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5일 일기. 3주차 수업 준비를 하며 / AI 관련 질문들
2월 초부터 오늘까지 포닥/연구원 지원서를 세 개, 총 30쪽 정도 썼다. 심사자의 가독성을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쓸 필요가 없음을 알지만, 마지막까지 찾아볼 수 있는 자료를 찾아 본 뒤에야 뭘 쓰는 성격이다보니 모두 마감 직전까지 피를 뽑아내는 시간을 보냈다(아직까지는 하루 정도 쉬면 컨디션이 회복되는 수준의 체력은 유지해서 다행이다...). 2년 이상의 연구일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하다보니 그동안 블럭조각처럼 하나씩 생각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을 수 년 단위 호흡의 큰 프로젝트로 연결해볼 기회를 얻은 것은 좋은 일이다. 이제부터는 운의 영역이라, 모쪼록 하나라도 선정되기만을 바라면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간 동안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은 수업(준비) 시간이었다. 여러 여건을 고려할 때, 내가 앞으로 대학원에서 성실하고 뛰어난 학생들을 혹독하게 채찍질(?)할 수 있는 직장을 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수업 하나가 정말 귀중하다. 앞의 4-5주차는 중반부의 본격적인 전개를 위한 지적인 토대를 만들어주는 자리이기 때문에 강의 비중이 높다(설명을 시켜보면 대학원생답게 조리있는 답변을 내놓으려 하지만, 역시 아직은 낯선 주제, 낯선 텍스트에 적응하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수업 전반을 세심하게 구획하고 조정하면서도, 동시에 학생들이 지적인 능동성을 발휘하도록 자극해야 한다. 요건은 지식의 집약체를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읽고 질문하는 능력, 텍스트와 대면했을 때 자신만의 (설득력 있는) 분석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단순하게 구성된 것이라해도, 인간의 사고 모듈은 결국 개인 스스로의 내면에서 생성해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교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자료를 읽히고, 분석한 내용을 언어화하게 하고, 결과물에 피드백을 줘서 특정한 방향으로 안/가도록 유도한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학생이 참고할 수 있는 사고/독해의 모델을 제시한다(내 수업의 현 단계가 이쯤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걸 이해할 수 있는 학생만이 그걸 이해한다는 순환문제가 있다). 과장하자면 이게 교육의 전부다. 물론 이렇게 간략화된 단계 하나하나는 매우 미묘한 선택의 순간들로 구성된다. 눈 앞의 학생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어떤 자극을 어떤 방식으로 제공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지 교수자는 매순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곧바로 확인할 길은 없고, 결과물이 나올 때쯤이 되면 되돌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있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는 특성상 같은 조건에서 반복시행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교육경로를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제한적인 경험자료만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교수자는 최대한 자신의 추체험을 가동하는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것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성을 요구하는 영역에서 좋은 교수자를 안정적으로 생산해내기 힘든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학생으로서의 나는 정말 싫어했지만, 일단 많이 외우고 많이 쓰라는 식의 교육이 왜 그렇게 오래 유통되었는지 이해는 간다. 수준과 성취도를 파악할 수 없는 다수의 학생을 계속 굴리다보면 대체로 뭐가 되어 있기는 하니까. 이해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겉보기에는 그럴싸하게 읊을 수 있는 학생이라니, 오늘날 우리가 경탄하는 AI챗봇의 원형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셈이다)
고작 두 번의 수업을 했지만, '어렵다', '재밌다', '텍스트를 (새롭게)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 느낌이다' 등의 반응은 분명 힘이 된다. 하지만 아직은 수업 기획을 조정하고, 어떤 것을 읽힐지 고민하고(지금은 Grafton의 _What was History?_를 살펴보면서 다다음 주차 커리큘럼에 보댕을 추가할지 여부를 생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헌을 찾아보고, 학생들에게 단순히 과로 이상의 생산적인 자극을 어떻게 줄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좀 더 좋다. 7월까지 해치워야 할 일이 한가득이지만, 일단은 아직 모든 것이 낯선 초보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좀 더 만끽해보자는 마음이다.
노블AI와 챗GPT의 등장 이래 자연어 기반 생성AI가 무엇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는 모두가 한번쯤 이야기하는 주제가 되었다. 나는 여러 유형의 기술 낙관/비관론을 반복하는 것보다는--어쨌든 우리의 역사는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미래예측에 대체로 실패해왔음을 보여준다--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에 좀 더 관심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1. 글쓰기, 코딩, 이미지작업을 포함해 이제 여러 영역에서 중-저숙련 자의 시장가치는 떨어질 것이며, AI를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는 고급/숙련자가 생존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예컨대 글쓰기와 같은 영역에서, "고급 글쓰기"의 기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애초에 우리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가?
2. 중-저숙련 단계의 작업자들이 대체된다는 전망은 공통적인듯 하다. 그렇다면, 중-저숙련 단계를 생략하고 고숙련/고급 기능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소비와 평가의 영역에서는 중-저숙련을 어느 정도 생략/단축해도 고급 감식안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창작-생산-개선의 과정에서 전통적인 숙련단계를 거치지 않고 고숙련자가 탄생할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 가능한가? 없다면, 중-저숙련 단계에 상응하는 훈련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가?
3. 낙관론과 비관론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이는 비교적 단순한 사회 모델을 상정한 후 '신화화된' AI가 마치 백지 위에 무언가를 새로 쓰듯이 사회를 바꾸는 게 가능하다는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기술적 발전도 "모든 죽은 자들이 산 자의 머리를 짓누른다"는 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고도화된 AI라 해도 그것이 어떤 사회의 무슨 맥락에 놓이는지, 또 어떤 장치/행위자들과 연결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방식으로 활용/작동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AI가 정확히 어떠한 변화를 초래할지, 또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생산적으로 논의하고 싶다면 우리는 AI와 조우하게 될 인간-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졌는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이들은 AI 인접 영역 기업을 분석하는 투자가들일 것이다). 요컨대 AI는 '맥락화'되어야 한다.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그 '인간-사회적 맥락'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가(과연 알고는 있는가?)? 그러한 환경과 맥락을 지식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연구자들이 필요한가? 그런 연구자들을 안정적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투자가 필요한가?
4. 3번의 연장선에서, AI가 인간의 편견을 얼마나 재생산하는가, AI가 얼마나 해롭거나 유용한가, AI가 일자리를 얼마나 없애고 만들 것인가...등등이 마치 AI와 우리의 운명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중요한 이야기인 것처럼 논의되는 상황에 나는 다소 지루함을 느낀다. 내 생각에 좀 더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AI와 사회에 관해 우리가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사고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데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