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과 동아시아론 혹은 반근대주의적 진보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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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90년대 중반부터 황태연 선생이 언급된 기사들을 훑어보았다. 90년대 후반, 특히 DJ 정권기부터 노무현 시기까지 그는 대표적인 친 민주당계 정치학자로 꼽힌다. 민주당 내에서 국가전략연구소장을 포함한 여러 자리를 거쳤고 2000년에는 <한국일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했으며 노무현 정권기에는 강력한 반노 인사로서 탄핵에 앞장섰다(물론 이것이 그의 정치적 경력의 끝은 아니었고, 2000년대 후반 민주당계 정당에서 공천심사위원회에 들어가기도 했다). "분권현 대통령제" 개헌이나 이후 안철수로 이어질 "중도 개혁노선 전국정당" 신당론("새시대 개혁연합"당)을 주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새로운 민주국가의 꿈"을 말하거나 "[마거릿] 대처 식 강한 정부 실패할 것"이라 주장할 때 그의 입장은 특별히 이상할 것 없는 진보적 정치논자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듯보인다.

내가 그에게 흥미를 느끼는 지점은 이처럼 대표적인 진보 정치이론가 오늘날 나와 같은 세대의 독자들이 보기에 무척 독특한 지적 면모를 함께 보여준다는 데 있다. 오늘날 쉽사리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면들이 한 사람에게 공존하는 풍경, 그게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어쩌면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한국의 조건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만 말하면 무척 알쏭달쏭할 테니 직접 몇 가지 예를 들겠다. 마지막에서 암시되듯, 황태연의 지적(?) 여정과 그를 향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최순실을 몰아내고 무당의 정치로부터 벗어났다고 기뻐했을지 모르지만, 황태연의 활약을 볼 때 근대로의 길은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인다. 이하는 상당히 길다. 하지만 재미가 없지 않으리라는 건 보장한다.


1. 사상의학적 체질과 리더십 분석이 민주당의 주요 정치이론가의 입으로 제시된다.

"이회창 후보는 소양인, 노무현 후보는 소음인" 황태연교수 "사상체질과 리더십" 펴내 (2002-12-13 <한국일보>)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인 황태연(黃台淵·47)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우리나라 정치인의 체질을 분석해 '사상체질과 리더십'(들녘 발행)이라는 책을 냈다.저자는 정치인들의 체형과 성격 등을 바탕으로 사상 체질을 분석한 결과, 16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소양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소음인이라고 주장했다. 소양인은 비장이 크고 신장이 작으며 여론에 대한 통찰력과 정치감각이 뛰어나다. 성격은 외향적이고 도전적이다. 이회창 후보는 기상이 단호하고 굳세며 냉혹하리만치 전략적인 사고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양인이라는 것. [...] 반면 노무현 후보는 과거 지향적이고 자기만의 논리적 순수성에 집착, 정치색깔을 세밀히 가르며 내성적인 성격에 시비지심(是非之心)이 강하다는 이유로 소음인으로 분류된다. 저자에 따르면 신장이 크고 비장이 작은 소음인은 상관과 부하, 위·아래 친족간의 도리에 맞는 행실을 상당히 잘하며 직관적 분별력이 뛰어나며 기억력이 좋아 자기 업무를 잘 안다. 소음인 정치인에는 박근혜 김근태 박범진 천정배 함승희씨 등이 속한다고. [...] 황 교수는 1984년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을 접한 뒤 '격치고' '동무유고' 등 이제마의 저작들을 읽고 공부해왔다."


2. 사상의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황태연은 점궤와 주역에 따라 앞일을 예측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히는데, 노무현 탄핵정국까지의 과정에 그의 (결과적으로 틀린) 점궤가 영향을 미쳤다면--물론 나는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진짜로 점궤에 의존해서 탄핵에 참여하지 않았기를 바란다--이는 21세기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가 된다. "무당의 딸" 최순실이 조종하던 박근혜 정권과 점술사 황태연이 국가전략연구소장으로 있던 노무현 정권기 민주당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씨줄날줄] 占과 성형/진경호 논설위원 2006-01-04 <서울신문>

"노무현 대통령 탄핵 움직임으로 정치권이 들끓던 2004년 3월 초. 국회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불꺼진 사무실에서 황태연 당 국가전략연구소장이 점통을 흔들었다. 정치철학을 전공한 교수이자,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자문역을 맡았던 그는 허리춤에 늘 점통을 차고 다닐 정도로 역술에 능했다. 잠시 뒤 그가 뽑아든 점괘엔 노 대통령이 중도에 자리에서 물러날 운세가 나왔다. 결국 국회의 탄핵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황 소장은 탄핵의 법적, 정치적 당위성과 함께 중도하차로 끝날 노 대통령의 운세를 몇몇 출입기자들에게 귀띔하기도 했다.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 추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그는 탄핵소추안을 직접 작성했다. 결국 탄핵안은 소수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극렬한 저항 속에 3월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1. '실증주역' 펴낸 서양 정치철학자 황태연 교수 "盡人事면 끝이라는 생각은 오만" 2008-07-08 (손제민 <경향신문>)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51)를 논할 때 연상되는 말은 '탄핵'이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 부설 국가전략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배후에서 기획한 인물이 황 교수로 알려져있다. 당시 그는 '주역'에 바탕해 대통령 탄핵을 하면 승산이 있다며 민주당 내에서 이를 부추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에서 헤겔 철학, 기술변동과 노동문제 등을 전공한 서양 정치철학자와 주역이라?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눈길을 끄는 조합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 교수는 최근 '실증주역'(청계)이라는 1000쪽 분량의 주역 연구서를 출간했다.

지난 4일 오후 만난 황 교수에게 책이야기에 앞서 '탄핵이 결국 실패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겸허했다.
"그것 역시 주역의 뜻이었던 듯합니다. 제가 짜낸 전략에 따라 그 이질적인 세력들을 끌어모으며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져 탄핵 의결까지는 했는데, 문제는 거기까지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선이었다는 점입니다. 진인사(盡人事)를 하면 모든 게 다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주의적일지는 몰라도 오만한 사람입니다. 그런 오만을 벗기 위해서는 동양적으로 말하면 천명, 서양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려보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게 지천명(知天命)의 경지입니다."
결국 당시 그의 주역 공부가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다. 이번에 '실증주역'을 낸 배경과도 통한다. 그는 "정치는 점 보는 문제를 초월하는 덕행을 요구한다"는 교훈도 되뇌었다.
[...]
과학에 의거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지금의 정부는 고려, 조선 왕조보다 정성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고려, 조선시대에 천도 문제나 세자 책봉, 민생 문제 등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에는 서(筮·주역에서 보는 점)를 했습니다. 왕과 신하, 유생들이 토론을 거친 뒤 내린 결론에 대해 또 한 번 점검해보자는 차원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의 이 과학 국가는 자기들끼리만 얘기하고 판단해서 그냥 밀어붙입니다. 그게 과학적일지는 몰라도 고려, 조선 때에 비하면 정성은 한참 부족하지요. 적어도 옛날에는 국태민안을 다룰 때 더 겸손하고 정성스러웠습니다. 청와대에서 0.1㎜ 틀리면 저 아래에서는 1000m의 차이로 변해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2-2. 주역을 과학적으로 보는 이유는? 2008. 7. 11. <한겨레> 고명섭

"지은이는 <주역>의 문헌적 가치를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주역>은 문자로 전해진 세계 유일, 세계 최고의 신탁서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신탁에 의지했듯이, 고대 중국인들은 점을 통해 ‘천명’을 받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고대 중국인들의 신탁 결과는 문자로 정리돼 후대에 전승됐다. 그런 까닭에 “<주역>은 4000년 전 동양의 태고대에 창안되어 오늘날까지 거의 원형 그대로 전래된 ‘초월적 지식과 영험한 지혜’의 운영체계다.” 요컨대, <주역>이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예지하게 해주는 비의적 말씀인 것인데, 이것을 단순히 비과학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는 칸트의 순수이성이 대표하는 합리적 지식으로는 영적·직관적 인식의 세계를 파악할 수 없으며, 그런 세계는 사람의 지혜를 뛰어넘는 초월적 지혜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2-3. 2008년 11월 월간조선 기사

"독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黃台淵(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학계에서 주역 전문가로 통한다. 주역을 15년 넘게 연구해온 그는 현재 대학원 과정에 개설된 ‘중국 고대 정치사상’ 과목에서 주역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최근 <실증주역>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냈다. 황 교수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주역을 통해 미래를 내다본다. 새천년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장을 지낸 그는 2004년 總選(총선) 직전 민주당이 차지할 의석 수(9석)를 정확히 예측한 바 있다."


3. 그리고 황태연의 주역 연구는 2011년부터의 공자 연구(?)로 귀결된다. 그의 요점은 위대한 동아시아의 "공자주의" 전통을 되살려 서구 근대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서양 철학사·사상사에 대한 연구로서 황태연의 저술은 완전히 무가치한데, 다른 곳에서 언급했듯 그는 영어권에 반 세기 넘게 축적된 스칼라십을 전혀 접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며, 사료비판을 포함한 역사적 접근방식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의적인 억측으로 환상적인 내러티브를 만들고 있다. "환빠사관"의 서구 근대 및 조선 버전이라고 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텐데, 이러한 판타지의 핵심은 자신의 민족적·지역적 정체성과 '전 세계적 헤게모니'를 일치시키고픈 유아적 욕망에 있다. 프로이트가 어린이들의 가족 로망스라고 부른 걸 60대에 도달해 폭발시키는 황태연 어린이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3-1. 책과 길 / ‘패치워크문명 시대의 공맹 정치철학’ 펴낸 황태연 교수
2011-02-17 / 김상기 <국민일보>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왜 지금 다시 공자 맹자인가’라고 묻자 황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답을 쏟아냈다.
“이제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한 서구화 시대를 지나 동아시아 중심의 아태화(亞太化)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2009년을 기준으로 한·중·일 및 대만 싱가포르 등 5개국 GDP 합계는 11조3000억 달러 규모로 유럽연합 GDP 합계(10조7000억 달러)를 앞질렀고 미국(14조 달러)도 위협하고 있어요. 기술이나 문화, 스포츠,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동아시아가 세계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동아시아의 정신과학만큼은 서구에 대한 자폐적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요. 공맹철학은 서구의 오만한 전지주의적 합리론에 맞서는 덕성주의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으니 당연히 살려야죠.”

황 교수는 동아시아 문명을 유교의 토착적 요소를 바탕으로 서구 기독교문명을 짜깁기한 것으로 분석하고 이를 ‘패치워크 문명’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여기에 공맹철학의 개념을 덧붙여 동아시아인들에게 올바른 역사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서구문명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 황 교수는 “요즘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시키는 정의를 가르치는 책이 베스트셀러라는데 이는 한국인들의 서양철학에 대한 열등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며 “미래를 동아시아의 시대로 맞이하려면 서양철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3-2. 책과 생각- 지성/ '공자와 세계 1~5' - 서구 기독교문명의 대항마는 ‘공자주의’ 2011-02-19 / 고명섭 <한겨레>

"이 책에서 지은이의 관심은 서구의 기독교문명에 맞서 동아시아 유교문명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 유교문명이 기독교문명을 넘어 더 보편적이고 더 인간적인 문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그렇다고 해서 지은이가 무작정 유교문명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문명을 적극 수용해 자기 문명을 재창조하는 데 먼저 성공한 것은 기독교문명이었다. 서구는 17~18세기에 동아시아 정신문명을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해 계몽주의의 꽃을 피웠다. 케네와 스미스가 공자의 ‘무위’ 사상을 수용해 ‘자유시장’ 원리를 제시하고, 볼테르가 ‘인’(仁) 사상을 받아들여 근대시민혁명의 이념을 제시한 것은 이 책의 많은 사례 가운데 일부다.

지은이는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간 유교사상이 이렇게 ‘패치워크 계몽사상’을 형성했으며, 이 계몽사상이 18세기 말 시민혁명을 거쳐 서구 기독교 문명이 동아시아 문명을 능가하게 만든 정신적 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반면에 동아시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양이’(洋夷), 곧 서양 오랑캐라는 말 한마디에 압축돼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서양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동아시아는 서양 사람들을 ‘서양 오랑캐’로 깔보고 문을 굳게 걸어 잠금으로써 이 지역을 “거대한 ‘지리산 청학동’”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 지은이는 이 공자주의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이 세계사적 헤게모니를 쥘 경우, 과거 서구 문명의 침략적 지성주의의 헤게모니가 아니라 덕행과 무위의 ‘덕성주의 헤게모니’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3-3. '미스터 좌파'… 왜 헤겔을 버리고 孔子로 갔나 / 전병근 기자 <조선닷컴> 2011.02.22.

"왜 지금 여기서 공자인가? "오래전부터 동·서양을 아우르는 게 학자로서 의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이나 대학 때도 한문을 많이 했다. 유학 마치고 귀국해 동양 정치철학도 20년 가까이 가르치고 연구했다. 그동안 쌓인 것을 지금의 시대상과 결부시켜 대안을 제시해보려 했다."

사실 그의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3년 '사상체질과 리더십'을, 2005년 '공자의 주역관'을 썼다. 2008년에는 1000쪽이나 되는 '실증주역'도 펴냈다. 당시 주역을 유교적 신학(神學)에 비유하면서 동양문화의 밑그림을 알기 위해 필요한 학문이라고 했다. 그때도 서양의 이마누엘 칸트와 막스 베버를 들어 주역을 설명했다.[...]
책에는 '파격적인' 대목이 적지 않다. 18세기 유럽 계몽주의가 공자·맹자 사상에서 발원했다는 입론은 적어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아담 스미스는 공맹 사상을 베껴 쓰면서 주를 안 달았다. 볼테르가 주창한 톨레랑스(관용)도 동양의 인(仁)에서 건너갔다." 그 결과 유럽은 동양 사상으로 전면적 혁신을 이뤄 서세동점(西勢東漸)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 동아시아는 그때까지 서양보다 우위에 있었음에도 닫힌 태도를 고집하다 역전됐다는 것. 그는 이 명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플라톤에서 푸코, 사마천에 이르는 숱한 동·서양 고전을 파헤쳐 각주에 열거했다. 그는 "한때 세계를 석권했던 서양의 합리주의는 이제 스스로 파탄을 선언했고 포스트모더니즘도 '철학적 개그'로 끝났다. 이제 역사의 사이클은 동아시아로 돌아오고 있다. 동아시아 유교문명권을 재건하는 길은 서구의 경험주의와 연대해 공맹철학을 재창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공자는 중국이 요즘 '소프트파워'로 내미는 국가 브랜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 교수는 "공자 사상은 공산당 지도 이념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은 유교 전통을 부정하지 않고 근대화를 달성했기 때문에 오히려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3-4. 그의 이런 동아시아 빠(?)가 버젓이 신뢰할만한 레퍼런스로 거론되는 걸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김운회의 글에서 볼 수 있다.(죽은 표현양식이 산 존재양식을 구속하다: [김운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5> <프레시안> 2012년 8월 15일,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39426)


4. 老兒 황태연의 만물공자해결론·동아시아대세론은 이후의 저작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요점은 같다. 원래 공자가 만들어낸 서구 근대는 끝났고 동아시아가 헤게모니를 쥘 차례이며 그 핵심은 공자주의의 덕치에 있다는 것이다(나는 이 문장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 가지 짚을 점은, 황태연의 괴작들이 주요 언론에서 전혀 비판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으며 <한겨레>나 <중앙일보>(대표적으로 배영대 문화선임기자)를 포함해 학술과 서적을 소개하는 기자들이 그의 주장을 상세히 받아쓰기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진심으로 동아시아 이데올로기에 공명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책으로 출간된 건 다 믿는 비판능력이 결여된 독자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주요 언론이 역사를 포함한 학술분야를 제대로 다룰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확실하다.

4-1. 서양의 ‘정의’보다 공맹의 ‘인애’ 2015-01-08 <한겨레> 최원형 기자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 1·2
-공자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심층 이해를 위한 학제적 기반이론
[...]
지은이의 독창적 연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공자가 ‘대동’(大同)의 이념으로 꿈꾸었던 ‘인의·행복국가’는 오래된 미래로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의·행복국가’의 대척점에 근현대 국가들의 공통 목표였던 ‘정의·복지국가’를 놓는데, 이는 정의를 제일 중요한 잣대로 삼아온 서양의 사상적 사조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정의제일주의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적대적 반목과 자기모순, 자연의 초토화 등을 야기해왔다는 진단이다. 지은이는 정의보다 ‘인애’(仁愛)를 앞세운 공자와 맹자의 윤리학이야말로 오늘날 새로운 윤리와 국가의 패러다임에 적합하다고 보며, 이번 책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기반이론’을 만들고자 한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기반이론의 주된 열쇳말은 ‘공감’과 ‘해석학’으로, 공자의 사상을 준거로 삼아 인간이 자아와 타아의 존재 의미를 알 수 있는 새로운 인간과학의 이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논증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지은이는 ‘충서’(忠恕)라는 말 속에 공자의 ‘공감’ 개념이 녹아있다고 본다. ‘서’를 파자하면 ‘여심’(如心)으로 공감을 뜻하고, ‘충’은 ‘일관성’으로 경험지식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객관적·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인간은 타고난 공감 역량에 따라 자아와 타아의 존재와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으며, 이를 이론으로 집성한 ‘공감적 해석학’은 복지·정의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인애·행복국가의 이론적 기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지은이는 “모든 정치행위는 국민의 공리적·유희적·미학적·도덕적 정체성과 감정을 공감하고 종합하여 대표하는 공감적 대의행위”라고 말한다. 또 기반이론을 기틀로 삼아 앞으로 2년 안팎에 ‘도덕과 국가의 일반이론’을 펴낼 것이라고 약속한다. “서양 주류의 정의제일주의와 정의국가론에 맞서 ‘정의’보다 ‘인애’가 앞선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고, 19~20세기풍의 낡은 ‘정의·복지국가’를 대체할 21세기의 새로운 ‘인애·행복국가’론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는 다짐이다. "

4-2. 여러 언론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소개한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김영사, 2015)의 병맛스러움은 내 블로그 글에서 언급했으니 더 다루지 않겠다(http://begray.tistory.com/417).


5. 공자주의 만세론에서 서구 근대사상에 대한 독특한 판타지를 펼쳐보인 황태연은 이제 자신의 꿈을 한국근현대사에서 실현시키고자 한다. 적어도 내 주변의 젊은 한국사 전공자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 그의 요점은 고종과 대한제국 시기 한반도는 세계적인 강국으로 무난히 근대화의 경로를 걷고 있었으며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에 그 길이 흐트러졌다는 것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사학계는 죄다 식민사학에 물들었다는 진부한 음모론을 펼친다. 나는 이 분야를 잘 모르지만, 그의 전작을 볼 때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새롭게 사료비판능력을 갖추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앞서 공자문명론을 읽은 독자라면 원래 조선이 완벽한 나라였다는 주장이 그다지 새롭지는 않을 것이다(그리고 여기에는 뛰어난 군주들이 현명하게 통치했다는 군주정에 대한 옹호가 은밀하게 들어가 있다; 이는 중국식 현능주의meritocracy를 지지하는 반민주주의적 동아시아론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경로다). 이른바 "사이비 역사학"의 근현대사 버전이라고 할 만한 황태연의 저술은 특히 <중앙일보>에서 수차례에 걸쳐 중요하게 소개되었으며(배영대 기자가 황태연과 같은 궤의 주장을 내놓는 한영우의 책 또한 소개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SBS라디오 및 <헤럴드 경제>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언론과 사이비 역사학의 자위적 역사관에 한국사학계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는 이제 지켜보도록 하자.

5-1. 대한제국은 무기력하게 망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2017.08.04 배영대 기자

"그동안 우리가 대한제국 시절을 돌아보기조차 싫었던 이유는 뭘까. 전혀 공감이 가지 않고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사건들만 나열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대적인 역사 서술은 일본 학자들의 손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가슴 아픈 일이다.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망할 수 있었을까, 이런 느낌을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황태연은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누락시켰고 해방 이후 한국 학자들도 눈치 채지 못했던 두 개의 사건을 복원해냈다. 1894년의 갑오왜란과 1904년의 갑진왜란이다. 한문ㆍ영어ㆍ독일어ㆍ불어ㆍ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한 장기를 살렸다. [...]
1894년 6월 갑오왜란 때 침입했다가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한 백성들의 무장봉기와 고종의 아관망명으로 일시 퇴각했던 일본군은 1904년(갑진년) 2월 다시 침입해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다. 일제의 전면 침공에 국군과 민군(의병)이 힘을 합쳐 전국 각지에서 6년간 처절한 ‘국민전쟁’을 벌이며 저항했다. 그때 패배했다고 대한제국 국군을 오합지졸로 깔보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1901년 이미 한국군은 일제 외에 아시아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3만 대군의 ‘신식 군대’였고, 을사늑약(1905년) 이후 3만 국군과 민군이 합쳐 조직된 국민군은 14만1815명에 달했다. 청군과 러시아군을 이긴 일본군에 맞서 싸움을 싸움답게 해본 군대는 훗날 미군을 제외하고 대한제국의 국민군밖에 없었는데 이런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황 교수의 책은 지적 희열과 도덕적 의미와 함께 우리 근대사의 은폐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대한제국은 무기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대 아시아 2위의 경제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었음을 국내외 기록과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입증한다. 또 구본신참(舊本新參)의 개혁노선으로 독자적인 근대화(광무개혁)에 성공하면서 근대적 신분해방의 ‘민국(民國ㆍ백성의 나라)’이었음도 흥미진진하게 확인시켜준다. 올해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해 보인다."


5-2. [박진호의시사전망대] 日 왜곡에 폄하된 위대한 대한제국 '5년의 韓日전쟁' / 2017. 08. 15. SBS라디오
■ 방송 : 박진호의 시사 전망대 (FM 103.5 MHz 6:20-8:00)
■ 진행 : SBS 박진호 기자
■ 방송일시 : 2017년 8월 15일(화)
■ 대담 :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한제국은 3만 명 넘는 현대식 군대 가진 군사 대국
-OECD 통계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 1,048달러에 이르러
-경술국치 당시 고종?명성황후?대원군 욕하는 식민사관 프레임에 갇힌 책들 쏟아져
-日 궁궐 점령 후 고종 생포, 포로수용소나 다름없는 친일파 정부 세워
-갑오경장은 사이비 개혁 '갑오왜란' 감추는 교신 증거 상당해
-고종에게 밀지 받은 전봉준 2차 봉기 앞두고 육필로 누설말라 당부
-서재필 독립신문 자기 돈으로 만들었다 거짓말, 100% 고종의 내탕금
-친일파 박영효 끄나풀들, 친일파가 주도한 만민공동회


5-3. “대한제국은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 새로 쓴 한국근대사 2017-08-11 / 이윤미 기자 <헤럴드경제>

"‘치욕스런 시기가 바로 위대한 시기였다’
황태연 교수, 1894~1945년 한국근대사 3부작 통해 새롭게 기록
대한제국은 입헌적 계몽군주정,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
갑오년, 갑신년 日침략, 왜란으로 대한제국 멸망 설명
[...]
대한제국의 헌정성격을 입헌적 계몽군주정으로 본 것이다. 국제는 전제정치와 황제권을 규정한 2,3조 외에 국민의 권리와 정부의 구성 등에 관한 규정이 없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저자는 이는 국제 1편에 해당하며, 이후 제2편, 제3편을 수립하는 작업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어지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또 국제에서 주목할 것은 제2,3조의 전제정치와 황제권이 아니라 1조에 명시한 민심의 급선무인 자주독립국을 규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한제국기의 사상과 국가비전에 대해서도 황 교수는 새로운 주장을 편다. 저자는 당시 가장 빈번히 언급된 사상으로 민국(民國)이념을 든다. 신분적으로 자유 평등한 국민국가를 지향, 서얼· 중인· 평민· 천민 출신에게 공무담임권을 보장하고 대의적 참정제도를 확립하는 등 민국이념은 대한제국 발전의 정치사상적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

OECD 경제통계 책임을 맡았던 앵거스 매디슨이 2012년에 산출한 한·중·일 각국의 1인당 GDP통계를 보면, 조선경제는 늦어도 개항 훨씬 전인 1869년 이전에 저점을 통과했고, 1911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815달러를 기록했다. 고종시대 전반, 특히 대한제국 전반에 걸쳐 고도성장이 진행됐다는 얘기다.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에 이어 아시아 4위에 올랐던 한국경제는 이후 비약적 성장을 계속해 1915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추월, 일본 다음의 경제대국에 오른다.이는 일제가 1905년부터 1919년까지 한국에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고 수탈만 일삼던 시대에 달성된 것으로, 저자는 이를 광무개혁의 성과가 이어진 결과로 해석한다.

대한민국의 근대화의 토대는 바로 대한제국에서 마련됐다는 것이다. 광복군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민국 국군은 대한제국의 3만 ‘한국군’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 국화 무궁화, 애국가 가사도, 훈민정음의 근대적 재창제물로서의 한글도 대한제국에 가 닿는다. 근대적 시장경제, 근대적 기업과 회사, 근대적 경제발전, 도시계획도 대한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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