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근황 기록

Comment 2023. 9. 21. 18:53

지난 두 달 간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 모두에서 앞으로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변화를 마주했다. 덕분에 필수적인 업무를 위한 것 이외의 읽고-쓰기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 찰나의 망중한에 키보드를 앞에 두고 근황을 기록한다.

 

1.

 

9월 1일자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서 서양사를 전담하게 되었다.

 

학석박 모두 영문학과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설령 역사학과가 아니라고 해도) 서양사를 가르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은 좋고 나쁨을 떠나 한국의 인문학계에서 대단히 드문 일이다. 나는 스스로를 지성사 연구자로, 또 영문학계 내에서 가장 역사학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이라고 생각해왔으며, 박사학위 논문 준비 전후 과정에서 가장 긴밀하게 교류하고 함께 작업한 이들 역시 역사학 연구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 분과 쪽에서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지원서를 낼 때 거의 모든 조언자가 별다른 기대를 품지 말고 그저 지원해본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라고 이야기해주었고, 나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여러 행위자 각각의 선택이 기묘하게 엇갈려, 지성사가들이 흔히들 하는 말을 가져오자면,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 복기해보면 지난 두 달 간 벌어진 극도로 우연적인 전개에 관해 이 이상의 설명은 어려울 듯싶다.

 

 

2.

 

영문학을 포함한 타 전공자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겠으나, 사학 전공자들이 스스로의 공부에 부여하는 학문적 기준은 상당히 높으며 나는 연구자로서 그러한 학적 자부심에 언제든 존경의 마음을 표현할 준비가 되어 있다(영문학 전공자들에겐 다소 박한 평이라 느껴질지 모르나, 똑같은 학술대회 발표라고 해도 사학 쪽이 지적 밀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그렇기에 역사학계에서 보다 '정통적인' 역사학적 훈련을 받은 연구자가 서양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아쉬움을 품는 분들이 계신 것도 무리는 아니다. 특히 평소에 나의 학적 작업과 마주칠 일이 없었던 다소 윗 연배의 선생님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역사학 분과로 한층 본격적으로 들어선 나를 가장 환영해준 이들이 나와 지적으로 교류해온 비교적 젊은 역사학 전공자들이라는 사실은 큰 힘이 되지만 말이다.

 

그러한 의구심에 대해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응답의 최선은 앞으로 교육과 연구, 학계 활동 모두에서 역사학 전공자의 시선에, 또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준 이들의 믿음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보여드리고자 노력하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3.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서양사 전공 과목의 운영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과제는, 물론 실제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정과 변경을 피할 수 없겠지만, 다음의 두 가지다. 하나는 학부 수준에서 서구 지성사, 특히 정치사상사 연구의 성과를 개괄할 수 있는 과목을 만들고, 특히 방송대만이 아닌 전국의 역사학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과서를 제작하는 것이다. 나의 연구방향을 고려하면 17-18세기 유럽 사상의 비중이 다소 클 수는 있겠지만, 가급적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구 사상의 궤적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주제를 포함시키고자 한다. 지금까지 일부 전공자들의 연구에 국한되었던 지성사, 그리고 그에 기초한 서구 정치-도덕 언어의 변화를 좀 더 일반적으로 접근 가능한 지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서구인들의 사고를 이해하지 않고 서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서구를 이해하지 않고 우리의 근현대를 이해하는 것은 좋든 싫든 불가능하다.

 

두 번째 과제는 여성사 과목을 보강하여 서구 젠더의 역사를 개괄할 수 있는 과목을 만드는 것이다. 내 학위논문 및 (지난 학기 성균관대 사학과 대학원수업을 포함해) 그 전후의 작업을 보신 분들은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연구자로서 나는 18세기 영국 초기 여성주의를 포함해 근현대 성별 담론을 구성하는 여러 주제를 지성사적으로 검토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좁은 의미의 여권 신장의 역사보다 좀 더 포괄적인 시선, 특히 성별 규범과 재생산의 문제가 가족과 국가, 문명과 같은 주제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무엇보다 지금까지 종종 단순히 "가부장제"라 지칭되어 왔던 복잡한 요소들의 집합체가 실제로 어떤 것들이었는지 역사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예컨대 20세기 중반까지 통용된 '여성주의적 역사'가 실제로 18세기에 구축된 문명사의 도식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자가 후자의 도식으로부터 뼈대를 빌려오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우리는 여권론의 역사 자체를 좀 더 복잡하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심증을 얻게 된다). 물론 실제 과목에서는 이를 내가 담당하는 학부생들이 소화할 수 있는 언어와 주제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요구되겠지만 말이다.

 

혹여나 이러한 방향이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서양사라고 생각해오던 것, 즉 문명사적 통사와 몇 가지 '시의성 있는' 주제를 소개하는 교육으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과도한 우려야말로 학생들의 역량과 흥미를 지나치게 좁은 범위로 제한하여 인문학-역사학 교육의 가능성을 좁히는 게 아닐까? 특히 공식적인 고등교육의 통로 바깥에서 막대한 분량의 '역사컨텐츠'가 대중에게 곧바로 밀려들고 있는 지금, 고등교육에서의 역사학 또한 스스로의 존재증명을 위해 학계의 전진을 좀 더 능동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를 휘감고 있는 난국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에 응답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뽑아드는 것, 그게 지금 우리 연구자-교육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라 나는 말하고 싶다.

 

 

4.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 지점에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지성사적 접근법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이렇게 학문 분과를 가로지르는, 또 사람들에게 낯설고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선택이 학계에서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지 걱정해주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

 

내가 대학원생 인권/연구환경 개선 활동을 (심지어 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오래, 또 진지하게 해나갈 때, 이러한 삶이 과연 보수적인 교수 집단에 어떤 식으로 비춰질지를 우려하는 시선 또한 일상적인 것이었다.

 

한국의 학계는 여전히 "전공적합성"이라는 이름으로 전공 간 격벽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곳이며, 설령 제 아무리 합리적인 목적을 상식적인 수단으로 추구한다 할지라도 '무언가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에 대해 경계심을 느끼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해당 기관에 소속된 분의 응원을 받고 지원한 어느 연구원 자리에서, 대학원 총학생회 경력을 문제삼은 어떤 교수의 필사적인 반대로 임명 마지막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학과가 그어놓은 보수적이고 안전한 그리고 지루한 테두리를 넘어 지적으로 더 흥미롭고 도전적인 연구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또 우리 자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대신 고쳐주지 않는 고장난 현실을 감히 수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큼은 기쁘다. 기존의 편견이 결코 우리의 진전을 완벽하게 가로막지는 못한다고, 가끔은 그런 선택들을 하고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고 말이다.

 

오늘날 인문학 연구자로서의 길이 그다지 권장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세속의 지혜에 모든 선택을 맡겨버리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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