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의 "성매매 비범죄화" 결정에 대한 짧은 코멘트

Comment 2015. 9. 4. 23:15

시사인의 관련 기사 링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98


인용:


"여성이 대부분인, 성을 파는 이들을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에 대해 인권단체나 여성단체 사이에서도 이견이 크지 않다.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희생자로서 성을 파는 처지에 몰린 이들은 처벌받기보다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제는 성매매에 관여하는 다른 사람들이다. 앰네스티의 이번 결정은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와 알선업자, 업소 주인까지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앰네스티는 어떤 방식으로든 성매매를 범죄로 보게 되면 그에 따른 위험은 결국 가장 약자인 성노동자(성을 파는 사람)에게 전가된다고 반박한다. 성을 파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논리다. [...]


이번 결정에서 앰네스티는 ‘노르딕 모델’ 또는 ‘스웨덴 모델’이라 불리는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성을 파는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대신 구매자 등 다른 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수요를 억제하는 이 모델은 성매매 폐지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안으로 지지해왔다. 1999년 스웨덴이 처음 도입한 이래 아이슬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북아일랜드 등 많은 곳이 이 정책을 채택했다. 올해 나온 스웨덴 정부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의 주요 도시에서 길거리 성매매가 1995년 이후 절반 이하로 줄었고, 성을 구매했다는 남성의 수 역시 40% 넘게 감소했다(경찰 추적을 꺼리는 고객들 때문에 많은 성매매가 음성화하고, 따라서 성 판매자들이 더 위험해졌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


이에 대해 앰네스티는 “이렇게 타협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되면 성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인권침해에 취약한 상태에 남겨진다. 성노동자들은 여전히 형법을 적용해 성 노동을 없애려는 의도를 가진 경찰들에게 쫓길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앰네스티는 “많은 성노동자들이 구매자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도록 구매자의 집으로 방문해줄 것을 요구받는다. 성노동은 노르딕 모델에서도 여전히 (범죄로) 낙인찍혀 있으며, 이 낙인으로 인해 차별받고 소외당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앰네스티는 ‘성노동’ ‘성노동자’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하지만 규제를 목적으로 성노동을 노동으로 공식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앰네스티 결정이 성매매(성노동) 합법화도 아니다. “만약 성노동이 합법화된다면 정부는 공식적으로 성노동을 규제하는 매우 구체적인 법률과 정책을 마련할 것이고 이런 규제는 또 다른 운영 방식을 야기해, 결국 규제를 피한 성매매로 성노동자들은 다시 처벌받게 될 수 있다.”"


" <가디언> 사설은 합법화가 아닌 ‘비범죄화’에 강조점을 두는 이 같은 제안에 대해 “언제부터 규제되지 않는 시장이 인권을 보장했는가”라고 반문했다. [...] 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CATW)은 비범죄화로 이익을 얻는 유일한 이들은 알선업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2년 성 판매자의 법적 지위를 강화할 목적으로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에서 섹스 관광과 같은 성 산업이 번창하는 것은 단골 사례로 인용된다. 비범죄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독일처럼 법을 완화한 나라들이 오히려 인신매매를 부추겼다고 말한다(앰네스티는 그 같은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한국 여성단체들이 앰네스티 결정을 비판하며 낸 논평에도 이런 우려가 담겨 있다. “불평등과 불의에 기반하여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더욱 활개를 치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 등 5개 단체 논평, 8월13일)"



이하는 나의 단평: 


(10월에 나온다는 최종보고서를 검토해야겠지만) 시사인 기사 및 현재까지 나온 언론기사만을 따른다면, 앰네스티는 사실상 성매매/성노동 영역 전반에 있어서 정부의 개입을 일체 철폐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해주자는 것과 그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분명히 다른데, 합법화가 아닌 비범죄화를 채택했을 때 우리는 그럼 성노동자의 인권이 어떤 형태로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특히나 산업화된 성매매 시장 안에서 말이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정말로 꿈 같은) 성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단결에 의한 조합결성?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내게는 <가디언>의 코멘트가 가장 현실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언제부터 규제되지 않는 시장이 인권을 보장했는가”? 앰네스티는 설마 "보이지 않는 손"이 모두를 가능한 최선의 결과로 이끄리라는 예정조화적 신앙을 고백하는 걸까?


이번 앰네스티의 결정이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에 더 선하고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믿는 분들의 주장에 나는 분명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성노동자들이 주체적 권리를 승인받는 일은 중요하며, 현재의 성노동 정책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만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성매매의 비범죄화가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거라는 믿음 이 그러한 선택의 실효적 측면을 곧바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한국사회와 같은 노동조건에서는 말이다. 앰네스티의 (대중적인) 지지자들은 대체로 성노동 비범죄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성노동자 자신들의 실제적인 권리를 무시하고 있으며 인습적인 성 관념에 붙들려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야말로 자유주의적 환상 혹은 시장의 '최적화 기능'에 대한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영국의 노동자들의 권리가 "오, 물론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계약해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요!"라는 자본가들의 외침으로 현실화된 게 아닌 것처럼, 성노동자들의 권리는 시장이라는 '무균지대'에서 자연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요컨대, 나는 이 사태를 '권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좀 더 복잡하게 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 8월 31일 페이스북에 썼던 글. 이후 지금까지 내 의견을 수정할 만한 비범죄화 옹호의견을 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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