술에세이academic essay”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에세이는 이러한 태도 혹은 전통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6) 

 

 

당연히도 영어권에 시론으로서의 에세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문헌을 읽고 분석하여 스스로의 평가를 개진하는 “비평적 에세이critical essay” 외에도, 한국어의 “수필”에 가까운 하나의 문학적 장르로서의 에세이 역시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영어권에서 이러한 에세이의 시초로 간주되는 저술은 조지프 애디슨과 리처드 스틸이 함께 꾸려간 정기간행물 《태틀러Tatler》(1709-11) 및 《스펙테이터The Spectator》(1711-12)다. 두 간행물의 목적은 중간계급과 여성을 포함하여 이전의 지식인들이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던 보다 넓은 독자층의 문화와 습속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저자들은, 《태틀러》의 아이작 비커스태프Isaac Bickerstaff와 같은 허구의 필자가 당대의 풍속과 유행에서부터 문학과 예술, 나아가 정치적·사회적 쟁점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소개하고 논평하는 형식을 취했다. 스틸, 그리고 당시 영국 최고의 문사였던 애디슨은 일간지의 분량에 맞게 짧은 호흡의 읽기 쉬우면서도 유려한 문장을 구사했으며, 일상적인 삶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소재를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성찰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유럽 각지에 막대한 문화적 영향을 끼쳤던 이들의 글쓰기는 새뮤얼 존슨의 《램블러The Rambler》(1750-52) 등을 통해 후대에 이어졌다. 

 

19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저자들, 특히 찰스 램, 윌리엄 해즐릿, 토머스 드 퀸시 등은 문학장르로서의 에세이가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셋 모두 문인이자 에세이스트로서 영국문학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에세이 장르의 역사에서 가장 추앙받은 이는 (스틸의 비커스태프를 모범으로 칭송했던) 램이라 할 수 있다. 《런던 매거진》에 연재한 글을 묶은 《엘리아 에세이Essays of Elia》(1823) 및 《엘리아의 마지막 에세이Last Essays of Elia》(1833)에서 램은 정치평론가로서의 성향을 감추지 않은 해즐릿·드 퀸시와 달리 철저하게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글을 썼다. 독특한 스타일을 지닌 그의 글은 유머와 애수를 동시에 품고 있었으며, 특히 저자의 기구한 삶에도 불구하고 재치를 잃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드러냈다. 후대의 독자들은 램의 에세이들로부터 개성적이면서도 유려한 문체, 지나친 엄숙함을 피하되 때로는 진지한 모럴리스트적인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자의 삶과 개성을 깊은 정서적 울림을 담아 드러내는 에세이스트의 모범을 찾아내었다.7)  

 

1922년 출간된 다섯 권짜리 《현대 영어에세이 선집》의 편집자 어니스트 리스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영어권의 에세이의 경향이 소설만큼이나 긴 에세이에서 점차 “애디슨과 스틸, 혹은 해즐릿과 엘리아[램]가 썼던 보다 가벼운 양식의 친근한 에세이”로 바뀌어 왔다고 지적한다.8) 그가 보기에 에세이 장르의 장점은 저자가 스스로를 “진정성 있게authentic” 풀어내는 데 있다(x). 선집 제5권에 수록된 〈에세이스트의 기술The Art of the Essayist〉에 따르면 에세이의 본령은 제재보다는 저자의 “개성이 지닌 마력charm of personality”에 있었으며(50), 경험의 가치는 “삶의 충만함a fulness of life” 속에서만 측량될 수 있는 것이었다(61). 에세이스트 본인의 삶과 개성을 얼마나 깊이 있게, 또 매력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가를 핵심적인 평가기준으로 삼는 문학 장르로서의 에세이는 꼭 ‘고급문학’이 아닐지라도 수많은 독자들의 일상을 파고든 대중문예지 등을 통해 고유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대 한국의 “수필”, 그리고 오늘날 인기를 구가하는 다양한 감성·힐링 “에세이”는 이러한 계보 위에 놓여있다. 

 

 

우리에겐 낯설 수 있지만, 공적인 글쓰기 장르로서의 에세이 또한 영어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7세기 중반 내전기 이래 잉글랜드에서는 각종 정치 팸플릿 및 정치평론이 성행했으며(문학·예술평론은 18-19세기를 거쳐서야 하나의 장르로 확립된다), 문인들이 특정한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앞서 언급한 애디슨과 스틸, 특히 《스펙테이터》는 특정한 당파를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대신 사회의 편견을 교정하고 풍습을 개혁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당대의 사회적 쟁점을 짧지만 깊이 있게 다루는 전범을 제공했다. 이러한 ‘고급’ 사회평론으로서의 에세이 전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데이비드 흄의 《도덕, 정치, 문예에 관한 에세이Essays Moral, Political, and Literary》(초판 1741)다.9) 애디슨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흄의 에세이는 빼어난 문장과 함께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어도 감탄할 만큼의 정교하고 복잡한 시선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파고 들어갔다. 애덤 스미스, 에드먼드 버크와 함께 흄은 18세기 영국에서 공적인 글쓰기로서의 에세이 전통, 특히 독자층을 지나치게 좁히지 않으면서도 ‘고급화’하고자 하는 경향의 대표자라 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의 공적 에세이 전통에서 주목할 점은 거대한 문명비판론으로서의 에세이가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이전 시대에 문명비판론이 없던 것도, 존 스튜어트 밀의 에세이처럼 당대의 현안에 좀 더 집중하는 글들이 없던 것도 아니었으나, 토마스 칼라일, 매튜 아놀드, 존 러스킨처럼 문학적인 배경을 지닌 “현인sage”들이 ‘시대적’ 문제를 긴 분량을 통해 진단하는 글쓰기가 그만한 파급력을 지녔던 시절이 흔하지는 않다. 프랑스혁명기 이후의 영국은 새로운 사조들과 갖가지 개혁담론, 그리고 사회질서의 전복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는 매우 복잡한 사회였다. 독일적인 개념으로서의 ‘문화’를 옹호하든, 중세적인 질서를 희구하든, 사회주의 혹은 다른 급진적인 변화의 필연성을 역설하든, 이들의 에세이는 현재의 치료불가능한 혼돈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문명’의 상을 제시하고자 했다.10) 이후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였던 조지 오웰의 정치적이면서도 자기성찰적인 에세이들을 지나, 오늘날 공적인 에세이 장르의 전통은 《타임스 문예부록The Times Literary Supplement》(1902-),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1979-)와 같이 학자와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고급평론지, 혹은 전문적인 정치평론가들이 기고하는 다양한 형태의 언론지들로 이어 내려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어권 에세이 장르의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들을 덧붙이자. 첫째, 매체의 변화, 특히 정기간행물의 등장과 변천은 에세이 장르의 형식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에세이가 수상록에 국한되지 않고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한 글쓰기 장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기간행물의 등장과 분리될 수 없다. 언론지 혹은 비평지가 터를 잡으면서 필자들은 시의성 있는 짧은 글을 기고하고 대중적인 피드백을 빠르게 얻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간행물의 주기와 성격에 따라 에세이의 형식과 주제도 신속히 바뀌었다. 둘째, 편집인·필자의 인적 네트워크 또한 중요한 요소다. 영국 에세이의 중요한 저자들은 고립된 개인이 아닌 다른 문인들과 연결된 존재였으며, 편집인들은 네트워크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필자를 확보하고 육성했다. 지식인 또는 고급 저널리스트가 분야를 넘나들며 탁월한 에세이를 산출하는 예가 낯설지 않은 영국 담론장의 풍경은 특히 (주로 옥스브리지 졸업생들로 구성된) 엘리트 지식인집단이 공통의 문화적 전통과 네트워크를 공유한다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에세이는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과 사회적 여론과의 교통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장르이며, 그 다양성과 생명력은 SNS플랫폼 및 인터넷매체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진 현재의 뉴미디어 시대에도 유지되고 있다.11) 


1) “A composition of moderate length on any particular subject[...]; originally implying want of finish, ‘an irregular undigested piece’ (Johnson), but now said of a composition more or less elaborate in style” (II.8), "essay, n." OED Online, Oxford University Press, September 2020, www.oed.com.libproxy.snu.ac.kr/view/Entry/64470 (2020년 9월 21일 최종접속). "assay, n." OED Online, Oxford University Press, September 2020, www.oed.com.libproxy.snu.ac.kr/view/Entry/11756 (2020년 9월 21일 최종접속)의 어원도 함께 참고하라. 

 

2) Rebeca Solnit, “Introduction”, The Best American Essays 2019, Boston: Mariner Books, 2019; Virginia Woolf, “The Modern Essay”, The Common Reader, Andrew McNeillie ed., Orlando: Harcourt, 1984, pp. 211-22[해당 글의 최초출간은 1922년]; 게오르그 루카치, 〈에세이의 본질과 형식〉, 《영혼과 형식》, 반성완·심희섭 역, 심설당, 1988[원문의 최초 출간은 1910년]; Theodor W. Adorno, “The Essay as Form”, Notes to Literature, Vol. 1, Shierry Weber Nicholsen tran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1, pp. 3-23[원문 집필은 1954-58년]. 사실 이는 에세이 장르가 유행한 이래 거의 모든 시대에 반복되는 현상으로, 약간 과장하자면 (지금 이 글을 포함해) ‘에세이 장르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에세이’가 하나의 고유한 장르라고 주장해도 될 정도다. 

 

3) Basil Montagu, The Works of Francis Bacon, Vol. I., New York: R. Worthington, 1884, p. 3. 과거의 잘못된 학문 전통과 단절하고 새로운 지식을 주창한 ‘근대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베이컨이 정작 에세이를 특별히 새로운 글쓰기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억할 만하다. 인간이 근대에 와서야 자신의 ‘자아’를 발견 또는 발명한다는 19세기적인 서사를 너무 쉽사리 믿을 필요는 없다. 

 

4) 물론 수상록과 수신서 혹은 양자의 경계에 있는 텍스트들은 이후에도 계속 출간되었으며, “에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Mary Chudleigh, Essays upon Several Subjects in Prose and Verse, London, 1710. 

 

5) 물론 덜 엄격한 글쓰기를 가리키는 표현이 “에세이” 뿐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discourse”, “consideration”, “observation”, “reflection” 등의 단어는 때때로 “essay”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6) 글쓰기 장르로서의 “학술에세이”가 대학 및 학계에 언제,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는 근대 학술장이 성립하는 과정의 역사를 포함해 별도의 연구를 요구한다. 현재 이 표현은 학자들이 교류하는 전문적인 학술지의 논문을 지칭하는 용도로도 쓰이며, 동시에 학부·대학원수업에서 학생들이 전자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아주 엄격하게는 아니더라도 학문적인 형식을 준수하는 (훈련용) 글쓰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7)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수필가로 잘 알려진 피천득은 후대의 독자들이 램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흥미로운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인연》(샘터사, 2002년 개정판)의 〈수필〉, 〈찰스 램〉 등을 참고. 

 

8) “the lighter mode of the familiar essay written by Addison and Steele, or by Hazlitt and Elia”, Modern English Essays Volume One, London: J. M. Dent & Sons, 1922, p. v. 앞서 언급한 울프의 “The Modern Essay”는 이 선집에 대한 서평으로 집필되었다. 

 

9) 오늘날 흄은 많은 이들에게 철학자로 기억되지만, 그는 당대의 뛰어난 역사가였으며 무엇보다도 문인Man of Letters이었다. James A. Harris, Hume: An Intellectual Biograph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를 참조. 

 

10) F. R. 리비스를 경유하여 레이먼드 윌리엄스, E. P. 톰슨 등의 마르크스주의적 문화연구 전통이 이들의 정신적 계승자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Raymond Williams, Culture and Society 1780-1950,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초판 1958], 특히 1부를 보라. 

 

11) 글의 구상과 수정에 많은 도움을 주신 유건수, 윤미선, 이송희, 조성경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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