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박사하기: 젊은 연구자 8인이 말하는 대학원의 현실』 출간&프롤로그.
기획 및 공저자로 참여한 『한국에서 박사하기: 젊은 연구자 8인이 말하는 대학원의 현실』(북저널리즘, 2022)이 출간되었다. 교수신문 천하제일연구자대회 기획위원회의 요청으로 처음 좌담회 기획안을 쓴 게 2월 초, 좌담회를 실제로 진행한 것이 3월 말이다. 5월 초에 출간제의를 받아 기획안을 썼으니 약 7개월 정도 작업 기간을 거쳐 드디어 결과물이 나온 셈이다. 상세한 소회는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할 일이 있을테니, 지금은 일단 우리 시대, 젊은 연구자들의 감각에 부합하는 대학(원)론, 인문사회학론을 새롭게 논의하기 위한 최초의 본격적인 시도라는 점만을 밝히고 싶다.
아래는 출판사의 양해를 얻어 올리는 책 프롤로그 초고 전문이다.
*전자책으로는 12월 16일 경 출간될 예정
한국은 대학 진학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학력 사회다. 이미 1950년대부터 “소와 밭을 팔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의미의 ‘우골탑’이란 표현이 등장했으며, 고등학교 졸업생의 고등 교육 기관 진학률이 70퍼센트 안팎에 도달한 2010년대까지 경제적 형편으로 인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사람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대학 진학은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도 있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이자 별다른 전략적 자원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이자, 식민 지배와 전쟁, 체제 경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 계속해서 노출되어 온 한국 사회는 교육을 통한 인적 자원의 확보야말로 국가의 생존 전략이라는 믿음을 공유한다. 1990년대 이래 설파된 “지식 기반 사회”나 “지식 근로자”와 같은 표현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각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뛰어난 지적 역량을 갖춘 인재를 육성해야 하며, 그러한 ‘고급 인력’의 생산 과정을 책임지는 것은 대학의 역할이다.
대학을 향한 이토록 거대한 열정 뒷면에는, 기묘하게도 그러한 대학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람직한 대학 교육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자리한다. 한국 사회가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최근에 추가된 비리·논문 표절과 함께) 등록금, 입시, 취업률, 노벨상 같은 몇 가지 쟁점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간단히 말해 학생의 입학과 졸업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우리의 고등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같은 주제는 한국의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국내에 고등 교육 전문 연구자는 극히 드물며, 종종 타국의 성공 사례를 이식하는 게 우리 대학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양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대학원은 그러한 무관심의 정점에 위치한다. 대학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은 ‘공부를 좋아하는 별난 사람들이 가는 곳’, ‘스펙에 한 줄 더하러 가는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쌓는 곳’ 정도가 그나마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인과 관료를 포함해 대학원 관련 제도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들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특정 분야의 전문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정도의 인식을 제외하면, 한국의 공적 기구 역시 대학원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이 지식 기반 사회, 더 많은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구호가 일상이 된 지 20년이 넘었다. 1990년에 8만 명 정도였던 대학원생의 수가 2010년대 이르러 30만 명으로 증가하는 동안에도 전문성의 창출과 직결된 대학원에 관한 제도적인 고민은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 사회가 “대학원(생) 문제”에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대학원생의 열악한 처우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2010년대 중반부터다. 대학원에 가면 여러 부조리를 감내해야 한다는 씁쓸한 지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것이었으나, 2010년대를 경유하여 이는 처음으로 사회적인 의제가 되었다. 2000년대 이래 한국의 일상을 빠르게 바꾸어가던 인권 담론은 몇몇 대학의 인권센터 설치를 기점으로 대학원의 후진적인 문화에 조명을 비추기 시작했으며, 2015년 “인분 교수” 사건을 포함해 각종 인권 침해·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대학원생의 처우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표준에 미달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무엇보다도, 본 좌담회에 참여한 필진 일부를 포함하여, 폭로와 고발을 넘어 조직화를 통해 입법 및 교육 행정 등 공식적인 영역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대학원생들의 등장은 단기간에 적지 않은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소수의 방어적인 교수를 제외한다면 한국의 대학원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이제 사회 전반에 널리 공유됐다.
의제화가 해결이 아닌 출발이라는 사실은 대학원 문제에도 마찬가지로 해당한다. 이제껏 한국의 제도와 사회는 인권 침해, 성폭력, 안전과 같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처벌과 관리라는 직관적인 해결방식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 예컨대 대학원의 교육적 책임을 어떻게 강화할 것이며, 한국에 필요한 대학원의 모델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와 같이 대학원 개혁에서 피할 수 없는 까다로운 쟁점은 조용히 잊혀졌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복잡성을 요구하는 문제를 소화할 수 없는 무능력은 대학과 교수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수의 일탈적인 사례”로 인해 교수들이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항변이 횡행했으며, 외부의 압력이 들어오기 전까지 미동도 하지 않는 대학의 모습은 대학의 자율적인 혁신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했다. 무엇이 문제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하냐는 실천적인 고민은 여전히 소수만의 문제의식으로 남아있다.
주어진 의제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제도의 무능력은 다음과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대학원생은 교수의 노예”,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대학원은 ‘좋소기업’과 같다”와 같은 표현처럼 대학원 자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청년 세대에게 빠르게 확산되었다. 청년 세대의 고민에 늘 둔감했던 한국의 지식인·교수 집단은 이러한 상황 자체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으며, 대학과 학계는 담론장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이 외면당하는 것은 단순히 인구 구조나 낮은 기대 소득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현재 대학과 학계의 중추를 구성하는 586 및 그 이전 세대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생활 수준과 현재의 청년 세대가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교육 환경의 개선 없이 “공동체 정신”과 “헌신과 열정”과 같은 덕목만을 강조하는 기성세대 교수들의 주장은, 설령 그러한 덕목 자체에는 동의한다 해도, ‘차라리 취업을 하지 뭐 하러 그런 데를 가냐’라는 학생들의 냉정한 반응을 바꿀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학원의 문제는 대학원의 위기가 된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을 약자이자 피해자로, 혹은 반대로 ‘열정과 패기’를 상실한 나약한 이들로 부르는 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답변이다. 오늘날 대학원생의 삶은 가해와 피해, 노력과 태만이라는 단순한 잣대로만 재단될 수 없을 만큼 매우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학술 연구와 지식 생산의 중요성은 급격히 확대되었다. 전문지식의 양은 과거의 어느 때와도 견주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팽창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결합하는 예도 빈번해지고 있다. 그에 부응하듯 교육 연구 환경으로서의 대학원을 구성하는 장치들 또한 더욱 다양해졌다. 1980-90년대의 대학원생은 상대적으로 또래 집단과 학과, (제한된) 종이 매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았다. 영어권 학술장을 중심으로 학술 자료의 전자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SNS 등을 통해 타 전공자와 교류할 가능성이 높아진 2010년대 이후의 대학원생은 매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할 것을 요구받는다. 대학원 과정에 대한 기대치와 지원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지도교수 및 학과만이 아닌 학교, 학술 단체, 국가 기구, 국내외 학술장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자원 역시 교육 연구 환경의 일부분을 구성하게 되었다. 요컨대 대학원의 안과 밖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졌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인문‧사회 분야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1990년대 이래 “인문학의 위기”, “문과의 위기”는 상존했으며,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의 전망이 사회를 뒤덮고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의 수요가 상승한 최근에는 아예 인문‧사회 영역 자체를 사양 분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단순한 주장이 현대 사회 및 지식 생산의 복잡성을 거의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인문‧사회학계가 정확히 어떤 점에서 위기인지, 어째서 그러한 위기가 지속 혹은 심화하는지, 나아가 그러한 위기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는 소수의 문제제기를 빼면 아직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 한쪽에는 인문‧사회 분야가 대표해온 가치들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주장이, 다른 쪽에는 사회가 바뀌니 인문‧사회 영역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는 입장이 맞선다. 그러나 양자는 방향만 반대일 뿐 명확한 근거와 성찰 없이 피상적인 믿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정작 인문‧사회 분야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으며 지금도 엄청난 팽창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러한 사실 저변에 있는 여러 요인의 상호작용은 아직 의사결정권자들은 물론 학자들의 시야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유의미한 분석의 부재는 그 자체로 한국 인문‧사회학계의 위기를 지속시키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의 (인문‧사회) 대학원·학계를 설명해온 언어가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관습적인 설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출발점은 신진연구자·대학원생 자신의 시선과 경험이었다. 당사자성이 피해자성의 호소에서 멈추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조건을 설정했다. 먼저 우리는 이 자리가 그저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지적 배경과 연구 환경을 지닌 사람들의 깊이 있는 상호작용이 되기를 기대했다. 좌담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목차에서 드러나듯, 우리는 무엇보다도 참여자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출발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대학원 풍경, 나아가 학계의 현재에 관해 각자의 의견을 솔직하게 공유하도록 주문했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이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풀어놓는 대신, 한 명의 연구자로서 스스로가 경험한 교육과 연구 환경, 나아가 그러한 장치들의 거버넌스에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선택한 형식이 한국 인문‧사회 분야의 대학원 또는 학계에 관해 지금껏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던 사항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책의 내용은 2022년 3월 20일 《교수신문》 “천하제일연구자대회” 코너 중 <30대 신진연구자에게 듣는다> 좌담회 원고를 토대로 상당한 수정과 증보를 가한 것이다. 해당 좌담회의 요약 편집본이 두 차례에 걸쳐 《교수신문》에 게재된 이후, 비판과 응원의 목소리 모두 적지 않았다. 이후 북저널리즘에서 좌담회 전문을 다듬어 출간하고 싶다고 제안해주셨고, 《교수신문》 및 천하제일연구자대회 기획위원회에서 흔쾌히 동의해주시면서 출간을 진행하게 되었다. 애초에 본 좌담회 자체가 4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던 만큼 이미 적지 않은 분량의 녹취 원고가 있었지만, 모든 필진이 서로의 발언을 읽고 질문과 논평을 주고받는 편집과정을 거치며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다. 여전히 제대로 다루지 못한 주제와 영역이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도한 부연이 이루어진 대목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아쉬움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대학원과 학계, 지식 생산에 관해 더 많은 주제를 더 깊게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처음 출간을 제안해주신 북저널리즘 김혜림 에디터님, 출간에 동의해주신 《교수신문》 기획위원회 및 김봉억 편집국장님, 추천사 집필을 맡아주신 박은하 기자님께 감사드린다. 지금도 각자의 연구 주제와 고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모든 동료 대학원생·연구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필진들을 대표하여 이우창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