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 커뮤니티의 "자유주의"와 포르노문화

Comment 2017. 9. 9. 21:05
*이 글은 다음 포스팅( https://www.facebook.com/tea.fromyunnan/posts/512421949105340 )을 읽고 붙인 코멘트이며, 약간의 편집을 거쳐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다음 링크의 형태로 게재되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woochang-lee/story_b_17884864.html ).





90년대 후반에서부터 2010년대까지, 딴지일보에서 디시인사이드의 여러 갤러리, 그리고 지금 30-40대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어떤 글쓰기 혹은 퍼스널리티의 전형이 있다.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기초한 이런 글쓰기는 체제·관습적 억압에 대한 정치적 거부의 정서와 스스로의 성적욕망을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제스처를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결합한 기묘한 (진보적) "자유주의"를 핵으로 하고 있었다. 이 "자유주의"는 종종 단순히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걸 넘어 포르노 공유문화를 비롯해 때로 무규범적인 수준으로까지 나아가는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었다. 실제로 저 악명 높은 소라넷의 운영자들 또한 준 범죄공모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는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클리셰에 가까운) 자유주의=체제저항적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대략적인 인상에 근거해 스케치하면 이러한 전형 및 이것들이 통용되는 커뮤니티의 세 가지의 특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이들의 성적욕망의 표현은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하는 데 집중한다. 이런 태도는 상업적 포르노그라피만이 아니라 여성 연예인, 일반 여성을 촬영한 사진의 공유 및 “품평”, 소개, 나아가 (성적 대상으로서) 여성에 대한 갖가지 평가와 농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에 걸친 행위에서 발견된다--몰카문화, 정확히 말해 당사자의 승인 여부를 알 수 없는 (성적인 함의가 강하게 들어간) 사진자료를 게시 및 공유하는 문화는 소라넷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나는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둘째, 이들은 성평등, 정치적 올바름 등의 사회적 규범을 명백히 위반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진보·자유주의의 다양한 수사를 빌어와 정당화하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히 수사적 차원에서의 전유만은 아니며, 일부는 실제로 자신을 진보적 유권자·시민으로 규정한다. 셋째, 이 전형은 한 명의 독립적인 자유주의자라기보다는 자신과 유사한 문화·정서를 공유하는 남성 집단의 일원으로서 존재한다. 10대 남성 또래집단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들은 다른 (남성)구성원들의 지지와 인정을 받고 싶어하며, 사회에서 문제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해당 집단 내에서 승인된다면 이를 눈감아주거나 적극적으로 찬양한다. 특히나 성평등과 관련된 문제에서 이들은 유독 ‘같은 남성들’의 잘못에 관대하며 관련된 규범을 강하게 적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직간접적으로 주장한다.

요약하면 이들은 10대 시절의 남성중심적·(넓은 의미에서)여성혐오적 문화코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단한 의미부여까지 하고 싶어 한다. 이런 태도는 특히 한국의 온라인 세계에서 젊은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사실로 인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포르노 품평·공유문화와 소라넷, 그리고 지금 노무현-문재인 지지자들의 지원을 업고 영향력있는 정치평론가/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김어준이 그런 문화를 기꺼이 용인했던 딴지(일보)는 냉정히 말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이처럼 독특한 "자유주의적 정서"를 공유한다. 그리고 딱 한 걸음을 더 나가면 여성을 문자 그대로 성기로 호칭하는 일베가 있다(여러 "진보적" 남초 커뮤니티에서 필사적으로 선긋기를 시도하긴 하지만, 일베의 핵심적인 코드 일부는 지금 30-40대 온라인 남성문화에 이미 존재했던 언행양식을 좀 더 극단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러 대학 커뮤니티에서 관찰되듯 이 문화는 20대 남성들에게도 고스란히, 어쩌면 좀 더 공격적인 형태로 계승되었다). 물론 메갈리아·워마드를 비롯한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의 언행 모두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게 아님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커뮤니티에서 특히 새로운 온라인 페미니스트들, 나아가 페미니즘 전체를 매도하는 식의 언행이나 자유주의적 합리성의 탈을 쓴 안티페미니즘이 종종 나타나고 또 지지받는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에만 집중하는 남성중심적 집단문화는 현대 시민사회의 삶과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모든 구성원이 성에 무관하게 동등한 시민·인격으로서의 영역을 존중받으며 또 그러한 존중에 기초해 정치·경제·사회가 작동하는 곳에 살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특정한 순간 누군가를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특정한 성적 구별에 따라 다수의 사람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만 간주, 시민·인격으로 존중하지 않는 언행이 공공연하게 일상화된 문화는 우리 사회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시민적 규범의 중요한 원리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회구조가 요구하는 성적 불평등의 철폐에 가장 잘 부합했기 때문이다. (“진보적” 지식인이라 자칭하는 몇몇 남성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괴상한 자유주의·매스큘리니즘·안티페미니즘·“젠더 이퀄리즘” 따위가, 성적 지향·정체성을 기준으로 다수의 시민들을 차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신교 극단주의 반동성애자들이 기본적으로는 반동에 불과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문화를 전유했던, 경우에 따라서는 여전히 전유하고 있는 이들이 이제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인물·집단으로 점점 더 많이 등장하는 전개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예 여성들이 노골적으로 2등 시민으로 간주되었던 과거의 한국이나, 386 및 이들과 연결된 30-40대 남성들, 특히 다수의 지지자 집단이 상대적으로 소수파의 위치에 있었던 시점까지는 포르노 공유 문화가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좋든 싫든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며, 이들이 어떤 언행을 해왔는지 또한 이제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될 것이다. 지난 2년 간 온라인 페미니즘의 대대적인 확산과 함께 성차별적·여성혐오적 언행에 대한 여론의 기준치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또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 것임을 염두에 둔다면 이제 남초 커뮤니티의 기묘한 “자유주의”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 더욱 자주 나타나리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과연 그들이 10대 시절부터 공유했고 또 지금도 보다 젊은 세대의 남성들에게 전파해온 문화로부터 어디까지 탈피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그 문화가 지금 이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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