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캐슬> 19-20화를 보면서 느낀 소소한 생각들

Comment 2019.03.03 21:43

*각각 페이스북에 1월 27일, 2월 2일에 올린 포스팅을 옮겨놓는다.



<Sky캐슬> 19화를 본 뒤의 소소한 감상. 다만 나는 TV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사람이라서 죄다 틀린 생각일 수 있다(주변의 한국 드라마 전공자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많은 자료를 보는지 생각하면 비평적 코멘트 같은 건 들이밀 자신이 아예 없다).

1. 역시 이 드라마의 핵심은 한국식 가족극이다. 평범한 한국 가족극에서 훨씬 더 긴 호흡으로 풀어갔을 스토리를 20화로 압축하니까 시청자를 쥐락펴락하는 엄청난 속도감이 나오는 게 아닐까. 19화의 '갈등해결'은 일일연속극이었으면 한 1-2주쯤 잡아먹었을 성싶다. 내가 한국 드라마와 여타 해외 드라마를 비교해볼 역량은 없는데, <Sky 캐슬>을 보면서 한국 드라마가 쌓아놓은 전통을 효과적으로 배치할 수만 있다면 그 어느 나라의 TV드라마에도 밀리지 않을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된다. 물론 고퀄리티의 연기&촬영이야 말할 것도 없다. 가령 카메라 전환 속도도 매우 빠르고 핸드헬드가 수시로 사용되며, 인물도 화면 중앙에 잡는 대신 일단 좌우측에 놓고 카메라를 조금씩 흔들면서 서서히 가운데로 오는 듯하다가 다른 인물을 비추는 패턴이 가장 눈에 띈다. 요즘 드라마는 이렇게 핸드헬드를 많이 쓰나?! 싶었는데 잠시 고향에 들렀을 때 어머니가 보는 다른 일일드라마를 보니 딱히 그렇진 않았다. 나는 카메라 기법을 아무 것도 모르지만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건 알겠다.

2. <Sky캐슬>이 한국 가족극에서 축적한 전통을 잘 활용한다는 생각이 든 건 이 드라마가 매우 다양한 형태의 '어머니 상'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있다는 인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아무 근거 없는 나의 주관적인 추측이지만, 좋든 싫든 한국 드라마의 가족극적 전통에서 가장 많이 탐구·실험되어 온 역할이 어머니 캐릭터라면, 그렇게 축적되어 온 전통이 다양하게 뽑아서 활용해본 좋은 사례가 이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사실 다섯 가족, 혹은 강준상 모자까지 포함해 5.5가족의 어머니 유형 중 완전히 새롭게 제시된 유형이 딱히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따로 놓고 보면 다 어디서 한번쯤 봤을 법한 유형을 매우 스피디하게, 또 교차해서 보여주니까 극이 재현하는 세계가 매우 풍성해진다. 하나하나가 수많은 시도를 통해 검증된 유형이다보니 인물제시도 수월하고. <Sky캐슬>은 다른 무엇보다도 어머니들의 이야기인데, 이 주제야말로 한국 드라마 전통이 가장 많은 걸 쌓아놓은 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

*18화에 갑자기 강준상(정준호 분)의 역할이 커져서 거슬린다는 코멘트가 많은데, 사실 강준상 모친(정애리 분) 캐릭터의 잠재력을 뽑아내려면 결국 그 아들을 출두시켜야 한다. 한서진이나 예서를 통해 그런 걸 하려면 이전 분량에서 훨씬 더 많은 전개를 축적시켜야 하지만 이 드라마 정도의 시간적 여유에서 그것까지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어머니에게 바로 갖다 붙여도 시청자들이 알아서 맥락을 재구성하는 게 가능하다. 그게 전통 혹은 클리셰의 기능이다.

3. 여러 가족/어머니 유형을 동시에 배치하니까 하나하나는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각각이 서로의 긴장감을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극 전체는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결국 이것도 한국 가족극에서 맨날 하던 것?). 각각의 가족이 가진 가족 내 갈등, 서로 다른 가족들 간의 관계--한서진-진진희처럼 준 권력관계도 있고, 한서진-이수임처럼 도덕적 갈등도 있다--를 적절히 연결하고 배치하는 게 결국 드라마 전체 플롯의 힘이다. 혼외자식, 출생의 비밀, 숨겨진 형제자매 등의 막장요소는 뭐 한국 드라마만 아니라 18세기 영국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거라 사실 막장이야말로 진정한 보편성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평범한 한국 드라마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고 보던 이야기를 이렇게 압축시키니 사실 이게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였고 나름 효율적인 구조였구나, 가 개인적인 깨달음이다.

4. 한서진 대 이수임은 전형적인 도덕적 갈등인데 (당연하지만 이 드라마의 핵심은 현실의 사실적 재현이라기보다는 도덕극적 전개다...김주영이 괜히 마왕님 포지션이 아니다; 진실을 다 말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실에 입각하고 항상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만 결국 파멸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악마 캐릭터를 끌어온 것부터가 이 드라마의 도덕극적 성격을 보여준다) 둘 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386부모'의 이념형 같다. 이수임은 386진보가 가진 학부모의 판타지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다만 좀 어설프게 행동해서 호감을 까먹는 게 작가의 의도인지 아니면 고려하지 못한 지점인지는 모르겠다). 흙도 만지고, 사교육 치열하게 안 시켜도 아이는 올바르게 공부도 잘하면서 크고, 남편도 정의로운 사람들. 현실에서 가끔 보이긴 한다(...). 한서진은 그 반대로 아이를 위해서 뭐든지 극한으로 추구할 수 있는 역시나 386 학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혹은 그렇다고들 하는) 캐릭터. 물론 그렇게만 재현하면 너무 비호감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남편/시모로부터 포위된 인물을 설정해놓고 왜 딸의 서울의대 입학에 필사적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의도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너무 설득력 있게 만들어 놓아서 + 그게 부분적으로는 최근의 여성주의적 코드랑 맞아서 이수임보다 한서진 지지자가 더 많아지는 사태(?)를 초래했다.

5. 그러다보니 결국 결말을 어떻게 낼 것인가...가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일단 한서진이 본인 가족을 다 파국으로 이끌어가는 결과를 피하면서 가장 큰 긴장요소가 사라졌는데 마지막 화에 어떤 전개를 끌어갈지 궁금하다. 19화처럼 한국 가족극식 마무리 기조를 이어갈지, 아니면 어떤 트위스트를 부여해서 그 전통을 변주할지.





지금까지 EBS 청소년/가족드라마 <SKY캐슬>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모든 인물들의 후일담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밝고 화목한 가족을 만들어가나는 가족극의 마무리 + 교육방송 청소년 드라마의 '주체적이면서도 이웃을 아끼는 학생상' + 80-90년대 감각의 '진보적' 테이스트(전 인물의 '수임화'Sooimized 현상) + 홍게살죽 PPL 의 완벽한 조합은 그 어떤 연기자도, 카메라구성도 구제할 수 없었다.

나는 18화(조금 관용적이라면 19화)까지의 <SKY캐슬>이 한국 드라마의 풍부한 전통을 변용하고 또 매우 빠른 템포로 재배치하면서 무척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19화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지만) 최종화에서 드라마 전체는 자신이 활용했던 전통들의 가장 지루한 클리셰에 붙들려 조종당하는 힘없는 목각인형으로 전락한다. 20화 중반부 강준상과 한서진 잠옷대화 장면은 이처럼 노련한 배우들조차도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가장 관습적인 연기양식으로 다시 이끌려들어 가버렸음을 보여준다. 차라리 20화 시작부에 나온 김주영-한서진의 대화장면을 19화 엔딩에 붙이고 종결을 냈다면 추락의 기울기가 이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의도된 결말이었는지, 아니면 중간에 4화를 연장하면서 발생한 시간적인 공백을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마무리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엔딩이 평범한 관습 이상의 결과물을 기대한 수많은 시청자들을 아이러니로 가득찬 비탄 속으로 빠트리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극단적인 요소들을 활용한 이야기가,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작품이 결말을 성공적으로 처리하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며, 그것이 많은 작가들이 관습에 기대는 이유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관습을 활용하고 재구성하는 데 있었지 관습에 의존하는 데 있지 않았으며, 그것이 결말부와 본편 사이의 간극이 더욱 극단적인 실패로 느껴지도록 만든다. <SKY캐슬>의 주 시청자들이 그 관습으로부터 세계가 섭리 속으로 복귀하는 광경을 볼 때의 도덕적 만족감이 아닌 설득력 없는 진부함을 느끼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혜나의 처리는 "수임화" 엔딩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결말이 도덕적으로조차도 실패한 게 아니냐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전 이태란의 몇 분에 걸친 애원 장면은 이수임의 설득력 부족에 따른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워버릴만큼 강력한 것이었지만, 20화에서 모든 인물들이 "수임화"되는 결과에 따를 수밖에 없는 강한 설득력 부족을 상쇄할 수 있는 요소는 없었다(최종화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요소는 구치소에 갇힌 김주영에게 딸 케이를 데려오는 이수임=오너캐의 '인간교화의 의지'다).

<SKY캐슬> 마무리에 대한 실망과 격분이 잠잠해지는 시점이 올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번쯤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K-드라마의 도덕극적 전통은 과연 설득력 있는 마무리기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지금의 최종화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하게 생산적인 지점은 그것 뿐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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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한한 연습 2019.05.17 00:09 신고 Modify/Delete Reply

    지난번 대화 이후에, BeGray님의 글을 찬찬히 읽어 보았는데, 먼저 글과 나중 글에서 이야기하는 드라마가 과연 같은 드라마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스카이 캐슬]은 마지막 몇 화 만에 완전하게 붕괴된 드라마가 되어 버렸군요ㅠㅠ 만드는 사람들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미스테리하다...

    음. 저는 다음 주부터 주마다 한 두 편 정도씩 보아나갈 예정입니다. 작품의 완성도 차원에서 예정된 붕괴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여정이라는 것이 이제 막 드라마에 진입하려는 입장에서 매우 아쉬운 일이긴 합니다만ㅠㅠ, BeGray님이 전반부에 평가한 부분만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나름의 보람(?)을 느낄 만한 시청 기간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들기도 하네요^^

    • BeGray 2019.05.22 02:49 신고 Modify/Delete

      ㅎㅎ 어디까지나 즉흥적인 코멘트들이었으니만큼 적당히 필터링해서 읽어주세요 ㅎㅎ 이후 무연 님의 감상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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