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Comment 2014. 7. 4. 15:21

첫 학기 성적이 드디어 나왔다. 성적만 보면 그럭저럭 적응에는 성공한 듯 싶다(아주 좋은 건 아니다...걱정했던 것보다는 낫다). 여전히 나는 이 공간이 나에게 맞는 공간인지, 혹은 내가 이 공간에 맞는 인간인지 확신하지 못한다--그렇다고 유학을 간다면 더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내가 뿌리를 두고 있다고 믿는 삶들과 그렇게 '절단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상상만 해도 강렬한 위화감을 느낀다. 페이스북으로 치자면, 온통 착취와 피로, 절망으로 가득한 삶의 코멘트를 본 뒤 곧바로 아주 행복하고 밝고 빛나고 미소로 가득한 삶의 단면을 보았을 때 쉽사리 '좋아요'를 누를 수 없는 것과 같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내게 행복은 너무나 쉽게 잊혀지고 고통은 심지어 그 기억이 잊혀진 뒤에조차도 어떠한 잔상 혹은 파동으로 남는다...내가 특별히 윤리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삶의 어떤 시점부터 그게 나의 idiosyncrasy가 된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고 해도, 적어도 여기서 살 때는 어떤 형태로든 그런 면모들과 접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건 조금 다르지 않을까.

공부는...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는 재미있다. 아마 그 공부와 내가 요구받는 공부 사이의 미묘한 간극이 나를 흔들리게 하는 원인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 학기에 쓴 두 편의 페이퍼를 한 친구가 (고맙게도) 다 읽어주었다. 아주 명확하게 한 글이 다른 글보다 낫다고 평했다. 나도, 나에게 만약 재능 비슷한 것의 찌꺼기라도 있다면 (고백하건대 나는 늘 스스로에게 결여된 재능에 대한 강렬한 의심, 열등감, 스스로의 명확함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살아왔다...만약 누군가 나를--사실과 다르게--성실한 사람으로 본다면, 그건 부족한 재능과 감각을 메꾸기 위한 발악의 발로일 것이다; 노력과 애정, 그리고 자기반성은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기다) 그 친구가 더 낫다고 평한 글에 들어가는 재능과 같은 방향일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학위논문을 쓸 때 유쌤이 딱 한 번 "너는 이런 쪽에 재능이 있구나"라고 말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지금과 같은 분야에서였다...그래서 그 다른 분야를 그만큼 메꾸고 싶었는데 역시 쉽게 되지는 않는다. 내가 알기로 한국에서 '그런' 종류의 사고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해주는 학문분야는 없다. 어찌됐건 나에게 딱 맞는 공간, 내가 아무런 불편없이 있을 수 있는 자리는 (적어도 공부의 분야에서) 아직 본 적이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세미나의 일부도 사실은 무언가 다른 공간, 다른 영역을 찾고 싶은 마음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역시나 네버랜드는 없다는 걸 확인할 뿐이다.

글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코멘트를 받고 간단하게 수정을 거친 후에 올리려고 한다. 아마 그 글들의 성격 상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언제 어디에서인가 나와 같은 종류의 발상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그 글이 닿는다면 적어도 그는 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자기위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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