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네트워크와 사회성

Comment 2016. 10. 23. 14:02

헬조선 논문 최종원고의 첫 각주로 acknowledgement를 쓰고 있는데, 직접 거론되는 사람 수만 (익명의 리뷰어들을 포함해) 14명이다(...). 사실 실제로 읽고 코멘트하거나 조언해주신 분들은 훨씬 더 많지만 책도 아니고 논문 각주이니만큼 상대적으로 크게 도움받은 분들만 쓰는데도 저 정도 인원이 나온다(논문에 언급하지 못한 분들이 포함된 보다 완전한 acknowledgement는 나중에 블로그 포스팅할 때 쓸 예정이다). 그분들이 소속된 학교의 지역만 따져도 한국, 미국, 영국, 독일의 4개국이고 소속전공도 사회과학, 역사학, 문학, 철학, 교육학, 한국학 등 다양하다. 전면개고랑 투고처 옮기는 일을 포함해 초안 작성부터 최종투고까지 거의 8개월 정도 걸렸고 내가 잘 모르는 주제를 이것저것 건드리는 글이다보니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전공자들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며 보낸 것만 수십 명이고, 그중 짧은 코멘트부터 진지한 면담까지 어떤 형태로든 응답을 받은 비율이 의외로 꽤 높았다. 아주 약간은 세상사에 낙관적이 될 정도였달까.


예전에는 비록 세미나는 같이 해도 글은 혼자 쓰는 거라고 생각했고, 특히 인문학 전공은 그런 성격이 더 강할 거라 믿었는데, 완전히 틀렸다. 현대의 학술연구는 사실상 집단연구고, 연구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논평을 주고받으면서 결점을 보완하고 서술의 질을 높이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해외 거주 연구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좀 더 분명하게 느낀 거지만, 이른바 '학술 중심부'에 있는 연구자들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동료들의 퀄리티도 높을 뿐더러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생성되어 나오는 연구주제들을 곧바로 캐치하기 유리한 환경에 놓여 있고, 결과적으로 더 괜찮은 연구성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연구의 질이 언제나 학교/연구기관의 퀄리티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 연구/자 단위에서만이 아니라 연구집단의 단위에서 본다면 확실히 성과의 차이가 난다. 즉 공부도, 연구도, 집필도 절대로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슬프게도 한국의 인문학 필드에서 내 또래 연구자들끼리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에 가 보면, 동료들의 퀄리티나 다양한 연구주제와의 접촉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학적인 대화를 나눌 동료관계 자체를 맺기 힘들거나 지적 관계맺기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 자체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석사논문을 쓸 때 좋은 술친구가 있는 경우는 제법 있지만, 아이디어와 글을 공유하는 친구를 갖춘 이들은 운좋은 소수에 속한다. 그러니까 신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연구퀄리티는 그만큼 안 나오거나 이상한 지점에서 막혀 뱅뱅 도느라 스트레스만 더 받는 상황이 흔하다--제대로 된 참고문헌 하나만 추천받아도 훨씬 시간을 단축하고 더 많이 뻗어나갈 수 있는데 말이다.

이번 투고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사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서 연구할 나와 같은 입장의 연구자들이라면, 적어도 우리 세대부터는 이런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여기에 맞춰 반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전공이나 같은 학과 정도의 단위를 넘어서 자기 주제를 더 풍성하게 확장시킬 수만 있다면 처음 듣는 전공이라고 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기울여 듣고 필요하면 조언과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물론 신뢰할 만한 연구자와 아닌 연구자를 가려내는 분별력은 필요하다...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다). 이것을 적극적인 네트워크 형성의 필요라고 할 수 있다면,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연구자로서의 사회성/사교성(sociability)을 갖추는 거다. 쉽게 말해 네트워크 맺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 연결되는 것 못지 않게 자기가 "남들이 네트워크 맺고 싶어질 만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해보자. 인간적으로 억지로 사근사근해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연구자로서의 내가 타인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다른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나도 그만큼의 관심과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이나 아이디어에 논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사람에게 진짜로 도움이 될만한 코멘트를 솔직하면서도 무례하지 않게 제공해야 한다. 새로 접한 흥미로운 자료를 읽을 때 이걸 알면 도움이 될 동료가 떠오른다면 공유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내가 제공한 자료를 통해 동료의 지적 성취가 올라가면, 나 역시 그것을 바탕으로 더 높은 성취를 낼 수 있다. 연구의 질은 골방에 처박혀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인용과 참조의 무한한 피드백을 통해 상승한다.

다른 동료의 비판적인 조언이 있을 때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는 식의 반응은 최악이고 (그 과정을 본 다른 동료들은 앞으로 그에게 어떤 지적인 조언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그 끝에는 고립과 도태가 있다) 설령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코멘트라고 해도 적어도 자기 글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점에는 감사해야 한다--뛰어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상호 오독은 흔한 일이며, 원저자의 의도를 충실하게 이해하는 독자는 매우 드물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챙기고 타인의 필요는 등한히 여기는 사람이 네트워크에서 배제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쓸데없이 권위적인 태도의 (대체로 별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는) 논평자가 뒤에서 조롱받으리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나 독학자들이나 갓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사실인데, 현대 학문의 세계는 정말로 넓고 더 넓어지는 중이다. 역사가 반 세기조차 되지 않은 학문이라고 해도 어느 분야를 한 명이 완전히 마스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하나의 대상을 둘러싸고도 여러 분과학문과 다양한 접근법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한 명의 연구자가 대상에 대한 완전한 앎의 권위를 확보하길 욕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 분야에선 너무나 당연한 전제가 다른 분야에서는 애초에 의문의 대상인 경우도 숱하게 있고, 자신의 동료들에겐 첨단의 연구가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에겐 시대착오적인 물음을 신주단지 모시듯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니까 자기 공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만큼 열심히 하면서도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자신의 진술이 매우 제한적인 유용성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학술장이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되고 있는 세계임을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러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행동양식이 무엇인지를 의식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거다. 한국은 미국만큼 펀딩도 없고, 제도도 불안정하며, 이상한 장애물이 너무나 많은 건--적어도 그렇게 느끼기 쉬운 것은--사실이다. 하지만 확실히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연구자들끼리 네트워크 맺기는 엄청나게 쉬워졌다. 처음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할 때 존경하는 선배가 쓸데없는 일에 시간낭비할까 걱정해주던 게 기억난다. 물론 내가 SNS활동을 100% 연구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하지만 이번 투고논문의 acknowledgement에 직접적으로 거론된 8명 중 6명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알게 되었으며--아직까지 한번도 얼굴을 뵙지 못한 분도 여러 분이다--그분들의 조력이 없었다면 내 글의 퀄리티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으리라는 것은 더 중요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의 무게는 앞으로 계속해서 무거워질 거다. 오늘날 연구자의 삶은 혼자 비급보고 수련하는 무협지 주인공의 삶도, 언젠가 세상 모두가 알아줄 거라 믿으며, 혹은 자기만족을 위해 틀어박혀 책 읽다 한숨쉬는 낭만적 지성인의 모습도, 맘에 맞는 동료들끼리 뒤풀이를 가지며 서로 하나된 기분에 흐뭇해하는 어느 80년대의 풍경도 아니다. 2010년대의 연구자는 2010년대에 맞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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