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킨즈의 <어려운 시절>과 벤담의 공리주의> 발표문 및 후기

Critique 2015. 1. 29. 01:07

아래는 지난 1월 27일 열린 수유너머N 화요토론회 발표를 위해 작성된 글이다. 발표문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듯 우연한 계기에 수유너머N 측에서 내 학위논문 주제로 발표를 요청했고, 나는 이를 위해 3년 전의 미숙한 논문을 요약정리하고 대략의 의도 및 이후 지향하는 연구방향을 정리하여 덧붙였다. 여전히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주어진 시간과 내 능력의 모자람을 감안할 때 대략 할 수 있는 걸 했다고 생각한다.


10분 정도 작가소개 및 작품소개를 하고 (딱히 문서의 형태로 준비해간 건 아니라서 아래의 원고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왜 디킨즈가 당대의 대표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설명을 조금 포함시켰다) 한 시간의 발표 후 토론자의 논평으로 시작해 한 시간 반 가까이 치열한 질문들이 있었다. 대체로 발표내용에 호의적인 분위기 위에서 치열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받았다고 기억한다(그리고 그런 질문자들과 대면하는 것은 언제나 기쁘고 또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 일이다). 질문은 공리주의에 관한 것들의 비중이 높았는데, 이는 정작 내가 속한 학과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게 흥미로웠던 것들을 꼽자면 다음 세 가지다.



1. 자유주의 대 시민적 인문주의/공화주의 전통과 관련해 현대 미국에서 전자를 대변하는 존 롤즈John Rawls와 후자를 대변하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를 포함한) 공동체주의자들의 길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 관해 아주 대략의 구도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는데, 질문 중에 내가 4절에서 상정하는 논의와 미국 정치철학 논쟁 사이의 유사점을 지적하는 글이 있었다. 이들의 논의가 곧바로 역사적인 틀에 도입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사상사의 골조를 이해함에 있어 선명한 모델로 참조할 수는 있을 것이다.


2. 1번에서 언급한 두 가지 흐름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자유주의자들과 극우파들의 관계를 이해할 실마리를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다(나는 이러한 구도를 사고하고 있지만 발표문에 직접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았다; 질문의 날카로움에 다시금 감탄한다).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모든 자유주의적 주체들 사이의 평등함과 여기에 반발하는 공화주의적 전통이 강조하는 (탁월함/역량/덕성에서 비롯된) 인간들 사이의 우열 간의 대립은 자유주의 우파들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하는 극우파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부분적인 효용을 갖는다. 자유주의자들이 모든 인간의 평등함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이 나아갈 방향으로서의 탁월함 및 당위와 같은 개념을 포용하길 거부하거나 그걸 포용하려 시도하는 경우에도 약점을 갖는다면, 시민적 인문주의 전통은 여기에 대한 반발이자 비판으로서 더 나은 삶을 제시하는데 이는 때때로 개개인의 우월성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거나 그러한 우월함에 따른 사회적 지배체제의 재편--주로 퇴행적인--으로 이어진다.


3. 사회이론 연구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의 질문이 정말 답변하기 어려웠는데, 내 발표가 벤담의 공리주의가 전제하는 원칙들이 결합하여 형성하는 '인간관'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들은 사회이론으로서의--예컨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것처럼--공리주의가 그러한 제한된 인간관에 기초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현재 나의 답변은, 벤담의 텍스트에서 단자적 인간관과 계량적 통치행위의 계기는 동시에 존재하지만 양자를 공존시킬 수 있는 논리적 장치가 벤담의 텍스트, 적어도 <서설>에서는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단자적 인간관과 (공동체의 시점에서) 개개인들의 쾌락을 합성해 사회의 정치경제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별도의 논리적 보완물 없이 그 자체로는 불편없이 양립하지 않다; 이는 철저히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자신을 제외한 다른 개인들 및 그러한 개인들을 합성해 만들어지는 '공동체'의 개념을 사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해법을 찾자면, 결국 로크나 스미스가 상정한 것처럼 특정한 보편적 인간형을 도입하거나 아니면 (이를 제한적으로 도입한 뒤) 물질적 측정이 가능한 재화만이 유일하게 유의미한 가치척도로 등장할 것이다--벤담 자신이 말하듯 그의 인간관에는 인간이 타인의 고통과 같은 감각을 지각할 길은 없다(상상은 가능하지만, 그건은 벤담에게 허구에 불과하다). 어쨌든 벤담의 '인간관'의 측면에 집중한다고 할 때 내 주장은 손상되지 않는다. 벤담이 내 주장과는 다른 전제가 깔린 사회이론을 도입했다면, 이는 정확히 그가 자신의 인간관과 사회이론을 완전히 조화시키지 못했음을--그것이 이론적 결함인지 아니면 단순히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겠지만--보여준다.

 이후에 나의 답변을 좀 더 보완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이전까지 공리주의의 사회이론적 성격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실제로 논문에는 이를 의식하고 쓴 부분이 있다--명확한 형태로 이 문제에 대해 서술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분적으로 내가 속한 전공에서 사회이론에 관해 질문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지점을 깨닫게 된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이상의 요지에서 알 수 있듯, 이처럼 생산적인 논의의 장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의 협소한 학적 환경에서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며, 나는 이번 발표를 할 수 있었음에 깊이 감사한다. 이전까지 나는 몇 권의 책을 제외하고 수유너머 및 수유너머N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없었고,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진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적어도 이번 첫 대면에 대해서는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음을 말해둔다. 이런 자리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이 가능해질 때 우리의 삶이 현실적으로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질 정도로 말이다.


혹시라도 파일의 형태로 읽어보길 원하시는 분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


[BeGray]150127 수유너머 화요토론회 발표문.pdf





수유너머N 화요토론회 발표문

2015년 1월 27일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Hard Times)과 벤담의 공리주의


이 발표문은 약 3년 전에 완성된 발표자의 석사학위논문 『디킨즈와 공리주의: 『블리크 하우스』에서 『어려운 시절』로』1)의 주요한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발표문은 총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포함한 도입부에서는 전체적인 구성, 논문의 주요 모티프 및 방법론 등을 간추려 소개하겠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는 논문의 본문 순서에 따릅니다. 1절은 『어려운 시절』(1854) 바로 직전에 디킨즈가 쓴 소설 『블리크 하우스』(Bleak House, 1854)의 서사구조를 분석합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블리크 하우스』는 얼마 전에 번역된 『작은 도릿』(Little Dorrit, 1857)과 함께 디킨즈 중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을 먼저 다루는 이유는, 여기서 디킨즈가 사회적 문제를 가족공동체를 통해 성공적으로 풀어내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인간 해부가 원숭이 해부의 열쇠이듯 디킨즈의 ‘문제작’ 『어려운 시절』 분석을 위한 비교대조군으로 『블리크 하우스』라는 원형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절은 이 발표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어려운 시절』의 서사구조를 1절과 마찬가지로 가족공동체를 키워드로 두고 분석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블리크 하우스』와 달리 『어려운 시절』에는 무언가 심각한 문제점이 풀리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3절에서는 이걸 해명하기 위해서 『어려운 시절』에서 직접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하는 공리주의를 끌어옵니다. 여기서 19세기 영국 공리주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책 『도덕 및 입법의 원리 서설』(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이하 『서설』)을 분석하고 그 요지가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밝힙니다. 이렇게 3년 전의 논의를 정리하고, 마지막 4절에서는 지금 발표자의 관심사가 어떻게 확장되었고 또 어떤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지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대영국사상사를 전공하지 않은 분들께는 다른 무엇보다도 왜 문학연구자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정도로만 알려진 공리주의를 연구의 한 축으로 끌고 들어왔는지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공리주의 비판은 석사학위논문 구상 때부터 갖고 있던 목표, 즉 정치경제학 비판(critique of Political Economy)과 문학텍스트 분석 연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전문연구자들까지도, 오늘날 분과학문의 체제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나머지 경제학의 언어나 정치적 담론의 언어가 해당 학문분과의 내적 논리로만 다루어져야 한다고 믿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비판 및 담론연구의 오랜 역사가 보여주듯, 한 시대의 지배적인 사고체계는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의 연구영역을 넘어 사회 구성원 전반의 일상에까지 깊숙이 침투합니다. 이는 시민사회의 여론이 정치경제적 권력에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회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가령 지난 15년 간 자유롭고 무한한 경쟁이 시장참여자들의 역량을 강화시키고 마침내 사회전체의 효율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경제정책 상의 지침을 넘어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삶과 사회를 이해하는 강력한 사고체계로 자리 잡은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사태 앞에서 스스로의 작업이 이데올로기 비판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 연구자라면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연구를 분과학문적 작업으로만 간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충실한 이데올로기 비판가라면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언론, 행정, 정치적 수사, 교육, 학문, 문화와 같이 한 사회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통치하는 방식에 어떻게 스며들고 또 변종을 낳는지 살피는 일을,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 언어와 행위, 제도와 비제도적 실천 사이를 뒤져보는 일을 필수적인 과업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과 경제학을 포함한 이론이 안락한 거주지를 떠나 낯선 환경에 발을 딛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순수한 이론적 형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여러 면모를 드러낸다면, 이데올로기 비판에서는 이론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사례들을 함께 살피는 일이 포함되기 마련입니다.

 정치경제학, 특히 고전파 경제학의 전통 역시 18-19세기 영국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자 담론으로서 자신의 영역을 전문 경제학자들의 논의 이상으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근대사회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갖고 19세기 영국을 학위논문분야로 선택한 입장에서 보면 명시적으로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는 『어려운 시절』은 정치경제학적 논리의 전파와 그에 대한 반발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물론 실제로 소설을 읽어보면 딱히 디킨즈가 특정한 경제정책이나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산업혁명에 대한 몇몇 인상적인 묘사로는 자주 인용되지만 정작 정치경제학사나 이데올로기 비판의 맥락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 편입니다. 심지어 디킨즈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에 대해 잘 몰랐다는 비난 섞인 결론을 내리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디킨즈를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라 정치경제학 이데올로기의 막강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위대한 사회이론가들, 아담 스미스나 맬서스, 심지어 맑스조차도 단순히 그들의 경제학적 논의만을 통해서 사회에 영향을 끼쳐온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사고체계는 정교하고 명징한 논리로서만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더 흐릿하고 포괄적인 형태의 틀로서 한 사회의 사고방식에 넓고 깊게 파고듭니다. 디킨즈가 『어려운 시절』에서 정치경제학을 언급하며 결국에 공리주의 및 그 파생물에 대해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낼 때, 우리는 경제학에 무지한 소설가의 도덕적 반감이라는 손쉬운 결론에 머무르는 대신 정치경제학적 논리의 핵심에 있는 무언가, 다시 말해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 자체를 재구축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이 논문의 한 축이 당초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공리주의적 사유에 대한 분석으로 이동한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공리주의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9세기 영국사회에서 공리주의는 정치적 개혁담론이자 자본가의 경제 이데올로기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이는 공리주의 사상 자체의 내적 논리 못지않게 당대의 영국 사회 자체가 맞이했던 커다란 변화에도 기인합니다. 대략적으로 1790년대부터 1830년대까지는 영국의 계급대립구도의 재편성이 점차적으로 이루어집니다(E. P. 톰슨,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이전까지 지배적이던 귀족-구체제와 중간계급의 대립은 프랑스대혁명으로 촉발된 반동기를 거치면서 귀족 및 자본가의 연합이 새롭게 대두하던 노동계급과 대치하는 국면으로 전환됩니다. 본래 벤담은 계몽주의의 영향 하에 구 지배세력의 억압과 부조리를 개혁하려 했던 대표적인 개혁가들 중 한 명입니다. 귀족부터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급에 속한 젊은이들이 벤담을 추종하고 공리주의에 따라 행동한 까닭은 공리주의가 당대에 팽배한 구체제의 부조리—특히나 의회, 형법, 종교의 문제—에 대항하는 사상으로 인식되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830년대 선거법 개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중간계급의 온건개혁파들과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구도가 명백해지고, 공리주의 및 이로부터 파생된 정치경제학 이론은 당시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던 자본가계급 혹은 부르주아들의 경제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색채를 뚜렷이 드러내게 됩니다.2) 후기 벤담과 밀은 빈부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들의 개별적인 입장과 무관하게 공리주의적 인간관은 시장자유주의 옹호론, 곧 자본가들의 무제약적 이익추구를 사실상 용인하는 입장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경제학 혹은 경제학사의 역사에서 공리주의는 어떤 위상을 가질까요? 표준적인 주류 경제학사에 따르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이전의 중농주의 및 중상주의와 구별되는 고전파 경제학을 창시하고, 이는 존 스튜어트 밀에서 정점을 맞이하지만 19세기 후반 제번스, 멩거, 발라스가 각각 한계 효용의 개념 및 수리적 분석틀을 도입하면서 현대 주류경제학의 토대가 되는 신고전파 경제학으로의 전환이 일어나죠. 이러한 설명에서는 벤담과 공리주의의 역할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E. K. 헌트의 관점에서처럼 스미스 이후의 경제학을 효용가치론과 노동가치론의 대립구도로 본다면,3) 벤담은 스미스와 리카도 이후 “노동의 관점을 효용의 관점으로 대체시켜 나가기 시작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한계효용이론과 신고전학파의 직접적인 원류입니다(『경제사상사』History of Economic Thought). 헌트는 노동가치론과 대비되는 효용이론의 자본주의관을 설명하면서 “인간 동기의 기초 또는 본질적 근원”을 “쾌락을 달성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신념, 즉 공리주의가 “효용가치론과 근대 신고전파경제학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고 벤담의 저술이 효용이론의 “가장 명백하고 고전적인 구성”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벤담을 스미스에서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에 내재한 인간관이 변모하는 과정에서 보면 사태는 분명해집니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에서 인간에게 이익추구적 성격과 공동체적인 성격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도덕감정과 함께 실체적인 사회 및 공동체와 같은 개념을 설정합니다. 벤담은 스미스의 이론에 내재한 도덕철학적 요소들을 제거하면서 이후 제번스에게로 이어지는 단자적인 인간관을 성립시킵니다. 벤담의 인간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정치경제학 이론』(The Theory of Political Economy)에서 제번스는 인간들을 자기 자신의 측정 가능한 효용들만을 추구하는 개인들로 간주하며, 이들에게 타인의 존재는 무의미하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는 스미스로부터 벤담이 이룩해낸 단절의 필연적인 결과물인 셈입니다.

이렇게 공리주의의 역사적 의미를 정리한 뒤에도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공리주의는 사상 혹은 이데올로기고, 『어려운 시절』은 예술/문학작품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후자에서 전자를 언급하는 대목들만 따로 빼내서 (이런 경우는 높은 확률로 연구가 빈약해지기 쉬운데) 분석할 게 아니라면 예술과 이데올로기, 예술과 현실의 관계라는 맑스주의 문예비평의 오래된 난제와 어떻게든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선 저 악명 높은 반영론을 포함하여 다양한 입장들이 있지만, 적어도 작품분석이라는 층위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관점 중 하나는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정치적 무의식』(Political Unconscious) 및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미학 이론』(Asthetische Theorie)에서 개진된 시각입니다. 이를 매우 단순하게 요약한다면, 예술작품은 한 사회의 문제를 재현하면서 동시에 그 문제에 대한 나름의 상징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해결책, 혹은 제임슨의 표현을 빌면 이데올로기적 봉합이 늘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아도르노가 지적하듯,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예술작품일수록 그 작품에서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점에서 완전한 조화가 아니라 부조화와 불협화음을 표출하고야 마는 작품일수록 사회의 모순을 더 진실 되게 체현한다고 아도르노는 말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특히 『어려운 시절』과 같은 소설을 분석할 때 유효합니다. 이 소설은 디킨즈가 내놓는 명시적인 해피엔딩 뒤에 좌절과 무력감이 가득한 텍스트, 아도르노적인 의미에서 ‘실패’하기 때문에 더 참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공리주의에 대한 설명 자체가 아니라 19세기 영국 소설가의 시각에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는지를 탐색하는 게 이 발표의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는 평어체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문 병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생략하되, 『블리크 하우스』는 한국에 아직 번역되지 않았으므로 가급적 내용소개를 함께 합니다. 디킨즈 및 텍스트 관련 전문연구자들에 대한 각주 및 인용은 독자들을 고려하여 생략했습니다. 각주, 참고문헌, 원문 등이 궁금하신 분께서는 논문을 직접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1. 상상적 해결책으로서의 가족-공동체: 『블리크 하우스』와 통합의 모티프4)


『블리크 하우스』는 평균적으로 짧다고는 할 수 없는 19세기 영국소설 중에서도 꽤나 긴 길이를 자랑하는 소설로, 줄거리를 단번에 요약하기는 어렵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서사구조를 정리해본다면 『블리크 하우스』는 크게 세 개의 플롯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그중 메인 플롯에 가까운 것은 레이디 데드락(Lady Dedlock)의 수수께끼 및 잔다이스(Jarndyce) 소송의 서사다. 즉 한 편에서는 레이디 데드락에 관련된 수수께끼가 점차적으로 밝혀지는 과정이, 다른 한 편에서는 잔다이스 가문의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송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에 서브플롯으로서 양자 모두와 연관된 인물인 에스더 서머슨(Esther Summerson)의 서사가 보충되어야 한다. 『블리크 하우스』의 형식적 특징 중 하나는 총 67장 중 절반은 3인칭 전지적 화자의 시점에서, 다른 절반이 작중인물인 에스더의 관점에서 서술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스더는 처음에는 두 서사의 진행과정과 특별한 연관이 없는 인물처럼 등장하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실제로 두 서사 모두와 연관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소설의 다른 등장인물을 구원하는 새로운 가족공동체의 중심인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블리크 하우스』 독해의 핵심에는 메인 플롯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서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두 서사와 관련지어 에스더의 서사가 어떤 기능을 하고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레이디 데드락 및 잔다이스 소송의 서사는 모두 해로운 과거의 것이 현재의 삶으로 침범하는 과정에서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모티프를 공유한다. 잔다이스 소송의 경우 ‘과거’란 이 소설에서 직접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언급되는 형평법원(the Court of Chancery)5) 및 그것이 상징하는 낡은 법제도를 가리키며, 레이디 데드락의 서사에서는 데드락 가문이 표상하는 지주귀족계층의 시대착오적 면모가 비판이 향하는 지점이 된다. 이 두 서사가 표상하는 퇴락의 이미지는 텍스트의 1장 및 2장의 도입부에서 분명해진다. 1장 첫 문단은 대법관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형평법원이 위치한 거리, “모든 곳이 안개로 뒤덮여 있는”(Fog everywhere) 거리의 풍경묘사로 시작한다. “바로 그 안개의 한가운데 형평법원이 있으며 그곳에 대법관이 앉아 있다.” 이곳은 “더 이상 두터워질 수가 없을 정도로 안개가 너무 짙고 진흙수렁 또한 너무나 깊어” “대법관은 오로지 안개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안개와 진흙은 일견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면서 동시에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자연물로서의 안개가 단순히 사람들의 시야를 가로막을 뿐이라면, 소송이라는 안개는 사람의 인생을 묶어놓고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처지로 만든다. “뒤축이 닳은 신발을 신고 누더기를 입은 채로 돈을 빌리고 구걸하러 모든 지인들을 찾아다니는 파산한 원고들을 만들어 놓은 것,… 재산, 인내심, 용기, 희망을 완전히 갉아먹는 것 … 이것이 형평법원이다.” 형평법원의 산물 중에서도 광인과 폐인을 양성하고 끝내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잔다이스 소송은 더더욱 끔찍한 것이다. “잔다이스 소송이 그 해로운 손길을 뻗어 이 소송 밖에 있던 이들을 얼마나 많이 타락시키고 더럽혔는지는 매우 광대한 질문이 되리라.”

준남작(baronet) 데드락 부처의 저택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2장에서 화자는 “이처럼 진흙수렁과 같은 오후”(this same miry afternoon)를 보내는 귀족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그 세계는 그다지 크지 않다. 마찬가지로 제한적인 우리의 세계와 비교해보아도 … 그것은 매우 작은 얼룩과 같다. … 그러나 그 세계의 악덕은 그곳이 보석상의 솜과 양질의 양모로 너무 잘 포장되어서 보다 큰 세상들의 돌진하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며, 그러한 세상들이 마치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것처럼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는 점에 있다. 그곳은 죽어버린 세계이며, 공기가 부족하기에 그 성장은 때로 건강하지도 못하다.” 바깥세상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구 지배체제의 지주귀족이 지배하는 그곳에서 레이디 데드락은 “따분해 죽겠다”(bored to death)고 투덜거린다. 그나마 따분함을 느끼는 레이디 데드락을 제외한 나이든 남성인물들 단지 현상 유지만을 원한다. “리스터 경의 가문은 그 땅의 언덕들만큼이나 오래되었는데, 그는 세상이 언덕들 없이도 굴러가는 데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데드락 가문이 없이는 끝장나버리리라는 생각을 지녔다”—그에게는 과거와 현재의 구별이 없다. 리스터 경의 대리인으로 잔다이스 소송에 참여 중인 구시대적인 풍모의 변호사 터킹혼(Mr. Tulkinghorn)이 묘사되는 문단은 온통 'old' 라는 형용사로 가득하다. 디킨즈는 둘을 통해 보수적인 지주귀족과 구체제적 사법제도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6) 실제로 리스터 경은 법원의 소송이 길게 늘어지는 데 아무런 불만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지연이야말로 “영국적이고 합헌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법제도를 대표하는 변호사와 지주귀족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며7) 이들의 관계는 그 자체로 폐쇄적인 이들의 세계에 더욱 정체감을 부과한다.

폐쇄적이고 정체된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두 개의 장 다음으로 서술되는 3장, 즉 에스더의 서사가 처음으로 시작하는 장의 제목은 명백히 정반대의 이미지를 뜻하는 "A Progress"이다. 실제로 이전의 두 장의 지배적인 정조에 대항하기라도 하듯 에스더는 ‘과거에 얽매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나는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 또한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신이 그녀와 혈연관계라는 사실조차도 부정한 이모에 의해 마치 고아처럼 길러진 에스더는 자신의 과거와 분리된 인물이 된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죄의식을 느끼지만 동시에 순수한” 인물인 에스더는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과거에 대한 막연한 죄의식을 점차 극복해 나간다. 3장이 그녀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는 사실에서 또한 고정된 시공간에서 서술되는 1, 2장과 대조되는 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 세 장에서 드러나듯 에스더의 서사는 다른 두 서사에서 드러나는 정체된 이미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역동성과 변화를 대변한다. 『블리크 하우스』는 이처럼 과거와 연결된 정체와 쇠락의 모티프에 고통 받는 인물들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새로운 삶의 모티프를 통해 구원받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고통과 새로운 희망의 커다란 줄거리가 소설의 사회를 이루는 단위로서의 가정 공간의 파괴와 재구성을 통해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블리크 하우스』에는 잔다이스 소송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남은 인물들 또한 고립된 삶을 사는 수많은 사례들이 가득하다. 소송으로 가족을 잃고 반쯤 정신이 나간 플라이트 양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우리 아버지가 천천히 끌려들어갔지. … 그는 빚을 지고 감옥에서 죽었어. 다음에 오빠가 술독에 빨리도 빠져들어 누더기를 걸친 채 죽었지. 다음으로 언니가 끌려들어갔고…. 나 또한 끌려들어가 그곳[형평법원]에 머무르게 되었지.” 잔다이스 소송으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후보 중 한 명인 리처드 카스톤은 자신의 가정을 꾸리기 위해 소송을 통해 재산을 마련하려는 유혹에 빠져든다. 무모한 소송을 진행하면서 건강이 점차 악화되던 그는 소송비용이 남겨진 유산액을 초과하며 소송 자체가 ‘해소되는’ 결과를 맞이하고 피를 토하고 죽는다. 결국 그와 그의 아내 에이다(및 그녀가 임신한 아이)로 구성된 가정 또한 잔다이스 소송에 먹힌 셈이다. 레이디 데드락의 서사는 잔다이스 소송의 서사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지만 가정 해체의 과정이라는 데서는 공통된 면모를 보여준다. 레이디 데드락은 사실 과거에 죽은 연인과의 사이에서 딸(에스더)을 낳았고 이는 비밀에 부쳐졌다. 하지만 그녀가 철강공장주 라운스웰과 데드락의 갈등구도에서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터킹혼은 그녀의 비밀을 파헤친다. 터킹혼에겐 데드락 가문의 하인의 아들이지만 신흥 자본가로 성공한 라운스웰에게 협조하는 게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던 것이다. 결국 비밀의 폭로를 앞둔 레이디 데드락은 죽음을 택하고, (그녀가 아이를 낳지 않은 채로 죽었기 때문에) 나이든 리스터 경만 남은 데드락 가문의 영지에는 죽음과도 같은 적막만이 남는다.

가정 및 인간관계의 파괴가 횡행하는 『블리크 하우스』에서 에스더의 서사는 가족을 잃고 고립된 인물들을 규합하여 공동체를 재구축하는 대안의 형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고아처럼 길러져 가정교사 교육을 받은 뒤 존 잔다이스의 저택 ‘블리크 하우스’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를 포함해 잔다이스 소송과 연관을 맺은 고아들은 존 잔다이스와 함께 일종의 대안 가족을 형성한다. 에스더가 저택에서 느끼는 첫 인상은 “유쾌하게 이상”하다는 것으로, 가구들 또한 마찬가지로 “즐겁게 독특하며”하며 저택 내부구조의 묘사에서는 “예상하지 못한”과 같은 표현들이 반복된다. 그중 리처드 카스톤의 방은 “부분적으로는 도서관, 부분적으로는 거실, 부분적으로는 침실, 그리고 여러 방들의 정말로 편안한 혼합물처럼” 보인다. 통상적인 역할분담을 깨고 다양한 기능들이 뒤섞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 저택은 블리크 하우스의 고아들로 이루어진 가족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으로부터 초래되는 결과는 불협화음이 아닌 편안함과 즐거움으로 이는 디킨즈가 이처럼 ‘대안적인’ 성격의 가족에 거는 희망이기도 하다. 이 대안 가족은 리처드-에이다 부부가 잔다이스 소송에 참여함으로서 일시적으로 무너지지만 소송이 끝난 뒤 에스더를 중심으로 보다 넓은 범위의 구성원을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공동체로 재탄생한다.

이전의 대안가족이 (가부장적이진 않지만) 독신 남성 존 잔다이스의 보호 아래 고아들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살아갔다면, 에스더를 중심으로 구축되는 가족-공동체는 외부의 다른 인간관계와 분리되지 않고 밀접하게 연관을 맺는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7년 뒤 에스더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후일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항은 가장을 대신하여 “나[에스더], 남편[앨런 우드코트], 그리고 내 후견인[존 잔다이스]이 아이에게 그 아버지[리처드 카스톤]의 이름을 주었다”는 것이다. 존 잔다이스는 “에이다와 그녀의 어여쁜 아이에게 가장 다정한 아버지”이며, 에스더 본인에게는 여전히 긴밀한 후견인—사실상 아버지와 같은—이고, 앨런 우드코트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인 것으로 그려진다. 동시에 에스더는 에이다와 함께 꼬마 리처드의 ‘두 엄마’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에스더가 서술하는 ‘가족’은 단자적이고 고립된 공간을 추구하는 대신 통상적인 가족규범 및 혈연관계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형태를 띤 새로운 공동체로 나타난다.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서 소설 전반에 걸쳐 고립되었던 여러 인물들은 다시금 관계의 그물망 속으로 편입되고, 이는 디킨즈에게 『블리크 하우스』의 대안가족이 “죽은 자들의 머리를 짓누르는” 과거의 악몽으로 인해 황폐화된 사회를 재구축하는 ‘상징적 해결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디킨즈가 에스더라는 여성인물을 통해 가정을 재구축한 데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그가 부르주아 가정, 즉 가부장의 지배와 보호 안에서 사회의 제반 문제와 격리된 공간을 해결책으로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비판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감이 있는데,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키워드』(Keywords)의 ‘가족’(family) 항목에 따르면 “가족이 특히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작은 혈연집단을 지시하게 된 것은 이른바 부르주아 가정의 대두와 관련지어 볼 수 있”으며 이는 빨라야 19세기 초에나 벌어진 일이다. 17세기의 종파 ‘사랑의 가족’(Family of Love)의 경우 가족이라는 용어를 “사랑이 있으면 가입할 수 있고 사랑에 의해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큰 집단”(a large group, but made this open and voluntary through love)으로 사용하였으며, 18세기 말까지 농촌에서는 가족이 지칭하는 범위에 하인(servants) 또한 포함되었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구조변동』(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에서 보여주었듯, 심지어 부르주아들의 가정조차도 (19세기 중반까지는) 공적인 사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모태가 되었다. 디킨즈가 해결책으로 내세운 가족 공동체의 모습은 폐쇄적인 핵가족이라기보다는 작은 ‘사회’(society)8)와 가깝다는 점에서 18세기 중반까지의 전통적인 가족과 가깝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가족 공동체를 재구축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해도, 그에 대한 비판이 디킨즈가 오늘날 우리에게 굳어진 19세기 중반 이후의 부르주아 가정에 회귀한다는 식으로 성립할 수는 없다.



2. 『어려운 시절』의 공리주의적 세계9)


『어려운 시절』은 빅토리아 시대 소설의 주요 공간인 가정이 인간관계의 최소단위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단적으로 이 소설의 중심서사는 공리주의자 토마스 그랫그라인드를 중심으로 하는 그랫그라인드 가족의 몰락과 해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1권이 그랫그라인드 부부의 자녀인 루이자와 톰이 장성하여 다른 가정에 소속되는 과정을 그려낸다면, 2권에서는 그들의 어머니인 그랫그라인드 부인이 죽고 루이자와 (공리주의 이데올로기에 의거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본가 조사이어 바운더비의 결혼은 파탄에 이른다. 3권에서는 범죄가 발각된 톰이 국외로 도피하고 토마스와 루이자는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소설 속의 다른 가정에서도 가정 파괴적인 경향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물론 『블리크 하우스』에서도 ‘정상적’인 가정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자에서 가정이 공동체의 핵심을 이룬다는 믿음 자체가 손상되지는 않았다면, 『어려운 시절』에서는 가정 해체가 불가피한 귀결로 제시되며 결과적으로 소설 속의 모든 가정에는 어떠한 재생의 희망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랫그라인드 및 바운더비의 가정이 해체되는 사례에서 드러나듯 『어려운 시절』에서 공리주의는 가정을 불모지로 만들어버리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속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제시되듯 공리주의는 오로지 “사실”(Facts)에 기반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르치는 교육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그랫그라인드 가족에서는 모든 감정과 상상력을 배제한 ‘사실’에 대한 집착이 가족들의 삶을 망가트린다. 어릴 적부터 사실의 이름하에 모든 감정 및 즐거움을 향유할 기회를 박탈당해 온 톰과 루이자는 가정에 아무런 애착을 갖지 못한다. 톰은 루이자에게 “나는 삶에 질렸어…. 누나를 제외한 모두를 증오해”라고 털어놓는다. 그랫그라인드 부인은 자신의 남편이 종사하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무력하다. 그녀가 “가족 따위 가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훌쩍거리는 장면은 가족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까지 보인다. 공리주의적 교육으로부터 가정 내에서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영역들까지 박탈당한 그녀는 F. R. 리비스(Leavis)가 지적하듯 그랫그라인드의 공리주의적 체계 안에서는 있으나마나한 불쌍한 존재다(『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The Great Tradition). 죽기 직전 그녀는 “다시는 모든 학문들의 이름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무력화시킨 원인을 뚜렷이 지목한다. 공리주의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삶의 원칙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바운더비는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결과 역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토마스 그랫그라인드의 딸이자 바운더비의 부인이 되는 루이자의 삶은 양측의 문제가 겹치며 심화되는 장이다. 본래 그녀가 속한 가족은 삶의 중요한 문제를 전혀 해결해줄 수 없는 곳이었다. 루이자가 자신의 결혼을 결정하는 장면에서 그랫그라인드는 딸이 인생에 관해 던지는 핵심적인 질문들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루이자가 던지는 질문들에 내재한 사랑 및 당위와 같은 개념들이 그랫그라인드의 공리주의의 관념 안에서 소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통계들을 인용하면서 대답을 시도하지만 이는 답변이 아닌 회피일 뿐이다. 루이자가 바운더비와 사랑 없이 결혼하기로 결정한 것은 자신이 속해 있던 가정에 공동체로서의 희망을 더 이상 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더 이상 아버지와 대면하지 않는다. 그녀가 유일하게 위안을 구하는 존재인 남동생 톰 또한 공리주의적 교육 끝에 “불량배”가 되어 누나의 사랑을 단지 자신의 이익과 쾌락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동생을 위해 그녀는 소아성애적 욕망을 드러내는 바운더비의 아내가 되기로 결정한다. 인간적인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가정 공간에 살던 그녀가 이후 연애를 일종의 쾌락추구로 간주하는 제임스 하트하우스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제임스는 루이자에게 그랫그라인드처럼 “미덕, 선행, 자선을 주장하는 선생들과 우리들의 차이란 … 우리는 그것이 모두 의미 없음을 알고 또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데 비해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입장은 공리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져 나오는 귀결로서 훨씬 더 명확한 형태로 삶의 원칙을 제시한다. 공리주의가 인간의 이기심을 제어하기 위해 내세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 같은 추상적인 강령과 비교할 때 오로지 자기 자신의 쾌락만이 유일하게 계산가능하고 추구해야만 하는 지상명령이라는 태도는 훨씬 더 실질적이다. “오랜 기간 자기억압에 익숙해져 찢겨지고 나눠진 [루이자의]본성에 하트하우스의 철학은 구원이자 정당화로 다가왔다. 만사가 텅 비고 가치 없는 것이라면, 그녀는 무엇 하나 잃어버리지도 희생하지도 않은 셈이다.” 그녀에게 인간적인 유대란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잃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랫그라인드 가족, 바운더비 가족, 마지막 보루로서의 톰과의 관계가 모두 무의미해진 시점에서, 단지 단자적인 개인으로서의 쾌락추구만이 남고 어떠한 신뢰도 존재하지 않는 관계를 받아들인다 해도 잃을 것은 없다. 결국 그녀의 가정은 붕괴한다.

그랫그라인드 가족 및 루이자가 공리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 하에서 가정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기에 대항하는 가족 공동체 구축의 모티프는 씨씨 쥬프 및 그녀가 속해 있는 서커스단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서커스단원들 중에는 잘 생긴 젊은 여성들이 두셋, 그들의 남편 두셋과 어머니 두셋, 또 필요할 때 요정의 역할을 맡는 그들의 어린 아이들이 여덟아홉 정도 있었다. 여러 가족들 중 한 가족의 아버지는 높은 장대 위에 서 있는 또 다른 가족의 아버지의 균형을 맞춰주곤 했다. 세 번째 가족의 아버지는 다른 두 아버지들과 함께 피라미드를 만들어 마스터 키더민스터를 꼭대기에 올려놓고 자기 자신은 밑단에 위치했다…. 이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는 온화함과 아이 같은 면과… 기꺼이 전혀 지치지 않고 다른 이를 돕고 동정하려는 면이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가족에만 매이는 대신 다른 가족들과 함께 더 큰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앞서 『블리크 하우스』의 결말부에 나온 대안적 가족 공동체와 상통한다. 사람들로 만들어진 피라미드에서 서로 다른 가족의 구성원들은 함께 뭉쳐있을며 남이 자신의 위로 올라가고 자신이 아래에서 남들의 무게를 지탱하는 상황에 아무런 불만을 가지지 않는 ‘집단적인’(collective) 삶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실제로 단장 슬리어리는 아버지를 잃은 씨씨에게 다른 서커스단원들이 그녀의 어머니와 누이가 되어줄 수 있다고 얘기해준다.

씨씨 또한 딸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몰래 서커스를 떠난 아버지와의 내적 유대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는 그녀가 그랫그라인드의 지시에 따라 서커스와 절연한 상태에서도 아버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챙겨둔 “아홉 개의 기름병”을 계속해서 보관한다는 사실로 드러난다. 그랫그라인드가 강조하는 ‘사실’ 교육이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씨씨의 소망을 어리석음의 발로로 치부한다는 점은 공리주의와 씨씨가 상징하는 가족 혹은 공동체적 유대가 대립하는 구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문자 그대로 해결책으로 활약한다. 그녀는 하트하우스에게서 도망쳐 나왔으나 다시 바운더비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는 루이자에게 자신이 “당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될” 거라고 말해주며, 자신이 혐오스럽지 않은지를 묻는 그녀에게 단호하게 “용기 있는 애정의 순수함에 입각하여” 혐오하지 않겠다고 답변한다. 루이자는 씨씨와의 대화를 통하여 비로소 (정신적으로) 구원 받으며, “한때 버려졌던 씨씨는 다른 이의 어둠 위에 비추는 아름다운 불빛처럼 빛난다.” 이 대목을 공리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파괴한 삶으로부터 인간을 구출하는 공동체적 감정의 기능이 순전하게 드러난다고 읽지 않기는 어렵다. 이어 씨씨는 곧바로 하트하우스를 퇴치하고 스티븐 블랙풀을 찾아내며 톰을 구출하는 등의 활약을 통해 소설의 후반부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서커스와 씨씨 쥬프라는 대안 혹은 해결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어려운 시절』에서 그들이 겉으로 보이는 만큼 성공적인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순히 디킨즈의 대안이 현실적으로 제한적인 의미만을 갖기 때문만이 아니라, 상징적인 층위에서도, 즉 소설 내적인 논리에서 볼 때도 서커스단과 씨씨 쥬프가 소설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토마스와 루이자가 공금을 횡령하고 숨은 톰을 만나기 위해 서커스가 있던 마을을 찾았을 때, “그들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본 것은 슬리어리 서커스단의 잔해였다.” 먼 곳으로 옮겨간 서커스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통행료를 내야하는 길을 거쳐야 한다. 겨우 도착한 일행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인물은 키더민스터인데, 그는 돈만을 보느라 너무 바빠서 씨씨가 바로 그 곁을 지나쳐가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더불어 공리주의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인물 바운더비는 그가 떠벌리던 자수성가의 이야기가 허구로 밝혀지면서 난처한 상황에 처하지만 실제로 그의 영향력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며 코크타운은 미래에도 여전히 바운더비의 수많은 복제품들로 가득할 것이다. 그랫그라인드의 옛 제자이자 공리주의적인 사유를 더욱 철저하게 밀어붙이는 비처는 은행에서 승진하는데 성공한다. 『블리크 하우스』에서 문제로 등장한 잔다이스 소송과 데드락 가문이 자멸적인 결과를 맞이하여 더 이상 인물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어려운 시절』의 공리주의적 인간들은 그랫그라인드의 실패와 반성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살아간다.

 『블리크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시절』 또한 결말에서 인물들의 후일담을 언급하지만, 씨씨를 제외하면 아무도 결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결혼 또한 사람들을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지 못한다. 개개의 인물들의 후일담에서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는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 루이자의 삶에는 씨씨는 고사하고 자신의 아버지 그랫그라인드조차 등장하지 않으며, 씨씨의 후일담에서도 그녀가 소설 전반에 걸쳐 관계를 맺어왔던 다른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톰은 해외로 도피한 뒤 누이를 다시는 보지 못하고 죽는다. 보다 앞부분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노동자 스티븐 블랙풀의 연인 레이첼 역시 새로운 가족이나 공동체에 편입되지 못하고 홀로 살아간다. 결론적으로 『어려운 시절』의 인물들은 모두가 가정도, 친구도 철저히 서로와 단절되어 고립된다. 『블리크 하우스』의 결말이 희망을 품은 관계의 그물망을 보여준다면, 『어려운 시절』의 후일담에서는 단자적 개인들의 모습이 음울한 색조를 띠고 나타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씨씨와 서커스로 대변되는 가족-공동체가 대안으로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디킨즈가 추구한 사회통합의 목표는 더 이상 가족 공동체적 대안을 통해 성취될 수 없으며, 권선징악적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이 구원—여기서는 공동체로의 재통합—받지 못하는 ‘불만족스러운’ 결과로 나타난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 소설에서 사실과 상상을 이분하는 원리이자 가족 파괴 모티프의 핵심원리로 등장하는 공리주의적 사유에 대한 정밀한 독해가 필요하다.



3. 단자적 인간관과 사실-상상의 이분법: 벤담의 공리주의 체계


『어려운 시절』은 공리주의를 그려내는 방식에 있어 다소 평면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토마스 그랫그라인드가 ‘사실’을 휘둘러 주변의 삶들을 압살하기만 하는 비인간적인 공리주의자로 그려지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볼 때 공정한 재현은 아니다. 단적으로 공리주의자들은 18세기 계몽주의의 후신, 즉 ‘개혁파’로서 프랑스 혁명 이후 제1차 선거법 개정을 비롯하여 영국의 사법과 행정을 개혁하고 재구축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발휘했다.10) 그러나 디킨즈가 공리주의에 무지했다는 식의 진술 또한 문제가 있는데, 실제로 본래 의회의 저널리스트로 출발한 디킨즈는 공리주의 개혁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을 뿐 아니라 『블리크 하우스』의 주요한 주제이기도 했던 사법 개혁에서도 공리주의자들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리비스를 포함해 『어려운 시절』에서 막연히 공리주의자들을 비판했다는 설명이나 아르놀트 하우저 등에서 엿보이듯 디킨즈가 공리주의, 정치경제학, 자본주의 등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는 시선 모두 적절하지 않다. 양자가 범하는 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려운 시절』이 그려내는 공리주의적 세계로부터 벤담의 사상을, 동시에 역으로 벤담의 사상으로부터 소설의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2절에서 지적했듯) 디킨즈의 소설에서 공리주의는 한편으로 사실과 상상의 이분법을,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적 유대를 무력화시키는 단자적 인간관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벤담의 사유와 그에 내포된 인간관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 벤담의 주저 『서설』을 독해할 필요가 있다.

『서설』의 1장 1절은 인간행위의 근원적인 동기를 정의하는 유명한 문구로 시작한다. “자연은 인류를 고통 쾌락이라는 두 주인에게서 지배받도록 만들었다.” 공리성의 원리(principle of utility)란 쾌락과 고통의 기준에 입각하여 당사자의 행복 혹은 쾌락을 증진시키는 행동을 승인하고 불행 혹은 고통을 초래하는 결과를 거부하는 원리를 지칭한다(1장 2-3절). “고통과 쾌락은 우리의 모든 행위, 모든 말, 모든 사고에서 우리를 지배한다. 여기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단지 그 사실을 입증하고 확인시킬 뿐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공리성의 원리를 단지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당위의 기준으로도 설정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까 결정하는 일은 물론이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지목하는 일 또한 오로지 고통과 쾌락을 위해서이다. 한 편으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른 한 편으로는 인과의 사슬이 모두 그들의 왕좌에 매여 있다.” “공리성의 원리에 부합하는 행위는 해야 할 행위이거나 적어도 해서는 안 될 행위는 아니라고 항상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 행위를 행하는 것이 옳고, 적어도 그릇되지는 않으며, 그러한 행위는 옳은 행위이고 적어도 틀린 행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해석할 때에야 해야 할, 옳은, 그른 및 그러한 성격의 단어들이 의미를 가지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말들은 무의미하다.”

공리성에 규범적인 성격을 부과하는 벤담의 주장은 몇 가지 흥미로운 전제를 함축한다. 인간은 실제의 삶에서 자신의 효용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이 마땅하다는 입장에는 사실상 당위 혹은 윤리의 문제가 소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르면 인간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행위는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원초적인 지점에서 올바르며, 마찬가지로 인간은 거의 항상 올바른 행동을 하는 셈이 된다. 당위의 차원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하는데, 옳고 그름의 문제가 단지 효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문제로 귀속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용을 만들어내는 것은 내적 가치가 아니라 행위와 그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에 벤담의 체계는 오로지 행위의 측면에 집중할 뿐 인간의 인격 혹은 내면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결과주의(consequentialism)적 성향을 띤다. 그는 “사변적 동기”(speculative motives)를 언급하면서 “그것은 외적 행위나 그 결과,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떠한 고통 및 쾌락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행위가 실체적일 수 있다면 오로지 그것들의 고통 혹은 쾌락을 산출해내는 경향 때문”이기에 그에 해당되지 않는 동기들은 실체적이지 않은 허구로 간주된다. 여기에서 세계는 오로지 감각체계를 통해 즉각적으로 지각 가능한 영역에 한정된다. 쾌락과 고통 자체가 “자연의 일상적 과정으로부터 나오는” 물리적 층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의미 있는 인식은 구체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범위 안쪽에 속할 것이다. 4장에서 고통과 쾌락의 “측정 방법”(How to be Measured)을 논의하는 장은 역으로 말하자면 측정 불가능한, 따라서 명확히 인식할 수도 없는 영역은 무의미함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11)

벤담은 신체나 재화와 같이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 대상을 허구(fiction) 혹은 허구적 실체(fictitious entity)라 지칭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의 체계 내에서 사실과 당위의 구별이 흐려지고 후자의 존립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사실 자체에 대한 그의 강박에 기인하는 셈이다. 이는 디킨즈가 묘사한 토마스 그랫그라인드의 사실-상상의 이분법, 즉 모든 것을 실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사실’과 그렇지 않은 허구 혹은 ‘상상’으로 나눈 뒤 전자를 유일하게 의미 있는 대상으로, 후자를 타파해야할 거짓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연상케 한다. 이 사실-상상의 이분법은 벤담이 의도하지 않았을 논리적 귀결들을 그의 체계 안에 초래한다. 예를 들어 공동체 및 그 구성원들 간의 교감과 같이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관념을 보자. 베버에 따르면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에게 “주관적으로 느껴진  공속성(共屬性)” 및 이와 결합한 사회적 관계가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경제와 사회1』). 역으로 말하자면 이처럼 ‘사실’이 될 수 없는, 물질적으로 인식불가능한 감정이 없다면 공동체를 성립시킬 수 없다. 곧 ‘상상’을 비실체적인, 개인의 공상적인 영역으로 국한시킬 때, 자기의 이익(self-interest)을 제외한 모든 인간관계는 무의미해지며 공동체와 같은 개념 또한 실체적인 성격을 상실한 허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벤담은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한다. “공동체는 허구적인 실체로서, 마치 그구성원들처럼 여겨지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이익이란 무엇인가?—공동체를 구성하는 여러 구성원들의 이익의 총합이다.”

인식의 범위가 개인의 물리적인 지각으로 협소화될 때 공동체 혹은 타인의 문제를 사고하는 과정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즉 모든 ‘허구’들을 소거했을 때 남는 개념들은 오로지 쾌락과 고통의 인식 및 그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인 개인들뿐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감각과 효용을 넘어선 범위를 지각할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타인의 내면 또한 인식 불가능한, ‘무의미한’ 영역이 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아도르노가 말한 “창문 없는 감옥”으로서의 단자가 된다. 이는 이후 제번스가 자신의 체계를 설명하면서 말하듯 “각 개인이 다른 개인들에게 바깥세상의 일부이며, 형이상학 이론가들이 말하는 비(非)자아”가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지각의 유일한 단위로서 개인주체만을 인정하고 다른 모든 추상관념 혹은 ‘허구’를 타파했을 때 각 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개인들을 세상의 다른 사물들과 구별해서 취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앞서 언급했듯 벤담의 체계 내에서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지상명령은 자기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이 마주한 모든 사물들을 쾌락을 증진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정당화된다면, 사물과 다를 바 없는 타인들을 효용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다른 개인과 인격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사라진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철학이 “도덕감정”(moral sentiment)을 통해 개인의 내면에 단순히 개인적 효용만으로 동화될 수 없는 타자성의 지점을 새겨 넣었다면, 그러한 정념을 허구로 타파하는 벤담은 타자를 개인의 효용으로 해소해버리면서 고립된 개인의 이념형(ideal type)을 구축한다. 이러한 인간관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인식주체인 개인에게 타자와의 인간적인 유대를 가능케 하는 토대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어려운 시절』에서 그려진 공리주의 비판 및 공리주의적 세계의 모습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잠재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결론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셈이다. 단적으로 바운더비와 코크타운의 자본가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시하는 인간들이 허구와 사실의 구분조차도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곡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운더비는 노동자들이 “자라 수프, 사슴 고기, 황금 수저” 같은 헛된 꿈을 포기하고 오로지 눈앞에 주어진 ‘실제로 존재하는’ 일에만 몰두하기를, 곧 바운더비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기만을 바란다. 그에게 스티븐이 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나 위기에 처한 루이자의 내면에 대한 배려는 모조리 “상상적인” 것들로서 타파해버려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자수성가한 삶에 대한 거짓말을 통해서 드러나듯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가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이라는 ‘합리적’인 혹은 ‘사실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그에게 사실과 상상의 구분 및 허구의 거부는 이익추구를 위해 언제든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바운더비와 자본가들에게 노동자들을 비롯한 타인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권리는 실재하지 않는 허구로서 논의의 대상조차 될 수 없지만,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얼마든지 ‘사실’로서 도구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사실-상상의 이분법이 각자의 이익 추구만을 절대화하는 단자적 인간들을 낳았다면, 그들은 사실과 허구의 구분조차도 자신들의 이익이라는 ‘사실’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뒤튼다.

그랫그라인드의 모범생이자 바운더비의 부하인 비처는 공리주의가 만들어낸 단자적 인간관을 가장 극단적이고 순수한 형태까지 전개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고실험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의 마음은 매우 정확하게 조정되어 어떠한 감정이나 정열도 없이” 철저하게 계산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단적으로 바운더비가 자신의 어머니와 멀리 떨어지려 노력하고 약간의 돈을 주는 정도라면, 비처는 애초에 그러한 껄끄러움조차도 느끼지 않고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를 구빈원(workhouse)에 집어넣어버린다.12)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살림살이를 증진시키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며 따라서 자신에게는 기분전환("I don't want recreations")도, 아내와 가족 따위도 필요 없다("I don't want a wife and family")고 말한다(91)—여기서 단수로서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I"가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비처에게는 “전체 사회체계는 이기심의 사항”이며, 인간의 유일한 동인은 자기 이익의 추구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옛 선생 그랫그라인드는 물론이요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가 무의미하다.

비처와 같은 존재들, 곧 인간적인 면모를 완전히 탈색시킨 인간들은 더 이상 어떠한 방법으로도 교정되거나 구제될 수 없다. 비처, 바운더비와 같은 인물들의 경우 애초에 그들의 목적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의 이익추구에, 그것도 재화나 육체적 쾌락과 같은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내면으로부터 타자의 영역을 소거하고 스스로의 동물적인 욕구 및 욕망충족에 몰두하는 인간들에겐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만이 중요하다. 욕망의 더 큰 충족을 위해 어떤 수단을 채택하느냐 정도가 이들이 반성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며, 그런 점에서 이들은 깊이 있는 내면을 갖지 않는다—이들에겐 그랫그라인드와 같은 반성이나 ‘성숙’이 불가능하다. 『어려운 시절』의 결말에서 바운더비나 비처의 영향력이 여전히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부분적인 이유는 이와 같은 인간들에게는 유효한 교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면’이 없는 이들은 반성은커녕 인간성의 문제로 인해 회한에 빠지는 일조차 없다. 이처럼 내적으로 폐쇄=완결되어 있는 단자적 인간을 사회나 공동체 안쪽으로 통합시키는 방법은 없다. 곧 이들의 존재는 가족-공동체적 대안이 추구하는 사회통합의 목표를 근본적으로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자 그대로 모순이다. 공리주의적 인간의 가능성이 논리적 극단까지 추구될 때 나타나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 단순히 단자적 인간의 출현만이 아니라 그 결과까지도 형상화한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16-17세기 이후 근대 서구의 자본주의 문명을 “시민적 생활합리화” 과정으로 파악하는 막스 베버의 역사적 통찰을 따른다면(「세계종교와 경제윤리—서론」), 벤담의 사상체계에서 나타나는 사실-상상의 이분법과 단자적 인간관이야말로 합리화 과정 및 그에 수반되는 개인주의적 태도의 전형적인 사례다.13)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에서 베버는 금욕주의의 특성 중 하나로 철학적 사변을 거부하고 “수학적 정초를 통해 합리화된 경험론” 및 실용적인 앎을 강조하는 점을 꼽는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자본주의적 인간관을 정초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뿌리가 서서히 말라죽고 그 자리에 공리주의적 현세성이 확립”된다. 베버의 언급에서 주목할 점은 공리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관의 관계라기보다는 그것들을 근대 서구의 자본주의 발달과정, 혹은 그 과정에 수반되는 합리화의 중요한 계기들로 함께 파악하는 관점에 있다. 그는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인해 개인의 내면만이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면서 “‘이웃’에 대한 관계에서의 ‘인간성’이 말하자면 고사해”버렸음을 지적하고, 이를 근대 서구의 합리화과정에서 중요한 경향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경향의 주요한 사례로서 공리주의는 한편으로 인간들이 스스로를 고립된 단자로 파악하는 이른바 경제적 인간의 이론적 기초이면서도, 그처럼 단자가 된 개인들을 관리하고 통치하려는 노력의 차원 또한 포함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파악했듯 서구 근대문명의 사회가 단자적 개인들이 유의미한 시민사회를 형성하지 못하고 권력에 의해 더욱 엄밀하게 지배받는 “관리되는 세계”라면(『계몽의 변증법』), 공리주의야말로 관리되는 세계를 구성하는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지만 상호보완적인 경향들을 함께 포함한다는 점에서 서구 근대의 본질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이런 맥락에서 『어려운 시절』은 서구 근대문명의 부정적인 경향을 선취하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4. 자유주의-공리주의의 계보 VS. 시민적 인문주의 혹은 덕성의 형상


지금까지가 기본적으로 3년 전에 완성한 논의를 요약하고 재구성한 것이었다면, 마지막으로 발표자의 현재 관심사 및 이후 예정된 연구방향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열린 화요토론회의 관습에 잘 부합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발표의 본론에서 다룬 내용이 해당 분야 전공자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논의의 풍성함을 위해서 다소 미숙한 계획을 풀어놓고 함께 이야기하는 쪽이 보다 생산적이리라 믿습니다. 학위논문 이후의 연구방향은 기본적으로 석사학위논문의 구도를 보다 포괄적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이를 다음의 몇 가지 항목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연구자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공부해 오신 분들을 위해 다소 추상적인 설명이 되는 걸 무릅쓰고 개략의 스케치만 그리겠습니다.

먼저 벤담의 공리주의는 17세기 홉스(Thomas Hobbes)와 로크(John Locke) 이래의 영국 자유주의 전통이라는 보다 장기적인 맥락에서 사유되어야 합니다. 앞서 간략하게 언급했듯, 19세기 영국 공리주의는 테일러(Charles Taylor)가 말하는 의미에서 “계몽”의 한 갈래에 속합니다(『헤겔』, 특히 1장 참조). 다만 영국에서 이 ‘계몽’의 전개는 경험주의 인식론과 자유주의 정치/사회이론, 고전파 경제학과 같은 여러 층위를 통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벤담과 J. S. 밀이 자유주의 계몽의 여러 갈래들이 동시에 응축된 마지막 사상가들이라고 한다면, 홉스와 로크는 이러한 흐름의 출발점에 있는 이들입니다. 특히 홉스에 비해 종종 사상적으로 저평가되는 로크는 경험주의적 인식론 전통의 주요저작인 『인간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과 함께 자유주의 사회이론 및 자본주의적 사유를 연결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을 통해 군주의 인격 및 덕성/탁월함에 의존하던 이전까지의 권력이론에 근본적인 비판을 가했습니다. 로크는 법과 계약의 언어를 통해 시민 사회(Civil Society)를 설명하면서 왕 혹은 주권의 행사에 대항하는 개인의 재산권 보장을 그 핵심에 둡니다. 휘그당 정부의 수립과 함께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설립되었음은 이러한 사상적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행위가 전체 국민의 편익증진에 부합한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이 『국부론』(The Wealth of the Nations)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크 이래 흄(David Hume), 스미스를 거쳐 벤담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에서 공리주의로 전개되는 사상사적 방향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이후 실증주의 및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이어지는 서구근대의 사상사적 흐름이 뚜렷해집니다.

그러나 스미스가 자신의 주저 『도덕감정론』을 통해 사회와 공동체에 부합하는 삶을 강조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자유주의는 공화주의 혹은 시민적 인문주의(civic humanism)라는 또 다른 사상적 조류와 함께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근대 유럽의 시민적 인문주의 전통을 강조하는 포칵(J. G. A. Pocock)은 영국 청교도혁명과 미국 독립전쟁 등에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로부터 기원하는 덕성/탁월함(virtus)의 언어가 나타남을 조명합니다(『마키아벨리언 모멘트』The Machiavellian Moment). 포칵, 스키너(Quentin Skinner) 등을 주축으로 하는 캠브리지 학파(Cambridge School)의 정치사상사가들은 근대정치의 언어에서 공동체적 삶을 위해 인간이 지향해야 할 덕성이 주요한 개념으로 존재함을 밝힙니다. 18세기 영국의 상업사회에서 감성(sentiment)이 공동체적 삶에 필요한 하나의 덕목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프랑스혁명기의 정치에서 덕성의 개념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로크의 감각론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은 근대에 자유주의와 시민적 인문주의 전통이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로크 이래의 ‘자유주의 전통’에서 쾌락과 고통의 주체, 계약의 주체를 설정하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당위적 가치로서의 덕성/탁월함을 탈각시켰다면, 시민적 인문주의 전통에서는 여기에 대응하듯이 덕성의 언어가 강조됩니다. 스미스에게까지만 해도 융합되어 있던 두 전통의 분리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벤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크적 자유주의 전통의 ‘순수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공리주의 및 그것이 제시하는 협소한 인간상에 대한 비판으로 근대영국문학에서 덕성의 형상이 출현합니다. 최초의 근대소설 『파멜라』(Pamela)의 부제 “보상받은 덕성”("Virtue Rewarded")이 단적인 예로, 소설에서 덕성은 육체적 쾌락과 경제적 부의 추구를 넘어서는 가치로 제시됩니다. 19세기 공리주의와 함께 자유주의와 시민적 인문주의 전통 간의 분리가 보다 뚜렷해지면서 문학텍스트에 나타나는 공리주의 비판도 점차 명시적이 됩니다. 직접적으로 공리주의를 거론하는 셸리의 「시의 옹호」(“A Defense of Poetry”)와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이 대표적 텍스트이며, 세속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신의 안위를 넘어선 삶을 지향하는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여성 주인공들(『플로스 강의 물방앗간』The Mill on the Floss, 『미들마치』Middlemarch) 또한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자유주의-공리주의 전통과 시민적 인문주의의 대립 및 상호작용이라는 근대 유럽의 거대한 구도 안에서 근대영국문학, 특히 19세기 영국문학의 낭만주의 및 빅토리아 소설이 공리주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문학텍스트에서 덕성의 언어가 어떠한 형상으로 출현하는지를 살피는 게 발표자의 이후 과제입니다. 이처럼 상이한 영역들 간의 매개가 예술작품에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포착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론의 구축을 위해서 헤겔 이후의 변증법적 문예이론의 전통, 특히 아도르노의 방법에 대한 연구가 병행될 것입니다.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연구는 세 가지 목표를 겨냥합니다. 표면적인 층위에서 이 연구는 근대영국사회의 주요한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의 지배와 문학텍스트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입니다. 즉 이 연구는 다른 무엇보다도 서구 근대의 사고형성에 대한 사상사적 탐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이 연구는 예술과 사회, 예술과 이데올로기의 상호작용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구체적인 모델을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다소 문예비평분야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만, 맑스주의 문예비평의 퇴조, 신역사주의의 쇠락, 문화연구의 사회과학화 등과 함께 예술작품으로부터 역사적 ‘진리내용’을 끌어내려는 연구를 위한 방법론의 이론적 모델은 현재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물론, 예컨대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를 필두로 하는 디지털 인문학연구자(Digital Humanist)들이 선구적으로 행하고 있듯, 예술텍스트들로부터 특정한 형식 및 내용을 추출하여 일종의 문학사회학 혹은 예술사회학적 해석을 이끌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단순히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전파물이 아니라 그러한 이데올로기들을 포괄한 다층적인 요구가 부정합적인 형태로나마 종합 및 응축된 결과물임을 감안한다면 문학사학, 문학사회학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대신 그 이전에 예술비평의 모델을 구축할 필요는 쉽게 물리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예술작품의 해석에 대한 이론수용에 비해 정작 해석 모델을 구축한 연구자가 드문 한국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목표가 무의미하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앞선 두 목표 모두의 연장선에서, 이 연구는 최종적으로 저와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함께 공유하는 동시대 한국사회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비교모델을 정립할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적어도 90년대 초중반 이후의 한국사회, 특히 문화적 층위 및 비제도적 사회규범과 같은 영역에서 자유주의적 모티프가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종교 및 정치적 권력에 대한 합리주의적 비판, 문화소비에서의 개인 주체를 중심으로 한 쾌락주의의 확산, 새로운 사회규범으로서 “똘레랑스”14)의 등장 등은, 각각에 대한 평가를 별도로 하고, 명백히 자유주의적 기조의 주요한 사례입니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때로는 자멸적이기까지 했던) 자유주의적 흐름과 이에 반하는 새로운 보수반동의 대립구도15)를 목도할 수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라면, 이와 같은 구도에서 상이한 흐름들이 어떻게 서로 뒤얽혀 상호작용하는가를 살피기 위한 비교모델로 근대영국의 사례는 명료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푸코가 지적하듯 서구 근대 지배의 핵심에 자유주의가 있었음에, 그리고 현대 한국 또한 그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데 동의할 수 있다면, 자유주의적 지배의 한 원형으로서 근대 영국의 연구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1)  [http://lib.snu.ac.kr/search/DetailView.ax?sid=6&cid=3926433]

2)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중점으로 한 윌리엄 톰슨(William Thompson)이나 토머스 호지스킨(Thomas Hodgskin)의 정치경제학 이론들도 기본적으로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출발한다. 공리주의 및 그에 기초한 경제학 이론이 중간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오늘날의 시각은 맑스가 벤담과 밀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3) 거칠게 설명한다면 효용가치론은 상품/생산물의 가치가 시장 참여자가 인식하는 (주관적) 효용(utility--공리주의utilitarianism에서 이야기하는 그 효용utility이다)에서 기원한다고 보며, 노동가치론은 그것이 생산물에 투입된 노동력에서 기원한다고 본다.

4) 1절의 요점은 디킨즈가 『블리크 하우스』에서 영국사회 구체제의 문제를 가정의 파괴를 통해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세기 이전의 보다 넓은 구성원을 포용하는 가족 공동체의 형성을 대안으로 제출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고립된 개인들을 관계의 그물망 안으로 편입시킴으로서 사회를 재구축한다는 디킨즈의 근본 입장이 매우 선명히 드러나 있다.

5)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영국 사법부는 두 개의 기구로 구별되어 있었다. 하나가 국왕법원에서 형성되어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보통법(Common Law)이라면 다른 하나는 “보통법상의 편협한 기술적 법원칙보다는 도덕과 정의에 근거하여 사건에 대한 판단”을 하는 형평법(Equity)이다. 대법관(the Lord Chancellor)은 후자를 담당하며 『블리크 하우스』에 나오는 "the Court of Chancery"은 그가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을 내리는 곳이다. 그러나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형평법 또한 19세기에 이르러 정형화된다.

6)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등을 정신적 지주로 한 1832년 제1차 선거법 개정(the Great Reform Act) 전까지 법제도는 구체제 및 구체제의 중심인 귀족들의 영향 하에 있었고  1825~30년까지만 하더라도 법 개혁의 흐름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블리크 하우스』는 아직 법제도에 대한 구체제의 영향력이 강한 상황에서 점차 권력의 초점이 이동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7) 당대에 제임스 밀(James Mill)은 영국 헌법(the British Constitution)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소수의 대지주(the great landholders)가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교회와 법률가(the legal profession)을 일컬어 지주 귀족들의 “두 개의 버팀목”(two props)이라 지칭했다.

8) 사회는 본래 “친교 또는 친목”(companionship or fellowship; 291)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었으며 18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도 “친구들과의 만남”(company of his fellows)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사용되었고, 국가(state)의 대립어로서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an association of free men)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키워드』의 ‘사회’(society) 항목 참고.

9) 2절에서는 『어려운 시절』을 다루는데, 여기서 디킨즈는 공리주의적 사유의 침범을 새로운 사회문제로 제시하며 『블리크 하우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정의 파괴와 재생이라는 방식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서 가정의 재구축은 성공적이지 않으며 결말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은 파편화된 개인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10) 보통 판옵티콘을 통해 벤담을 재발굴한 것으로 알려진 푸코가 자유주의 통치성의 역사에서 벤담과 공리주의가 갖는 의미심장함에 지속적으로 주목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참고. 공리주의자들은 19세기 전반부 영국사회 전체의 개혁(reform)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며, 제1차 선거법 개정(1832), 신 구빈법(1834), 노동시간/노동일/여성 및 아동노동에 관련된 공장법(1802-47), 도시위생개혁 등이 대표적이다. “앙시앵 레짐”이라고까지 불렸던 기존의 법체계에 대한 비판 역시 이들의 주요과제였다.

11) 베버가 “합리성”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특정한 행위가 그 목적에 비추어봤을 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측정’ 혹은 ‘계산’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계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벤담과 결부지어 생각해볼 만하다(『경제와 사회1』).

12) 1834년 신 구빈법 이후 구빈원은 수용자들에게 최소한의 욕구충족을 제외한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디킨즈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는 신 구빈법에 대한 반발이 담긴 대표적인 텍스트다.

13) 실제로 베버는 “서구적 유형의 실천적 합리주의”의 대표로 벤담의 체계를 꼽는다(「서론」 182).

14) 로크가 서로 다른 종파들 간의 대립에 맞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전파한 『관용에 관한 편지』(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참고.

15) 한국에서 자유주의적 경향이 어떻게 오늘날의 새로운 극우주의로 이어졌는가를 『계몽의 변증법』적 모델을 통해 설명하려 한 시도로 문순표의 글 「극우와 계몽의 변증법」 참조(『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16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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