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교육의 '사이버화', 그리고 인문교양의 미래에 관한 단상

Comment 2020. 4. 20. 14:19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대학교육의 온라인/사이버화에 대해 우려와 환호가 뒤섞인 전망들이 벌써부터 이곳저곳에 나오고 있다(오늘 아침에 본 예로는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227867). 미래 예측은 언제나 누구든 틀릴 가능성이 높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개인적이고 즉흥적인 전망을 이야기해본다.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한 정도인만큼 너무 진지하게 여기지는 않기를 바란다.



대학 교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든 대학의 사이버대학화(?)'는, 특수한 장비의 사용(실험장비 사용법을 비대면으로 가르칠 수 있는가?)이나 기예의 전달(악기 연주를 유튜브만 보면서 배울 수 있는가?)에서처럼 물리적 접근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분야를 제외하더라도, 생각보다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난점이 있는데, 하나는 온라인수업 수강으로 이루어진 학위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을지의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 대학 학위는 많은 경우 단순히 법적으로 인정받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학위들의 가치를 비교평가한다. '사이버학위'가 어느 정도의 시장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고, 그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중에 언급할 이유로 인해 아주 낙관적인 전망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 난점은, 특히 온라인학위과정 혹은 그에 준하는 정도의 사이버화를 시도하는 대학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온라인학위과정처럼 교육에서 물리적인 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동일한 교육내용을 대량전달하는 게 수월한 영역일수록 몇몇 상위권 대학들이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공산이 크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 대략 중하위권의 평판을 가진 대학이 수년간 열심히 투자해서 제법 내실을 갖춘 온라인 학위과정을 만들어놓으면, 훨씬 더 많은 물질적·인적·사회적 자원을 보유한 최상위권 대학이 곧바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그렇게 형성된 온라인학위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가장 크고 유명한 대학이 온라인 학위과정 정원을 무제한에 가깝게 풀어버리는 순간, 다른 대학이 차지할 몫은 매우 줄어들 것이다. 이는 대다수의 대학에 전면적인 사이버화가 그다지 안정적인 생존전략이 아닐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른바 최상위권 대학은 마음놓고 기존의 대면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전환할 것인가? 물론 지금까지 일부 대학에서 결정권자들이 분별력없는 선택을 내리는 사례를 적지 않게 봐 왔으니 그런 시도가 나타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내 생각에 '합리적인' 결정권자들이라면 그런 형태의 유토피아적 몽상을 당장 너무 깊게 밀고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 첫째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학에서는 절대적으로 대면 지도가 요구되는 영역들이 남아있다. 이는 특히 전공에서 요구하는 훈련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연구·전문화의 영역과 가까울수록 그렇다. 통상적으로 한국의 최상위권 대학들이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며, 학부 교육 이외의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모든 대면 지도가 비대면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당연히 그러한 영역을 위한 시설과 장소가 극적으로 줄어들 것 같지도 않다.


둘째로 섣부른 '사이버대학화'는 학생들이 '고급상품'에 요구하는 만족도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거칠게 말해 지구 어디서든 하버드·예일 최정상급 교원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들을 수 있는데(물론 현실적으로는 언어 장벽이 작용한다), 비싼 등록금 내고 그보다 떨어지는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만족할 학생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약간은 과감한 추측을 해보자면, 이미 높은 수준의 브랜드가치를 갖고 있는 대학이 기존 강의를 조급하게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려 할 경우, 이는 해당 대학의 브랜드가치를 하락시킬 위험이 있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온라인 강의를 더욱 쉽게 만들고 접할 수 있는 세계가 오면 올수록,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지 않는 영역들이 일종의 '고급사치품'으로 계속해서 통용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후자의 자산을 많이 가진 대학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마케팅 전략을 취할 것이다(물론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의 최상위권 대학은 아직까지 고급화 전략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이버대학으로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인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의 자녀를 사이버대학으로 교육시키겠다는 예가 몇이나 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셋째로 대학의 '사이버화'가 일정 비율 이상 높아질 경우 기존의 최상위권 대학이 제공하던 중요한 교육적 자산의 가치가 하락한다--이는 바로 교수-학생, 학생-학생 간 인적 네트워크다. 사람들이 (특히 본인이 고등교육을 경험해본 학부모가)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것은 단지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학부생 당사자들이나, 대학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를 수 있지만, 최상위권 대학이 학생에게 제공하는 진정한 자산 중 하나는 수년 동안 '뛰어난' 사람들과 연결될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아름다운 예일지 모르겠으나, 현재 사회 각 분야에서 발언권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80년대 대학운동권들을 보라. 그들이 20대일 때는 고만고만한 학생조직의 지도자였을지 모르겠으나, 3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단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집단적 네트워크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물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교육을 통해서도 성공적인 네트워킹을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만, 그게 전통적인 최상위권 대학에서 사람들의 공간적 집중을 통해 제공해오던 것을 곧바로 대체할 수 있을지에 나는 회의적이다.



물론 이것이 전면적인 비대면 교육의 경험이 대학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으리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기존의 단순지식전달형 대형강의는 사실 사이버강의와 별다른 변별력이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공교과목 중에서도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통해 실질적인 차이 없이 진행이 가능한 수업도 있다. 무엇보다 모든 대학이 재정확보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에서, 시설과 인력의 '효율화'가 가능해보이는 사이버대학화는 계속해서 유혹적인 선택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학에서의 온라인 강의는 한동안은 유토피아적 몽상의 현실화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 되기보다는,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저렴하게 공급가능한 '새로운' 교육시장을 개척하는 경로가 되거나(예컨대 직장인 및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실용적인 재교육/평생교육 모델), 기존 교육모델의 보완적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조금 더 진지하고 현실적인 예측을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첫째, 사람들이 대학교육에 기대하거나 기대하게 될 것은 무엇이며, 대학구성원들이 자신들이 보유한/할 자원과 역량을 통해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전통적으로 국가의 규제가 교육시장의 규칙에 강력한 영향을 끼쳐온 한국에서, 어떤 법적/제도적 규제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셋째, 기술적 가능성과 제도적 환경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서로 다른 자원과 위상, 생존전략을 가진 대학 및 대학 내 행위자들이 각각 어떤 방식의 서로 다른 대응책을 찾아낼 것인가? 새로운 기술이 보여주는 미래의 가능성은 용이 지키고 있는 보물만큼이나 매혹적이어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기술적 변화도 기존의 사회적 요인들의 작용 없이 스스로의 잠재성을 실현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역사적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이는 고등교육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인문교양과 온라인 교육의 미래에 관해 짧게 덧붙이자. 유감스럽게도 '사이버대학화'이 실현되기 가장 좋은 지점은 그것과 가장 멀어보이는 이미지를 가진 인문교양 영역이다. 대다수의 인문교양은 별다른 시설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기예의 전달처럼 물리적 접촉을 강하게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현실의 한국 인문교양 교육에서 사이버강의 녹화로 대체될 수 없는 고급화된 교육모델이 제대로 성립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문교양 교수자들이 사이버강의의 대량보급으로 인한 구조조정의 물결 속에서 멸종위기종이 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전통적으로 선호되어 왔던 해결책은, 최근 강사법의 사례가 그러하듯, 막대한 부작용을 무릅쓰더라도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 '대학 내 인문학 보호구역'을 만들어놓는 것이다(그게 인문학 전공자들을 얼마나 조롱거리로 만들지는 예상하지 않겠다). 


또 다른 해결책은, 물론 각자 어떤 자원을 가진 기구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업모델이든 학생관리모델이든, 몇 명의 사이버강의 녹화배포로 대체되지 않을 '고급화' 전략을 찾아내는 데 있다(당연히 그게 새로운 도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연구든 교육이든 한국의 인문학 교육이 그다지 신뢰할만한 퀄리티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이미 연구자든 아니든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 된지 오래다. 전세계적 코로나바이러스 유행과 사이버강의의 일시적인 전면화는 이제 인문학 연구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진화된 모습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힘든 난관을 제시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서도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