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김진숙, 단식, 세월호, 그리고 동물과 인간

Comment 2014. 8. 28. 03:59

김진숙 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과거 한진중공업 단식투쟁 중 쓴 편지를 먼저 링크한다

(http://www.pressian.com/newsdesk2/article/view_art.html?no=99331). 전문은 글 아래에 옮겨 놓았다.


아직 한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다행히 그때 만 원짜리 후원 티셔츠 한 장을 사놓아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종종 되살리는 계기가 되고는 한다--이렇게 적으면서 그런 셔츠 한 장이 단순히 그때의 후원금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을 살아남고, 또 그때의 기억을 살려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진 때도 많은 사람들은 필사적이었고, 희망버스가 갔고, 웹상의 적지 않은 이들은 냉소와 조롱, 경멸을 보냈고(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그런 반응은 아무 쓸모가 없고), 극우파의 룸펜 노인들은 희망버스를 가로막으려 했고(여전히 누구의 인생에도 도움이 안 되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었다. 지금도 아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심지어 누군가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한진 때는 "아직 살지 못한 자"--윤태호는 정말로 제목을 매우 잘 지었다--들의 목숨을 걸고 싸웠고, 지금은 이미 죽은 자들과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여전히 한국은 전쟁터와 같다(그리고 앞으로도 이 사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전쟁 국면을 초래한다--그것이 오늘날 맑스주의자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그 전쟁에서 사람들은, 그러니까 자본과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후퇴해왔다. 


그럼에도 쉽게 잊힐 수 없는 목소리들이 있다. 나는 <소금꽃나무>를 읽지 않았지만, 이 편지만으로도 김진숙의 언어에 확실히 범상한 문학인들을 넘어서는 힘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비극이 불가능하고 선언된 시대, 오로지 바보극farce만이 남아 몰인간성과 뒤섞이는 시대에, 이런 글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얄팍해진, 평평한 세계'를 넘어서는 무언가--그걸 인간적인 것이라 부르든, 의지라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가 있음을 일깨운다. 그걸 잊지 않고, 그런 것들과 함께 우리의 삶이 동물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런 면에서 김진숙의 편지를 오늘 다시 읽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이 현존함을 다시 확인하는 일과 같다.


 오늘날 "이제 다 잊고 돈이나 버는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속물들, "저런 평범한 노동자가 단식이라니, 저기에 보상금이랑 뒷공작 말고 뭐가 더 있겠어"라고 써갈기는 동물들, 이런 저런 말을 붙이지만 결국에는 "죽어라"라는 (사실 조금 중2병스러운) 말밖에 머리에 남지 않은 짐승들의 군집들이 발견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면에서 그들의 증오심 섞인 발악 자체가, 혹은 자신들의 삶의 지평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천박함 자체가 특정한 원한의 심리를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미 동물화된 자기들의 삶에서 도저히 다시 찾을 수 없으리라 체념한 다른 삶, 조금 더 고결한 삶의 가능성이 현실화되어 나타날 때, 오로지 자본과 임금, 쾌락과 고통으로 구성된 삶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그러한 고결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삶이 가축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음을 동시에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끔찍한 일이지 않을까. 자신이 도저히 가지지 못한다고 이미 마음 속 깊이 체념한 무언가가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이들은 발에 닿지 않을 포도의 향을 폄하하는 어느 짐승처럼 그런 것은 없다고, 너도 똑같은 속물일 거라고, 너는 단지 우리들의 동물적인 삶이 지속되는 걸 방해할 뿐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그 시작점에서부터 한없이 무력하며, 오로지 파괴와 증오와 열등감으로만 가득찬 반응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고로 그 어떤 '생산적인' 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국면에서 가장 안타까운 존재들이다. 이들은 증오조차도 소비할 수밖에 없다; 예전의 가축들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면, 오늘날의 가축들은 마치 강제로 증오가 위에 쑤셔박히는 거위들과 같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은 끔찍하다.


김진숙의 글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우리는 인간을 동물로, 동물보다도 못한 도구로, 도구보다도 못한 폐기물로 밀어내는 자본의 욕동이 휘감는 세계에서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결연함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 하에 있다--하지만 그러한 권력과 조건이 강요하는 대로 따라가지는 않겠다는 악문 이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언어가 있다. 그러한 반성과 저항의 의식으로부터, 순순히 가축우리로 돌아가라는 채찍을 붙잡은 손으로부터 동물적이지 않은, 도구적이지 않은, 폐기물이 되지 않은 삶의 가능성이 나온다. 우리가 이 투쟁에서 다시금 새로운 비극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면, 이는 곧바로 세계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논리와 충돌하는--그리고 오늘날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논리에 충돌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고 있다--인간, 그리고 그 인간의 존엄성, 인간다움이든 뭐든 말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텐데, 을 목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기든 지든, 우리의 선택이 곧 우리의 삶에 최소한의 도덕을 제공하며, 비극이든 희극이든 어쨌든 소극 아닌 무언가를 가능케 한다.


 자본와 국가의 카르텔, 조금 더 직설적인 언어로 지배의 논리는 인간을 두 가지 층위에서 타락시킨다. 그 힘은 우리를 노동을 소진하는 인간, 무엇이든 소비만 하는 인간으로 만들며, 다시 그런 착취당하는-소비하는 인간으로서의 삶 이외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를 설득시킨다는 점에서 육체와 영혼의 가능성을 함께 쭈그러트리고 어떠한 인간적인 자유와 행복, 자기완성도 용납하지 않는다. 3년 여 전, 목숨을 걸고 크레인 위에 올라간 김진숙의 글은 이 두 가지 방향 모두와 맞서 싸우기 위한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빛을 뿜고 있다. 오늘날 또 한 생명의 빛이 명멸하며 반짝이는 순간에, 그러한 빛이 결코 어느 한 명의 예외적인 사례가 아님을, 우리는 늘 그런 빛을 품고 있는 누군가들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우리 자신 또한 그런 누군가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사는 거대한 힘과 막을 수 없는 변화가 존재해 왔음을, 그리고 그러한 변화와 대면하며 사는 인간들이 있었음을 가르쳐 준다. 아마도 그러한 과거로부터 미래의 빛을 발굴하는 것이 오늘날 역사가이자 비평가의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편지 전문을 싣는다.


"짧은 배움으로도 회장님의 안부부터 여쭙는 게 예의겠으나 다급한 사람의 안부를 먼저 전하는 것도 큰 결례는 아닐 듯 싶어 제 소식을 먼저 전합니다.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저는 회장님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단식을 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이라는 사람입니다며칠 전 몸무게를 재보니 43kg입디다. 10kg이 넘게 사라졌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몸의 변화를 물으시기에 심장을 손아귀 힘 센 사람이 꽉 움켜쥐었다가 놓는 것 같다했더니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가장 위험한 징존데요하시더군요솔직히 말씀 드리면 새벽에 혹은 오밤중에 제 심장을 움켜쥐는 악력 센 손이 꼭 회장님의 손인 것만 같습니다.

 

저는 그 손아귀 힘을 뿌리칠 기력을 나날이 잃어갑니다두번째소변에서 거품이 부글거린다 했더니 단백뇨라는군요몸이 지방을 다 쓰고 근육도 다 쓰고 이제 마지막으로 몸에 남은 단백질을 쓰면서 버티는 거라고단백질마저 다 쓰고 나면 20일이 될 무렵부터는 이제 장기에 손을 댈 거라고내 몸이 살기 위해 장기를 갉아먹기 시작한다는군요.

 

오늘이 23일쨉니다.

 

14일째 되는 날은 못 일어났습니다몸을 일으킬 기력이 없으면 의식도 못 일어나야 옳으련만 의식은 새벽 두시에 일어나 몸을 깨워 화장실 가고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자고 보채는데 딴청을 부리는 몸은 참 서럽습니다.

 

3일을 그렇게 누워만 있었습니다몸에선 살비듬이 징역 징벌방의 석회처럼 허옇게 떨어집니다그렇게 내 몸을 떠나가는 살비듬마저 아깝습니다그저께 나온 혈액검사 결과는 백혈구 수치가 2300까지 떨어졌다는군요. 5000이 정상인데. 2000이하로 떨어지면 골수에 이상이 생길뿐더러 내 몸이 어떠한 감염에도 대응할 능력이 사라진답니다.

 

이런 얘기들이 회장님껜 기쁜 소식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왜 이러고 있냐구요.

 

제 목숨뿐만이 아니라 수천 명의 목숨줄을 움켜쥐고 있는 회장님의 그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입니다회장님께서도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겠지만 이미 한진중공업에선 2003년 구조조정을 막아내겠다고 싸우던 두 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그들이 죽고 나서야 노조는 20년이 넘은 숙원사업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저와 함께 해고됐던 두 명 동료의 복직과 수십 명 해고자들의 복직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만 제외됐구요.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이 인수하면서 이어졌던 세 명 열사들에 대한 추모공원이 지어지고노동조합 건물이 5층 복지관으로 번듯하게 지어져 노사가 화기애애하게 테이프를 자르고, 30억을 들여 식당이 새로 지어지고임금이 올라가고성과금이 두둑해지고… 수십 년을 싸우고 수십 명이 구속되고 해고되어도 단 한 가지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던 광명천지였죠.

 

저는 참 신비로웠습니다이렇게 해줘도 회사가 안 망하는구나해고자가 떼거리로 복직되고 임금이 이렇게나 오르고 노조사무실이 현장으로 옮겨져도 회사가 안 망하는 거였구나.

 

근데 왜 두 사람이나 죽여야 했을까두 사람이나 죽고 나서야 그런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게 뼈가 저리긴 했지만 전 그게 회장님 나름의 속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제가 6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일러를 켜지 않는 걸로 비겁한 속죄를 하고 있듯이.

 

누리면서도 불안했습니다이게 얼마나 갈까이 불안한 평화의 댓가로 우린 뭘 지불하게 될까이 위태로운 평화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그 위태롭고 불안한 평화는 6년이었습니다그리고 9년 만에 성향이 다른 노조집행부가 들어섰습니다.

 

제가 작은 텐트를 치고 단식에 들어간 날이 하필이면 부산에선 6년만의 추위가 엄습했다고 호들갑을 떨던 날이었습니다회사에선 전기를 끊었습니다발전기라도 돌려달라고 노조에 요구했지만 그 무섭도록 추운 하루가 다 가도록 발전기는 오지 않았고 결국 다른 데서 발전기를 가져다 돌렸는데 새벽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아침까지 벌벌 떨며 기다리다 노조에 전화를 했는데 "진숙이한테 기름 갖다 주지 마!"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집행부오십 넘은 나이에 단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짧게 적은 유인물마저 복사를 거부했던 집행부그 집행부가 들어선 지 1주일 만에 구조조정 통보를 하셨지요투쟁보다는 교섭에 치중했던 집행부 엿 먹으라는듯이 결국 교섭 중 정리해고 신고서를 노동부에 접수하셨구요정리해고를 밀어붙이는 회장님에게 만일 어떤 의도가 있는 거라면 그 의도를 무리 없이 관철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 진 거죠.

 

352명을 신고하셨다구요물론 명단작성을 완료하셨을테구요혹시 그 352명의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려 보셨나요그의 불안한 눈빛굳은 살 박힌 두꺼운 손검은 기름때가 골골이 박힌 주름살들담뱃진에 찌든 누런 이빨어눌한 말한 벌을 장만하면 몇 년씩 입어대는 입성들그리고 가장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사는 그의 아내아이들 게다가 연로하신 부모님들.

 

352명을 자르면 적어도 천명 이상의 삶이 무너지겠지요그는 잘해야 하청노동자가 될 것이고 그의 아내는 한 달 50~60만 원의 알바 자리에 인격을 짓밟히며 온갖 수모를 겪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학원이 끊길 것이고 그 아이들은 어김없이 비정규직이 될 것이고.

 

 

작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이 30887724원 입디다연봉 3000만 원짜리 철밥통들. 352명의 연봉을 합치니 10872478848원 이더군요회장님이 굳이 자르겠다는 352명의 목숨값을 다 합쳐봐야 회장님이 작년에 한진에서 챙겨 간 주식배당금 120억 원에도 못 미치더란 얘깁니다.

 

이 계산을 하면서 울었고 이 부분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회장님에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크게 표도 안 나는 그 돈 때문에 천명이 넘는 저들은 얼마나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요얼마나 많은 밤들을 뜬 눈으로 뒤척이고 있을까요그의 가족들은 또한 얼마나 두려운 채로 살얼음판 같은 시간들을 디디며 떨고 있을까요.

 

아직도 새벽이면 가장 먼저 눈앞에 떠오르는 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뽀오얀 콩국입니다단식을 하면 원래 가장 많이 먹던 음식이 생각나는 법인데 근래 콩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하다가… 열여덟 살 겨울. 122번 화진여객 시내버스 안내양 시절새벽 4시 15분이면 김해에서 첫 차가 출발합니다첫차 손님과 막차 손님은 대부분 같습니다연장 가방을 짊어진 아저씨들큰 고무다라이를 인 아지매들.

 

그들은 대개 내리는 곳도 같습니다아저씨들은 구포 인력시장에아지매들은 자갈치시장에문짝이 덜덜거리는 새벽 첫차 안에서 빈속으로 김해벌판을 가로지르면 속은 견딜 수 없이 쓰리고 온몸이 경운기처럼 벌벌 떨립니다.

 

그땐 버스 안에 스팀도 없었습니다충무동 천일예식장이 회차 지점입니다거기 콩국을 파는 구루마가 있었습니다발이 곱아서 걸음을 게처럼 옆으로 걸으면서도 콩국 구루마까지 용케 뛰어갑니다기사님 꺼 까지 두 그릇을 사서 곱은 손에 받아들고 질질 흘리면서 게처럼 다시 뛰어 와 입천장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먹었습니다.

 

비로소 온 몸에 피가 돌고 속이 화아 해지던 온기저절로 나오던 한 마디.

 

"살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 3~4일이 지나면 먹고 싶은 게 없어진다는 데 저는 위장마저도 평범치를 못한 모양입니다.

 

굶는 자와 먹는 자의 시간의 길이는 다릅니다하루가 100시간도 넘는 거 같습니다특히 새벽은 대공분실의 시간보다 기나깁니다많은 분들이 묻습니다언제까지 할 거냐고단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고그때마다 저는 단 한명의 조합원이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애가 터집니다.

 

많은 분들이 건강이 무너지고 난 이후를 걱정하십니다그러나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게 아니라는 게 확실한 상황인데 정리해고가 일상화 된 현장에서 우리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잘려 나간다면 전 살아도 산목숨이 아닙니다마음 같아선 회장님께 게임이라도 제안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하루를 버티면 한 명씩 명단에서 제외되는 게임백혈구가 0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352명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03년도처럼 끝난 다음에 울고불고 하지 않으려구요두 명이나 잃고 보일러도 못 켜고 그렇게 못나빠지게 살지 않으려구요솥발산에도 못 가고 추모식에도 못 가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구요그때 85호 크레인 밑을 끝까지 지켰던 젊은 친구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서 눈도 못 마주치는… 더 이상 그렇게 안 살려구요.

 

화장실 출입도 막으니 거울도 못 보던 상황이라 사진이라도 찍어서 제 몸을 보고 싶었습니다. 11일 째 되는 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내 몸은 이미 영혼을 담을 능력을 상실해가는구나저 몸을 그대로 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많이 울겠구나. 2003년의 나처럼 앉아서도 울고 서서도 울고 누워서도 울겠구나어떻게든 저 몸에 콩국 한 그릇 먹여 화색이 돌게 해야겠구나피땀도 흘려보고 피눈물도 흘려 본 저 몸뚱아리 딴 건 몰라도 콩국이라도 먹여 어떻게든 살려내야겠구나.

 

저는 아직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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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8.28 05:06 Modify/Delete Reply

    [소금꽃나무]는 정말 좋아요. 밑줄 쳐가면서 오래오래 읽은 책!
    편지글은 구구절절 김영오씨를 떠올리게도 하고요...
    아, 좋은 분들이 너무도 힘든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는 게,
    참 아프고 슬프네요.

    • BeGray 2014.08.28 12:09 신고 Modify/Delete

      예전에 눈여겨 봐놓고도 무심히 지나친 스스로가 좀 반성되기도 하고...틈나는 대로 구해놓기라도 해야겠습니다. 이런 시절일수록 무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는 게 맞는 일이겠죠-

  2. 무연 2014.08.30 03:00 Modify/Delete Reply

    BeGray님의 글을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님의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후지이 다케시의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의 [책머리에]에 있는 문장을 함께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후지이가 쓴 문장의 일부분을 남기고 갑니다(^-^). "(......) '완성된' 자본주의의 모습이 시작도 끝도 없는 원환圓環인 것처럼,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현재’만이 중요하겠지만, 다른 사회, 다른 세계를 꿈꾸기 위해서는 '역사'가 필요하다. (......) 민주주의 근원에 있는 적대에 대한 감각은, 우리가 '식민지 이후', 그리고 '민주화 이후'를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 절실한 것으로 생각된다. 적대를 덮어버린 자리에서 민주주의는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은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다양한 적대의 지점들을 드러냄으로써 매끄럽게 보이던 '역사'의 결에 수많은 균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일 것이다. 탄탄한 것처럼 보이는 역사가 수많은 조각들을 조합해서 만든 가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의 현재 역시 또 다른 조합 가능성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 BeGray 2014.08.30 21:59 신고 Modify/Delete

      사회의 적대와 균열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서 저는 후지이과 그를 인용해주신 무연님께 매우 동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역사가-비판가 사이의 어디쯤을 향하는 저의 핵심적인 동기라고도 생각합니다. 좋은 인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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