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교육제도, 계급분할: 교과과정과 교육포기자들에 대한 기사 코멘트

Critique 2014. 10. 18. 14:33

<'커닝 페이퍼' 사라진 교실, 웃을 일만은 아니다> 기사 원문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4576


이하 주요대목 인용 및 코멘트.


"그들은 언제부터 학교를 '여관' 삼았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중학교 시절 이미 '학교에서 내어놓은' 아이들이었다고 선선히 말했다. 큰 사고를 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어 수업시간 엎드려 자기 일쑤였다고 한다. 학교에 와서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것 외에는 재미있는 일이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아'가 되었다는 거다.


공부를 못하니 안 하게 되고, 안 하니 더 곤두박질치는 악순환이다. 그들은 중학교 내내 또래 다른 아이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한 채로 장장 3년을 보내야만 했던 셈이다. 고작 기초 단계라는 초등학교 과정조차 중학교 3년 동안 따라잡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들은 더 깊은 무지와 고통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그들에게 고등학교란 중학교 때 학교생활의 연장일 뿐이었다. 장소만 바뀐 채 자고 있으니."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낙오자'는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초등학교 교사도 많다. 얼마 전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20년 차 초등학교 교사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공부 할 아이'와 '놀 아이'가 이미 확연히 갈려있는 것 같다면서, 1학년 때 말썽꾸러기는 6학년이 되어서도 예외 없이 사고뭉치가 되어 속을 썩인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교사 : "획일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과정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공부에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따라가기 어렵게 돼 있거든요. ...


중학교 교사 : "학교 교육이 상위권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대학의 학벌구조는 이미 우리 사회의 '상수'가 돼 버렸고, 요즘엔 전국적으로 중고등학교 서열화가 기승이잖아요. '한 사람의 엘리트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가장 잘 구현되는 곳이 바로 학교예요."


고등학교 교사 : "근래 들어 최고의 인재들이 교사가 된다지만, 예전에 비해 학교의 교육력은 되레 퇴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교실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한둘 아니지만, 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능력 밖이라 생각해요. 어찌 손 써볼 수 없다는 거죠. 거칠게 말해서, 학교는 그들의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의지도 없어요."





 생각해보면 나도 마지막으로 중고등학교 교육현장을--교육활동을 포함해서--직접 겪었던 게 벌써 6년 전이다. 링크한 기사는 (물론 지역차를 고려해야겠지만) 그 사이에도 무언가 많은 일들이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한번 정도 숙고하며 읽을만한 글이다. 인용부들로부터 먼저 두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짚어보자. 첫번째, 놀랍게도 현재의 공교육 시스템은 '백지상태의' 학생에게 가르침을 제공하고 지적능력을 끌어올리는데 실패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과정을 따라가지 못했던 학생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마찬가지라면 이는 해당 초/중/고교가 이 학생을 교육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다는 뜻이다. 둘째, 맨 아래 교사들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현재의 상황은 개별 교사들의 단순한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과과정 및 교육시스템의 재고를 요청한다. 기본적으로 (혁신학교 모델 정도를 제외하고는) 공교육기관은 철저히 관료적인 체제로 운영되기에, 교사들은 제도가 요구하는 것 이상의 업무를 수행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심지어 낙오한 학생들을 다시 이끄는 가장 근본적인 요구조차도. 수학과 같은 과목에서 시작과 함께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구조적' / 제도적 차원에서의 분석 및 해법을 요구한다.


 "교육과정의 수준이 너무 높다"는 말은 "그러니까 지금 모두의 수준을 함께 떨어트리자는 말인가?"라는 (우파들의 클리셰적인) 반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문제의 지점을 조금 더 잘 드러내어 보자면, 지금의 교육과정은 일정량 이상 사적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표준적인 교육대상으로 삼고 있다, 고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문제적인 지점을 함축한다. 첫째, 현재의 교육과정에 따르면 한국의 학생/학부모들은 사교육을 위해 추가적인 지출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마디로 공교육은 자신의 임무를 개별시민들에게 전가한다. 둘째, 결과적으로, 기사의 사례가 보여주듯 그와 같은 사교육을 위한 재화, 시간, 노동의 지출을 할 수 없는 조건의 학생들 상당수가 공교육 과정을 받으면서 낙오하는 결과는 필연적이다.


 양자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의 공교육은 사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학생/학부모만을 자신의 참된 파트너로 간주하고 계급적으로 아래에 위치한 학생/학부모를 정규과정에서 탈락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한 마디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적 기치 아래 공교육과정은 다른 국가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상층계급과 결탁하여 하층계급을 배제하는 '계급투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한병철과 같은 이데올로그가 외치듯--맑스주의적 분석의 반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분석의 유효성을 진실로 입증해주며, 교육과정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공교육 내 진보세력은 무상급식과 혁신학교라는 멋진 이슈를 꺼냈고 또 성공시키는 중이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근본적인 교육과정결정의 문제에서는 우파들에게 완패한 셈이다.


 십여 년도 전부터 우파들은 대형언론과 같은 매체를 통해 교육의 평준화, 질적 저하 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상이한 수준의 학생들이 뒤섞일 때 '상위권 학생'들이 받는 피해를 강조해왔다. 더 심화된 교육과정으로의 재편이 이런 맥락과 어떤 실질적인 관계를 맺는지는 모르겠지만--어쨌든 나는 교육계의 내부인이 아니니까--이것이 자사고/특목고에 대한 상층계급 학부모들의 엄청난 열망과 함께 공교육 체제 내부에서의 계급분할을 과거보다도 더 치명적인 방식으로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은 분명해보인다. 오히려 명백한 서열화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건실한 중산층을 만들어 왔던 것처럼 보였던 90년대까지와 비교한다면 '인문계 고등학교의 슬럼화'와 같은 표현들이 일상화된 최근의 시점에서 공교육과정을 기점으로 하층계급들은 지식과 사고능력의 측면에서조차 '인정받는 삶'으로부터 완벽하게 배제된다. 일베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확인 가능한 '오로지 사실만을 추앙하는', 그러니까 상황의 논리적/종합적 연관관계를 추적하는 능력을 결여한 우파적 대중의 탄생은 공교육 붕괴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층계급들, 우파들의 염원처럼 교육과정 및 학교선택을 통해 새로운 계급분할이 가능해진 오늘날의 교육환경은 그 '수혜자들'에게 정말로 이로운 결과를 가져왔을까? 내 생각에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상층계급 학생/학부모 또한 그다지 좋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지 않다. 가장 심각한 사실은 '교육과정 표준'에 도달하기 위한--'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사교육비가 늘어나면서 상층계급 또한 적지 않은 비용의 자원을 교육비에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문직을 가진 학부모들조차도 현재의 교육지출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적지않은 예비학부모들 또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과거에 비해 대폭 증대할 것으로 인식한다. 만약 교육과정이 현재와 같은 추세에 따라 더욱 더 '심화'된다면 상층계급 내에서도 가용자본이 적은 이들에게부터 이들을 경쟁구도로부터 축출시키려는 더 강력한 압박이 주어질 것이다.


 둘째, 가장 당황스러운 사실은, 교육과정의 수준, 학생의 노동시간, 학부모의 교육투자비용이 모두 증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층계급만이 아닌 상층계급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에서 상층계급 학생들을 관찰할 기회를 가진 나와 다른 교육자들은 특히 자료해석과 의사표명의 논리적 전개라는 측면에서 지적 수준의 하락경향을 목도하고 있다. 당연히 이건 그 학생들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학생들을 길러내는 공교육체제의 제도적인 산물이다(더불어 지배계급의 오랜 역사가 쌓인 서구와 달리 한국의 순진한 '엘리트'들의 교육이해도가 무척이나 떨어져서 그들 중 적잖은 수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의 정신을 압살한다는 블랙코미디도 지적하자...과도한 퇴비가 화초를 질식시키듯 무지에 기초한 과도한 사랑은 자녀의 정신을 일그러트린다). 학부모들 중에서도 이 사실을 깨닫는 이들은 늘어가고 있는데, 지난 10여년 간 중고교과정을 대체하는 대안교육 및 홈스쿨링의 급격한 확산(여기에 대한 통계가 있을까?)이 이를 증명한다. 대안교육 및 홈스쿨링이 대체로 공교육보다 상당한 자본지출을 요구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상층계급에 속하는 학부모/학생들이 공교육으로부터 이탈하는 경향을 보여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최신/최고가 사교육"의 축적은 학생의 지적 능력을 고양하는 대신 그것을 더 열악하게 만든다--거기에 수반되는 갖가지 고초가 인성을 망가트리기 쉽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교과과정이라는 주제에 국한할 때 대안을 위한 가장 쉬운 시작점은 커리큘럼 자체를 변경하는 거다. 공교육과정은 과외와 학원에 돈을 쏟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삶에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는 지식 및 사고능력을 기르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서술했듯, 사적인 자본지출을 표준적인 전제로 삼는 교육과정은 비용을 지출할 능력이 없는 사람만이 아니라 비용을 지출하는 학부모/학생에게까지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천신만고 끝에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도 정작 탁월한 사고능력을 갖출 수 없다면 당황스러운 일이 아닌가? 현재의 조건에서 제일 합리적인 방안은 애초에 공교육과정에서 요구되는 사전학습량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수준차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그 수준차의 상당한 정도가 사교육의 축적에서 비롯되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사교육비 지출 및 추가적인 노동(학생에게 학습은 노동이다)의 유인도 사라진다. 어차피 교육과정의 심화가 그 자체로 실질적인 학습능력 및 지식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본인이 자신의 흥미와 관심사에 따라 자신의 사고를 구축해나가는 대신 단지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공부량의 축적은 오히려 사고와 시야의 폭넓은 발전을 저해한다. 매우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쪽이 사실에 가깝다(이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수년 전부터 행해진 학교의 복수전공 의무화 및 학사과정 엄정화 등은 실질적으로 학생의 성장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물론 교육 혹은 인간의 사고능력을 신장시키는 과정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제도적/비제도적 요인들이 엉켜있기에 단 하나의 대안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릴 수는 없다(애초에 나는 교육문제에 어느 정도에 관심을 가진 비전문가에 불과하다). 조금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사고한다면, 한국의 공교육이 직면한 사태는 사실 교육과정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8-90년대를 거치며 교육과정에서도 명백히 '대중화'라는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고, 평준화와 비평준화, 자사고를 둘러싼 논의들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사태에 대한 여러 반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전체 교육체제가 감당해야 하는 인원수는 늘었지만 98년 이후 지난 17년간 '교육받은 대중'을 위한 안정적인 산업구조는 출현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공식적인 (우파적) 대응이 바로 교육을 통한 경쟁으로 탈락자들--잠재적인 피착취자들--을 선별하고 이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으로 학부모의 자본을 설정하는 것이었으며, 사교육 시장은 이러한 요구와 맞물려 약진했다. 결론적으로 이 구조는 우파 상층계급들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을 허락했지만, 그 대가로 체제 전체의 비효율성과 함께 우파 자신들의 삶까지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이와 같은 어리석음의 결과가 가시화된 지금, 체제 자체를 어떻게 보다 효율적으로 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입각한 개선안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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