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워드. <유럽사 속의 전쟁>.

Reading 2015. 11. 27. 11:57
마이클 하워드. <유럽사 속의 전쟁>. 1975. 안두환 역. 글항아리, 2015. Trans. of _War in European History_ by Michael Howard, updated ed., 2009.

한국에서 전쟁과 군대를 다루는 가장 흔한 태도로는 크게 셋을 꼽을 수 있다. 군 복무 경험에서 비롯된 복잡한 태도와 애국심이 결합한 애착의 감정, (종종 아주 편리하게 반군사주의를 끌어오는) 경멸, 혐오, 거부감, 그리고 첫 번째 태도와 연결되곤 하는 밀덕의 정신이 그것이다. 세 가지 태도 모두가 군대를 충분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이토록 군대 관련 담론이 흘러넘치는 한국사회에서 정작 군대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이 일차원적인 호오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군 조직의 경직성이나 군사주의문화에 대한 비판이나 무기, 장비, 전술, 전략 등 개별적인 사안들에 대한 탐닉은 그 자체로는 유의미하지만 이 거대한 총체의 핵심을 똑바로 짚어간다는 느낌은 좀처럼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유럽사 속의 전쟁>은 이 세 가지 모두와 다른 종류의 조금 더 깊은 사고로 우리를 인도해줄 수 있는 또 다른 시선을 소개한다.

마이클 하워드의 짧은 책(역자의 열정이 드러나는 뛰어난 번역과 함께 큼지막한 줄간격과 여백을 자랑하는 한국어판은 안두환 선생의 무시무시한--각주 178개짜리--역자해제 및 역자 소회를 제외하고도 350쪽이 넘지만, 원문은 총 182쪽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어 판에는 원저에는 없는 각종 삽화와 사진들이 매우 풍성하게 들어가 있어 나같이 이 분야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은 유럽국가의 역사를 배경으로 두 가지 축에 기초한 설명을 제공한다. 하나는 중세부터 2차 대전까지 이어지는 시간적인 흐름이며, 다른 하나는 군대와 전쟁이 조직화되는 방식, 요컨대 기술-전술-전략-제도(행정과 법)-문화-경제-국제관계 등이 결합하는 방식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 하워드는 후자를 기준으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 따라, 요컨대 군대와 사회의 조직화 방식의 변화에 따라 유럽사를 총 7개의 시대로 구별한다--기사, 용병, 상인, 전문가, 혁명, 국민, 기술자라는 구별은 전쟁의 초점이 무기를 든 이들로부터 그들을 육성하고 보급하고 길러내는 시스템으로, 다시 말해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사회 자체로 점차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점차적으로 보여준다.

단적으로 말해 군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것을 위해 투입되는 기술, 자본, 인력의 밀도가 계속해서 증대해왔다(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동원한 60만명이 당대의 기록적인 대군이었다면, 반세기 뒤 보불전쟁에서 프러시아는 120만명을 동원했으며, 1차 대전 때 독일 병력규모는 340만명이었다). 우리는 중세의 기사 한 명이 실제로는 6인 1조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들을 일정 기간 이상 동원하는데 든 비용도 결코 적지 않았다. 개별 기사나 영주가 부담했던 전쟁비용은 점차 (세금을 걷고 대상인들에게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왕, 나아가 국가와 같이 거대한 자본을 축적한 주체만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커져간다. 오늘날처럼 평화로운 국제교역이 일반적인 것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특히나 중상주의 국가들의 각축전에서 강조되지만, 국부는 (제국주의적 식민지 경쟁으로 이어지는) 전쟁을 통해 획득되었고, 전쟁은 비용을 요구했으며, 비용은 국가의 재편성을 요구했다. 하워드의 시선을 따를 때 유럽 전쟁사/군대사는 곧 국가/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중상주의의 시작에서(3장) 본격적으로 국가의 군대가 육성됨에 따라 국가의 행정기구가 개선되는 17세기 말-18세기(4장), 그리고 프랑스 혁명전쟁이라는 과도기(5장)를 거쳐 국민군의 운영으로 이어지는 19세기-1차대전까지(6장)의 여정에 놓인 것은 당연하다(이는 동시에 국가가 한 명의 군인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기간이 단축되는 과정을 포함한다; 철도는 19세기 중반에 일반화되었고, 행군은 비약적으로 짧아졌다).

7장에서 다루는 20세기의 전쟁은 해전, 공중전, 장갑차, 통신기, 원거리 무기...그리고 총력전을 위해 필요한 광범위한 동원능력과 복잡한 보급/행정기구의 등장을 요구한다. 이는 동원의 대상인 국민 이상으로 국민을 동원하고 조직하고 무기를 쥐어주고 명령하는 전문기술자 집단의 주도권으로 이어졌다. "19세기에 대중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던, 그리고 그들의 참여를 필수적으로 만들었던 기술은 20세기 들어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들의 손에 점점 더 많은 힘을 실어줬다. 제2차 세계대전은 대중의 참여와 전문 기술자들 사이의 내밀하고 치명적인 결투의 진기한 혼합을 선보일 터였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유럽인들은 만약 일어난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파괴적인 힘을 휘두를 비교적 적은 수의 군사 기술자에 의해 치러지게 될 갈등에서 대부분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259). 그리고 7장의 마지막은 원자폭탄의 등장과 함께 전쟁의 패러다임이 다시 한 번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수도 있으리라는 물음으로 끝난다. 2009년판에 추가된 에필로그는 45년부터 21세기의 이라크 전쟁까지를 간략하게 훑어보는 것으로 끝나며, 아쉽게도 IS의 등장을 통해 최신의 IT기술을 통해 기존의 국민국가로부터 자기 자신의 인력을 빨아들이는 기이한 형태의 "국가" 및 이들 간에 재래식 무기를 통해 수행되는 전쟁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하워드의 책으로부터 배운 독자들이라면 이를 직접 사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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