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5일 일기. 강원도의 밤, 정당과 의원.

Comment 2017.06.05 03:42
1. 잊어버리기 전에 남겨두는 5월 27일 토요일 새벽의 기록.

원통과 인제 사이 어딘가의 숙소에서 흐릿하게 눈을 떴을 때는 새벽 세 시 반이었다. "황토방"이란 이름에 걸맞게 뜨끈뜨끈한 바닥은 좁지도 넓지도 않은 단칸방의 공기를 포근하지만 건조하게 덥혀놓았다. 바싹 마른 채 황토 내음이 들어찬 코와 입에 수분을 공급하고 나니 약간 정신이 들었다. 보통 서울에서는 왕왕 깨어 있곤 하는 시간대이기도 하니까. 다시 눈꺼풀을 닫고 더위를 털어내려 누워보지만, 잊을만하면 주기적으로 되돌아오는 새소리가 처연하여 마음이 구슬프게 요동했다. 강원도 산골짝의 밤이다, 오후에는 귀경할 터인데 그냥 흘려보내긴 아깝다. 동숙인을 깨우지 않고자 무의미한 조심성을 기울이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찌는 한낮에는 가방만 채우는 짐이었던 긴 팔 아웃도어 재킷이 이럴 땐 참 요긴하다. 벨트의 쇠가 부딪는 소리가 거슬리지만 더 미적거려봐야 반쯤 깼을 사람에게 더 폐가 된다. 문지방을 넘어 강원도 산골의 밤 속으로 사뿐히 들어섰다.

주차장 겸 마당에는 어슴푸레한 가로등 조명이 몇 군데 드문드문 늘어섰고, 왼편의 좀 더 큰 별채에는 한밤까지도 시끄러웠던 직장인 아저씨들이 조용히 야담을 나누는지 불만 훤하고 소리는 새어나오지 않는다. 돌 부스러기들이 깔린 마당으로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첫 발자욱을 남기려는 사람처럼 살금살금 걸음을 옮기니 등산화 아래에선 부드득 거리는 소리가 숨 죽인 이의 호흡처럼 새어나온다. 빛이 덜 드는 곳에서 고개를 수직으로 들었다. 이미 어느 정도 고도가 있는 산골이라 주변의 능선은 그다지 높지 않았고, 시야는 온전히 밤하늘로 들어찼다. 곧이어 어둠에 익숙해진 망막 위에 별의 바다가 내려왔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도 경이로움에 흠뻑 젖을 수 있는데, 이는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엔 그 광경이 너무나 충만하기 때문이다.

별빛이 넘쳐 흘렀다(얼른 떠오른 "별빛이 내린다"는 노래가사는 충분치 못했다). 서울 밤하늘의 텁텁한 어둠 속에서 가끔 반짝이는 별을 찾아 조심스레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두고 떠나야 할 때와 달리, 지금은 점과 같은 별빛이 아닌 별자리를, 어느 별자리 하나가 아닌 성좌로 가득한 찬란한 밤하늘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거기에 몸을 담그면 된다. 빛의 물결은 어딘가에서 출발하여 또 다른 어딘가로 쏟아지고, 그 사이 어둠에 좀 더 익숙해진 눈은 천궁도에서 새롭게 샘솟는 별빛의 원천들을 다시 마주한다. 뻗은 손을 타고 내려온 빛이 몸을 적시고 이윽고 우윳빛깔이 맴도는 바다 속에서 첨벙거리며 헤엄칠 수 있을 것 같다. <화성의 공주>에서 참된 것이 하나 있다면, 별이 바라보는 이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이다: 별을 들여다보라, 별 또한 우리의 내면으로 파고들 것이라. 내가 아는 한 만사가 신비로웠던 시절로 잠시나마 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별의 바다에 빠져드는 것이다. 닫혀 있지 않은 그러나 완전한 장소, 총총한 빛들로 가득찬 어둠 속에서 우리는 기쁘고 충만하며 복되고 복되다. 흠뻑 젖은 자아가 정신을 차리고 빛방울을 털어내며 수면 위로 고개를 들면 자신이 외롭지 않음을, 그 어디에서 왔든 이곳이 자신의 고향임을 깨닫게 된다.

고개를 내리고 땅에 발을 딛었다. 마당을 성큼성큼 걸어 짙은 어둠이 또아리를 튼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향했다. 도로 곁에는 귀를 기울이면 콸콸 소리를 내는 작은 하천이 있고, 좌우 멀찍이엔 가로등이 뿌연 빛을 분무한다. 서늘한 냉기에 이끌려 도로와 시냇가의 경계선에 서서 잠시 흐르는 물을 본다. 한낮의 여름에는 혀를 빼어물고 초라한 행색이던 그것은 잠시나마 나름의 존엄과 쾌활함을 되찾았다. 가물은 시절이니 깊을 리는 없건만, 속을 알 수 없는 밤의 물길은 이따금 굳건히 박힌 바위에 뛰어들어 거품을, 하얀 빛깔의 입자를 흩뿌린다. 잠시 물살이 고요해지는 곳에는 검은 산그림자와 능선이 수면을, 다시 또 나를 들여다본다. 눈과 귀와 마음을 기울이다가 왼쪽의 상류로 향했다. 어둠 속에 녹아들듯 하다가 작은 다리쯤에 다다르면 가로등이 있고, 그 주변을 살피면 위화감 없이 녹아든 주차 차량이 웅크려 앉았다. 차량과 현수막과 수풀과 고요하고 서늘한 밤이 밝기는커녕 눈에 힘을 주어야 사물의 윤곽이 게슴츠레하게 보이는 산포된 빛 속에서 하나의 통일된 광경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바로 곁에 강원도의 산이 손길을 내뻗어 화폭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빽빽한 녹색의 나무들에 덩굴줄기가 엉키어 마치 뚫고 들어가기 힘든 텁텁한 정글처럼 완벽한 강원도의 산. 다리를 건너 산에 좀 더 가까이 갔다.

밤의 산은 두렵다. 그만큼 매혹적이다. 자세히 보면 그 안에서 이파리가, 가지들이 살랑거린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정말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워 길을 잃게 된다.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허벅지엔 피로가 쌓이고 나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고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사이로 삑삑거리며 벌레들이 운다. 뿌리에 몇 번 쿵쿵 부딪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나뭇가지에 수차례 긁혀 피부가 붉은 선이 그어지고 나면 오로지 자신이 밤의 산의 마술에 걸렸다는 사실만이 분명해 진다. 그러다가 문득 능선에 오르면 갑자기 빛이 비추는 길이 보인다. 그 길이 나가는 길이 아님을 알지만, 오로지 그 길만이 확실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일단은 능선을 타고 걷게 된다. 나는 밤의 산에 홀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두려움으로 흘러내리는 식은땀과 수목이 내뿜는 숨길 속에서 찐득찐득해진 살갗을 거슬려할 틈도 없이 완전히 다른 세계의 신비 속에 갇혀 여기저기 무작정 내딛었던 짧고 긴 시간은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 그곳이 그립다. 세계의 규칙이 잠시 정지된 것처럼 보였던 그때, 옛 사람들이 만난 요정과 요물이 언제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던 그곳, 스스로의 영혼과 나누는 대화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짓궂은 속닥거림이 쉽사리 구별되지 않는 밤의 숲 말이다. 한참 동안 산과 숲을, 그곳을 헤맸던 어느 시절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돌려 다리 이편으로 왔다.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인기척도 발딛는 소리도 없이 불쑥 행인이 나타났다. 아마도 어딘가의 일터로 향하는 듯한 작은 체구의 시골 할머니다.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가슴을 조용히 쓸어내리고 묵묵히 앞으로 향한다. 할머니에겐 익숙한 또 한 명의 방황하는 관광객일까, 아니면 그 또한 검은 옷의 덩치 큰 장정 앞에서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무뚝뚝하게 걸음을 내딛는 걸까. 서로 돌아보지 않으니 알 길은 없다. 네 시다. 어딘가에서 밝게 노래하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혹여나 눈 어두운 차가 올까 두리번거리면서 새소리를 좇아 나아갔다. 푸른 꽃을 향해 밤의 길로 내딛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한 마리씩 음조를 덧붙이는 걸 듣다보니 어느덧 시끌벅적한 재잘거림이 되었다. 고작 네 시를 조금 지났을 뿐인데 밤의 빛깔이 달라졌다. 능선 위를 올려다보니 상류 쪽 멀리 V자로 들어간 산 위에서 점차 먼 동이 터오고 있다.

먼지가 엉겨 붙지 않은 밤하늘은 빛이 능선부터 점차 물들이면서 말간 푸른 빛깔로 변해갔다. 하늘의 어둠이 탁하지 않고 맑게 희석되는 과정도 반갑지만, 그래도 역시 별의 바다를 다시 보고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썰물 때 해변에 남은 조개껍데기마냥 점점이 박힌 빛의 점들만 남았다. 이윽고 점차 그것들도 차오르는 새벽빛에 익숙해진 망막 위에서 하나씩 지워졌다. 동트는 왼편의 산 위의 허공에는 짙은 색깔의 구름인지 안개인지가 가만히 멈추어 있었다. 네시 십 분, 이제 조금이라도 자야할 때다. 가로등에 반짝이는 대머리 노인이 새벽운동 삼아 길을 따라 지나쳐간다. 다시 문지방을 넘었을 때 황토방의 공기는 후끈하다. 잠이 다시 들기엔 너무 덥기도 하고, 창밖은 이미 밝으며, 무엇보다 새들의 합창은 이제 시끄러울 정도가 되었다. 보내기 싫은 밤의 끝을 놓은 뒤 혼곤히 오지 않는 잠을 기다렸다.



2. "4일 여러 여야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당 김선동 의원은 지난 2일 저녁 11시께 김 후보자의 청문회가 끝난 뒤 여당의원들이 “너무 한다”고 지적하자 “나도 난감하다. 당에서 시켜서 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 청문회 내내 김 후보자의 옆을 지켰던 공정위 간부들에 따르면 김종석 의원은 오후 7시 이후 청문회 휴회시간과 청문회가 모두 끝난 뒤 두차례 김 후보자를 찾아와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다. 김 의원은 “평소 잘아는 사이인 김 후보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것은 맞다”면서 “다만 개인적으로 (김 후보자가 공정위원장으로서 적합한지 아닌지) 말하기보다, 당의 공식방침을 따르려 한다”고 말했다." (기사원문링크: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7432.html )


여기에서 곧바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①아직 자유한국당에 의원들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당" 본부와 같은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구조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 ②그 "당의 공식방침"을 규정하고 개별 의원들에게 역할분담을 시킬 수 있는 정파 혹은 협의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③동시에 그러한 공식방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본심이 아니라는 식의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내게는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공격이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자유한국당에서 누가 어떻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 흥미롭고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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