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Reading 2014. 9. 27. 00:20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 <쓰레기가 되는 삶들: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_Wasted Lives: Modernity and its Outcasts_). 2004. 정일준 역. 새물결, 2008. 를 읽었다. 새물결이지만, 번역은 괜찮다. 6년 전 출간된 책인 것도 있겠으나 What's up? 총서가 그나마 번역퀄리티를 유지하는 듯. 이 책을 (<새로운 빈곤>과 함께) 산 건 거의 2010년쯤이니까 꽤 오랫동안 묵혀두었다가 이제 읽은 셈이다. 지금 읽은 건 네 가지 이유에서인데, 1) 2009년쯤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의 <슬럼, 지구를 뒤덮다>_Planet of Slums_를 읽고 잉여 혹은 '버려지는 삶들'은 성찰해보고 싶은 주제라고 계속 느끼고 있었고 2) 책을 샀으니 읽어야 했으며 3) 얼마 전 한 지인이 바우만을 프랑크푸르트 학파적 작업의 후신 식으로 소개해주었고 4) 집중하긴 어렵고 책은 읽어야 하는데 눈에 띄어서. 그래서 죽 사러 오가는 김에 훌훌 읽었는데 (본문은 240쪽 밖에 안 된다) 훌훌 읽어도 될 책이었다-_-.


1~3장은 물리적인 쓰레기만이 아니라 잉여노동력, 잉여인구, 난민과 같이 현대사회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사례들을, 4장은 (아마 바우만 자신의 연구일...이 책이 내가 읽은 바우만의 첫 저서다) 일종의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일반론으로 올라가 현대사회의 문화/정신의 층위에서 어떻게 잉여와 쓰레기, 소비와 폐기물의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다룬다. 근데...바우만 본인도 서문에서 '예비적인 분석'이라고 쓰긴 했지만, 거의 스케치에 가깝고 깊은 이야기는 별로 없다. 그러니까 현상을 묘사하는 말들은 멋진데 그런 묘사들의 나열만 계속 이어진다. 읽다보면 그래서 잘 알겠는데 뭐 어쩌라고, 이런 기분.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내가 다 잘 알진 못하지만, 아도르노는 이것보다 훨씬 숙고할 만한 이야기를 했다. 아도르노가 이 책을 읽었으면 현상에 대한 얄팍한 스케치를 반복하며 정작 동적인 계기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책이라고 코멘트 했을 거다. 굳이 이 텍스트에서 뭔가 이론적인 종합 비슷한 걸 시도하는 게 4장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별로 성공적인지 모르겠다. 바우만 자신이 다루는 현대성/근대성의 관점에서 유동성을 소비주의랑 연결시키고, 거기에서 일회성 폐기물의 필연적인 생산을 끌어내긴 하는데 애초에 1-3장에서 다루는 '잉여'의 광범위한 사례들은 그렇게 꼬치 꿰이듯 쉽게 정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1-3장은 단순한 스케치 및 여러 인용구들의 광범위한 연결에 (로익 바캉이 종종 인용된다...바우만 국역에서는 "와캉"이라고 인용되었지만, <가난을 엄벌하다>는 "바캉"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으니 참고할 분은 참고하시라) 머물고, 4장의 이론화는 진부할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평범하다: 마치 사례들의 상승없는 무한한 수평적 연결을 보는 것 같다. 나는 바우만이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논의와 쓰레기/잉여의 문제를 변증법적이든 아니든 연결시키면서 양자 모두의 성격을 조금 더 잘 드러내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책은 거기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굳이 체크할 포인트가 있다면 사태의 '전 지구적' 성격을 드러낸다는 것, 한두 대목에서 서로 다른 국가/사회 간의 착취를 언급한다는 것, 쓰레기/잉여의 전 지구적 포화상태를 언급한다는 것 정도인데 이것들을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논리를 적어도 명시적인 수준에서는 제공하지 못한다. 지구화 과정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깊게 다루지 않는 이상 그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의 경향들이 도드라지는 오늘날의 문화적 현상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파헤치는 건 어려울 것이다. 몇몇 대목들을 붙잡고 주의깊게 비판적으로 읽다보면 얻을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그 사이에 다른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차라리 사회학적인 포커스나 영감의 제공으로는 앞서 언급한 마이크 데이비스의 책을 훨씬 권하고 싶다. 국가와 잉여의 관계를 본다면 차라리 바우만이 인용하는 아감벤이 낫다. 이 책에서 종종 언급하지만 별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는 국가의 문제를 보고 싶다면 푸코의 후기 저술을 보라(과장을 보탠다면 이런 책 열 권보다 후기 푸코 강의록 한 권이 더 낫다), 요즘 바우만의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이 책이 바우만의 주저가 아니며 바우만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도 아니길, 그래서 다른 책들도 이 정도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누가 잉여에 관한 책을 물어봐서 별 생각없이 이 책을 거론했었는데, 미안한 심정이다-_-;; 아, 예쁘고 그럴듯한 인용구는 많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하나 건졌다. "전반적인 상황을 무작위성, 순수한 우연성,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운명이 지배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그리고 우연한 연쇄, 설명할 수 없는 사고, 불합리한 추론에 대해서는, 뇌물이나 협박에 의해 유지되거나 해체되는 일시적인 권력 동맹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방어책도 생각할 수 없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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