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과 피해자 서사

Comment 2018. 12. 27. 16:08
1.

12월 17일 게시된 리얼미터 12월 2주차 주간동향은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현 정권 지지도를 보여주는 집단이 "20대 남성"임을 알리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https://bit.ly/2Ey94YZ). "20대 남성" 집단은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해 긍정 29.4%, 부정 64.1%로 응답했는데, 이는 "20대 여성"의 긍정 63.5%, 부정 29.1%, "30대 남성"의 긍정 54.9%, 부정 41.6%와도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페미니즘 운동 지지 여부"에서는 20대 남성이 지지 14%, 반대 76%를 보여주었는데, 같은 지표에서 30대 남성은 지지 23%, 반대 66% 고, 30대 여성은 지지 44%, 반대 30% 이며, 20대 여성은 지지 64%, 반대 25% 로 나타났다. "20대" 중 가장 심각한 한국사회 갈등으로 "성갈등"을 지목한 비율이 57%였음을 고려하면(전체 세대에서는 같은 응답이 21%), 우리는 부족한 근거에 의지해서나마 대략 다음과 같은 추측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람마다 매우 다르지만--반대의 주요 거점이 2030 남성이라면, 상대적으로 성 갈등을 주요하게 인식하는 정도가 큰 20대에서 현 정권의 성평등/여성주의적 정책 방향에 대한 거부감이 곧 정권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데 더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관련기사로는 주간경향의 다음 기사도 읽어볼 수 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812031415031)

같은 날 발표된 "여성폭력방지법" 관련 여론조사 보고기사를 함께 보자(https://bit.ly/2A45Qt9). 전체적으로는 "찬성 60.7% vs 반대 25.4%"로 찬성이 우세하지만, "20대女(찬 91.5% vs 반 4.6%)와 30대女(75.2% vs 11.9%)는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20대男(26.2% vs 61.7%)과 30대男(32.3% vs 50.6%)은 반대가 대다수"라는 요약에서 볼 수 있듯 2030에서 성갈등과 여성주의적 정책기조에 대한 강력한 갈등이 존재한다. 어디까지나 주변의 사례만을 고려한 개인적인 인상이지만, 현 30대 초반과 30대 후반이 상당히 다른 세대기억을 가진 사람들임을 고려할 때,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감'과 '성갈등을 사회의 가장 주요한 이슈로 간주하는 관점'이 "20대 남성"뿐만 아니라 "10대 남성"부터 "30대 초중반 남성"까지에 걸쳐 공유되는 사고방식이라고 가정해볼 수 있겠다. 반대로 여성집단의 유사한 연령대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지지'와 '성갈등을 사회의 가장 주요한 이슈로 간주하는 관점'이 공유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30대 초중반 이하의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과 성평등 문제를 중심으로 사실상 "두 개의 서로 다른 나라"(Two nations)가 존재한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다만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경우, 조금 세밀하게 들어가보면 이 법이 법사위에 들어가면서 반동성애 운동 지지성향의 자유한국당 김도읍 소위원장 등의 의견에 의해 법의 보호대상에서 "남성"이 누락되면서--반동성애 운동진영은 성폭력 "남성" 피해자 보호가 동성애자 보호로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법안을 '여성만을 보호하는 성차별적인 법안'으로 강하게 비판하는 논리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반여성주의적 기조의 확산에 개신교 극단주의 반동성애 운동이 어떤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케이스다)


2.

이러한 맥락에서 20일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2019년 업무보고 모두발언 기사에 대한 남초 커뮤니티의 폭발적인 반응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머니투데이 기사링크: https://news.v.daum.net/v/20181220155005418). 기사에 언급된 대통령 발언의 중점은 "극단적인 대립이나 혐오 양상"의 표출과 "나와 너,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순히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접근"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MLBPARK(엠팍)을 비롯한 2030 남초커뮤니티에서는 대통령의 코멘트 중 '여성가족부 격려'에 주목, 이를 '여가부=페미=메갈/워마드를 옹호하여 2030남성을 내팽개치는' 행위로 해석하고 대통령 본인에 대한 대대적인 비난과 공격을 퍼붓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당 커뮤니티들이 이전까지 편차는 있을지언정 크게 친문재인/친민주당 성향에 가까운 커뮤니티로 평가받았다는 점, 그리고 불과 수개월 전까지 문재인 대통령 본인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이 친문집단에서는 금기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분위기는 확실히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여준 곳인 MLBPARK 댓글에서 나타나는 반페미니즘-반문재인 논리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입장들의 결합물로 보인다.

a. 전통적인 여성주의 혐오

b. (a와 연결되어 있는) 2000년대부터의 여성부/여성가족부 혐오

c. (a와 연결되어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메갈/워마드"="래디컬 페미니즘"="주류페미니즘"에 대한 비판/혐오; 이쪽은 종종 "페미니즘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주류페미니즘=래디컬=워마드/메갈이 문제"라는 논리로 발전한다.

d. affirmative action 계열 정책에 대한 거부감; 즉 성평등 정책이 기업 임원의 여성할당제처럼 직접적인 인원분배나 '우대'로 시행되는 것에 대한 거부. 이러한 논리는 주로 그러한 정책을 "능력도 없고 고생도 하지 않는 여성들의 무임승차를 조장하는" 행위로 해석한다.

이러한 분류에서 나는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2030남성의 반여성주의 확산을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고자 할 때, 혹은 반여성주의적인 남성집단 내에 '대화가능한 지대'를 만들고자 할 때 유의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2030남성의 입장을 뭉뚱그려 단순한 "백래시"(나는 이 표현이 그 본의가 어떻든 실제로 우리의 인식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주는지에 다소 의문이 있다), "안티페미니즘", "포르노 문화를 지키려는 남성동맹" 등으로 처리해버린다면 이 집단에서 실제로 어떤 의사소통이 발생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으며, 어떠한 정책적 행위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여론과 정책의 향방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현재의 반응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논리를 좀 더 세심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특히 affirmative action에 대한 반감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내 생각에 affirmative action에 대한 반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는 다음과 같다. 최근 1-2년 내에 그러한 여성할당제·우대조치, 그리고 그러한 우대조치를 도입하고 있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여성가족부에 의해 2030대 남성들이 불황의 시대에 '역차별' 당하고 있으며 정권에 의해 내팽개쳐진 '피해자들'이라는 강력한 정념을 발생시키는 서사가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다. 아주 사소한 정책이라도 그러한 '우대정책'으로 각인되는 순간 곧바로 강력한 반감을 촉발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계속해서 두드러지고 있는 정념의 서사는 단순히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식의 반론을 무력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서사에 기초해 특정한 (거짓)사실을 채택하고 확산시키는 걸 가능하게 한다. 바꿔말해 현재 2030, 혹은 좀 더 넓게 말해 10대부터 30대 초중반까지의 남성들을 사로잡고 있는 '페미니즘에 의해 차별받는 피해자' 서사는 이제 현실의 여론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굳건한 요인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것이 옳든 그르든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같은 나이대 여성들의 '페미니즘의 미정착으로 인해 차별받는 피해자' 서사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정권에게 주어진 난제는 따라서 두 개의 피해자 서사, 즉 남성들의 피해자 서사와 여성들의 피해자 서사라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피해갈 수 있는지에 있다. 이는 성평등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개혁주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그런 점에서 나는 합리적인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개인적 감정과 별도로 '차별'과 '피해자 정체성'을 중요한 담론적 도구로 삼는 걸 가급적 피하는 게 전략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예시:

-MLBPARK(엠팍)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812200026371181

-뽐뿌
https://www.ppomppu.co.kr/zboard/view.php?id=freeboard&no=6199478

-PGR21
https://pgr21.com/?b=8&n=79411

-FMKOREA(펨코)
https://www.fmkorea.com/best/1462405188

-클리앙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2963169


3.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특히 청년 남성/여성 집단이 두 개의 세계로 갈라지는 현상은 "각각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들만의 '상식'을 형성하고" "그러한 '상식'에 어긋나는 입장이 배척되면서 그것이 하나의 강력한 해석틀로 굳어지고" "그러한 해석틀에 따라 만들어진 '사실'이 유사한 성향의 커뮤니티들에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인구집단 중 상당수가 그러한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는" 세계, 다시 말해 특히 현재의 10대부터 30대 초중반까지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조건에서 나타나기 쉽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여론은 단순히 극단화될 뿐만 아니라 그 속도 또한 가속화되며, 특정한 방향으로 정해진 논리를 설득해서 바꾸기도 어려워진다. 사람들의 감정 또한 극단화되며 사실에 대한 매우 편향적인 해석 또한 지속적으로 돌출한다. 보다 우려스러우나 역시 막을 수 없는 현실은 재미에 의해서든, 편견에 의해서든, 혹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든 이러한 해석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활용하는 행위자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확고한 안티페미니즘과 구별되는 넓은 의미의 페미니즘 거부감의 매우 빠른 확산은 이러한 행위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마치 메갈리아를 새로운 시대의 페미니즘 아이콘으로 만든 행위자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이러한 세계에서 하나의 정치적 타협물을 도출하는 법을, 좀 더 중요한 질문으로 들어가면 체제의 최소한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합리적인 개혁을 도출하는 방안을 배우지 못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언젠가 이러한 갈등 자체에 대한 반발이 매우 다른 형태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순간이 또 오겠지만, 그때까지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질문은 특히나 정치적 대표자/정책적 행위자들에게 중요한 물음으로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대표들에게 주어진 책임 못지않게 대표들을 선출하고 논평하고 몰락시키는 힘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발휘할 수 있게 된 집단적 행위자들, 바로 우리들의 책임이 덜 무겁지 않은 세계에 살고 있다. "성갈등"은 종교적 갈등만큼이나 어렵고 파괴적인 까닭은 그 많은 부분이 정부와 법적인 권력을 통해 제어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행위자들이 정부와 정치적 대표자들을 압박하고 무엇을 요구하는가 못지않게 다른 시민사회 행위자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었음을 뜻한다. 그것이 더 나은 세계를 열망하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주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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