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재보선에 대한 단상

Comment 2014. 8. 2. 02:27

투표결과를 보았다. 어차피 새민련이 승기를 잡았어도 지지부진할 거라고 생각해서 딱히 11:4의 결과에 기분이 변하지는 않는다. 새민련의 당직자와 책임자들은 자신들의 삽질 때문에 엄한 사람들,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에, 이 선거의 결과로 청도의 진압은 더욱 파도처럼 밀려갈 것이며 사람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치워지는 속도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사실에 일순간의 책임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을까? 그들은 10석이 있든 100석이 있든 유의미한 차이를 별로 보여주지 못했고, 선거를 준비하는 전술도 형편없었다('전략공천'은 웃음밖에 안 나온다...그런 건 전략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지). (새민련 직속은 아니지만) 노회찬 공약이나 나경원 공약이나 고만고만하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도대체 그동안 뭘 준비했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질 만 해서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판국을 여기까지 끌어온 인간들이 최대한 빨리 책임을 지고 나갔으면 좋겠다.

안철수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만 다 한 뒤 얼른 본업으로 돌아가는 게 모두에게 좋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대체로 정치적 감각이 없고, 큰 그림을 그리자고 말은 외쳤지만 현실적으로는 민주당 내에서 자기 파벌 구축하려고 발버둥치다가 같이 선거 말아먹은 거 말고는 기억에 남는 인상이 없다. 정확히 6년전에 마찬가지로 성공한 기업인 출신으로 영입된 문국현이 어떤 전철을 밟았는지 꼼꼼히 연구해보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 정도의 준비도 안 했으면서 전혀 다른 필드에서 성공하기를 바랐다면 게으르고 멍청하다고밖에는 평을 내릴 수 없다. 연구자로 치면 '선행연구'를 안 한 셈이고, 기업가로 보면 '시장조사'를 안 한 셈인데, 공교롭게도 안철수는 두 가지 경력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인지도를 얻지 않았는가. 이제 대충 기업가 거품은 한국에서 꺼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유감스럽게도 기업적 조직문화는 대학을 포함한 한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혹시라도 후발주자가 있다면 문국현, 안철수라는 망한 전례들을 꼼꼼히 연구하고 왔으면 좋겠다.

새민련은 컨트롤타워가 없나 했더니 뇌=Think Tank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적어도 그 정도 경력이랑 자원, 인력을 갖춘 정당이면 제대로 된 정책연구소가 지역별로 맞춤공약을 짠 뒤 경선에서 누가 이기고 선택되든 적어도 공약은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제공해줄 수 있어야 했다. 벼락치기로 몇 주만에 후보가 결정되었는데, 공약에서 새누리를 이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기길 바라는 게 어렵지 않나. 이 문제는 특히 전략공천에서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계파 간 시스템으로 쪼개지다보니 (대중정치에서 필수적인) 전체 정당의 이미지메이킹에 효율적인 모습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그 안에서 나눠먹을 건 나눠먹더라도 바깥에 보여지는 그림은 어떤 모양이어야 되는지에 대한 상식적인 판단은 있어야 하는데, 지난 1년여간 새민련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까놓고 말해 세월호 사건을 둘러싸고 새민련이 한 게 뭐가 있나? 결국 사람이 바뀌어도 퀄리티를 유지하려면 전체적인 그림을 짜고 조직이 활동할 수 있는 근거인 지식/정보를 제공하는 두뇌집단이 필요한데, 새민련은 적당히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빼와서 잠시 면피 하다가 단물 빠지면 폐기처분하는 어리석은 전략을 포기하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기업으로 치면 R&D가 안 되는 기분. 새민련의 계파갈등구도는 기본적으로 보스 모델에서 보스가 빠졌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를 염두에 두고 보면 그럭저럭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당분간 보스가 등장하긴 어려울테니 상식적인 지식-정보를 구축하고 거기에 모두가 따라가는 시스템이 낫지 않겠나.

진보정당들은... 개인적인 선호를 떠나서, 통진당이 일단 사라져야 그 다음에 뭘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노-녹-정(정의당이라니, 좌파가 이렇게까지 추상적인 가치로 후퇴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이나 있을까? 정의당 당직자들은 자신들의 당명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나 할까?)이 합당을 하든 선거 때 연대하든 뭐가 좋은지는 지금 생각해봐야 잘 모르겠고... 통진당이 차폐막으로 존재하는 한 진보계열이 새민련의 지분을 먹어들어가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통진당이 알아서 문 닫고 그 다음 마비상태인 새민련을 쪼면서 지분을 먹어들어가는 건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처럼 소수당이 다수당 지분을 잠식하게 좋은 타이밍이 얼마나 있겠나?) 전자가 눈 감고 기다린다고 실현되지는 않을테니 무언가 새로운 걸 할 만한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치고 심지어 정당 지지자들도 세 당 사이의 변별력을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이 분할되어 있는 게 무슨 효과를 낳는지 잘 모르겠다. 철저히 이기기 위한 싸움으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여튼 지금은 새민련에 들어가도 one of them이 될 뿐이고 남아 있어도 각개격파 당할 뿐이라서 (녹색당은 이런 상황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전환점 없이는 정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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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licalday 2014.08.02 10:02 신고 Modify/Delete Reply

    나는 되려 안철수라는 패도 이렇게 지지부진 자멸했는데 새로 등장하는 패들이 효과를 낼 지 모르겠다. - LSM

    • BeGray 2014.08.02 18:12 신고 Modify/Delete

      안철수라는 패는 사실 처음부터 지지부진했지. 돌이켜보면 명확히 정당재조직화에 대한 플랜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새민련에 들어가서 한 게 공천권 행사랑 몇 가지 무의미한 발언 뿐이었다는 건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모습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준비가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함. 새민련의 계파들도 새 계파 하나 만들어주고 (보스감은 아니었으니까) 잠깐 지지도 상승 노린 것 이상을 의도했다고 생각되지는 않고.

      제대로 된 새 패를 생각한다면,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봄. 아니면 아예 담론 판을 새로 짜거나. 어차피 안 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는지라...

    • holicalday 2014.08.02 20:33 신고 Modify/Delete

      ㅇㅇ 애당초 새민련보다 훨신 전부터가 지지부진했던게 맘에 안 든다. 고도의 야당 안티인가 싶기도 할 정도로

    • BeGray 2014.08.04 02:17 신고 Modify/Delete

      이 정도 수준으로 준비하고 나온 것도 한심하고, 덥석 문 새민련도 한심하고... 그래서 DPD, 내려갈 당은 내려간다 인 거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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