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일기: 외유, 언론과 설득

Comment 2018.05.27 17:08

5월이 되면 일정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나의 오산이었다. 기록 두 편을 옮긴다.



*5월 22일 밤 페이스북


1. 처음이자 (희망컨대) 마지막으로 동원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작년 동미참으로 총 5일을 출퇴근했을 때는 차라리 짧고 굵게 2박 3일 지내다 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첫날 노을이 지고 다시금 막사로 들어가야 할 때 '사실 석수장이일 때가 제일 좋았지'라고 후회하는 바위의 마음이 되었다. 소백산 한가운데멀지 않은 산자락 위에 뿌연 수증기가 드리워진 풍경은 정말로 고향 같았다. 능선 위 나무들을 하나씩 꼽아보고 흔들리는 이파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죽령 아래 어딘가에서 예비군 가라가 한껏 들어간 24인용 텐트를 쳐보는 게 땡볕을 피해 앉은 그늘에서 달려드는 벌레를 쳐내고 엉덩이가 쑤시도록 앉아있는 것보단 나았다. 학교와 페이스북에서는 좀처럼 만날 일이 없는 제멋대로인 남자애들의--남성성을 한껏 드러내려는 듯한 커다란 문신을 하고, 주변 사람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끄럽게 폰게임을 하고, 조금이라도 만만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데 어떤 주저함이 없는--세계와 다시 대면하는 경험은 역시나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들어오기 전, 세 가지 다짐을 했다. 이번 주 세미나를 위한 로크의 _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_을 다 읽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로크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때 도대체 그 빌어먹을 자유주의가 무슨 의미인지부터 정의해야겠지만, 이 책을 가볍게라도 훑어보면 생각이 복잡해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살을 빼겠다는 목표도 매끼 밥 한 술 덜 먹으면서 그럭저럭 달성한 것 같았다. 의외로 지난 몇 주 간의 과로와 수면부족을 덜어내기 위해 잠이나 푹 자고 나오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가운데가 푹 꺼지는 늄침대는 몇 시간 자다보면 허리가 너무나 아팠고, 결정적으로...다른 예비군들의 코골이가 너무 심했다. 몇 미터는 떨어진 사람의 코고는 소리가 귀마개 따위는 무시하고 귀를 찢고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마지막 날 한참의 대기 끝에 영문을 나섰을 때 피로감은 그닥 가실 기미가 없었다. 거의 20여년 만에 가본 근처의 유명한 중국집은 탕수육을 시켰더니 찹쌀탕수가 나왔다. 제천으로 돌아오는 빗길에 소년시절 살던 마을이 생기없이 지나쳐갔다.


2. 다음날 곧바로 선배 지인의 초대를 받아 경남 하동에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아직 한여름의 문턱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악양평야는 완벽했다. 아직 더 쭉쭉 뻗어오를 것 같은 녹빛의 나무들은 생기로 넘쳤고, 언덕 위에서 맞은 편 산자락을, 위로는 무한히 맑게 뻗어있는 하늘을, 아래로는 수십 개의 직사각형들로 구획된 논밭을 가만히 보는 일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간 끝에는 지표면보다 10도 가량 서늘한 형제봉이 있었다. 서늘한 바람에 휘감겨 내려다본 지면에는 섬진강이 황금빛 노을로 타오르듯 흘렀다. 모든 식사는 기껏 예비군에서 줄여놓은 살을 다시 찌우는 걸 넘어 소화능력에 한계가 올 때까지 만끽했다. 더덕 산채비빔밥-라끌렛-빵과 치즈-소고기새싹비빔밥과 재첩국 중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한밤 중 집으로 돌아갈 때 초대받은 집의 열한 살 난 순박하고 구김살 없는 또 살짝 갈빛으로 그슬린 피부가 사랑스러운 아이를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메고 뛰어들어갔다. 낮이라면 멀리 평야가 내려다보였을 주인집 마당에서 아이를 무등 태우고 밤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이는 북두칠성을 찾고 "국자 안에 다른 별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궁금해하다가 이윽고 어디서 은하수를 볼 수 있는지 물었다(잠시 후 땅으로 내려온 아이는 "아빠는 약골이라서 이런 거 못해!"라고 외쳤고 나는 주인집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6^3=216을 암산한 것만으로 경탄해하는 아이에게 소인수분해의 개념을 설명해주었으나 외계어를 듣는 것 같다는 솔직한 감상을 접했다. 아이는 빨리 중학생이 되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다고 답했다. 너무 많은 음식물을 넣은 소화기관의 항의 탓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밤까지 주인·다른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1시 넘어 이불 속에 파묻혀 늦잠을 잤다. 고양이 둘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티를 노골적으로 내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푹 잤다.


3. 완벽한 휴양에서 딱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한 가지는 하동군이 자신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알프스 하동"이란 안타까운 홍보문구를 곳곳에 박아놓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박경리문학관의 부실함이었다. 문학관은 위치와 공간의 크기 모두 부족함이 없었으나 내용물은 박경리 사진 몇 십 장, <토지> 출판본·연재 잡지 수십 여 권·기타 저작 수 권, 작은 유품 십여 점 정도에 소설 및 생전 인터뷰에서 몇 대목을 골라 크게 인쇄해놓은 것과 영상인터뷰를 하나 틀어놓은 게 전부였다. 작가의 생몰연도, 주요 연혁, <토지> 구성의 변천사 등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조차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박경리의 인터뷰를 출력해놓은 대목들을 유심히 살펴봐야 당초 3부로 기획된 구성이 4부로 바뀌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게 전부였다. 작가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책들을 읽으면서 영향을 받았고, 누구와 어떤 지적인 교류를 했고, 출판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장기간에 걸친 연재 동안 무엇이 바뀌었고, 작품이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떻게 수용되었고 ... 저자의 지성과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그 어떤 사항도 제시되지 않았다. 


재작년 런던에 짧게 다녀왔을 때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구석에 브론테 자매를 위한 작은 방 두 개 짜리 소규모 전시공간이 있었는데, 박경리문학관은 그 열 배는 넘은직한 공간을 자랑하면서도 저자와 저작의 의의에 대해서는 전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보량만을 제공한다. 한국에서 출판사·독서사·도서사에 관해 영미권의 일급 대학에서 훈련받은 연구자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내가 아는 케이스는 케임브리지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선생님 한 분뿐인데, 이 선생님은 대학원생 지도는커녕 기초적인 수준의 학부교양강의만 가르칠 수 있는 대학에 겨우 자리를 잡았고 나는 한국에 한 명밖에 없는 연구자를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한국 대학의 문학교육 전체에서 바라볼 때 비할 바 없는 낭비라고 생각한다--그래도 문화연구나 도서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분들이 없지는 않은데, 정작 문학전시관의 운영은 이런 분들의 자문과 검토를 받지도 않은 채 작가, 저작, 언어에 대한 황당할 정도의 무지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한국의 작가·문학기념관을 돌아본 적은 거의 없지만, 만약 박경리문학관의 수준이 한국의 문학기념관 수준이라면 한국은 문학을 기념하고 이해하는 초보적인 수준에조차 미달한 사회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4. 서울로 돌아와 세미나 준비를 했다. 오늘은 _Barbarism and Religion_ 1권 2부를 읽었고 예상 종료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어져 4시간 50분동안 포콕의 논의를 정리하고 간단한 코멘트를 주고 받았다. B&R은 지금까지 세미나를 해본 책 중에서 정보의 밀도로는 단연 가장 높은 수준이다(오늘은 120쪽 정도의 분량을 다루었는데, 두터운 연구서 몇 권으로 풀어쓸 수 있는 내용을 압축해놓은 걸 읽는 기분이 든다). 단지 매우 많은 사실들을 정리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일급의 연구자가 원숙함을 갖추었을 때에만 장악할 수 있는 갖가지 통찰들로 가득하다. 두 차례에 걸쳐 매번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또 사고하도록 이끌린다. 케임브리지 학파 내에서조차도 그와 같은 스타일로 쓰는 지성사가는 쉽게 나타나지 않겠지만, 포콕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성사 저작이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해명이 아니라 독자들의 지성을 자극하고 또 훈련시킬 수 있음을 스스로의 저작을 통해 직접 입증한다. 다음 주엔 1권이 끝나고 2권으로 넘어갈 예정이고, 사람들이 매주 100쪽 넘는 리딩에 나가떨어지지만 않는다면 6월 하순에는 2권도 마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이 책과 앞으로도 반년 가까이를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이 무척 기쁘다.


목요일엔 로크 STCE 세미나를 하기로 했고 지금은 2차문헌들과 예전에 끝까지 다 읽지 못했던 <인간지성론>_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_을 옆에 쌓아두고 있다. 세미나 전까지 최대한 많이 읽고 들어갈 생각이다.


5. 5월에는 최대한 일을 줄이는 게 목표였는데 항상 목표대로는 되지 않는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할 일을 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는다.


6. 그치지 않는 밤의 빗소리를 곁에 두는 것은 그 자체로 편안하다. 천 일 앞을 헤매던 마음도 조용히 내 곁으로 돌아온다.




*5월 13일 저녁 페이스북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하루 리딩량을 끌어올리면서--그러나 어제는 또 학부생 페이퍼 첨삭으로 시간이 없었고 며칠 뒤에 또 있다...ㅠㅠ--점점 페이스북&뉴스는 며칠에 한번 들어와 몰아서 읽게 된다. 그 와중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http://v.media.daum.net/v/20180512071057146). 내용으로만 놓고 보면 한국 미세먼지발생문제에서 한국과 중국의 책임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다루는 기사지만, 내게 더 눈에 들어오는 건 기자가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용을 다루면서 대중독자들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매우 많은 고민을 했고 또 그 노력이 부분적으로나마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부터에도 널리 찾아볼 수 있었던 "기레기"란 단어가 심지어 특별히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도 아닌 기사의 댓글에서까지 일상적으로 등장하게 된 사실이 보여주듯 오늘날의 한국 담론장에서 '제도권 언론'(established media)의 위기는 뚜렷하다. 물론 기자·기사가 불신 혹은 취사선택의 대상인 것 자체는 언제나 있어온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가 기사·기자를 대중독자의 신념·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공략하고 또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지금처럼 넓은 범위의 대중에게 확산된 상황은 한국사회에서는 새로운 경험이다. 이러한 태도의 확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갖가지 '대안 언론'의 도전까지 감안한다면 제도 언론의 종사자들이 깊은 정신적 위기를 느끼기도 하는 상황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정도는 덜할지언정 전문가집단도 이러한 흐름에서 아주 예외일 순 없다). 


사태에 기성 언론의 책임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오로지 그들의 책임만이 있다고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은 헛소리다. 2000년대 후반부터 10년 가까이 우파들이 운영해온 한국 정부의 언론 장악시도가 남긴 상흔과 함께, 다양한 지식을 현재의 언론기사보다 더 깊게 다룰 수 있고 또 이를 공유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이 실제로 큰 폭으로 증가한 것(그리고 제도 언론이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실질적인 대응책을 준비하지 못한 것), "드루킹" 사건에서 명확해졌듯 포털 뉴스 추천 및 댓글 시스템의 조작가능성이 이미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 것을 포함해 게임의 조건은 이전 시대로부터 적지 않게 달라졌다. 그러나 "Cambridge Analytica"를 비롯한 러시아의 미국 대선 온라인 여론조작 시도에서 암시되듯 제도권 언론 바깥에서 유통되는 소식이, 그리고 많은 경우 '대안언론' 자체도 역설적으로 뉴스조작에 더 취약하며, 더불어 여기에 제대로 된 책임성을 요구하기도 힘들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같은 시점에서야말로 제도권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제도권 언론의 '정상적인 작동'에는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일상적인 사안을 성실히 다루거나 어떤 소식 자체를 빨리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고전적인 덕목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오늘날 사람들의 요구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졌으며 그중에는 국제적·전문적 시선이 있어야만 제대로 소화될 수 있는 사안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언론인 본인이 전문성을 갖추거나 전문가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 단순히 기자의 '야마'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친한 전문가의 무의미한 발화를 옮기는 게 아니라--이제 이런 '전문가 인용' 자체를 조롱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주의깊게 포착해야 한다--여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접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조직 차원에서 구축하고 그들의 관점과 지식을 활용하는 일은 앞으로 피할 수 없어보인다. 우리가 언론기사 또한 필자들에 의해 집필되는 '글'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그러한 필자들이 역량을 증진시키고 또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 또한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한국사회는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 게 효율적인지 아직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 사회와 의사소통의 복잡성이 증대할수록 그것을 처리하는 기구들의 역량 또한 증가해야 하며, 언론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위의 기사는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더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 특히나 지금처럼 대중독자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커졌고 때로는 그러한 불신감을 의도적으로 악용하기도 하는 조건에서 독자들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내용을 전달해야 할 때, 기사는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특히 현재의 조건에서 단순히 '좋은 기사를 쓰면 된다'가 이 문제의 답이 될 수 없음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결국 글을 어떻게 쓰고 전달할 것인가의 영역으로, (말과 글의 기술이라는 넓은 의미에서) 수사학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링크한 기사의 기자는 직접 여러 반론을 수합하고 여기에 하나씩 데이터를 붙여가며 답을 하는 형태로 설득을 시도했다. 중요한 건 전통적인 기사쓰기 방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온라인의 키배에서 흔히 활용되던 형태의 글쓰기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글쓰기가 모든 경우에 성공할 거라든가, 다른 기사들이 무조건 이러한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이번 사례를 포함해 독자가 원하지 않는 내용을 독자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전달방식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만약 이러한 시도가 충분히 축적·공유된다면, 제도권 언론은 다시금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좋든 싫든 언론이 제 기능을 수행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수월한 작동에 있어 필수적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그동안 많은 자원과 노하우를 축적해온 한국의 제도 언론이 너무 성급하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이번 기사는 그런 점에서 한번 더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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