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판타지 소설" 기사에 대한 짧은 코멘트.

Comment 2014. 8. 5. 10:58

다음은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의 기사 "변화하는 판타지 소설...학교폭력, 성적 등 고통을 환상으로 풀려는 고교생"의 링크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042128425



아래는 페북에서 덧붙인 짧은 코멘트. 개인적으로 10대를 판타지/SF 키드로 살았던 것도 있고, 더불어 그때의 판타지는 단순히 서사장르가 아니라 테크놀로지(PC통신-인터넷 사이트-블로그 등등)의 문제와도 결합되어 있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장르의 사회적 운동"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연구할 주제가 있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국 판타지는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확고하게 청소년들의 주요한 독서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그 기원에서부터 "차원이동"을 거친 일종의 자위적 서사가(물론 이성애-남성중심주의적인 판타지가 가득하다)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청소년의 독서가 구매량으로 측정되는 양지에서는 문제집과 참고서들로 가득하다면, 그늘진 곳에서는 주로 대여점 등을 거치거나 인터넷 연재를 통해 읽히기에 도서구입량으로 확인할 수 없는 판타지, 로맨스, 무협 장르에서 나타난 변이형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이 변이형들의 핵심서사는 재생을 통한 자위적 삶이다. 프로이트가 "가족-로맨스"에서 이야기했듯 청소년기에 자위적 서사의 상상이 나타난다는 사실 자체는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다(물론 우리는 19세기말-20세기 초 비엔나의 엄격한 부르주아 중산층 가정 내의 훈육이 아동과 여성의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정통적인 교양소설이 아닌, 재생을 통한 완전히 다른 정체성=능력의 획득(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요소가 '능력'이라는 것은 분명히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및 새로운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쾌락추구의 서사가 남성-청소년기의 주된 오락거리의 일부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분명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가?더불어 최초에, 일종의 RPG처럼 수련과 레벨업의 '과정'이 중요했다면, 이후에 수련의 모티프가 차지하는 역할이 감소하며 능력의 비약적인 상승과정으로 대체된다는 것도 통속적인 사회학적 논리가 도입될 여지가 남긴다; "정상적인" 경쟁으로 사회적 신분상승이 불가능해졌다는 믿음과(중고등교육을 통한 신분재배치에 대한 희망 포기) 재빠른 부의 이동 및 축적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금융자본주의의 도래--정확히는 그러한 자본주의가 왔다는 사회적 인식--가 과연 이것과 무관할까? 이와 같은 모티프들의 변모는 '교육기계' 안쪽에서 청소년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한가만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보다 구체적인 사회적 인식의 변모를 함축하지 않는가?

어쩌면 그 차원이동의 수단이 '자살'이 되어서야 최소한의 사회적 시선을 끌게 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청소년기의 문화와 무의식에 갖는 무관심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와 같이 서사분석에 대한 전문적(?)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 동시대에 할 수 있는 기여로 이와 같은 '음지의' 문화들을 분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사회에 제출하는 활동이 포함된다고 믿는다.

참고할만 한 자료: 리그베다위키의 "이고깽" 항목 (http://rigvedawiki.net/r1/wiki.php/이고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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