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근대 자유주의의 중세 기독교적 기원?: 래리 시덴톱, 『개인의 탄생』서평

Reading 2017. 8. 6. 03:21

아래는 2017년 6월 1일 출간된 <학산문학> 96호(2017년 여름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0847635 )에 게재된 나의 서평을 블로그 형식에 맞게 편집해 올린 것이다.  다른 게시물에서 몇 번 언급했듯 한국의 서구지성사·정치사상사 연구수용은 매우 좁은 통로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번역의 수준 또한 안정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래리 시덴톱의 책은 흥미로운 중요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는 그다지 신뢰하기 힘든 번역의 문제로,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이 책이 속한 맥락을 이해하는 독자층 자체가 매우 옅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서평대상으로 이 책을 고른 것은 서두에서 밝혔듯 그러한 상황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이 책이 가로지르는 여러 쟁점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짚고자 했는데, 나의 목표가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다른 독자들만이 알 일이다. 제시된 지면의 두 배 길이에다 문예지에 걸맞지 않게 각주로 빽빽하게 채워진 원고를 쓴 소리 한 마디 없이 실어준, 그리고 블로그 게재를 허락해준 <학산문학> 측에 감사를 전한다.


 블로그에 게재된 원고는 몇몇 대목에서 출판된 원고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정확한 인용을 위해 원문이 필요하신 분은 이 링크( https://goo.gl/Ric4sN )를 참조하시라.





서구 근대 자유주의의 중세 기독교적 기원?:

래리 시덴톱, 『개인의 탄생: 양심과 자유, 책임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1)



출간 후 약 반년 가량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래리 시덴톱의 『개인의 탄생』 한국어판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단지 상업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보다 지적인 관심사를 가진 독자들에게도 그 핵심적인 논지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언론 리뷰기사는 놀랄 만큼 많은 수에 비해 매우 피상적인 수준의 이해도를 보여주며, 적어도 곧바로 검색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독자서평 또한 더 낫지는 않다. 나는 그 중요한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 한국 독자들에게 시덴톱의 논의가 속한 지적인 맥락이 심지어 학술장에서조차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 『개인의 탄생』은 일차적으로 서구 자유주의·세속주의와 그 비판자들을 둘러싼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논쟁을 겨냥하고 있으며, 동시에 저자의 주장을 중세 기독교사,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영미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교회법·국가에 대한 사상사적 연구에 접붙이고 있다. 이중 전자의 맥락이 비교적 제한적으로 소개되어왔다면, 후자의 경우, 아마 영미학계의 지성사 연구 자체가 제대로 읽히지 않아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문헌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출현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둘째, 끝에서 번역본의 문제를 다시 언급하겠지만, 한국어판은 저자의 분명한 의도를 상당히 흐릿하게 만들어놓았다. “개인의 발명: 서구 자유주의의 기원”으로 번역될 수 있는 원제와 비교해보면 “양심과 자유, 책임”을 핵심키워드로 제시하는 한국어판 제목은 저자의 의도를 매우 추상적이고 뭉툭하게 만들어버린다. 저자가 자신의 입장을 매우 분명하게 밝히는 부분인 서문(Prologue)에서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가 발견된다. “서구란 도대체 무엇인가?”(What is the West About?)라는 서문 제목은 역시나 추상적인 “도덕적 신념은 다 어디로 갔나?”로 옮겨졌으며, 더불어 책의 핵심어휘로서 종교적 뉘앙스를 매우 강하게 함축하고 있는 "belief"는 일괄적으로 “신념”으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변경은 서구 자유주의 및 세속주의를 다시금 기독교 전통과 긴밀히 연계시키고 또 양자의 연속성을 서구 정체성의 핵심에 놓으려는 저자의 의도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이 서평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난점들을 넘어 『개인의 탄생』이 제대로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먼저 시덴톱의 책이 속한 두 가지 맥락, 즉 자유주의·세속주의를 둘러싼 논쟁 및 중세 기독교와 서구 근대의 관계를 강조하는 영미권의 연구경향을 아주 거친 수준에서 소개할 것이다. 다음으로 책 전체의 줄거리를 간략히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저자의 기획과 한국어 번역본에 대한 짧은 평가를 제시하겠다.


자유주의 전통이 오늘날의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역사적 대상으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근래에 폭발적으로 확장 중임을 고려할 때, 이 짧은 지면에서는 매우 제한적인 소개만이 가능함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오늘날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통념의 골격을 형성한 이들로 20세기 중반 서유럽의 냉전 자유주의자들을 꼽는 데 딱히 무리는 없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과 중부유럽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주도권을 잡는 과정을,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폭력과 희생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보았던 냉전 자유주의자들은 칼 R. 포퍼의 “열린 사회”에 대한 강조에서처럼 특정한 이념·진리체계가 국가 혹은 사회 전체를 장악하는 것을 회의주의적인 시선에 따라 강하게 비판했으며, 이와 함께 아이자이어 벌린의 “소극적 자유”가 보여주듯 국가·다수의 억압과 강제에 침해당하지 않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했다.2) 특히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을 경험하고 파시즘,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간직하게 된 독일인 망명자들은 미국 냉전기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헤게모니에 기여했는데, 우리는 이 기간 동안 영미에서 계약론 및 사적 소유의 침해불가능성을 강조한 존 로크를 시조로 삼는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사가 일종의 ‘만들어진 전통’으로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3)


베트남 전쟁에 대항한 반전운동과 함께 냉전기 정치사상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진 이후, 다원주의와 복지국가에 적합한 정치철학을 제시하고자 한 존 롤스의 1971년작 『정의론』 및 이후의 저작들은 마이클 샌델,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찰스 테일러, 마이클 왈저와 같은 쟁쟁한 비판자들에 의해 촉발된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을 통해 1980-90년대 영미 정치철학에서 자유주의가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수행했다. 논쟁을 ‘자유주의적 개인’을 중심으로 매우 단순하게 정리해보자.4) 롤스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각자의 능력, 이해관계, 가치관, 성향 등을 분리한 채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원초적 입장”을 일종의 자연상태로 상정하는 사회계약론적 모델을 설정하고, 이에 기초하여 체제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정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때 롤스가 상정하는 원초적 상황의 인간, 즉 능력이나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가치관과 성향까지 분리할 수 있는, 그래서 주어진 선(善)보다 자신의 권리를 우선시킬 수 있는 개인을 상정하는 게 얼마나 타당한지, 그리고 그러한 개인으로부터 정치체제를 위한 보편적인 당위를 도출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이러한 개인을 “무연고적 자아”(unencumbered self)라 비판적으로 명명하며 자아가 가족, 공동체, 국가를 포함한 특수한 애착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한 샌델을 선두로, 공동체주의자들은 대체로 롤스 혹은 자유주의적 입장이 특수성을 배제한, 따라서 존재할 수 없는 ‘보편적’ 인간관을 추구하는 잘못을 범하며, 자아 및 당위에 대한 감각의 형성에 공동체적 기원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성격을 배제한 개인을 상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5) 이후 논쟁은 롤스 혹은 자유주의가 실제로 그러한 초월적 주체의 개념을 채택하는지, 혹은 테일러가 잘 지적했듯 공동체주의적 인간관에 기초한다고 해서 규범적 모델로서 자유주의를 채택할 수 없는 것인지 등을 포함해 양측의 대립선이 점차 흐릿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6)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 자체가 아닌 그로부터 제시된 자유주의 비판론의 기본적인 골격이다. 즉 자유주의를 인간의 삶에서 전통, 종교 및 그것들로부터 비롯되는 도덕과 같은 공동체적인 요소를 배제하여 고립된 개인을 만드는, 또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릇된 입장으로 바라보는 논리 말이다. 멀게는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의 급진주의적 자연권론자들에 대한 에드먼드 버크의 비판으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 유럽의 세속화과정에 대한 보수주의자·기독교인들의 비난에서까지도 이어졌던 이러한 논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 공산주의가 강요하는 세속화에 대항하여 기독교인들이 지켜내야만 하는 보루로 여겨졌던―전후 유럽 최대의 정치세력은 기독교민주주의자들이었음을 기억하자―20세기 중반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7) 20세기 후반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을 거치며 재등장한 이 구도는 비서구 사회, 특히 고유한 종교적·문화적 전통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지속된 동아시아 및 이슬람문명권에서 서구적 근대가 주장하는 보편성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되기에 이른다. 1990년대 싱가포르의 리콴유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등은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아시아적 가치”가 서구 민주주의의 개인주의·자유주의보다 동아시아 사회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의 병폐를 사회적·공동체적 접근을 통해 보다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8)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아시아적 가치의 우월성 주장은 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겪으며 가라앉았으나, 서구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2010년대인 오늘날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서구 근대가 수명이 다했으며 중화의 고유한 질서 및 현인들이 다스리는 “덕치”를 따라야 한다는 동아시아론자들, 그리고 서구의 세속적 자유주의가 초래한 도덕적 타락을 거부하고 이슬람교에 입각한 사회질서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슬람 복고주의(Islamic revivalism)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9)


『개인의 탄생』이 저자 스스로 분명히 말하듯 위와 같은 형태의 자유주의 비판으로부터 서구 자유주의 전통을 옹호하고자 하는 저술이라면(7), 우리가 눈여겨 볼 지점은 앞서 말했듯 저자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중세 기독교 전통을 소환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도전적인 시도는 무엇보다도 서구 근대와 중세적 전통을 연결하고자 하는 일련의 연구물에 토대를 두고 있다. 곧바로 그에 대한 소개로 들어가기 전, 나는 먼저 서구 학술장 내에서 서구 근대의 역사적 출발점을 어느 시기로 설정할지를 두고 여러 다른 입장이 경쟁해왔음을 지적하고 싶다. 고전적인 맑스주의적 관점이 근대성을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의 승리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18-19세기를 근대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간주한다면,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으로 개신교 윤리를 꼽는 베버적 시각에서는 근대 합리화과정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종교개혁시기를 강조한다. 그 외에도 18세기 계몽주의가 되었든 혹은 인문주의와 르네상스가 되었든, 이러한 관점들은 시기설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근대성을 기독교 및 중세적 전통과의 단절로 파악해왔다. 시덴톱이 참고하는 연구경향의 독특함은 이러한 합의를 거슬러 중세와, 그리고 무엇보다 기독교 전통과 근대의 연속성을 추적한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20세기 초반의 독일어권 학계, 그중에서도 칼 슈미트를 꼽을 수 있다. 1922년의 『정치신학』에서 슈미트는 “근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라는 테제를 제시했다. 로마 카톨릭적 배경 하에서 성장한 슈미트의 요점은 특히 주권 개념을 중심으로 근대 국가론은 중세 기독교신학과 근본적인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른바 영국식 의회주의를 비롯한 근대적 정치이론은 이 사실을 망각한다는 점에서 실패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통상적으로 슈미트, 발터 벤야민, 조르조 아감벤으로 이어지는 주권론의 정치신학적 계보만을 강조하는 (주로 좌파 정치철학적인) 시선에서는 간과되고 있지만, 국가 혹은 통치 이론에서 중세 기독교신학과 근대 국가론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전통이 슈미트 외에도 존재했으며 그것도 독일법학이 아닌 영미 역사학에서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대표적으로 에른스트 칸토로비츠와 발터 울만을 제시하고 싶다. 유태인 혈통에 대한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독일·오스트리아를 떠나 영미로 망명한 이들은 한편으로 중세 국가이론에서 근대 국가이론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슈미트의 논의와 공유하는 바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슈미트가 중세 기독교전통과 대척되는 것으로 보았던 영국식 의회주의·헌정주의 전통 또한 중세 기독교신학과 연속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슈미트와 달리 중세와 근대의 연속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입장을 제시했다. 칸토로비츠는 1957년 출간한 『왕의 두 신체』에서 대륙적인 군주 주권론 전통만이 아니라 영국의 의회주권의 전통 또한 정치신학적 기원을 갖는다는 것을 밝혔으며, 중세 교회법을 연구한 울만은 여러 작업에서 중세에 교황주권론과 같은 통치의 “하향식”·군주제적 전통만이 아니라 공의회주의와 같은 “상향식”·인민주권적 전통 또한 형성되었음을 보여주었다.10)


중세의 신학·법학적 논의와 근대적 국가이론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특히 케임브리지에서 교수직을 맡은 울만을 통해 영미 중세사, 그중에서도 교회법과 정치사상 연구자들에게 이어졌다. 울만의 제자이자 위대한 중세사가인 브라이언 티어니가 대표적으로, 그는 중세 카톨릭 교회법에 대한 연구에 기초하여 서구 근대 정치사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헌정주의와 카톨릭 공의회주의의 연속성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인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근대의 자연권 논의 또한 중세에 핵심적인 논리가 제시되었음을 주장했다.11) 미국의 법학에서도 유사한 흐름을 찾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역시나 독일 망명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해롤드 버만은 11-12세기 기독교 교회법의 형성과정을 추적한 대작 『법과 혁명』에서 중세 법학자 교황들에 의한 “교황 혁명”(Papal Revolution)이 법에 기초한 통치제도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 시기의 기독교 교회가 서구 근대 국가의 최초의 원형이 되었다고 주장한다.12) 우리는 이러한 연구들로부터 먼저 서구 근대의 핵심적인 성격으로 법에 따르는 헌정주의 및 피통치자들의 권리라는 두 가지 요소를 제시하고, 다음으로 이러한 요소들이 중세 기독교적 기원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공통된 논리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토대로 시덴톱은 기독교적 원리를 근대사회의 도덕적 바탕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근래 서구 학술장의 연구경향에 합류한다.13)


서문과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6부 25장으로 구성된 『개인의 탄생』을 나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요약하고자 한다.14) 우선 1장부터 9장까지는 고대적 사고와 새로운 기독교적 사고를 대조시킨다. 저자는 (주로 퓌스텔 드 쿨랑주를 참고하면서) 특히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에 굳어진 통념과 달리 고대인들이 결코 자유롭고 세속주의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한다. 고대인들은 철저히 가족과 가족 중심적 신앙에 결속되어 있었으며, 가족 구성원들은 가부장의 지배 하 엄격한 위계질서를 따라야만 했다. 이러한 ‘불평등’은 고대의 우주론에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고대인들은 만물을 관장하는 이성에 따라 세계에 존재의 위계질서가 있으며 보다 높고 뛰어난 존재의 삶만이 가치 있다고 믿었다. 바울부터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서로마가 멸망할 때까지의 기독교인들은 고대적 사고와 대조적인 “도덕적 직관”을 점차 형성해나갔다. 핵심은 모든 인간은 유일한 보편자인 신에 대한 신앙을 통해 도덕적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내면의 신앙과 의지를 갖춘 인간은 신 앞에서 모두가 영적으로 평등한 존재라는 사고였다. 이처럼 삶의 가치를 불평등한 위계 속에서의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 신앙을 통해 모두가 평등해진 가운데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교리는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유일한 보편자와 연결시키면서 가족과 지역적 관습·공동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보편적 자유를 지닌 개인적 주체로 재탄생시킬 잠재력을 지녔다(이것이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기독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여성 또한 신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통해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수도원은 자유로운 의지와 독립적인 양심을 지닌 개인들의 연합으로서 출생으로부터 귀속된 ‘자연적’ 위계질서 및 관습으로부터 벗어난 공동체 모델을 보여주었다. 즉 고대의 불평등하고, 귀족주의적이며, 가족·관습 종속적인 사고에 대항해 기독교는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보편을 따르는, 따라서 자유로운 개인이 등장할 수 있는 사고를 형성했다. 시덴톱은 후기 고대부터 중세까지 기독교세계의 형성을 이러한 고대적 태도로부터 점차적으로 탈피해가는 과정으로 그린다.


물론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기독교 교회가 고유의 법적 체계를 지닌 독립적인 정치체로 성장하여 유럽 근대국가의 원형을 제시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10장부터 20장까지다. 로마제국 멸망 후 유럽은 (샤를마뉴의 치세를 제외하면) 상당히 긴 기간 동안 보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치기구가 부재한 상태였으며, 이는 각 지역에서 무력을 보유한 유력자의 자의적인 통치를 견제할 수 있는 주체 또한 없다는 걸 의미했다. 로마의 유산을 간직한 유일한 조직이었던 교회는 이런 상황에서 지역 유력자들의 전횡으로부터 성직자와 신도들을 보호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세속적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었다. 영적 권력과 세속적 권력의 구별은 전자를 담당하는 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가 되어주었으며, 동시에 왕과 영주들의 자문역을 맡은 성직자들은 통치에 로마법과 기독교적 도덕이 반영되도록 할 수 있었다. 교회는 이 과정에서 한편으로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에서처럼 세계의 도덕성을 대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로마법의 유산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입헌적 기구로 재구축하기 시작한다. 해롤드 버만의 테제를 받아 “교황 혁명”을 설명하는 15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1세기 중반 법률가로서의 훈련을 받은 개혁가 교황들 중은 먼저 교황선출 절차를 추기경단에 의한 선출로 채택함으로써 교황권의 자율성과 합법성을 추구했으며, 이와 함께 교황이 독자적인 사법권을, 다시 말해 주권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고유한 교회법 체계에 따라 독립적인 주권·자율적인 통치권 재생산 모델을 설립한 교회는 이후 세속의 왕과 영주, 도시국가들이 교회를 모방해 법적 통치를 수행하는 국가모델을 추구하는데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중앙집권적 사법체계 및 법적인 소송절차 하에서 신도들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가족과 신분, 관습으로부터 독립된 한 명의 평등한 개인으로서 의지와 책임을 지닌 존재로 간주되었다. 즉 교황혁명은 “하나의 법적 체계로서의 교회를 개인화된 사회 모델과 연결”시켰으며(336), 이는 여전히 지방유력자들에게 남아있던 고대적 사고, 즉 위계·계급질서에 기초한 통합적 사회의 모델을 점차 해체해나갔다.


21장부터 24장까지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강력한 주권자로 자리 잡은 교황권에 대항해 교회 내에서 인민주권적인 논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시기를 전후해 11세기부터 14세기에 이르는 동안의 근본적인 변화요인은 바로 “개인의 발명”이었다(389). 대표적으로 오컴의 윌리엄은 세상의 원리로서의 이성에 종속되지 않는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을, 그리고 그러한 개별 주체의 자연권을 강조했다. 전체로서의 공동체 혹은 보편적인 질서가 아닌 개별자들만을 유일한 실체로 인정하는 유명론의 흐름 하에서, 이제 세계에 주어진 질서로서의 자연법은 점차 개별 주체의 의지를 반영하는 자연권적 성격을 띠어갔다. 이 논리가 법인에 적용될 때, 법적 허구인 법인격 혹은 주권자가 아닌 법인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유일한 실체이고 그에 따라 정치체 혹은 법인격의 최종적인 정당성은 개별 구성원들의 집합에 있다는 논변이 나올 수 있었다. 이 논변은 14-15세기 대립교황들이 출현하는 서방 교회의 대분열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도들의 총합으로서 공의회가 개별 교황을 넘어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는다는 공의회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시덴톱은 25장에서 논의를 정리하면서 중세에 이미 “자유주의적” 신념들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등장했으며, 16세기 종교개혁·세속국가의 성립부터 18세기 계몽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이것들이 일관된 프로그램으로서의 자유주의적 세속주의를 형성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18-19세기의 반(反) 교권주의는 자유주의적 세속주의의 기독교적 기원을 망각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오늘날까지 기독교와 세속주의는 심지어 기독교인들에게조차도 적대적인 관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시덴톱은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면서 세속주의는 단순히 가치중립적인 태도나 불신앙이 아니며, 그것이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자가 된다는 것을, 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유로운 선택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확고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속주의는 참된 신앙이 형성되고 지켜지는 조건을 뜻한다”고 역설한다(586, 번역 일부 수정).


『개인의 탄생』이 자유주의를 둘러싼 논쟁에 기여하는 바는 내 생각에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 책은 자유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세속주의가 전통, 신앙, 도덕을 결여한다는 비판에 반박할 수 있게 해준다.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이 이미 보여주었지만, 자유주의는 한때 그 신봉자와 비판자 함께 믿었듯 도덕과 공동체로부터 자유로운, 밀폐되고 텅 빈 주체를 만드는 사상이 아니 그 자체가 종교적 원칙을 토대로 하는 도덕적 입장이기도 하다(물론 이 입장이 서로 다른 가치들의 충돌이라는 근대적 조건에서 어느 정도 유의미한 활약을 할 수 있을지는 내 생각에 아직은 분명치 않다). 둘째, 세속적 자유주의의 옹호자들은 중세 유럽이라는 장구한 역사적 원천을 자신들의 뿌리로 주장할 가능성을 얻었으며, 동시에 여전히 곳곳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독교인들과의 연합가능성을 덜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중세정치사상사 연구의 주요 성과를 비교적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셋째, 이 책은 자유주의가 단순히 개개인의 입장이 아닌 보편적 법에 기초한 통치체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정치적 사유가 단지 사적인 영역 혹은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공적인 통치행위와 국가기구의 작동방식을 함께 아울러야 함을 가르쳐준다.15) 이는 시민사회의 정치적 사유가 종종 국가·제도·법에 대한 반감과 회피로 향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특히 유의미한 깨달음이다.


물론 시덴톱의 책은 비판적 응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첫 번째 문제는 중세와 근대의 거리를 매우 과감하게 좁히는 데서 비롯된다. 시덴톱이 말하는 자유주의의 핵심요소가 무엇인가? 만약 그것이 보편적인 법에 입각한 통치와 개별 주체의 독립적인 의지 및 자연권을 강조하는 “도덕적 직관”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유주의에서 저 두 가지 요소로는 해명되지 않는 지점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이를 무시하고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중세 기독교의 “도덕적 직관”과 연결시키고자 하려는 시도는 유교 전통의 개인주의적 요소를 강조하며 유교 자유주의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아마도 시덴톱 자신은 다소 회의적으로 바라볼) 목소리에 뒷문을 열어줄 수 있다. 즉 자유주의에 중세 기독교라는 전통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역설적으로 전자를 훨씬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중세와 오늘날 사이의 간극을 축소하고 싶어 하는 여러 중세 연구자들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두 시대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오늘날의 세계를 형성해왔다는 자명한 사실은 무시될 수 없다.16) 두 번째로 자유주의와 기독교 전통의 결합이 갖는 현재적 의의 또한 논쟁적인데, 자유주의적 근대의 기독교적 원천을 강조할수록 자유주의가 스스로의 강점으로 제시해 온 것, 즉 특정한 종교 전통을 넘어선 보편성을 여전히 간직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다. 더불어 서구 기독교 전통에서 자유주의가 배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오늘날의 자유주의자들이 기독교를 현재적인 우군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17)


마지막으로 한국어 번역본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자. 앞서 몇 차례 언급했듯 한국어판은 원 저작의 의도를 곳곳에서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중에서는 어떤 의향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명백히 의도적인 변경도 있다(이 책을 공식적으로 인용하고자 하는 독자는 반드시 해당 대목을 원서와 대조해보기를 권한다). 6부 구성의 누락과 몇몇 번역어의 변경과 함께 특히 학적인 독자로서 가장 불만스러운 지점은 원저의 6분의 1 가량에 달하는 저자의 참고문헌설명(Select Bibliography) 및 찾아보기(Index)가 통째로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원저 참고문헌설명에서 저자는 각 장별로 자신이 누구의 논의에서 영향을 받았고 또 어떤 저작들을 주요하게 참고했는지를 짧지만 분명하게 제시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학적인 독자들이 더 많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 유용한 지침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저자 본인의 논의가 어떠한 지적 맥락에 기초하는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는데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부록이 아닌 본문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을 그대로 누락한 한국어판은 제대로 된 학술서 번역라 평하기 어렵다. 대체로 읽는 데 큰 무리는 없지만 때때로 어색함을 느끼게 하는 한국어 문장과 함께, 본래 어느 정도 지적인 흥미를 가진 독자들을 위한 책에서 바로 그러한 독자들을 몰아내는 선택을 한 한국어판에 아쉬움이 깊다.



1) 래리 시덴톱, 『개인의 탄생: 양심과 자유, 책임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정명진 역, 부글북스, 2016. 원서 서지사항은 Larry Siedentop, Inventing the Individual: The Origins of Western Liberalism, Cambridge, MA: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P, 2014. 이후 본문 인용 시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경우 한국어판 쪽수 표기. *서평의 초고를 읽고 논평해준 김건우, 최영찬 두 분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2) 칼 R.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이한구 역, 개정판, 전2권, 민음사, 1997-2006[원저는 1945년 첫 출간];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박동천 역, 개정판, 아카넷, 2014[「자유의 두 개념」의 원안은 1957년의 강연에 기초한다]. 냉전 자유주의자들, 특히 포퍼, 벌린, 레이몽 아롱에 대한 간결한 지성사적 정리로는 Jan-Werner Müller, "Fear and Freedom: On 'Cold War Liberalism'", European Journal of Political Theory 7.1(2008): 45-64 을 참고. 이들과 회의주의적 태도를 공유하는 동시대인의 저작으로 마이클 오크쇼트, 『신념과 의심의 정치학』, 박동천 역, 모티브북, 2015 을 보라.


3) 독일인 망명자들의 ‘자유민주주의’와 냉전기 미국 국제정치의 형성에 관해서는 Udi Greenberg, The Weimar Century: German Émigrés and the Ideological Foundations of the Cold War, Princeton: Princeton UP, 2014 를 보라. 20세기 중반 영미에서 로크를 시조로 하는 서구 자유주의 사상사 전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Duncan Bell, "What is Liberalism?", Political Theory 42.6(2014): 682-715 을 참고. 로크를 시발점으로 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서사가 1960년대 후반 이후, 특히 정치사상사의 “케임브리지 학파”(Cambridge School) 1세대 연구자들에 의해 강력하게 비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러한 연구가 반영되지 않은 저술들이 자유주의 정치사상사의 주요 입문서로 읽히는 한국의 상황이 조속히 개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저술의 예로는 C. B. 맥퍼슨,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 황경식·강유원 공역, 박영사, 1990[원저는 1962년]; 셸던 월린, 『정치와 비전: 서구 정치사상에서의 지속과 혁신』 제2권, 강정인·이지윤 공역, 후마니타스, 2009[원저는 1960년]; 앤서니 아블라스터,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조기제 역, 나남, 2007[원저는 1984년].


4)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에 관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표준적인 안내서로는 스테판 뮬홀·애덤 스위프트,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김해성·조영달 역, 한울, 2001 을 보라.


5) 샌델의 『정의의 한계』(이양수 역, 멜론, 2014, 원제는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가 본격적인 철학적 저작이며,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이진우 역, 문예출판사, 1997)의 한국어 번역이 그다지 권할만한 상태가 아님을 고려할 때, 공동체주의적 자아관에 관해 한국어로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1차 문헌으로는 찰스 테일러의 『자아의 원천들: 현대적 정체성의 형성』(권기돈·하주영 역, 새물결, 2016), 특히 1부이다. 테일러의 저술은 이른바 공동체주의자들이 단지 롤스의 개별적인 저작을 상대한다기보다는 20세기 중후반 미국 정치이론에서 주류적 위치를 점하던 자연과학적 행동주의(behaviorism)의 인간관을 포함한 보다 큰 상대를 아울러 겨냥했음을 잘 보여준다.


6) 테일러의 지적은 "Cross-Purposes: The Liberal-Communitarian Debate", 1989, Philosophical Arguments, Cambridge, MA: Harvard UP, 1995, 181-203 를 참조. 논쟁의 여파를 포함해 20세기 후반 영미 정치철학사를 포괄적으로 조망하는 글로는 George Klosko, "Contemporary Anglo-American Political Philosophy" in The Oxford Handbook of the History of Political Philosophyed. George Klosko, Oxford: Oxford UP, 2011, 456-79 를 보라. 내 생각에 자유주의 논쟁을 둘러싼 여러 흥미로운 결과물 중 하나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새 자유주의”(new liberalism) 전통에 대한 지성사적 연구다. 예를 들어 Avital Simhony&D. Weinstein, "Introduction: The New Liberalism and the Liberal-Communitarian Debate" in The New Liberalism: Reconciling Liberty and Communityeds. Avital Simhony & D. Weinstein, Cambridge: Cambridge UP, 2007, 1-25 및 David Weinstein, "Nineteenth- and Twentieth-century Liberalism", Klosko 414-35 을 보라.


7) 앞서 언급한 Greenberg의 책 및 Samuel Moyn, "From Communist to Muslim: European Human Rights, the Cold War, and Religious Liberty", The South Atlantic Quarterly 113.1(Winter 2014): 63-86 참고.


8) 공동체주의와 아시아적 가치의 연계에 대해서는 Daniel Bell, "Communitarianism" i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ummer 2016 Edition), ed. Edward N. Zalta 참조(<https://plato.stanford.edu/archives/sum2016/entries/communitarianism/>, 최종접속일 2017년 5월 13일).


9) 한국에서 극단적 동아시아론을 보여주는 저술로 황태연·김종록,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유럽 근대의 뿌리가 된 공자와 동아시아 사상』, 김영사, 2015 및 이병한, 『반전의 시대: 세계사의 전환과 중화세계의 귀환』, 서해문집, 2016 을 보라. 20세기 이슬람 정치철학에 대한 개관으로는 Michaelle Browers, "Modern Islamic Political Thought" in Handbook of Political Theory, eds. Gerald F. Gaus and Chandran Kukathas, London: Sage Publications, 2004, 367-79 및 같은 저자의 "Islamic Political Ideologies" in The Oxford Handbook of Political Ideologies, ed. Michael Freede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627-643 를 보라. 이슬람 극단주의의 서구 자유주의 비판 문건으로는 ISIS의 기관지 Dabiq 15(2016)에 수록된 "The Firtrah of Mankind and the Near-Extinction of the Western Woman", 20-25 및 "Why We Hate You&Why We Fight You" 30-33 를 참고.


10) Ernst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Princeton UP, 1957 및 W. 울만·J. 모랄, 『중세 유럽의 정치사상』, 박은구·이희만 역, 혜안, 2016 을 보라. 중세와 국가형성이란 주제에 대해서는 칸토로비츠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조지프 R. 스트레이어의 『국가의 탄생: 근대국가의 중세적 기원』, 중앙대학교 서양중세사연구회 역, 학고방, 2012 또한 참고할 수 있다. 20세기 초중반 독일 및 영미권의 중세사학계의 관계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으로는 최근 출간된 Robert E. Lerner, Ernst Kantorowicz: a Life, Princeton: Princeton UP, 2017 를 보라. 덧붙인다면, 학부에서 울만의 수업을 수강한 퀜틴 스키너가 중세 후기에서부터 초기 근대에 걸쳐 국가 개념의 형성을 추적했으며 그와 그 제자들이 국가론 및 권리 문제에 계속해서 저작을 내놓고 있음을 감안할 때, 정치신학에 관심을 갖는 한국의 연구자들이 케임브리지 학파의 작업을 거의 참고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스럽다. 퀜틴 스키너,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박동천 역, 전2권, 2004-2012[1권은 한길사, 2권은 한국문화사 출간, 원저는 1978년 출간]; Quentin Skinner. “From the State of Princes to the Person of the State”, Visions of Politics, Vol. 2: Renaissance Virtues, Cambridge: Cambridge UP, 2002, 368-413; Richard Tuck, Natural Rights Theories: Their Origin and Development, Cambridge: Cambridge UP, 1979; Richard Tuck, The Sleeping Sovereign: The Invention of Modern Democracy, Cambridge: Cambridge UP, 2015; Annabel S. Brett, Liberty, Right and Nature: Individual Rights in Later Scholastic Thought, Cambridge: Cambridge UP, 1997 등을 보라.


11) 헌정주의의 기독교적 기원에 대한 티어니의 입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글로는 「중세 교회법과 서구 입헌주의」, B. 타이어니[sic] 편저, 『서양중세사 연구』, 박은구 외 5명 역, 탐구당, 1988, 401-20 을 보라. 자연권 논의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을 티어니에 동의하는 시각에서 잘 정리한 책으로 Francis Oakley, Natural Law, Laws of Nature, and Natural Rights: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in the History of Ideas, NY: Continuum, 2005 를 참고.


12) 해롤드 버만, 『법과 혁명 1: 서양법 전통의 형성 1』, 김철 역, 한국학술정보, 2013. 단 이 책은 버만의 저작을 부분적으로만 옮기고 있을 뿐더러 번역 및 편집에 읽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버만에게 수학한 존 위티 주니어의 『권리와 자유의 역사: 칼뱅에서 애덤스까지 인권과 종교 자유를 향한 진보』, 정두메 역, IVP, 2015 는 비록 초기 근대와 칼뱅주의 전통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나 버만과 티어니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어로 잘 읽힌다는 점에서) 보다 추천할만하다.


13)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예로 존 로크의 정치사상과 기독교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을 들 수 있다. Paul E. Sigmund, "Jeremy Waldron and the Religious Turn in Locke Scholarship", The Review of Politics 67.3(2005): 407-18 참고.


14)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한국어판은 원작의 총 6부 구분을 반영하지 않았다. 원저의 경우 1-3장은 “고대의 세계”(The World of Antiquity), 4-8장은 “도덕적 혁명”(A Moral Revolution), 9-12장은 “근본법의 이념을 향하여”(Towards the Idea of Fundamental Law), 13-16장은 “유럽이 정체성을 얻다”(Europe Acquires its Identity), 17-20장은 “새로운 통치모델”(A New Model of Government), 21-25장은 “근대적 자유의 산통”(The Birth Pangs of Modern Liberty)으로 나뉜다.


15) 시덴톱의 글 "Two Liberal Traditions", The Idea of Freedom: Essays in Honour of Isaiah Berlin, ed. Alan Ryan, Oxford: Oxford UP, 1979, 153-74 는 그가 자유주의와 정치체제의 문제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16) 최근 20세기 서구지성사를 선도하는 연구자 새뮤얼 모인(Samuel Moyn)의 시덴톱의 책에 대한 가혹한 서평을 보라: Samuel Moyn, "Did Christianity Create Liberalism?", Boston Review Feb 09, 2015, <http://bostonreview.net/books-ideas/samuel-moyn-larry-siedentop-christianity-liberalism-history>, 최종접속일 2017년 5월 13일. “유교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시도로는 윌리엄 시어도어 드 배리, 『중국의 ‘자유’ 전통: 신유학사상의 새로운 해석』, 표정훈 역, 이산, 1998 및 Wm. Theodore de Bary & Tu Weiming eds., Confucianism and Human Rights, NY: Columbia UP, 1998 등을 참조.


17) 기독교 전통과 서구 근대의 관계를 탐색하는 또 다른 (내 생각에는 좀 더 중요한) 시도인 찰스 테일러의 『세속화 시대』(A Secular Age)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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