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마드는 빨간약을 먹은 전사들인가?

Critique 2018. 7. 26. 16:34
최근 워마드에 대해 경향에서 "워마드, 빨간약을 먹은 전사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7211310001)이란 기사가 작성되었다. 나는 기사를 쓰신 기자님의 용기와 진정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기사의 내용과 논점에는 상당부분 의견을 달리 한다. 기사의 줄거리는 간략하게 요약하면 3단 구성이다:

1) 일부 워마드 이용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워마드가 과격한 형태의 가부장제 비판/여성주의 운동이라는 견해를 전달하고
2) 기존 여성주의 활동가 일부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까지의 1-3세대 여성주의 운동과 넷페미니즘(그러나 워마드가 넷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인가?) 간의 조심스러운 상호 거리두기를 전한 뒤
3) 워마드가 일베를 미러링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인다.

간단히 말해 기사의 내러티브는 지금까지 메갈리아·워마드를 대하던 (나는 실제 당시 사태의 전개를 들여다보면 양자를 바로 동일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윗세대' 페미니즘의 관습적인 서사를 충실히 따른다. 즉 워마드에 조금 거리를 두면서도 장기적으로 여성주의 운동의 동력으로 삼고 싶어하거나, 한국의 여성혐오·성차별이 심각한 수준이므로 온라인 페미니즘의 일부 문제적인 성격은, 그게 나쁜 건 맞지만, 어쩔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태도를 조금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복하고 있다(기사에서 직접 인용을 하자면 "남성 중심의 기득권 사회에서 여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기존 여성주의 활동이나 현재의 넷페미니즘에 차이가 없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르다."). 이 주제에 대해 2015-16년 이후 관심을 갖고 읽어온 사람이라면 이 기사를 읽은 뒤, "빨간약"과 "전사"라는 거의 클리셰가 된 수사의 진부함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내용상으로 새로운 게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다소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여성주의 활동가들이 온라인 페미니즘에 이전보다도 좀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는 게 눈에 띄지만, 이건 정말 섬세한 행간의 포인트다). 기자가 새롭게 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해도 애초에 프레임이 고정되어 있으면 현실분석으로서는 정보값이 있기가 어렵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 첫 번째로 지적될 수 있는 건 기사가 워마드 이용자들의 자기 서사에 유의미한 거리를 거의 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점일 것이다. 이는 메갈리아의 경우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지만, 최근 2-3년간 온라인 여성주의 운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들이 특히 언론을 대상으로 인터뷰할 때 어떤 자기서사를 통해 이야기할지에 대해 상당히 뛰어난 전략적인 감각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무리 자유분방한 집단이라고 해도 개별적으로 언론과 인터뷰하면 점잖고 조심스러운 퍼스널리티를 취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이들은 어떤 식으로 언론에 이야기할 때 자신들의 입장이 기존의 가치체계에 부합하게 적절히 '오해될' 수 있을지 대체로 잘 이해하는 것 같다(언론 인터뷰와는 다른 사례지만, 나는 메갈리아 운동의 경우 메갈리아 커뮤니티에서 작성된 글과 메갈리아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의 포스팅 사이의 간극, 좀 더 정확히 말해 후자가 메갈리아를 어떻게 재현하고자 했는가를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워마드 이용자들이 언론에 직접 밝히는 자기서사와 이들이 실제로 커뮤니티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상당히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기사는 바로 이들의 자기서사, 이들이 스스로 밝힌 동기에 충실히 입각하여 워마드 커뮤니티를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워마드의 모든 행위는 여성혐오, "남성우월적 가부장제"가 만연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저항과 분노가 가장 사악한 여성혐오 커뮤니티 일베를 미러링하는 걸로 환원된다. 나무위키나 대형 남초 커뮤니티에서 온라인 페미니즘을 싸잡아 (상당부분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 비난을 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식으로 언어, 특히 자기를 대외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언어와 실제의 행위 및 동기를 동일시하는 건 비판적인 거리가--나는 이 말을 관습적인 표현이 아니라 분석과 성찰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으로 사용하고 있다--결여되어 있다는 의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워마드의 문제적인 표현이 남성우월적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한 "보여주기", 즉 사회 전체를 향한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서의 미러링이라는 관점 자체가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의 의사소통행위를 과도하게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 흔히 발생하는 오판의 산물이다. "워념글" 넘버링만 62만이 넘는 대형 커뮤니티의 사용자들의 모든 의사소통행위가 외부를 향한 보여주기라고--물론 워마드 이용자들은 그러한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지만--이해하기도 힘들며, 모든 게 미러링의 산물이라면 왜 수많은 선택지들 중 바로 그것들이 채택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상당히 단순한 설명밖에 제시하지 못한다. <워마드 대 기존 (남성우월적 혐의를 받는) 사회>라는 구도가 워마드가 충돌하는 여러 국면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무척 단순한 틀을 만드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이 기사의 가장 심각한 약점은 한국사회를, 워마드 이용자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각종 그룹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짚어보자. 워마드의 명백한 성소수자 혐오, 워마드가 "쓰까"(아주 거칠게 말하 성소수자와의 연대가능성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들 및 "꿘충"들에 대해 퍼붓는 혐오감 등은 이 프레임에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모든 TERF(성전환자 배제 래디컬 페미니즘)가 워마드인 건 아니겠지만, "쓰까" 대 TERF 간의 갈등 등의 맥락은 워마드 대 한국사회 프레임에 뒤덮여 깔끔하게 지워진다. 워마드는 이런 단순한 구도 속에서 어느새 제4세대 페미니스트의 유력후보이자 넷페미니즘의 대표자로 격상되어 있다. 기자가 이를 의도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나, 유감스럽게도 그가 충분한 거리를 두지 못한 채 반복하고 있는 이런 내러티브는 워마드에게 그런 위치를 논리적으로 부여해버린다..."쓰까" 페미니스트들은 그냥 1-3세대 여성주의 운동권에 포함되는 것이며, 워마드는 낡은 "쓰까"를 밀어내고 있는 유일한 젊은 세대인 것인가?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 기사를 통해 현재의 온라인 페미니즘을 이해하게 되는 수많은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 생각에는 해롭기까지 한 프레임이다(결코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그리고 워마드 이용자들과 특별히 세대차이가 난다고 보기도 힘들 여러 "쓰까" 페미니스트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전한다).

더불어 기사는 워마드의 주요한 문제로 일베를 미러링하며 자극적인 남성혐오표현을 사용한다 정도로 꼽고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는 워마드가 일베의 표현을 답습하면서 가장 우파적인 경로를 밟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충분하지 않은 설명이다. 워마드를 아직도 68식의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의 21세기 한국버전으로 생각하고픈 '진보적' 독자들이 계시다면, 나는 워마드에서 박근혜를 옹호하는 표현인 "햇님"과 문재인을 비하하고 경멸하는 "문재앙" 등의 표현이 수시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단순 검색으로도 위 표현이 사용되는 게시물은 2천 여개에 달함을 알 수 있으며, 적지 않은 글들은 높은 추천을 받는다). 탈원전, 대북문제 등 현 정부의 중요의제에서 워마드의 많은 사용자들은 일베의 관점을 충실히 답습하며, 이는 메타적인 레벨에서 미러링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가령 https://womad.life/248618).

흥미롭게도 지난 지방선거 기간 워마드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대한애국당의 인지연(한 마디로 규정하면 극우 개신교 후보) 후보를 지지하자는 포스팅이 종종 올라왔는데,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페미니즘을 내건 녹색당이 "쓰까"이면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인지연 후보는 동성애자의 모든 권익을 철폐하자는 입장의 대변인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인지연의 동성애자 권익 철폐에 대한 워마드의 칭송 게시물은 https://womad.life/236532 / 워마드 이용자들이 트랜스젠더 혐오로 녹색당을 비난하는 예로는 https://womad.life/237565 를 보라). 당연히 워마드의 모든 이용자가 극우파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워마드에서 일베의 극우파 담론 일부가 거의 그대로 유통되고 있으며 이건 미러링이나 가부장제 비판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언급되지 않는 한 워마드를 급진적인 넷페미니스트 운동 정도로 간주하는 기사와 같은 실책이 반복될 것이다. 여기는 68의 서구가 아니며 워마드도 68식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워마드가 (사회운동/정치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운동의 언어에서 갖고 싶은 것, 자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만 골라갔을 뿐 본질적으로 이용자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또 하나의 대형 커뮤니티라고 보는 게 내 생각에는 좀 더 사실에 부합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중요한 사항을 덧붙이자. 특히 "쓰까" 페미니스트들과의 충돌에서 잘 드러났듯, 많은 워마드 이용자들은 생물학적 여성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피해자이며 따라서 자신들이 자신의 권익증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을 해도 된다고 믿는다. 이때 이들이 자신에게 부여하고 싶어하는 허용범위는 종종 (난민을 포함해 다른 약자들이나 "홍대 몰카남" 등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명백한 혐오과 조롱의 감정, 경우에 따라서는 (설령 물리적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다고 해도) 초법적인 행위, 사실관계에 대한 조작 등이 포함된다. 물론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요소들이 워마드 특유의 것은 아니며 한국의 거의 모든 대규모 커뮤니티 혹은 포털 댓글란에서 비슷한 욕망은 종종 발견되지만, 워마드는 이 문제에서 자기 자신들에게 가장 관대한 집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논리의 기저에는 "피해자"였으므로 보상받아야 한다, "구조적" 문제의 피해자가 저지른 행위에는 책임부담이 경감된다는, 즉 '피해자에겐 책임이 없다'는 진보진영--이는 미국의 진보/리버럴을 포함한다--의 오랜 수사학이 상당히 과장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인간사회에 오랜 기간 존속해온 사고로서 반드시 나쁜 것도, 사라져야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피해자주의"가 어느덧 우리 자신의 동료시민을 도덕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존재로 만드는 지경까지 온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은 필요해보인다(보통 이는 반대파의 경직된 엄벌주의, 도덕주의의 상승으로 이어지곤 한다). 오늘날 "피해자주의"는 워마드의 전유물은 아니지만--심지어 우리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의 글에서도 요즘 젊은 한국 남성이 최대의 피해자라는 식의 정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바로 그 피해자주의가 한국의 페미니즘을 도덕과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는 위기가 목전임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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