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교수 퇴출 논쟁과 현대 대학의 역할

Comment 2019. 7. 31. 14:03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민정수석 이후 법무장관에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그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게 될 교수직을 사퇴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 아닌가를 두고 논쟁이 있는 것 같다. 내 의견을 물어본 지인이 있어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참고로 나는 조국 교수에 대해 평소에 별 관심이 없고, 최근 그가 한일 갈등에 관해 SNS로 여러 차례 감정어린 의견표명을 한 일은 반일감정이 옳든 그르든을 떠나 공직자로서 분별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1. 가장 원론적인 층위에서, 교수가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으로 공무를 수행하는 일 자체를 원천적으로 불허할 수는 없다. 특정 영역에 관한 전문적인 능력이 사회의 운영에 필요하다고 할 때, 그러한 능력을 보유한 인물이 국가·사회에 기여하는 것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더불어 해당 교수가 공직에서 축적한 경험과 네트워크는 이후 학과·학생들을 위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교육적 자산이 될 수 있다. 가령 전국에 형사법을 전공하고 가르칠 수 있는 연구자는 많이 있겠으나, 법에 관한 다양한 정책들이 실제로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내부자, 다른 무엇보다도 장관의 시선에서 관찰할 기회를 가진--그리고 각종 실무자·전문가들과 관계를 맺은--형사법 전공자는 많지 않다(조국 교수가 실제로 이러한 경험을 교육/연구에 유의미하게 녹여낼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대학교육이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학생의 미래에 필요한 양질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야말로 좋은 대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이것이 제 아무리 온라인 교육시장이 발달해도 기존의 대학교육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2. 물론 이번 조국 교수의 사례처럼 장기간에 걸쳐 여러 보직을 수행할 경우 그에 따른 교육/연구 상의 손실이 있으며 이로 인해 해당 학과가 최상의 교육연구환경을 구축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3. 따라서 이런 경우에 모범답안은 정무직에 따른 단순 휴직처리에서 그치는 대신 교수를 임명직으로 데려가는 국가에서 해당 기간 동안 교육·연구업무를 대신할 인력을 충원하도록 비용을 제공하고, 학교/학과 또한 해당 기간 동안에 전문적인 인력을 충분히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준비하는 것이다. 영미 쪽에서 참고할 수 있는 예를 찾아본다면, 대규모 연구지원기금/재단에서 뛰어난 연구자를 선정하여 1-2년 가량 연구만 하고 책을 쓰도록 지원하는 경우에 해당 연구자가 재직 중이던 학과에 대리 인원을 충원하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물론 한국 대학과 영국, 미국 대학은 상황도 다르고 정무직의 경우엔 어떻게 되는지는 따로 찾아봐야겠지만). 사회는 해당 교수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학과에 재정을 지원하고, 교수는 부담없이 자신의 역량을 사회를 위해 발휘한다--적어도 원칙의 차원에서 보면 이게 가장 합리적이다.

4.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라는 전제 하에, 대학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학점과 학위를 제공하는 곳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각종 영역에서 전문성을 축적한 사람들을 대규모로 결합시킨 조직이기도 하다. 그러한 전문성의 집중과 결합으로부터 작게는 새로운 연구가, 크게는 한 사회의 원활한 운영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지식·노하우·인적 자원이 생산되어 나온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복잡성을 획득한 사회가 대학, 그것도 국제적으로 매우 좋은 수준의 연구환경을 갖춘 대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현실적인 필요 때문이다. 적어도 20세기 중반 냉전기에 전 세계를 관리하기 위해 대학과 국가행정, 재정투자가 결합했던 미국의 주요 대학 이후 고도의 전문성을 축적하여 사회의 운영에 참여하는 대학 모델은 하나의 중요한 패러다임이 되었다(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다음 서평에서 소개한 <바이마르의 세기>를 참고하라; https://begray.tistory.com/500).

이번 조국 교수 퇴출 논쟁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한국사회가 대학/고등교육에 대해 갖고 있는 이해도가 여전히 구시대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조국 개인의 처신이나 정권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또 필요하다. 그러나 그 논거가 고작 '교수가 국가운영에 참여하느라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운다'라면, 그리고 그에 대항해 변변한 반론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면, 이건 현대 사회에 대학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또 해야하는지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물론 나는 솔직히 말해 이렇게 시대에 뒤처지는 인식에서 현 정권 및 민주당 의원들도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현 정권의 대학정책은 지난 정권만큼이나 형편없이 빈약한 수준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전문성'이라는 게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칭 엘리트라는 집단 내에서조차도 거의 없는 세계무역대국의 황당한 현실이 있다.

비판과 논쟁은 좋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걸맞을 정도의 레벨은 갖추자--그게 심지어 서울대학교의 (교수를 포함한) 다수 구성원들조차 대학이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는 2019년의 한국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