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B. Shelley. "On Love" 및 코멘트.

Reading 2015. 5. 13. 22:34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짧은 산문을 옮긴다. 오늘 유쌤의 _A Defence of Poetry_ 강의를 듣고 독일관념론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산문들을 좀 찾아봤더니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페이지가 있었다. 여기서 셸리가 언급하는 사랑의 개념은 젊은 헤겔, 예컨대 <기독교의 실정성>과 같은 텍스트에서 언급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로서의 사랑과 비교해봄직하다(완전히 같지는 않다). 셸리는 개인이 자아의 감옥을 벗어나 타인과 어떻게 연대/공감할 것인가라는 도덕철학의 오래된 문제를 제기한 뒤 이를 신체-정신을 아우르는 느낌(feel)으로서의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상동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현재의 나 자신과 닮은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안에 있는 무언가 이상적인 원형과 닮은 대상을 향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을 통해 현재의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수렴되는 대신 내 안에 있으면서도 나와 다른, 어쩌면 이상적이고 더 나은 무언가에 다가설 수 있다. 정확히 그러한 힘이야말로 인간의 필수조건이라고 셸리는 말한다.


 시대정신 또는 세계의 행보를 변증법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Ode to the West Wind"나 _Prometheus Unbound_와 같은 시편도 그렇지만 셸리의 산문이 전제하는 체계는 헤겔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 각각의 개인들은 본인들이 지각하든 그렇지 않든 '객관적인' 세계질서의 일부분이며--이는 물론 스피노자를 떠오르게 한다--, 그 세계질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부패와 타락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새로운 세계로 재창출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낭만주의가, 특히 독일 낭만주의자들에게서 명확히 드러나듯, 객체로서의 세계의 구성까지 포함하는 주관의 확장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면, 본인이 낭만주의적 사고와 깊은 친연을 맺었으며 동시에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자였던 헤겔에게서 주체는 만물로서의 세계=객체의 한 계기로 다시 자리잡는다. 이와 같은 객관성의 우위는 셸리의 시(_Prometheus Unbound_의 Demogorgon은 문자 그대로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며 재구축하는 객체의 힘 그 자체다)와 산문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덧붙여야 할 것은, 헤겔에게서 '세계'가 단순히 우리 개개인의 의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대상들의 집합체 혹은 경험적 세계가 아닌 것처럼, 셸리에게서도 어떤 이상적인 혹은 이념적인(ideal) 것은 우리의 지각체계 안에 이미 완전한 형태로 주어지지 않으며 예술가들의 미적인 실천을 통해 계속해서 환기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객관성의 우위를 이야기할 때 이 객관성은 경험적인 의미에서의 객체라기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된 상들을 포함한 무언가를 지칭한다; 그것은 주체의 인식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객관적이며 그와 같은 객체에 근접할 때 인간은 진정한 쾌에 도달한다. 헤겔에게서 그와 같은 이념적인 것으로서의 객체는 최종적으로 절대정신으로 표현된다(아도르노와 블로흐에게서는 유토피아가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덧붙이면 객관성을 강조하는 셸리의 미학은 객체에의 접근을 미메시스mimesis라는 계기로 설명하는 아도르노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아래의 산문에서도 이러한 구도는 찾아볼 수 있는데, 셸리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내면에서 "the ideal prototype of everything excellent or lovely"를 찾아볼 수 있으며 현실에서 이에 대응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the discovery of its antitype")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자연에 대해 품는 애정 또한 이러한 이상적인 것으로서의 객관성의 심급을 향하는 주체의 감정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셸리의 미학은, 좀 더 읽은 뒤에 비로소 확실한 판단을 정할 수 있겠지만, 헤겔 및 (헤겔을 재독해한) 아도르노와 견주어 볼 때 그 내부의 체계적인 논리가 좀 더 명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접근은 셸리와 헤겔이 프랑스혁명 이후 반동의 시대를 살았던 계몽주의자라는 입장을 공유한다는 사실--물론 셸리보다 더 오래 살았던 헤겔은 낙관적인 전망을 다시 품을 수 있었지만--을 감안한다면 역사적으로 아주 근거없지는 않을 것이다(이미 어디선가 연구는 많이 됐겠지...). 셸리의 사유체계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흐름을 떠올릴 수 있다; 프랑스 혁명 및 이후의 반동정국은 물론이고, 그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대결하고자 했던 17세기 이후 영국 계몽들의 역사, 그리고 동시대 독일 관념론자들의 입장이 그것이다. 나는 특히 마지막의 항을 강조하고 싶은데, 이는 칸트 이후 독일관념론의 계보(실러, 피히테, 슐레겔, 그리고 누구보다도 헤겔) 자체가 '영국적인 계몽'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초래한 문제를 사유의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흐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칸트와 헤겔이 모두 스미스를 읽었고 동시에 경험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서의 공리주의를 비판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앞서 지적했듯 셸리의 '세계'는 그 자체로 만물의 원리이자 이념적인 것이며 동시에 이러한 이념을 실현하는 동적인 면모를 지닌다(이러한 논리에서 헤겔을 떠올리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시민계급의 정치적인 행위가 매우 제약된 시대적 조건에서 도출된 사고였던 독일관념론과 혁명 이후 반동기를 살면서 급진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정치적으로 무력했던 셸리가 유사한 논리를 채택한다는 것이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적으로 무력화된 누군가가 사유의 층위에서 할 수 있는 선택지들 중 가장 통속적인 것이 탈정치적 자연/미적인 대상으로 침잠하는 내향적 주체를 확장하는 것이라면--그리고 이것은 영국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가장 통속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셸리의 사고는 주체가 아니라 (주체를 포함한) 객체로서의 세계 자체에 혁명의 필연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향했다. 세계가 이상적인 형태를 잠재하며 또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견지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주체는 더 나은 미래를 예감하면서 스스로의 참됨을 확인할 수 있다; 셸리보다 다소 비관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아도르노가 그려낸 진정한 예술가/비평가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나는 셸리의 사고체계가 독일관념론자들의 그것과 같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헤겔이 낭만주의자들과 유사한 조건에서 유사한 개념을 갖고 출발하면서도 동시에 자기만의 독특한 해결책을 찾았던 것처럼, 셸리 역시 그와 유사한 정세에서 사고한 이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를 구축해 갔을 터이다; 셸링과 헤겔의 아주 작은 차이가 결국 근본적인 분기점으로 드러나듯, 사고체계들의 작은 차이들이 갖는 의미를 우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나의 요점은 단지 셸리가 영국낭만주의의 의미체계 못지 않게 동시대 독일의 지적 작업들과 맺는 친연성을 무시할 수 없으며 어떤 점에서 후자와의 친연성이 셸리가 영국의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갖는 독특함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독특함이 오늘날 셸리를 읽는 독자가 그의 작품들에 좀 더 많은 눈길을 주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어둠과 야만을 앞에 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비슷한 시대를 살았으되 쇠락하지 않은 정신들을 주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P. B. Shelley. "On Love." 1840[1815]. [http://www.gutenberg.org/files/5428/5428-h/5428-h.htm]



What is love? Ask him who lives, what is life? ask him who adores, what is God?


I know not the internal constitution of other men, nor even thine, whom I now address. I see that in some external attributes they resemble me, but when, misled by that appearance, I have thought to appeal to something in common, and unburthen my inmost soul to them, I have found my language misunderstood, like one in a distant and savage land. The more opportunities they have afforded me for experience, the wider has appeared the interval between us, and to a greater distance have the points of sympathy been withdrawn. With a spirit ill fitted to sustain such proof, trembling and feeble through its tenderness, I have everywhere sought sympathy and have found only repulse and disappointment.


Thou demandest what is love? It is that powerful attraction towards all that we conceive, or fear, or hope beyond ourselves, when we find within our own thoughts the chasm of an insufficient void, and seek to awaken in all things that are, a community with what we experience within ourselves. If we reason, we would be understood; if we imagine, we would that the airy children of our brain were born anew within another's; if we feel, we would that another's nerves should vibrate to our own, that the beams of their eyes should kindle at once and mix and melt into our own, that lips of motionless ice should not reply to lips quivering and burning with the heart's best blood. This is Love. This is the bond and the sanction which connects not only man with man, but with everything which exists. We are born into the world, and there is something within us which, from the instant that we live, more and more thirsts after its likeness. It is probably in correspondence with this law that the infant drains milk from the bosom of its mother; this propensity develops itself with the development of our nature. We dimly see within our intellectual nature a miniature as it were of our entire self, yet deprived of all that we condemn or despise, the ideal prototype of everything excellent or lovely that we are capable of conceiving as belonging to the nature of man. Not only the portrait of our external being, but an assemblage of the minutest particles of which our nature is composed;[Footnote: These words are ineffectual and metaphorical. Most words are so—No help!] a mirror whose surface reflects only the forms of purity and brightness; a soul within our soul that describes a circle around its proper paradise, which pain, and sorrow, and evil dare not overleap. To this we eagerly refer all sensations, thirsting that they should resemble or correspond with it. The discovery of its antitype; the meeting with an understanding capable of clearly estimating our own; an imagination which should enter into and seize upon the subtle and delicate peculiarities which we have delighted to cherish and unfold in secret; with a frame whose nerves, like the chords of two exquisite lyres, strung to the accompaniment of one delightful voice, vibrate with the vibrations of our own; and of a combination of all these in such proportion as the type within demands; this is the invisible and unattainable point to which Love tends; and to attain which, it urges forth the powers of man to arrest the faintest shadow of that, without the possession of which there is no rest nor respite to the heart over which it rules. Hence in solitude, or in that deserted state when we are surrounded by human beings, and yet they sympathize not with us, we love the flowers, the grass, and the waters, and the sky. In the motion of the very leaves of spring, in the blue air, there is then found a secret correspondence with our heart. There is eloquence in the tongueless wind, and a melody in the flowing brooks and the rustling of the reeds beside them, which by their inconceivable relation to something within the soul, awaken the spirits to a dance of breathless rapture, and bring tears of mysterious tenderness to the eyes, like the enthusiasm of patriotic success, or the voice of one beloved singing to you alone. Sterne says that, if he were in a desert, he would love some cypress. So soon as this want or power is dead, man becomes the living sepulchre of himself, and what yet survives is the mere husk of what once he was.


[1815; publ.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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