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하순-9월 초 활동 및 독서목록.

Reading 2016. 9. 5. 02:51
개강을 앞두고, 귀국 직후 20여일 전에 세웠던 목표를 재점검하니 역시 사람 일정은 뜻대로 되는 게 없다. 과거 8월 12일에 쓴 예상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1) SA 세미나 준비 -> 2주차까지 진행, 흥미롭게 하고 있음. 개인적으로 Part 1까지 다 읽었는데 과연 정리할 시간이 날까 모르겠다.
2) 로크 관련 문헌 읽기; Dunn은 다 읽었으니(그러나 정리할 수 있을까?) Tully랑 Waldron만 읽으면 된다. -> 하나도 못함 ㅠㅠ
3) 투고 논문 수정작업 -> 9월 중순 목표 예정ㅠㅠ 그래도 추가할 참고문헌들 자체는 거의 다 읽었다.
4) 찔끔찔끔 Moyn의 인권사 책들 읽기(_The Last Utopia_랑 _Christian Human Rights_). -> 역시 못함 ㅠㅠ
5) 다음 학기 수업 준비. 고대 서사시와 중세 로맨스... -> 역시 하나도 준비 못함 ㅠㅠ 이게 제일 큰 문제다.
6) 사람들 만나기 ->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시간 자체가 모자라진 않았다.
?) 가끔 시간이 남으면 여행기를 쓰기. -> 현실은 1000장 넘는 사진을 하드에 옮겨놓은 게 전부 ㅠㅠ

그 대신...

평생 처음으로 프로젝트 계획서를 써보고(어쨌든 결과는 의도한 대로 됐다), 각종 인권선언들을 들여다보면서 권리선언 문서의 구조를 놓고 고민해보고(5시간 마라톤 회의는 솔직히 힘들었다), 제도정치와 온라인 여성주의 같은 주제를 좀 더 곱씹고 있고(한 가지만 말하자면 나는 이 현상을 다루는 기존의 관점을 반복하는 대신 우리가 좀 더 연구자다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으로서의 여성주의는 분명 '중립적인' 연구와 운동이 쉽게 분리되지 않고 있는데, 공정하게 말하자면 정확히 그처럼 모호한 상태가 폭발적인 에너지의 동력이기도 함을 부인할 순 없지만, 바로 그러한 상태가 때로는 우리의 눈에 새로운 현상의 독특함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장막을 쳐두기도 한다), 이것저것 다른 논문들을 읽었다...그리고 몇몇 흥미로운 논문을 유쌤께 포워딩했더니 "선생 공부시키는 학생은 너밖에 없을 듯.ㅋㅋ"라는 귀여운 푸념(?)을 들었다.





그동안 읽은 주요한 것들은

제임스 탈리[털리] 편. <의미와 콘텍스트: 퀜틴 스키너의 정치사상사 방법론과 비판>. 유종선 역. 아르케, 1999. [대우학술총서 452] Trans. of _Meaning and Context: Quentin Skinner and His Critics_, ed. and intro. by James Tully, 1988. ; 3부의 비판에서는 테일러의 논문만 읽었고, 털리의 전체적인 소개가 실린 1부, 스키너의 주요 논문이 실린 2부, 비판에 대한 종합적인 응답인 4부는 한번씩 훑어보았다.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사상사 방법론에 관해 스키너가 던진 파장을 정리하는 게 목표인 책인데, 생각보다 영미 분석철학/언어철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논변이 많아서 나로서는 행간의 요점까지 다 이해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다만 흥미롭게 읽은 세 가지 포인트를 짚자면,
1) 누구보다 스키너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듯이 이 논쟁은 20세기 중후반 서구 인문사회과학 학술담론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커다란 흐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키너가 왜 쿤과 파이어아벤트를 끌고 와서 자기의 입장을 설명하는지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고전적인 역사가들이 parochial 해보이기도 한다. 결국 이 논쟁이 스키너와 케임브리지안의 사실상의 우세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언어-의식-문화 등을 학문의 고유한 영역으로 가져오는 합리화된 전문화/분과화의 흐름이 20세기 후반에 승리하였음을 보여준다(한국에서 띄엄띄엄 보면 오해하기 쉽지만, 이른바 '포스트모던'이라 부르는 흐름이나 이것과 밀접한 연관을 맺은 '현대 프랑스 이론'은 푸코 정도를 제외하면 20세기 후반 인문사회학 전체에서 보면 정말로 일부분에 불과하다; 문화적 측면에서 포스트모던이 끼친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것과 거리를 두는 쪽이 훨씬 더 많고 주류다).
2) 스키너가 각을 세우는 구도는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먼저 처음부터 명시적으로 언급하듯 정전급 텍스트만 읽으면 된다는 텍스트주의 대 (속류 맑스주의처럼) 텍스트 외적 맥락으로 텍스트를 융해시킬 수 있다는 환원주의 양자를 비판하면서 각 저자의 언어적 실천이 속한 '관습적' 맥락 하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 다음으로 텍스트의 의미 해석이 오늘날의 독자들이 자의적으로 부여하는 관점에 사로잡혀서도, 그렇다고 그것이 오늘날과 다른 과거의 '불합리한' 사고의 산물이니 합리적 사고의 산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비관주의에도 빠질 필요가 없으며 각 저자의 언어행위가 해당 맥락 속에서 나름의 '합리성'을 갖는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주장, 마지막으로 (던을 계승하여) 레오 스트라우스 식의 보수주의와 맥퍼슨 식의 맑스주의 양자를 비판하면서 방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다소 다른 함의를 가진 사상사가 가능하다는 주장(다만 이 점에 대해선 스키너보다 던이 좀 더 분명히 자신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 같다)이 그것들이다.
3) F. R. 리비스(Leavis)나 클레언스 브룩스(Cleanth Brooks) 같은 신비평가들도 소환된다. 물론 비트겐슈타인과 오스틴을 이론적 전거로 삼는 스키너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 논쟁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단지 정치사상사 학 내에서만이 아니라 영국 내의 좀 더 광범위한 지성사적 맥락 또한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순 있다.


Pocock, J. G. A. "From _The Ancient Constitution_ to _Barbarism and Religion_; _The Machiavellian Moment_,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and the History of Historiography." _History of European Ideas_ 2016, DOI: 10.1080/01916599.2016.1198517.

: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출간 40주년 기념 포칵의 정리논문. 1924년 생이니까 현재 92세로 생존해 있는 케임브리지 학파 원로들 중 아마도 최연장자일 (스키너나 던이나 1940년 생이니까 포칵에 비하면 정말 한 세대 아래다), 그러나 작년에 _Barbarism and Religion_를 540여쪽짜리 제6권으로 마무리한 것처럼--1999년에 1, 2권이 나온 이 책은 전6권 다 합치면 한 2600~2700쪽 쯤 된다--나이가 무색하게 지금도 괴물같이 활동하고 있는 대가다; 농담처럼 말하자면 케임브리지언들의 성공 중 하나는 최근에 타계한 혼트를 제외한 주요인물들이 다 나이 먹고도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있지 않나 싶다(인맥왕 스키너처럼...스키너가 Thanks to 리스트에 들어간 책 권수를 세어보면 기네스북 같은데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튼 포칵이 워낙 오래 살다보니 "그 책을 쓸 땐 몰랐는데 50년쯤 지나고보니까 보이더라" 같은 황당하게 사실적인 코멘트들이 툭툭 튀어나오긴 하는데 90대 할아버지가 쓴 글임에도 정말 유용하다. 따로 따로 볼 때는 몰랐던 포칵의 주저급 작업들, <고대 헌정과 봉건법>,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아마도 국내의 포칵 독자들에겐 별로 주목받지 못했을) <덕, 상업, 역사>_Virtue, Commerce and History_, 해링턴의 <오시아나>_Oceana_ 비평판, 그리고 <야만과 종교>까지의 흐름이 어떤 주제들로 연결되어 있는지 TMM을 중심으로 요점을 짚어서 정리해준다. 약간 과장하자면 이 논문 및 제시된 참고문헌만 잘 읽어도 17세기-18세기 영국 정치사상사의 큰 그림이 들어오는 수준. TMM 3부가 존 던의 작업에 이어 미국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을 로크에서 공화주의적(포칵의 표현에 따르면 civic humanist) 언어로 끌어당기는 매우 크리티컬한 역할을 했다면, VCH와 BR은 좀 더 본격적으로 18세기 전반부 영국을 다루면서 상업의 발전, 중앙은행, 상비군 같은 것들이 논쟁적으로 떠오르면서 어떤 종류의 '역사의식'이 출현하고 변화해가는지를 다룬다. "마키아벨리적 계기"가 단지 17-18세기 영국과 미국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반체제/반근대 운동에서도, 미국의 총기소유 옹호 담론 같은 데서도 되풀이된다는 포칵의 코멘트는, 사실 나 또한 그런 식의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왔는데, 현재의 실마리로서의 사상사가의 역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Taylor, Charles. _A Secular Age_ Part 1. : 따로 정리하겠지만...이 200여쪽 정도의 분량에서 테일러는 중세 후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서구 라틴 기독교 세계에서 일어난 세계관/인간관의 변화를 매우 압축적으로 다룬다. 1장은 중세까지의 '주술적인'(enchanted) 세계관이 중세 후기부터 종교개혁(The Reformation)까지의 변화를 거치며 어떻게 점차 '탈주술화'(disenchantment)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2장은 주로 1400년 이후 르네상스 시기에서 civility를 강조하는 '문명화 과정'이 유스투스 립시우스(Justus Lipsius)를 중심으로 하는 신스토아주의(Neo-stoicism) 및 칼뱅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새롭게 등장한 통치국가(police state; Polizeistaat 의 역어인데 한국어로 정확히 뭐라고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및 그것에 의해 채택된 새로운 통치성(단 테일러는 직접적으로 이 말을 쓰지도, 푸코의 강의록을 참조하지도 않는다)과 맞물려 바람직한 기독교-시민의 상 및 빈민과 인구의 통제를 포함한 국가 전체의 모델을 어떻게 뒤바꾸었는지, 따라서 "훈육사회"(disciplinary society)가 어떻게 대두하는지를 다룬다. 3장은 야스퍼스의 "축의 혁명"과 함께 등장한 disembedded subject가 어떻게 세속화된 modern individualism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짤막하게 다루며, 4장에서는 과거의 세계모델을 대신해 세속화된, 그러니까 초월적인 영역이 없이 단 하나의 '현전하는 세계'(immanent world)만이 남은 세계모델이 테일러 자신이 "근대의 사회적 상상"(modern social imaginary)이라 부르는 세 가지 요소, 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이라는 개념들에 의해 어떻게 재구성되는가를 설명한다. 5장에서는 특히 역사유물론적 비판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방법론을 짧게 옹호한다.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 해방전후사의 진실과 오해>. 기파랑&일곡문화재단, 2009. [원래는 한길사에서 2007년 출간]
김일영. <건국과 부국: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재조명>. 개정신판. 기파랑, 2010.
역사학연구소. <한국 민중사의 새로운 모색과 역사쓰기>. 선인, 2010.
: 투고논문 보충 때문에 읽은 뉴라이트&민중사관 관련 텍스트. 이영훈 선생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때보다 좀 더 불타올라서(흑화되어?) 자신의 엘리트주의 지향성을 좀 더 솔직히 표명한다. 그는 자신이 개인을 중시하기 때문에 국가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하는데--물론 우리는 개인이라는 단위로부터 출발해 절대적 주권자를 정립하는 홉스라는 반례를 쉽게 제시할 수 있다--적어도 이 텍스트에서 그는 대중을 다스리고 이끄는 엘리트들이 어떻게 규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떠한 비전도 보여주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 텍스트에서 그가 때때로 보여주는 언어는 국가주의는 아닐지라도 통치엘리트가 사회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발산하는 것 같다. 덧붙이자면 국가주의, 엘리트주의, 민중주의 등을 구별할 때 단지 민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근본적인 변별점이 되지 못한다. 당연하지만 정당국가론과 같은 논리도 생산력의 핵심으로서 민중을 얼마든지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요점은 정치적 결정권 혹은 주권이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 견제와 균형 같은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있다(예를 들어 마키아벨리 이래의 근세의 공화국 담론을 따라 읽은 독자라면 뉴라이트의 국가모델에서 견제와 균형과 같은 공화주의의 핵심적인 모티프가 누락되어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 논리의 구축에서 또 다른 핵심인물인--이것만 봐도 우리는 뉴라이트가 어느 하나의 흐름으로만 정리될 수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김일영 선생의 책은 생각보다 매우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스타일로 쓰여져 있고, 심지어 마지막 결론에서는 과거 발전주의적 국가모델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오늘날에는 그 모델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한다는 점에서 이후 뉴라이트의 잔존파들이 읽는다면 매우 당황스러워할 텍스트다. 한국 현대 정치사학계에서 이 텍스트에 대해 비판이든 뭐든 제대로 된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동료 (뉴라이트) 교수들의 추모사를 보면--김일영 선생은 2009년 49세로 상당히 일찍 타계했다--합리적일 뿐더러 매우 활동적이고 인품 또한 좋았던 이로 묘사되는데, 만약 그가 좀 더 오래 살아남아서 뉴라이트 및 이후의 우파 진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의 정치담론적 지형은 지금과 다른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민중사에 관해선...저 책의 말미에 실린 토론이 민중사가 학문적으로 적어도 과거의 형태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난관에 빠졌음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Casanova, José. "Rethinking Secularization: A Global Comparative Perspective." _Hedgehog Review_ 8(Spring/Summer 2006): 7-22. 테일러 세미나 중 세속화 테제에 대해 유럽중심주의적 입장을 비판하는 흐름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왔는데, 타이밍 좋게 지인에게 추천받아서 읽어보았다. 저명한 종교사회학자 카사노바는 여기에서 기존의 유럽중심주의적 세속화 테제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현대의 서로 다른 각 문화권에서 종교가 어떻게 서로 다른--주로 미국과 유럽의 차이가 강조되지만--양상으로 존속하고 또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짧게 훑어본다.

한태연. "역사와 헌법시리즈 제1회: 한국헌법과 헌법학의 회고." <헌법학 연구> 8.1(2002): 9-52. [2002년 2월 2일 좌담, 저자는 1916년 생, 2010년 사망]
: 따로 게시물(http://begray.tistory.com/379)로 정리했으므로 추가로 언급하진 않겠다.

<말과활> 11(2016년 가을 혁신호) : 고맙게도 지인에게 선물 받아서 읽어보았다. 나는 기존의 <말과활>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에 '혁신'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몇 가지 흥미로운 생각들이 들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제 서구의 급진좌파들의 말이 점차 상투적으로, significance를 잃어버린 언어로 나타나 내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며, 오히려 개념적으로는 덜 다듬어진 동시대 한국인 필자들의 글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게--설령 내가 많은 부분에서 그것들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다가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라도 그것을 대면하는 과정 자체가 사고를 촉진하는 면이 분명 있다. 어쨌든 내 삶의 일정 부분 이상은 한국 동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쓰여질 거고, 이왕이면 그것들이 아주 약간의 가치나마 지닐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제야말로 진정 내가 속한 공간을 사고하면서 "여기가 로도스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다음 주는 조교 및 수강 수업 준비 + Armitage의 벤담 아티클 + SA Part 2 + 시간이 좀 더 남는다면 Tully의 로크 및 Moyn의 인권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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