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아감벤, <왕국과 영광> 짧은 리뷰.

Reading 2018. 1. 26. 00:21
새벽에 어쩌다가 다시 한번 훑어본 조르조 아감벤의 <왕국과 영광>(박진우, 정문영 역, 새물결, 2016)에 대한 짧은 리뷰.

이 책의 핵심주제, 즉 정치경제학으로 이어지는 행정적 통치gubernaculum(<-> 사법적 통치iurisdictio)의 신학적 기원을 탐색하자는 것은 정확히 케임브리지의 이스트반 혼트와 그에 영향을 받은 정치사상사가들이 '서구 17-18세기 자연법에서 정치경제학으로의 이행'이라는 큰 서사 하에 지난 30여년 간 매우 풍성한 연구를 내놓아 온 주제이기도 하다(개괄적인 소개는 내가 http://begray.tistory.com/410 에서 요약한 Piirimäe&Schmidt 의 글 참조). 물론 아감벤의 고대-중세 문헌 탐색에 비해 (20세기 초중반 독일에서 벌어진 정치/신학 논쟁에 대한 검토를 제외하면) 초기 근대-근대에 대한 연구사 문헌섭취는 심각하게 빈약하고, 자신의 주제에 대해 훨씬 더 깊은 밀도의 연구를 해온 지성사가들에 대한 참고 또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근대정치의 근본문제가 왕국-통치-영광의 관계 또는 삼위일체와 오이코노미아와 같은 초기 기독교의 패러다임에 내재한 문제의 귀결이라는 다소 진부한 결론에 도달한다.

주권권력을 다루는 <호모 사케르>에도 잘 나타나지만, 아감벤의 논리는 고대/초기 기독교에서 문제패러다임 혹은 "구조"를 하나 뽑아내어 설정해놓고 초기 근대-근대라는 광범위한 영역을 뛰어넘은 다음 바로 20세기 중후반으로 와서 이 문제틀은 논리적으로 보편적이다, 라고 외치는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중세 신학/법학에 대한 연구사를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겐 무척 신비해 보이지만, 에른스트 칸토로비츠와 발터 울만, 그리고 그들의 제자들이 퍼트린 중세 정치사상사에 대한 연구사를 약간이라도 개괄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주제에 관해서는 <호모 사케르> 출간 이전 수십 년 전부터 아감벤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중요한 지점들을 포함하여--가령 헌정주의나 인권, 자연권의 기원 같은--매우 중요한 논쟁들이 이미 풍성하게 오가고 있었음을 알 것이다. 물론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 시리즈의 처음이나 중반부나 칸토로비츠를 인용하지만, 칸토로비츠의 주 대화상대들, 그러니까 영어권의 중세사가들을 거의 참고하지 않은 듯 보인다(가령 최근 칸토로비츠에 대해 영어로 읽을 수 있는 가장 상세한 전기를 쓴 Robert E. Lerner는 그가 칼 슈미트를 자신의 주 대화상대로 생각했다는 흔적은 방대한 서신들을 뒤져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근대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없이 근대의 문제를 말하겠다는 시도가 설득력을 갖기 힘든데, 실제로 (역자들의 지성사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는 할 수 없는) 한국어판 기준 본문총분량 550여쪽 중 17세기 이후를 다루는 건 50쪽이 조금 안 되는 분량이다. 그나마도 앞서 언급한 케임브리지안들이 이미 파고 들어간 신학 논쟁-도덕철학-정치경제학의 접점에 대한 막대한 양의 연구들을 개괄한 독자들에겐 매우 파편적인 언급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을 수준이다. 내 생각에 근대 통치성의 연구에 관해서 푸코의 정신에 진정으로 가까운 것은 오히려 정치사상사가들이며, 아감벤은, 적어도 이 책은 푸코의 매우 열화된 모사품처럼 보인다. 아감벤 본인의 장기에 더 가까울 고대-중세 저술들에 대한 코멘트는 보다 상세하지만 문헌사적 성실성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또한 알 수 없다(유럽 정치사상사학계는 아감벤의 저술에 역사학적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아감벤은 역사학이 아니라 "이론"을 다룬다, 라는 주장은 분명 사실이고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 책을 포함한 여러 권에서 주장하는 '근대적 문제의 신학적 기원' 테제가 고대-중세와 근대 간의 연속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근거 없이 지탱될 수 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매우 분명하다. 유감스럽게도 고대, 중세, 무엇보다도 근대의 정치언어분석에 대해 아감벤은 그렇게 신뢰할만한 안내자가 아니다. 진지한 연구자라면 그가 제기하는 근대의 문제들이 현실에 대한 음미보다는 오히려 그가 속해온 지적 전통의 언어를 더 단순화시켜 되풀이하는 게 아닌지 의심을 가질법 하다.

아감벤의 기여를 몇 가지 꼽는다면 1) 프랑스와 미국의 "이론" 좌파들이 종말론-정치신학 논의를 수용하는 데 기여(물론 여기에 대해 주목할만한 응답은 신학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 벤야민에 대한 코멘터 3) 흥미로운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 정도가 될 것이다. 부정적인 점은 신좌파-"이론"-인문사회 전공자들을 위해 정치사상사적 주제를 상당히 왜곡/압착시킨 방식으로 소개하다보니 해당 연구자들이 아감벤이라는 신뢰할 수 없는 안내자만 읽어도 핵심을 알았다는 식의 착각을 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 물론 <왕국과 영광>은 보다 골치아픈 사례인데, 부분적으로는 저자의 기이한 박식함에, 좀 더 본질적으로는 체계적으로 풀어가야할 논의를 파편적인 언술들의 연계로 대신하려는 잘못된 선택에서 나온 이 책의 구성방식 덕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독서 도중 이 책이 결국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를 놓치기 쉽다. 역자 후기를 볼 때 역자들이 이 책의 요점을 이해하지 못했음은 확실해 보이고, 내 생각에 아마 한국 연구자들 중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그래서 더욱 이상하고 편의주의적인 인용이 난무할 걸로 예상된다(유감스럽게도 그중 상당수는 문학, 인류학, 사회학의 '진보적' 연구자들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거꾸로 핵심논제를 잘 캐치할 수 있을만큼 공부가 된 독자들은 곳곳의 흥미로운 진술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자신의 연구를 지탱하기에는 너무나 구멍이 많고 속이 빈 나무기둥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책 한 권, 저자 하나의 인용으로 시대의 핵심을 관통해보려는 시도는 게으름의 표상이지만, 그 버팀목으로 <왕국과 영광>을 고른다면 이는 학문적 분별력의 문제다.

P. S. 1판 1쇄를 기준으로 하면--나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읽었다--<왕국과 영광> 한국어판 편집교열 상태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출판사가 돈, 시간, 노력을 제대로 들이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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