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 <프리즘> 일부인용. [130616]

Reading 2014.03.18 13:49

* 2013년 6월 16일 페이스북


"예술에서의 극단주의는 사물의 논리 내지 은폐된 것일지라도 어떤 객관의 논리에 따를 것이냐, 아니면 단지 사적인 자의나 추상적 체계에 따를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체의 정당성을 자신이 부정하는 전통으로부터 추출해낸다. 헤겔은 어떤 새로운 것이 매개되지 않은 채 적절하게, 진정한 모습으로 드러날 경우,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형성된 것이며, 이제 그 껍질을 벗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전통의 과즙에서 자양분을 얻는 것만이 아무튼 젅통에 진정으로 대립할 수 있다. 다른 것은 권력의 무기력한 제물로 전락할 것이며, 이 권력을 자체 내에서 극복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전통의 끈은 역사에서 연속되는 현상들의 단순한 유사품이라기보다 오히려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와 일신교에 대한 프로이트의 후기 저술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전달에만 근거하는 전통은 종교적 현상이 지니는 강제성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외부 소식들과 마찬가지로 경청되거나 판정되거나 경우에 따라 거부될 것이며, 결코 논리적 사유의 강압으로부터 해방되는 특권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다시 나타나 그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중들을 그 마법 안에 사로잡아놓기 이전에, 억압의 운명과 무의식 속에 머무는 상태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종교적 전통만 아니라 미적 전통도 무의식 내지 억압된 것에 대한 기억이다. 그것이 실제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에서는 이 영향력이 계승의 표면적 직선적 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되지 않은 기억이 연속성을 깨뜨리는 곳으로부터 나온다. 전통은 자체의 의도상 전통주의적인 작품이 아니라 실험적이라고 비난받는 작품들 속에 현존한다...."
아도르노. <아르놀트 쇤베르크>. <<프리즘>>. 국역본 178.

"발레리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업에는 손가락 연습 내지 자체로는 결코 성공적이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연구가 다소 필요하다. 이 말은 쇤베르크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의 유토피아는 작품들을 넘어서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매체만이, 생산과 재생산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음악가들 사이의 독특한 동의를 만들어낸다. 음악가들은 자신이 작품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음악에 종사하고 있지 작품에 종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후기의 쇤베르크는 작품 대신 가능한 음악의 본보기들을 작곡한다. 작품들이 그 가상을 고집하지 않을 수록 음악 자체의 이념은 더욱 투명해진다." 같은 글 201.

"...모든 예술작품은 일종의 힘의 장이며, 또한 사유활동이 논리적 판단의 진리내용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자체의 재료적 전제조건들을 넘어서는 한에서만 예술작품은 참이기 때문이다. 기술적-미적 체계들이 인식의 요소와 공통으로 지니는 진리의 요소는 물론 그것의 환기력을 보증해준다. 그러한 체계들은 모델이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체반성을 거부하고 정지상태에 빠지며, 이로써 어떤 죽음과도 같은 것이 그것들을 엄습하고 앞에서 체계를 유발했던 바로 그 충동들을 마비시킨다. 어떠한 중도노선도 양자택일을 모면하지 못한다. 체계 속에 응결된 통찰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이미 낡은 것에 무기력하게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체계 자체는 고정관념 내지 만병통치 처방이 된다. 처리법 자체가 허위라기보다는--아마 오늘날 12음기법에 끌리는 중력을 자신 귀로 감지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작곡할 수 없을 것이다--오히려 그 처리법을 실체화하거나 타자 혹은 이미 분석적으로 포섭되지 않은 것을 배제하는 것이 허위이다. 음악은 일종의 주관적 이성인 방법Methode을 사물 자체 내지 객관적인 것이라고 날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적 주체가 자신과 대립하면서 동시에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것과 어우러지기 어려울수록 점점 더 그러한 날조는 피하기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마술공식이 스스로를 억제하는 포괄적 작품을 대신하게 된다." 같은 글 194.

"오해들은 의사소통적이지 않은 것의 의사소통매체이다." <발터 벤야민 초상>. <<프리즘>> 277.

"벤야민은 성서의 이념을 계몽주의 속에 옮겨놓았다....그의 에세이즘은 세솟겆ㄱ 텍스트들을 마치 성서인 것처럼 다루는 것이다. 그는 결코 신학적 유물들에 매달리거나 종교적 사회주의자들처럼 세속성을 초월적 의미와 관련짓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극단적이고 무방비 상태인 세속화 속에서 소진되어가는 신학적 유산의 가능성을 단지 그러한 세속화에서만 기대했다. 수수께끼 그림들을 풀기 위한 열쇠는 사라졌다. 그것들은 바로크 시의 맬랑콜리의 경우처럼 "스스로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방법은 각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때까지 단어를 노려봄으로써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소스타인 베블런의 과장된 주장과 유사하다." 같은 책 281.

"원숙기의 벤야민은 정신적 유보조건 없이 무조건 사회적 비판적 통찰들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충동들 가운데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해석의 힘은 시민문화의 표현들이 그 문화의 암울한 비밀을 말해주는 상형문자, 곧 이데올로기임을 간파하는 힘으로 바뀌었다. 때때로 그는 '유물론적 독소'에 대해, 자신의 사유가 살아남으려면 그것을 이 사유에 섞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환상들을 떨쳐버리는데, 거기에는 단자론적이고 자체로 안정된 자기 반성의 모습이라는 환상도 포함되었다. 그는 지칠 줄 모르고 상실의 고통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집단의 강압적 경향에 비추어 이 자기 반성을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질적 요소를 전적으로 자신의 경험에 동화시켰으며, 이 때문에 그것이 그 자신의 경험에 유익한 것이 되었다." 같은 글 281-82.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관해 얘기하면서)
"...그는 현대의 근원적 역사라는 의미에서 시대의 이념을 구성하려고 생각했다. 이 현대의 근원사는 결코 태고 시대의 잔재들을 최근의 과거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가장 새로운 것 자체를 가장 오래된 것의 모습으로서 규정하려는 것이었다." 같은 글 285.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의 특성은 무절제하리만큼 대상에 자신을 내맡기는 데 근거한다. 사유가 사물에 너무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사물은 일상적인 것을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처럼 낯설어진다. 체계나 완결된 논증의 연관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직관 또는 관찰의 대변자로 간주할 경우--그의 친구들조차 종종 그를 이런 식으로 오해했다--그의 가장 훌륭한 측면을 망각하게 될 것이다. 그의 시선 자체가 아무 매개 없이 절대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는 방식 혹은 전체적 관점이 변화한다. 확대 기술은 굳어버린 것을 움직이게 하고 움직이는 것을 정지시킨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듯이 먼지나 플러시천 같은 최소한의 객체 혹은 초라한 객체들을 편애하는 그의 태도는, 관습적 개념망의 그물코 사이로 빠져 달아나는 것들, 혹은 지배 정신이 너무도 도외시하여 성급한 판단 이외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모든 것들에 매료되는 기술과 상호보완적이다. 헤겔과 마찬가지로 이 환상의 변증법 이론가--그는 환상을 "가장 작은 것에서 이루어지는 외삽법"Extrapolation im Kleinsten이라고 정의했다--는 의식과 물자체의 지양할 수 없는 경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물을 즉자 및 대자의 상태로 고찰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러한 고찰의 거리는 바뀌었다. 헤겔의 경우처럼 주체와 객체가 궁극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주관적 의도가 대상 속에서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는 의도들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사유는 마치 만지고 냄새맡고 맛보는 가운데 변하려는 듯이 사물에 접근해간다. 그러한 이차적 감각성을 통해 벤야민은 분류적 방법으로 도달할 수 없는 금맥에까지 파고들면서도, 맹목적 직관의 우연에 굴복하지 않고자 한다. ...기시감deja vu을 통한 경험에서 객관성 없이 불명확하게 마주치는 것, 그리고 프루스트가 본의 아닌 기억을 통해 문학적 재구성을 위해 얻어내려고 한 것을, 벤야민은 개념을 통해 따라잡고 진리로 고양시키고자 했다. 그는 다른 경우에 개념 없는 경험에 맡겨져 있는 것을 개념 자체가 수행하도록 만든다. 사유는 경험의 밀도를 얻으면서도 자체의 엄밀성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같은 글 288-89.

Trackbacks 0 : Comments 0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