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일기. 눈 오는 밤.

Comment 2015. 1. 19. 14:21

노트북 화면에 눈이 아파 잠시 창을 열어 밖을 보았다. 하늘과 땅은 함께 잿빛이었고 그 사이 검은 그림자처럼 나무와 건물이 땅에서 솟아 있었다. 내 방에서 나오는 빛, 다른 기숙사동의 창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 가로등의 빛의 노란 빛깔은 나뭇가지 틈새로 어두운 백광을 희미하게 내뿜는 쌓인 눈 앞에서 단지 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을 뿐이었다. 눈의 씨앗을 품은 구름은 하늘을 마치 닫힌 세계처럼 만들었고 그 씨앗이 싹을 틔운 하얀 풀밭, 눈밭은 세계를 위아래가 정해져 있지 않아 함부로 발 딛을 수 없는 공간처럼 느끼게 했다. 먼 능선의 검은 산그림자, 자세히 보면 그 안에서도 백색광의 잔존을 맞닥트릴 수 있는 어두운 면은 비슷한 빛깔로 이어질뻔한 하늘과 땅을 구별하게 해주는 유일하게 신뢰할만한 경계선으로 남았다. 그 경계선을 아직 먹어치우지 못한 눈 내리는 날의 풍경 그 자체의 무게가 바닥에 눈이 내려꽂히는 타닥, 타닥 소리와 함께 나의 감각체계를 가득 채웠다. 가로등의 살짝 노란불빛 아래로 무섭게 쏟아지는 눈 덩어리들을 보고 비로소 지금도 눈이 내리는 중임을, 단지 완벽한 어둠과 완벽한 눈 내리는 풍경 때문에 내가 그것들을 보지 못했을 뿐임을 알았다. 어릴 적 무언가 사소한 실수로 산에 들어가 오직 손 끝의 추위만 느끼며 버석거리는 눈과 낙엽과 나뭇가지들을 밟고 헤매던 밤길, 흰 눈이 내뿜는 빛이 사방팔방에 가득할 따름이어도 도무지 자신이 어디를 거니는지 알 수 없어 단지 발걸음만 재촉할 뿐이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히터의 미약한 김이 식식대는 방 안에서 창문을 열고 단지 열기를 찾아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맞이하고 있으나 내 삶이 눈 내리는 밤의 풍경을 헤매는 아이의 것으로부터 도무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지 못한다. 밤의 눈보라는 눈보다도 밤보다도 강하게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고 그 세계에서 허락된 삶이란 오로지 헤매는 것 뿐이다, 누구에게든. 온기가 남은 방 속의 삶에서 언제든 차가운 산길을 두려워하는 게 겁많은 나의 환상이라면 이 시각 누군가는 길조차 뚫기 힘든 산자락의 낡은 집에서, 산도 골짜기도 아니지만 몸 누일 곳 없는 어느 도시의 길 위에서, 왕래하는 객들의 발에 묻어들어온 눈과 그보다 더 서늘한 냉기 그 자체가 종이박스로 지은 잠자리를 파고드는 지하철역 안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눈 내리는 밤의 잔인함을 마주하는 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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