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일기. 꿈. 모텔방과 시네마 키드.

Comment 2015. 12. 16. 12:53
기묘한 꿈을 꾸었다.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꿈 몇몇을 지나 심야의 길거리에 와 있었다. 넓은 거리에 낡은 저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서울의 변두리쯤 되는 곳이었고 늦은 시각의 변두리답게 길거리에는 인적도 불빛도 비교적 드물었다. 어스름이 시야를 가로막지 않을 정도로만 피어올라 있고 주황빛의 가로등은 어둠을 일소하기엔 미약해서 무언가 애수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그런 밤거리다.

나는 90년대쯤에 만들어졌을 낡은 모텔에 들어섰다. 자동문 따위는 없어 문을 밀고 들어가면 촌스러운 색감과 무늬의 벽지가 도배된 그런 클리셰적인 공간 말이다. 낡은 모텔들이 그렇듯 맑지 않은 광원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었는데, 카운터에 아무도 없었는지 혹은 카운터 자체가 없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 2-3층 쯤에 계단과 바로 붙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들어가보니 내가 이용한 입구는 원래 설계에 없었을, 아마도 나중에 아무렇게나 덧붙여졌을 쪽문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왼편 벽에 번듯한 원래의 입구가 보였다.

방 한 가운데는 얇은 평면 TV가 나오기 전 사용했던 적당히 큰 구형 TV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책들로 들어찬 두 단 정도밖에 되지 않은 수납공간이 보였다. 정작 모텔임에도 불구하고 침대 같은 건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른 것들을 둘러보기 전에 허섭쓰레기 같은 책들 속에서 두툼하고 알록달록한 표지를 자랑하는 한 권이 유독 눈에 띄었다. 노란 계통의 커버에 책등에는 "Life Work" 라고 부직포인지 색종이인지 알 수 없는 재질로 된 붉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읽을 가치가 있을 것이기에 손을 뻗어 꺼내었다.

꿈답게 책을 펼치기 이전부터 나는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은 잊혀진 아주 유명한 영화광이었다. 나는 10대 후반부터 그의 존재를 알았고, 20대 초반까지 듀나 게시판 같은 곳을 매일 들락거리면서 아마도 그의 글을 접했을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영화를 보았고 지식도 풍성했으며 글에도 고양된 열정이 샘솟는, 커뮤니티의 칭송을 받는 천재적인 필자였다. 커뮤니티에 가입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들여다볼 뿐인 나는 묘한 동경의 감정만을 품고 그의 글과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칭송하는 글을 읽곤 했다. 그러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라졌다. 팬들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 방이 그의 마지막 유산임을 알았다. 모종의 이유로 그는 삶을 그만두었고 오직 이 허름한 모텔방에 남겨진 것들이 전부였다. 내가 꺼내든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겨놓은 기록물, 일종의 전작집인 셈이었다. 매우 두툼한 책 혹은 일기장은 아주 어릴적, 아마도 10대 초중반에 끄적인 듯한 그림인지 글인지 알 수 없는 끄적임들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온갖 회한과 좌절, 광기 속에서도 자신이 썼던 모든 것들을 단 한 권에 남겨놓고자 했다. 나는 그의 글을 몇 편 읽어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강렬한 인상 자체는 남아있었기에 계속 종이를 넘겼다.

나의 조작인지, 아니면 저절로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갑자기 TV가 켜졌다.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채 화면을 쳐다보아야만 했다. 잠시 후 검은 화면이 지나고 지금의 모텔방과 유사하게 낡고 음험한 방을 배경으로 (어쩌면 바로 이 방일지도 모른다) 가운데에 한 여성이 있었다. 상반신 중에서도 어깨부터 머리까지만 나오는 그런 익숙한 구도를 떠올리면 된다. 유명한 배우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수한 얼굴의 미인이었고 특별히 사악하지도, 유혹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무표정 기저에 잠재한 깊은 원망과 증오감은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그녀 자신보다는 이 상황 자체에 위험이 깃들어 있음을 직감했다.

이 방과, 이 책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영상 또한 그의 유산이었다. 정확히 말해 이 공간 전체가 그의 피조물이라고, 유산이자 함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영화에 대한 애정과 결국에는 삶까지도 중단해야 했던 이 천재는 자신의 천재성이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원한을 담아 이 모텔방을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만들었고, 방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시험하고 끝내는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었다. 방 곳곳에 기계장치와 함정이 들어가 있어 한 순간의 실수가 목숨의 상실로 보답받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이 방 자체가 덫이었고 나는 덫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화면의 여성--그녀가 실존인물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화면에는 도전을 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의 선택지가 떴다. 한다고 답할 경우 이 함정이 제시하는 갖가지 시험과 직면하게 되겠지만, 동시에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쏟아내어 만든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었다. 이는 나와 같은 직업군의, 성격의 사람에게는 상당히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 했다. 한 5초 정도 짧게 고민한 뒤 리모컨으로 "도전하지 않는다"를 선택했다. 화면이 꺼졌다.

간단히 말해 "Life Work"에서 읽은 그의 산물은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나이대를 감안하면 분명 어느 정도 조숙함을 드러내지만, 단지 그뿐일 그런 작품들 말이다. 이른 나이에 다른 이들이 그때까지는 보지 못했을 것들을 풍성하게 접했고 그렇게 습득한 다채로운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의 언어를 구성하는 것들을 거의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던 시기가 지나 되돌아보았을 때, 미지의 신성한 언어로부터 내려온 아우라가 제거된 그의 산물은 스스로의 뛰어남에 대한 자기경탄과 같은 청소년기의 격정으로부터 빚어진 빛깔을 제외하고 나면 평범한 사고능력을 보여줄 뿐이었다. 한 마디로 뻔하고 시시했다. 그는 단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만 천재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단호한 거절 이상으로 거절의 사유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듯 모텔방의 모든 것들은 침묵했다. 나는 이 방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작동하기 전에 조용히 방을 떠났다. 이 방의 현관이었을 문으로 나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기에--문은 함정설치의 기초 아닌가--내가 들어온 쪽문을 통해 조용히 신속하게 빠져나갔다. 아마도 이 쪽문은 모텔방이 그에 의해 개조된 뒤의 시점에 확장공사 등을 통해 덧붙여졌고, 그래서 그의 손길이 닿는 영역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는 믿을 수 없으므로 안심하지 않고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모텔 입구에서 들어오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검은 청바지에 합성섬유 재질의 점퍼까지 온통 검은 옷차림을 한 그는 내 또래에 짧은 머리에 광대가 살짝 도드라진, 입가에 수염을 짧게 기른 하얀 얼굴의, 전체적으로 매우 날씬한 체격의 남성이었다. 서로가 살짝 당황한 가운데 그는 아마도 택배 배달원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밝히고 무언가를 물어보았고, 모텔 자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던 나는 안으로 직접 들어가 확인하는 게 나을 거라고 답했다. 그는 들어오고 나는 나갔다.

위험에서 막 벗어난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밤거리를 뛰었다. 꿈이니만큼 속도가 충분히 빨리 나오지는 않았지만 모텔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뒤를 돌아다보니 모텔 입구에서 남자가 나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부르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보고 달렸다. 저편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단지 옆에 조성된 작은 숲을 지나칠 때쯤 꿈에서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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