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 <교육론>. 짧은 독후감.

Reading 2015. 2. 26. 23:40

로크의 <교육론>_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_은 통칭 '자유주의자'로서의 로크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트리는 놀라운 저작이다. (따로 각 절 별로 인상깊은 대목을 정리하는 노트를 만들었는데 당장 올리지는 않겠다) 비봉출판사에서 나온 국역본은 잘 읽히지만 개념어를 의식하며 읽으려면 역시 영서를 읽기를 권한다. 로크의 다른 텍스트에 비해 재밌고(...) 잘 읽힌다.


주지하다시피 로크는 <인간지성론>-<통치론> 양자에서 기본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관을 확립했으며, 이것이 통상적으로 우리가 자유주의자 로크의 인간관이라고 이해하는 바이다. 그러나 신사계급gentleman의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를 숙고하는 이 텍스트에서 로크는 놀랍게도 언제든 군인이 될 수 있는 강건함을 갖춘 '남자다운'manly 덕성vertue을 갖춘 아이를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스토아 학파의 전통, 특히 세네카를 중점적으로 인용한다. 이 텍스트에서는 세상의 다양한 불행과 사건들에 맞설 준비가 된, 쾌락에 이끌리지 않고 고통에 겁먹지 않는 인간, 스스로의 고통과 약점에 둔감해진 채로("insensible") 사회가 요구하는 덕성에 부합하게 행동할 준비가 된 인간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이 책은 첫 대목에서부터 아이를 어떻게 추위에 움츠러들지 않는 강건한hardy 인간으로 기를 수 있을 것인가로 시작한다. 최종적으로 세상의 고난과 각종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 자신을 통치하고 나아가 사회를 통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지배자'를 기르는 것이 로크 교육론의 요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실제로 그는 스파르타 교육의 정신을 찬양한다). <알키비아데스>를 포함하여 그리스-로마의 교육 전통 및 공화주의-덕성의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17세기의, 그것도 다름아닌 로크가 쓴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유사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영국 공화주의 연구에서 로크가 갖는 모호한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실제로 이 책을 읽은 뒤 로크에 대한 나의 인상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더불어 감수성sensibility 담론의 역사에서 로크와 공화주의 전통이 갖는 위상 또한 좀 더 복잡해질 필요가 생겼다; 실제로 18세기 상업사회에서 감수성의 확장이 (남자다운) 덕성의 인간man of virtue을 강조하는 공화주의 전통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퀜틴 스키너가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에서 세련된 도시인 대 남자다운 시골 신사들의 대립구도를 스치듯이 지적했는데, 우리는 이 두 가지 전통이 함께 뒤섞여 있는 텍스트로 로크의 <교육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예의범절civility과 사교성sociability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insensible"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실제로 17세기에서는 두 가지 덕목이 아주 충돌하지만은 않았을 듯 하다.


이론 및 사상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기 전 혹은 읽으면서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을 반드시 같이 읽기를 권한다. 스토아 전통에 이미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로크의 텍스트가 의식적으로 고대적 덕목을 얼마나 깊이 모방하고 있는지, 동시에 스토아적 전통과 어떤 점에서 구별되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푸코가 스토아 학파의 교육이 마치 불안한 세상만사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갑옷과 무기를 두르는 과정과 같다고 지적한 부분을 본 뒤 로크가 세상의 각종 어려움에 쉽게 영향받지 않는 마음("insensibility of mind")이 세상의 각종 사건에 대한 "최고의 갑옷"("the best Armour")과 같다고 진술하는 부분을 읽는다면 그 유사성이 더욱 잘 다가온다. 푸코가 이 텍스트를 인용하지 않은 게--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놀라울 정도다.



P.S. 이하는 페이스북 댓글에서 대화하며 보충한 내용. 위의 내용이 여러 모로 불친절한 이론적/학술적 맥락을 담고 있으므로 나의 댓글을 붙여둔다.


1) insensible을 sensibility 담론의 맥락에서 설명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턴 및 (뉴턴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로크 이래 인간에 대한 자연철학적 이해가 본격적으로 감각sense과 수용sensible의 틀로 옮겨갑니다--경험주의/감각주의 철학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이 외부의 대상을 감각을 통해 인지한다면, sensibility는 그 sense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감수성이 뛰어나면 그만큼 외부의 대상을 잘 받아들이는 거고, insensible 하다면 외부의 자극에 그만큼 영향받지 않는 거죠(로크식의 뉘앙스를 살린다면, 바람이 불고 폭풍이 불어도 한 점 흔들림 없는 뿌리깊은 나무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18세기 영국은 이 감수성이 발달한 게 좋은 건지 둔감한 게 좋은 건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오가는 논쟁터이기도 했고요.


 예를 들어 감수성이 너무 발달하면 작은 일에도 쉽게 놀라고 충격을 받는 '감각의 노예'가 되기 쉽다는 거죠(대표적으로 소설에서 툭하면 기절하는 여성인물들을 떠올리면 됩니다). 로크는 이런 점에서 둔감하게 되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기 자신의 주인"--이것이 공화주의 전통의 가장 중요한 산물이기도 합니다; 푸코가 스토아적 교육은 스승이 제자를 자유로운 주체로 인도하는 과정이며 parrhesia를 자유로운 주체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교육방법으로 짚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셈입니다.


 감수성이 뛰어난 사교적인sociable 신사, 도시/궁정적 미덕을 갖춘 사람을 높게 쳐주는 입장과 이것을 비판하면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을 '여성화된'feminized 사람이라 경멸하고 남성다운 미덕을 강조하는 입장이 나오고, 이러한 양 입장 사이의 갈등은 19세기에까지도 이어지는 거죠. 영국과는 조금 맥락이 다를 수 있겠지만, 스탕달의 <적과 흑>에 나오는 쥘리앙 소렐이 툭하면 기절하는 미모의 남성이라는 점에서 '여성화된' 남성 주인공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2) 로크의 시대는 우리가 지금 보는 자유주의적/경제적 인간이 확립되기 전이기도 합니다. 로크 본인이 <통치론>에서 사실 그런 종류의 인간형을 확립하기도 하니까요--로크에게서 정치 사회political society 혹은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굳이 직접적으로 정치적 참여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오로지 자신의 소유물을 보존하고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만이 중요한 곳이며, 로크는 이런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virtue와 같은 것들이 필요가 없으며 감각과 재산/계약의 주체라는 점에서 모두 평등하다고 주장합니다(단 일정한 나이가 되고 본인의 이성reason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시민이 된다는 조건이 붙지요). 자유주의의 아버지로서 로크의 핵심은 바로 사회를 이런 계약 및 소유권의 영역으로 재편했다는 데 있는 것이니까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로크가 <교육론>에서 전개하는 사유가 매우 충격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자유주의적인 인간과는 매우 다른 인간을 기를 뿐더러 그러한 인간이 어떻게 공동체의 정치적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역량/덕성을 기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텍스트니까요. 당대인들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자명한 분할이 자명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그리고 실제로 이들의 삶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들에 의해 중층적으로 섞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당장은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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