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일기. 페이퍼 하나 마치고.

Comment 2015. 12. 24. 15:51
기말페이퍼 하나를 완성하는데 평소 두 개 쓸만치의 분량+노력을 때려박았다. 처음 해보는 시도들이 있어서 잘 쓴다기보다는 연습한다는 기분. 박사 4학기에 "잘 쓰자"가 아니라 "새로운 걸 해보자"라는 태도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는 건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몇 가지 소소한 감상.

1) 이번 학기에 투고 준비하면서 A4 10쪽 짜리 글을 쓰는 건 몸에 어느 정도 익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주제를 어느 정도로 다룰지 대충 잡고, 논지를 어떻게 설정하고, 참고문헌은 어디까지 볼 건지 등등. 동시에 겨우 10장으로는 (논문 형식으로는) 충분히 긴 호흡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불만이 들었는데, 이번에 20여장짜리 글쓰기는 역시 아직 연습과 적응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10장 조금 넘는 분량을 생각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작년 이맘 때도 계획에 없던 20장 가까운 페이퍼 하나가 튀어나왔는데, 이제 10장보다 긴 분량을 요구하는 주제들을 흥미롭게 생각하게 됐거나, 아직 충분히 압축적으로 글을 쓰지 못하거나, 둘 다거나 일듯 하다.

2) 분량도 문제였지만 접근방식도 아직 몸에 익지 않았다. 지난 반 년간은 거의 사상사쪽을 쭉 파고들어 공부했고, 이번 페이퍼도 문학과 사상사 가운데 쯤 위치하는 글이 되었다. 둘 다에서 흥미로운 글이 되면 좋겠지만 아직은 어느 쪽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다. 어쨌든 독자로서는 익숙해도 필자로서는 낯선 글쓰기의 시도는 흥미롭고, 이 과정에서 질의 좋고 나쁨을 떠나 아직 사람들이 많이 건드리지 않은 주제를 생각해보는 건 좋은 자극이다. 코멘트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이 실험적인 경로를 좀 더 따라가보고 싶다. "문학과 지성사"(*출판사 명이 아님)는 단순히 파볼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적 산물로부터 정신의 구조를 역사적으로 추출해내기 위해서도 유용한 길이 될지 모른다. 분과학문의 전문성을 통해 보다 일반화된 비판방식의 습득으로 나아가는 과정.

3) 투고를 한 번 해보니까 글을 쓰면서 이걸 어떻게 실용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계속 염두에 두게 된다. 무슨 상업적인/제도적인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그건 대학원에서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내 글을 그냥 던져놓고 마는 대신 이 글의 용도를 계속 떠올려보게 된다는 것. 조급함을 갖지 않고도 생각은 해볼 수 있다.

4) 잦은 밤샘과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컨디션과...위가 나빠졌다 ㅠㅠ. 제 시간에 자고 아침을 꼭 먹어야한다는 당연한 결론을 되풀이.

5) 페이퍼 쓰는 중간에도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정들이 생기는 걸 보면 나는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닌 존재인가(?!)

6) 프레더릭 바이저(Frederick C. Beiser)는 정말 좋은 저자입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두 권 밖에 없지만 둘 다 읽을만 합니다. <낭만주의의 명령>은 진짜 좋은 책이에요. 영국 낭만주의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도 매우 좋은 착안을 줍니다. 거의 19세기 독일 지성사를 새로 쓰다시피하고 있는 이 괴물같은 필자(물론 이게 가능한 건 수많은 선행연구가 쌓인 필드의 탄탄한 스칼라십이 전제...인문에서 소수 재능있는 사람만 공부시키면 되는 거 아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한숨이 다시 한 번)에 비견될 저자가 18세기 말-19세기 영국에는 아직 나오지 않은 건가? 아마 독일 낭만주의는 훨씬 탄탄하게 훈련받은 철학사가들의 전통과 맞닿아 있지만 영국 낭만주의는 역사화의 수준에서 훨씬 떨어지는 문학연구자들이 달라붙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든다. 바이저의 책보다 딱 5년 먼저 나온 (신역사주의적) 셸리 연구를 읽으면, 솔직히 역사적 서술의 레벨에서 너무 수준차이가 나서... 셸리로 글을 쓰는데 셸리를 다루는 논문 수십편보다 셸리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바이저의 책이 훨씬 insight를 주는 안타까운 상황.

7)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은 뛰어난 저자인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직접 읽어보면 더 잘 알게 된다. <지나간 미래>는 이제 절반쯤 읽고 있는데 천천히 몇 번씩 곱씹어 볼만한 책이다. 이번에 <개념사 사전>을 서너권 빼고 다 읽었는데, 아직 한국어판이 없는 <비판과 위기>도 시간을 내서 영어판을 정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상 자체를 뒤흔드는 게 있다.

8) 18세기 말-19세기 초 서로 다른 역사의식모델들이 출현하는 과정은 정말 흥미롭다. 맑스-레닌주의 전위당 모델과 유사한 형태가 이미 19세기 초에 나오는 것도 재밌는 사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19세기의 시간의식에 묶여있을지도 모른다.

9) 그리고 밀턴이 나를 기다린다. 제기랄. 31일까지 마무리하는 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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