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필립스. <How to Read 사드>.

Reading 2015. 5. 13. 04:51

존 필립스. <How to Read 사드>. 김병화 역. 웅진지식하우스, 2008. Trans. of _How to Read Sade_, by John Phillips, 2005.


사드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르크하이머가 쓴 아주 매력적인 장--보통 거의 클리셰에 가깝게 오디세이아와 문화산업 이야기만 꺼내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칸트와 사드를 다룬 이 장이야말로 <변증법>의 백미에 가깝다...물론 나는 이 책의 형제자매라 할 수 있는 <미니마 모랄리아>와 <신음악의 철학>을 더 중요하게 본다--을 읽은 뒤로 늘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번 학기에 18세기 로맨스 및 젠더-섹슈얼리티 수업을 듣다가 둘 다에서 우연히 사드를 언급할 일이 생겨 도서관에서 슬쩍 빌려와 읽었다. 번역은 그저 그렇다. 민감도를 조금 낮추면 그럭저럭 무난하게 읽을 수 있지만 제대로 된 편집을 거쳤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책 자체는 역시나 How to 시리즈 답게 평이하다. 사드를 처음 손대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좋은 안내서가 되겠지만--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텍스트를 포함해 나름대로 전체적인 조망을 하게 해준다--그 이상의 지적 관심사를 가진 사람에게, 특히 나처럼 사상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영미권의 주요 참고문헌 목록은 그럭저럭 도움이 되겠다). 사드가 살았던 루소 이후 프랑스 혁명기의 시대에 맞추어 그를 이해하려는 관점이 나쁜 건 아니지만 사상사적 주제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평이한 수준이다. 정신분석적 틀에 기초한 설명은 이미 그러한 논리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진부하게 읽힐 것이다. 더불어 덕성-악덕의 체계에 대한 저자의 이해에는 역사적 감각이 부재하다; 이 책은 덕성을 단순히 기독교적 도덕이나 사회의 질서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사드가 왜 덕성의 주제에 천착하는지, 그리고 심지어 (돌바크와 엘베시우스로부터 영향받은) 공리주의적/쾌락주의적 유물론을 꺼내들면서도 덕성의 언어라는 형태를 빌어 이야기해야만 하는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과잉'의 모티프를 지적하는 것(107)은 기억해둘만 하지만 곧바로 정상성<->위반의 도식적인 범주로 넘어가버린다(이 주제에 대해서는 피터 브룩스를 참고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사드의 다른 텍스트--일본어 중역으로 존재하는 <소돔 120일>과 <쥘리에뜨, 혹은 악덕의 번영>을 포함해서--는 국역된 것들로나마 앞으로 읽어갈 생각이다(사드 전집이 나오고 있는 게 가장 환영할 일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나는 사드의 사고를 단순한 유물론자의 사고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 그는 덕성의 논리체계를 '계몽'의 언어로, 공리주의적 유물론의 논리로 분쇄한다. 그러나 그는 '합리적인 유물론자'라면 멈추어야 할 지점에서 리베르탱libertine의 논리를 끌어들이면서 일종의 전도된 덕성의 논리로 나아간다. 요컨대 덕성과 '악덕'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며, 리베르탱들은 마치 수도사가 고행을 통해 덕성/영성에 도달하듯 극단적인 성적 실천을 통해 리베르티나주에 도달한다. 여기에는 명백히 과잉 혹은 초월로 향하려는 욕망이 있다...고행을 통한 덕성에의 도달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인 것처럼 말이다.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와 같은 초기 텍스트에서 리베르탱은 단순히 쾌락주의자로 묘사되지만, <규방철학>이나 <악덕의 번영> 같이 논의가 좀 더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리베르탱은 성적 실천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어떤 인간형으로 형성하고 축조한다. 그런 점에서 사드를 덕성의 언어로 읽을 때 우리는 덕성의 언어가 뿌리를 박고 있는 논리, 푸코의 용어를 본다면 자기-배려의 의미론까지 도달해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감각론에 머물거나 위반-반란의 도식에 머무는 것은 오히려 사드를 너무나 좁게 읽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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