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독특한 한국어 글쓰기를 위한 개인적인 지침들.

Comment 2014. 8. 17. 17:02

씻으면서 문득 생각해봤는데, 요즘 한국어로 비학술적인 글을 쓸 때 다섯 가지를 주로 신경쓰게 된다(조금이라도 영어를--내 미숙한 수준에서나마--쓸 일이 있으면, 그 뒤에 다시 한국어로 무언가를 쓸 때 한국어의 독특함을 조금 더 민감하게 느낀다).


 첫째, 최대한 형용표현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사용하기. 의성어나 의태어만 아니라 감각적인 표현에서, 약간의 속어를 활용한다면, 한국어는 생각보다 넓은 변이형variation을 허용한다. 부드러운, 보드라운, 보드러운, 보들보들한, 보들거리는, 부들거리는...처럼 하나의 어근으로부터 전개된 다양한 변형태들 말고도, 유사한 느낌을 주는 포근한, 푸근한과 같은 다양한 표현들 중에서 무엇이 내가 표현하려는 감각에 가장 적절하게 들어맞을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 무엇보다 조금 더 섬세해지려는 시선, "대충 이렇지 않을까"라는 스스로의 답변에 한번 더 질문하고 나의 지각을 좀 더 쪼개어, 작은 단위로 표현하기. 크게 대충 엉성하게 말해야 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사물과 사물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을 그릴 때는 "1mm만 더" 구체적으로 되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조사와 어미의 사용. 어떤 언어를 활용하는 지표로 보통 이른바 (명백히 계층적인 함의를 띤) '고급어휘' 및 '자연스러운 표현'의 사용이 꼽히지만, 한국어는 조사와 어미의 사용을 얼마나 섬세하게 할 수 있는가가 그 이상의 척도가 되겠다. 조사와 어미 모두 일종의 갈림길과 같아서 아주 약간의 차이가 그 뒤의 사고와 정서의 전개를 뒤흔들어 놓고는 한다. 심지어 조사와 어미를 생각없이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전개나 뉘앙스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정말로 쓰기는 곧 자기형성임을 체감한다. 물론 언어를 명징하게 표현하기 위해 정석적인 논리를 활용하고 전개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나처럼 수사로부터 일종의 끊임없는 유혹을 받는 사람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무언가 차이와 뉘앙스를 담아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사와 어미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진동'은 매우 매력적이다. 비록 나는 실질적으로 어떤 자의식을 갖고 악기를 연주해본 적이 없지만, 매순간 뿜어져나오는 진동의 결과들을 조정하며 글의 흐름, 운동, 시간-선line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무언가 비슷할지도 모른다.


 넷째로, 빈번한 삽입절의 사용과 같은 '외국어적 논리'가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사고패턴과 내가 교육받은 한국어 글쓰기 규범 사이의 차이/간극을 맞물리기. 현재로서는 한국어라는 형식 자체가 나의 사고-언어패턴과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 후자에 의해 전자를 담아내는 형식을 조금 더 이질적인 표현형태로까지 밀어붙여질 수 있는지를 보고 싶다.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지만, 써놓고 보면 확실히 내 글은 통상적으로 말하는 '미문'과는 거리가 멀 뿐더러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최근에 앞서 적었듯 한국어 표현들을 조금 더 넓게 사용해보려고 하나 그것만으로 그 간극이 줄어들 성 싶지는 않다. 다만 여기서 나는 특정한 이념적 규범을 따른다기보다는, 일단은 미시적인 레벨에서라도 내 안에서 요구하는 논리에 따라 최대한 섬세하게 써본다는 태도만을 견지하고 싶다. 그때 그때의 입장을 관철하다보면 어떤 종류의 통일성이 깃든 스타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마지막, 적어도 문장 이상의 단위에서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전개/감각/관점을 끌고 들어오기. 특히 묘사의 구도에서. 너무나 쉽게 나오는 몸에 이미 익은 관습적인 표현이 아닌 아주 새롭지는 않더라도 나에게 배어있지 않은 무언가를 꺼내보려고 노력하기. 감각의 전개라는 층위에서도 그렇고, 자명한 사고형식(칸트든, 라캉이든, 고전적인 맑시즘이든, 모든 논리의 숙달은 사고의 거시적인 전개만이 아닌 미시적인 형식에서까지 우리를 규정한다)에서도 그렇고, 의식적으로 뒤틀지 않는 한 스스로의 시야로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발악과 같은 노력을 멈추지 않기. 한편으로 학술적인 글쓰기가 내게 그 자체의 규범적인 논리를 강요한다면, 적어도 공식적으로나마 그러한 규칙으로부터 강요받지 않는 영역에서 나를 관통하는 관습들을 보고 무언가 변이를 가져오려고 애쓰기. 그것이 권위에 의한 것이든, 대중적인 유행에 의한 것이든 지배적인 관습과 다른 나의 개성을 끌어내고, 다시 그 개성을 이루는 논리가 무엇인지 보고, 그 논리에 아주 약간의 비틀기twist를 뒤섞는 것. 권위와 유행 양자, 이미 나를 구성하고 관통하는 양자 모두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기. 매 문장을 이렇게 쓸 수 없다면 단 한 문장이라도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것. 무언가로부터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언제나, 이미" 무언가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그럼에도 아주 작은 지점에서부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도 포기하지 않기. 내 언어가 대상을 마주할 때, 그 언어에는 항상 특정한 위치가 전제되어 있음을 지각하고, 그 지각으로부터 스스로의 위치 혹은 각도를 조금 흔들어보기...


 확실히 언어의 사용은 힘의 장kraftfeld에서의 겨루기와 같아서, 매 순간의 끌림과 선택, 질문이 새로이 언어-사고-자아를 이끌고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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