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정치와 사고모델

Critique 2016. 10. 30. 16:41
어느 분이 현재의 사태를 보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예전 왕들도 다 책사들이 있었다." 우리가 <삼국지> 같은 책으로 정치를 배우면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건 (관련 전공자 빼곤) 가끔 곱씹을 내용도 있는 재밌는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여야지, 그걸 모델로 현대 정치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냥 틀린 정도를 넘어서 해롭기까지 하다. 이번 케이스 관련 일베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무척 흥미로워서 시간을 조금 내서 게시물들을 뒤져보는데, 사람들이 정치를 상상하는 방식 자체가 실제 상황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똑똑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물론 이건 민주당 혹은 진보정치 지지자들이라고 해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선악 대결로 세상을 파악하는 도덕론적 시각, 배후의 거대한 힘을 찾는 음모론적 시각, 통치자의 강력함과 세계의 평온이 연결되어 있다는 바로크적 시각, 어떤 정치경제적 결정의 프로세스를 '인격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시각 등등 그러한 (틀린) 상상력은 매우 다양하게 퍼져있으며, 이를 점검해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들은 현상을 이해할 때 대부분의 경우엔 우리 자신이 이미 습득하고 있는 사고모델 혹은 서사형식에 맞추어 재조립한다. 그러한 '편견'의 작용없이 직관적으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환상이다. 위의 경우에서 예를 들어보자면, <삼국지>를 읽고 정치를 배운 혹은 상상하는 독자가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관계를 이해할 때 군주-책사라는 형식적 모델을 적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아주 일상적인 경우에도, 아주 추상적인 경우에도 해당되는 일인데, 전자의 예를 들면 '경제적 인간' 모델에 익숙한 학부생에게 소설 속의 인물관계를 분석해보라는 과제를 주면 명백히 낭만주의적 정조를 띠고 있는 작품에서조차도 어떠한 이해관계가 인물의 선택을 결정지었는가를 찾으려 애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중세에서부터 근대까지의 서구 사상사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로 시간의 흐름에 대한 모델 자체가 바뀌는 걸 꼽을 수 있다: 금-은-동-철 이후 다시 금...처럼 순환되는 모델이나 창조-타락-세속의 역사-구원/종말로 끝나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시간이 사실상 무한하게 지속되는 뉴턴적 모델로의 변화와 함께 문학텍스트에서 인간의 삶을 기술하는 방식 또한 바뀌어간다. 학술장도 예외는 아니라서, 특히 문학비평사가 그런 걸 잘 보여주는데, 대상에 대한 이해를 기술하는 방식 자체가 각 시대 고유의 마스터 내러티브에 의존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근대 학술장의 주요한 변화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이 현상을 기술하는 방식 자체가 역사적으로 습득한 서사 혹은 상상력의 모델에 적지 않게 의존한다는 것을 (적어도 인문사회계열 연구자들은) 매우 자명한 전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20세기 후반을 풍미한 '이론'의 범람은 이러한 사고모델 자체를 다각화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지난 수 년간 한국의 정치적 운명에 영향을 끼쳐온,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사실 중 하나는 많은 이들이, 어쩌면 대부분이 이들이 정치경제적인 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지나치게 단순한 서사적·상상적 모델에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하지만 그만큼 영향력 있는 반북 프레임의 경우 모든 정치적 결정 및 행위자에 대한 판단이 남한을 살리거나 북한에 부역하거나의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하는 것으로 귀결되며, 이보다 한 단계 더 복잡한 모델의 경우 리더=통치자와 나머지=책사, 조언자, 부하로 나누고 후자의 모든 행위를 전자의 안정성에 비추어 판단하는 논리구조를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지금까지의 모든 국정운영 상의 실책보다고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까닭은 이 케이스가 후자의 모델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최적화된 공격모델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인 리더 자체가 "꼭두각시"였으며, 그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것이 "사이비 무당"이었다는 서사는 군주-책사 모델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모델로서 설명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해당한다. 즉 기존 모델에 너무나도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정치적 신뢰를 붕괴시키는 데 그만큼 효과적이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태가 어떤 식으로 귀결되든 간에, 우리가 미래의 정치·시민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잠시 상상해본다면, 내 생각에는 오늘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현상을 적어도 대충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사적·상상적 모델을 제공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헌법 정신을 가르친다거나, 과학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거나,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우리가 주어진 모델에 기초해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면, 유효한 교육은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만큼은 단순화된, 그러나 현실을 시대착오적으로 이해하는 건 피할 수 있을 정도로는 복잡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동시에 어느 한 모델을 통해 다른 모든 현상을 끼워맞추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을 강조해야 한다. 요컨대 복잡함은 수용가능한 범위 안에서 보존되어야 하며, 세계에는 복수의 복잡한 모델이 공존하는 곳이고, 무엇보다도 현명함이란 어떤 모델을 어느 때에 적용하고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냉정히 말해 우리는 아직 이러한 교육모델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고, 슬프게도 이러한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이들 중에서도 소수일 뿐이다.

나는 이것이 결코 쉬운 과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베를 포함한 몇몇 커뮤니티의 심지어 젊은 유저들의 발언을 보아도 개선이 시급한 문제임은 분명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몇 세대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삼국지>와 <성경>, 기타 유사종교적인 프레임 안에서 현실을 파악하고자 하는 세계 안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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