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서울대 폐지론 /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론"을 둘러싼 소요에 관하여

Critique 2014. 6. 19. 02:25

요즘 페이퍼 작성 때문에 잉여력이 넘쳐 흘러서-_-;; 글쓰다가 가끔 학교 온라인커뮤니티를 들르곤 한다(그 사이에 글 하나를 베스트게시판으로 보냈다!-_-;;;;;;;). 최근 글들을 보면, 진보교육감 당선 이후 지속적으로 환기되는 이슈 중 하나가 서울대 폐지론인 것 같다. 뭐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이슈 때 거의 단합이 안 되는 집단이 이럴 때만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는 걸 보면 확실히 한국에서 학벌은 준 이익집단을 만드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한 10년 정도의 스코프를 갖고 지켜보면, 서울대 폐지론은 주기적으로 한번씩 왔다가 가곤 하는 거라서... 그걸 공약으로 거는 정부가 집권하지 않는 한 딱히 현실화될 성 싶진 않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걸 중요한 주제랍시고 붙들고 있는 상황 자체가 여기가 얼마나 의식의 수준에서 잉여적인 곳인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생활 오래 해보지 않은 학생들이야 발끈해서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정말 자기 이익과 감정 표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글들을 써갈기는 건 딱히 놀랍지 않은데, 자칭 고학번이라는 애들도 반응이 별다를 게 없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이 역사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구나 싶고.


여튼 서울대 학생들이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겨우 수능이나 다시 보는 거 말고는 정세에 영향을 줄 수 없는 무력한 애들이 아니라) 뭔가 대단한 집단이라고 한다면, 서울대 폐지론이라는 구호 하나에 일희일비 할 게 아니라--그리고 좌파교육감을 뽑은 걸 후회한다니 등의 멍청한 소리나 할 게 아니라--그러한 정책 하나하나가 속해 있는 이른바 '교육정상화'가 어떤 정책적 구성을 보여주는지를 논의하고 있어야 한다. 기사 몇 개 퍼와서 분노하는 글 올리고 추천 받아봐야 그게 자위적인 행위 이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관련자라도 얘들을 전혀 중요한 세력으로 간주하지 않겠다. 정책분석은커녕 서울대 폐지라는 지극히 마이너한 주제 하나를 둘러싼 전체적인 그림이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 최소한의 지적인 노력도 없는 곳을 진지하게 여기면 그쪽이 이상한 거 아닌가?


 솔직히 나는 교육감 레벨에서 대학을 포함하는 한국 공교육의 전체 판도를 '정상화'하는 작업이 교육부와의 협조 없이는 가능할 거라 생각하진 않고, 지금 박근혜 정부의 인선을 볼 때는 현재의 흐름이 각 지역 내에서 중고교 운영을 건드리는 것 이상의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정도면 그럭저럭 유의미할 것 같다. 여튼 반복해서 말하지만 서울대 폐지라는 주제 자체가 키워드만 선정적이지 그 자체가 정책적으로 핵심적인 구상이 아니라서, 관련 기사들이 이쪽에만 집중되는 상황 자체가 답답하다. 물론 이번 세월호 사건 이후 박근혜가 '해체' '파괴'와 같은 단어를 유행시키곤 있지만-_-; 정책의 핵심은 무엇을 없애는 게 아니라 어떻게 시스템을 형성/조절하느냐에 있다. 서울대를 폐지한다는 것은, 행정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학을 하나 없애고 마는 게 아니라 한국의 고등교육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어떻게 재구성할지에 대한 전체 구상의 일부분이다(그러니까 서울대를 없애면 연고대가 학벌 짱을 먹는 쪽으로 가지 않겠냐, 이런 이야기는 행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전적으로 멍청한 소리다. 제대로 정책을 짜서 움직이면 그렇게 돌아가게 두겠나, 다른 요소들을 끼워넣겠지-_-;;...일본 같은 경우 그렇게 좋은 모델은 아니지만 사실상 구 제국대학들이 학벌의 선두에 있는 것처럼). 나는 이 주제를 현재로서는 진지한 문제로 간주하지 않아서 관련 기사조차도 찾아보지 않았는데, 사실 조희연을 포함한 13인의 진보교육감(무슨 7인의 사무라이도 아니고...)에게 나름대로 합의된 플랜 같은 게 있는 건지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다. 대학 운영을 이렇게 바꾸면 중등교육을 저렇게 바꿔서 합을 이런 식으로 짜맞춰 보겠다, 아니면 중고등학교가 A로 가려면 대학이 먼저 B처럼 바뀌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런 안이 구체적으로 있으면 그걸 따져보는 게 맞고, 없으면 그냥 센세이션한 구호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진보교육감들이라고 해도 원래 동일한 정파였던 것도, 특별히 대단한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지금에야 뉴스를 한번 찾아봤는데,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처음 나오는 키워드는 아니다...). 뭐, 정책과 정세를 판단하기 위해 개인이 이 정도 분별력을 혼자서 갖춰야 한다는 게 한국의 공공정책/정치의 슬픈 면이기도 하겠지만.


덧붙여야 할 요소가 있다면, 학벌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애들한테는 전혀 와닿지 않겠지만, 드디어 전국적인 대학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근데 새누리는 이익집단에게 늘 친절한 또 하나의 이익집단이라서, 각종 사립대 재단에서 압박을 넣으면 또 어떻게 방향이 바뀔지 모르겠다...교과부에서 나름 10년 정도 바라보는 전체 플랜을 치밀하게, 구체적으로 짜서 움직이는 게 아닌한 언제 어떻게 흐름이 바뀔지 모른다;) 각종 부실대학이니 뭐니를 문 닫게 하거나 통폐합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중이다. 국립대학들을 통폐합하겠다니 법인화하겠다니 하는 정책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게 겨우 2,3년 전이다(결국 서울대 법인화 하나로 끝났지만...해양대도 그렇고 통폐합하겠다는 이야기가 도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말해 서울대 폐지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한 단위에서 전국 대학교육의 재조정은 이미 실행되고 있다. 이게 명목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학교들 좀 솎아내보자는 취지로 가는 거고 실제로 그런 면도 있겠지만, 전국 단위의 행정이 움직일 때는 항상 그보다 더 큰 목적 (적어도 구호상으로나마) 하에서 작동한다. 지금의 대학교육 재조정 작업이 어떤 맥락에서 무엇을 실제적으로 노리고 행해지는 건지, 다시 말해 개개의 정책보다 좀 더 큰 차원의 맥락에서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게 굳이 말하자면 좌파든 우파든 교육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사실 이거저거 다 생각하기 귀찮은 사람은 딱 세 가지 사항만 보면 되지 않을까. 첫째, 한국의 전체 대학교육에 투여될 자본의 총량과 그 성격(지속성, 공적 재원과 사적 재원의 구성비율 등등)은 어떻게 되는가. 둘째, 그 자본의 각 대학으로의 분배방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셋째, 자본의 분배와 함께 대학 내외부의 지배구조governance가 어떤 식으로 변동하는가. 연구자들 및 학생들의 질적 수준이나 문화는 이러한 요건들에 비하면 훨씬 가변적이다. 어차피 대학과 대학생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한국의 고등교육은 이른바 직장 수(수요)에 비해 연구자 수(공급)이 폭증하고 있는 상태에 있고, 학생들이 대학에 기대하는 교육 수준도 꽤 낮은 편이다--굳이 말하면 지금 한국의 대학교육이야말로 68같은 움직임이 필요하긴 하다-_-; 운동의 당사자=주체가 될 학생집단들이 자기 상황에 대한 이론적인 파악이 전혀 안 되는 게 문제지...--. 조교로서의 한정된 경험에 의지해서 말하는 게 허용된다면, 학생들이 학업에 기대하는 바나 달성하고 싶은 수준 자체가 높지 않고 실제로 성취도도 낮은 수준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학부 졸업생 기준으로 표준적인 기술적 성취 이상의 사고가 가능한 사람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이미 높은 정도의 자본화에 도달한 한국사회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자본과 지배구조 이 두 요소가 가장 핵심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교육도 매한가지다. 결국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학구조조정은 "각 대학이 특정한 수치에서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자본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게 골자인 것처럼.


서울대 법인화를 이러한 도식에 맞추어 설명해보자면, 애초에 전국 국립대학 법인화의 목표 자체는 1) 국가가 부담하는 교육 재원 자체를 줄이고 2) 국립대들 간의 경쟁구도로 재원을 상위 학교에 몰아주며 3)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측의 통제를 늘이는 방향으로 기획되었다고 거칠게 정리할 수 있겠다(단 3번은 그것보다 복잡할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지금 이 전체 프로젝트의 원안이 어땠는지 확인할 방법을 모른다). 그리고 갖가지 중간세력(...)들의 갈등과 타협을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1&2) 서울대 자체에 국가가 지원하는 비용은 (명시적으로는) 일시적으로 증가했으며 더불어 대학법인이 수익사업권을 획득, 대신 다른 국립대들은 법인화 거부 3) 정부측 인원이 일정 이상 참여하는 이사회&총장의 (법적으로) 독점적인 지배권 확보 라고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하자면 총장을 포함한 이사회가 교육부랑 손 좀 맞춰서 사실상 대학 운영의 전권을 쥔, 교수회나 교직원 노조, (말할 필요도 없는) 학생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방향이 되었다. 어차피 지원 예산을 줄이기도 찜찜하고 시범 케이스 때 괜찮아보이는 선례를 만들어 놔야 나중에 다른 국립대들의 참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으리라는 심산이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교육부의 고등교육 담당 공무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관심법이 있는 건 아니라서. 어차피 나도 거의 3년 전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는 거라 그 사이에 또 적지 않은 사실들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런 건 정말 그쪽 전공자들이 분석해줘야 한다-_-;; 여튼 서울대가 그 자체로 이윤증식을 목표로 하는 집단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는 것, 그리고 지배구조에서 사실상 특정집단에게 권력집중이 이뤄졌다는 게 2011년 당시의 핵심사항이다.


결국, 우리가 조희연을 포함한 진보교육감들이 주장하는 대학개혁의 흐름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서울대 폐지니 뭐니 이런 단어들에 얽매이는 대신 이 세 가지 요소를 물어보면 된다. 대학운영에 필요한 자본이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대학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를 보고 싶다고 말이다(학벌위계질서 같은 문화는 어차피 일종의 '표현형'이라서, 그 자체로 손댈 수 있는 건 아니다...중앙대나 성대를 보면 알 수 있듯, 사실 자본투입이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조정되면 대학의 성격 자체는 너무도 손쉽게 바뀔 수 있다). 그 다음에 그게 중등교육개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등학교 졸업 혹은 대학 졸업 이후의 진로에 학력/학벌이 미치는 강력한 영향을 어떻게 완화시킬 것인지, 다른 무엇보다도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연구 수준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따지면 된다. 나는 행정도, 교육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서 아마추어적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지만, 아마추어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이런 사항들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적인 자본투입과 학외인사들(특히 자본가들과 이익집단)이 지배구조에 개입하는 것만 막는 게 보장되고 학내에서 어느 정도 합리적인 지배구조가 이어진다면, 서울대 따위 몇십 번 폐지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사실상 최소 수준의 학부교양교육과 그럭저럭 괜찮은 연구환경을 유지하는 대학 자체가 드물뿐 아니라 점점 줄어들고 있는 한국에서 그게 가능한 대학의 비중을 점차 늘리는 데 있지 꼴같잖은 '명문대'가 몇 개 있고 없고에 있지 않다.



* 보론.


블로그, 그것도 critique 란에 올리는데 혼자 뻘글을 올리긴 뭐해서 쓴 김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현재 언론기사를 참고할 때 서울대 폐지론은 사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론에 기초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에 대한 논의 중 가장 기본적으로 참고해야 할 텍스트는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정진상의 논문이다(<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지옥과 학벌사회를 넘어>, 책세상, 2004 로 출간되어 있다). 나는 직접 논문이나 책세상 출간본을 읽지는 않았고, 대신 2004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 정책위원회에서 펴낸 "서울대 폐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에 대한 자료를 보았다(국회전자도서관 참고: http://dlps.nanet.go.kr/SearchDetailView.do?cn=PAMP1000012570&sysid=nhn  여기에서 "원문보기"를 클릭하면 된다. 플래시만 설치되어 있으면 문제없이 볼 수 있다) . 총 분량이 90쪽이 안 되는데 쓸데없는 부분 이거저거 잘라내고 보면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다. 어차피 뒤의 논평 및 토론 중에서 유일하게 쓸만한 강내희의 코멘트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보지 않아도 되고, 정진상의 글도 그렇게 복잡한 논의는 아니라서 훑어보듯이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이해하기에 전혀 어렵지 않다(그러고보니 1분도 걸리지 않아 찾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자료임에도 이 자료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다시 나오고 있지 않은 현황 자체가 한심하다). 시간이 없다면 pdf 기준으로 28-58쪽만 봐도 요강은 알 수 있다.


10년 전, 그러니까 노무현 정권이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통치를 실행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시절, 사학법 개정이 (다름 아닌 박근혜의 핵심적인 역할에 의해) 실패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 민노당이 1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던 때 나온 글이라 읽어보면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 정진상이 이야기하는 "청년실업"은 더 이상 어떠한 현실적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너무나 작은 표현으로 바뀌었고, 삼성과 두산그룹처럼 기업이 직접적으로 "유명한" 대학에 파고들어 대학 자체를 재편하는 일이 실현되었다. 이 10년 사이에 구상자, 그러니까 정진상 교수의 대학교육에 대한 인상과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묻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서울대의 우위는 (의대와 같은 특별한 직군을 제외하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나, 지방에 진출한 기업들과의 연계 때문에 지방거점대학들이 서울의 사립대보다 선호되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저자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어쨌든 정진상의 희망사항과는 반대로, 지방거점대학의 지정, 고시 제도를 전문대학원으로 전환 및 대학별 쿼터 지정(이것만큼은 역설적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론에서 주장된 바가 실현된 셈인데, 물론 맥락이 전혀 다르다...실제로 고시 시절보다 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 이후 공적인 업무에 진입하기 위한 계급적 장벽이 더 늘었다는 평이 적잖이 있다) 서울대 법인화를 제외하고는 대학교육의 틀 자체 내에서라기 보다는 외적인 요인들에 따라 10년 사이에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 서울대도 더 이상 생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고... 지금과 같은 경제생활의 총체적인 하강기조가 지속될 경우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요인에 따라 학벌위계가 뒤흔들릴 가능성은 있다. 애초에 다녀도 쓸모가 없는 대학이라면 그게 무슨 차이냐, 식으로. 사실 일정 이하의 지명도를 가진 대학들은 그렇게 되고 있고. 결국 대학개혁을 이야기할 때도 그게 어떤 효과를 가질지 따져보려면 현실적으로 대학을 진학한 사람들이 어떠한 동기에 따라 움직일 것인가를 살펴야한다; 오늘날에서는 그게 말할 것도 없이 생계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정진상의 논의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가, 기본적으로 '대학교수'의 시야가 너무 강하다... 애초에 학부교육이 사회적 수요를 다 커버해줄 수 없는 게 분명해진 오늘날 성적표만으로 대학생활이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학사관리를 엄정화하자는 주장 같은 경우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그러나 정책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뭐가 문제라고 까는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보완해서 쓸만한 대안으로 재형성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만 덧붙여두자.


여튼 정진상의 논의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대략적으로 체크한다면,
 1) 서울대 학부 개방안(별도의 입학생 없이 수업만 열고 전국단위 학생들에게 학부수업 개방) + 서울대 대학원의 우위 보장 2) 전체 국공립대 (일정 수준 이상의 사립대도 참여 가능) 네트워크 형성, 거점 대학 중심의 학구제로 운영(일반대학원 및 학부); 신입생은 통합선발; 교수임용을 통합위원회에서 총괄, 대학 간 교수교환시스템 활성화 3) 대학 학부과정을 전공학과가 아닌 학부제로 일괄 재편 + 학사관리 엄정화 + 학생은 네트워크 내 어디에서든 학점 이수 가능 4) 수능을 당락여부만 따지는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대체 5) 조세개혁을 통한 교육재정확충 및 국공립대의 장기적 무상교육 실현.

정도가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1번이야 바로 콜레주 드 프랑스가 떠오르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솔직히 (유학을 경유해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는 연구자가 오히려 대학의 자리보다 늘고 있는 추세라서 딱히 서울대에 있는 연구자들이 더 수준이 높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석학이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지 않나?-_-; 여튼 사실상 대학으로서의 서울대를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고등연구특화기구를 만들자는 이야기인데 그런 기구가 하나 있어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2번에서 4번까지 내용은 기본 골자에서는 지금 읽어도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사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가의 핵심은 5번 + (정진상의 논의에서 언급되지 않은) 학내 지배구조 재조정 + 연구-교육자의 역량/수준 유지 및 제고에 있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그럭저럭 무난한 지방대에 재정만 엄청나게 투입하고 지배구조만 개선시켜도 서울대 정도의 연구역량을 키우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쟁점을 서울대 폐지론으로 몰고가면서 "그나마 있는 좋은 대학 없애면 어쩌자는 거냐" 식으로 징징거리는 사람들의 핵심논리는 그나마 자본을 한 곳에 몰아줘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는 대학을 만들어놨는데 그걸 쪼개면 모두 별 볼일 없어진다는 데 있다. 이 논리를 근본적으로 반박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예산을 현재 이상으로 대폭 투입하고 (막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을 포함한) 대학 내 운영체제/지배구조를 재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전체 교육예산 자체를 늘리는 게 논리적으로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감들의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는 대중적인 여론을 환기하는 수준 + 연구 및 정책 개발 독려 이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부 및 그 이상의 행정단위에서 이 주제를 진지하게 수용해서 교육예산배분을 대폭 재조정하지 않는 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론은 단기적으로는 실현되기 힘들다. 하다 못해 (서울대 법인화 때 별로 진지하지 않게 나왔던 이야기이기도 한데) 서울대를 제외한 거점국립대들끼리의 연합 같은 경우도, 나는 그 자체로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자원의 총량 및 배분의 문제와 대학 안에서의 파벌구조 같은 걸 건드리지 않는 한은 유효하게 실현되기는 어렵다. 지배구조를 나중에 바꾼다고 하더라도 예산배분도, 교육커리큘럼도 엄청나게 바꿔야 한다. 해볼만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단숨에 바꾼다기보다는 공들여서 기초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성이 있지 않겠나.


아니면, 서울대 폐지론 반대론자(...)들이 써먹는 논리를 뒤틀어서 활용한다면, 현재의 대학에 새로운 형태의 대학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랩 단위로 돌아가고 사실 자본 투여가 절실한 자연대와 공대 등에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으나, 비교적 노동/정보집약적인 인문사회계열은 최소 시설을 보장하고 교수 1인당 수당을 낮추고 대신 훨씬 더 많은 교직원을 확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실험에 관심이 있다). 지금도 교수임금이 별로 안 많다고 볼멘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글쎄, 미국이나 특정한 국가를 제외하고 전체 교수임금 통계를 내보면 한국의 교원임금이 그렇게 낮은 수준일까? 일정 수준 정도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고 대신 자녀교육 및 주거를 포함한 사회안전망을 무상에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다면, 적어도 직업적 전망이 무척이나 암울한(...) 내 전후 세대에서 그쪽 길을 택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적지 않을 듯하다.


여튼 아이디어는 아주 많이 나올 수 있고, 행정은 원래 구상은 크게 하되 정책은 디테일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10년 전에 떠났다가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각설이로서가 아니라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교육/연구과정에 사소하더라도 유의미한 개혁을 제공할 수 있는 논의가 나오길 기대한다. 서울대니 명문대니 떠드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생산적이다. 한동안 한국의 경제적 조건이 획기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면 결국 이 사회의 희망은 교육에 달려있다.


** http://gspres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0526 2년 전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론이 나왔을 때 나왔던 대학원신문 기사. 짧지만 한번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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