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공적인 것과 제도에 대한 태도에 관하여

Critique 2016. 12. 22. 18:38
언제나 지적으로 흥미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는 한 친한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 지인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보면서 두 가지 동의하기 힘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1. "공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것 같다. 2. "시스템" 혹은 제도적 해결에 대한 맹신. 공적이든 사적이든 자신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들을 고소하고 이들에 대한 제도적 처벌을 요구하는 것.

나는 이 두 가지가 그 자체로는 분명 타당한 면이 있는 관찰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상황이 결코 가장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데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에 기초해서 곧바로 나 자신이 속한 청년 세대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먼저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되었는지를 따져보고 싶다. 아래는 나의 분석 혹은 입장을 간략하게 기술한 것이다.

첫째, 제도/시스템에 대한 의지는 그 자체로 제도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동체", "연대"와 같은 사회적·사적 해결책 대한 비관의 산물에 가깝다. 쉽게 말해 우리는 바로 옆 사람, 자신이 속한 공동체/조직 등이 과연 (공적인 것이든 아니든) 중요한 이슈를 같이 해결할 수 있을만큼 신뢰할 만한 대상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걸 진보정치적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공동체/연대라는 87 이후 특히 강조되었던 정치 언어가 무력화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최근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반대 점거도 어느 정도 이런 측면이 있으며, 이를 단순히 운동권 혐오로 해석하는 건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고 본다. 가령 지난 수십 년 간 "연대"에 기초한 전술이 누누이 패배해 온 걸 잘 알고 있는 이대생의 입장에서, 다른 운동분야·사회조직과의 "연대"를 통해 학교를 이길 수 있다고 볼 이유는 당연히 없다.

둘째, 공동체적 해결책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비관적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5060부터 386은 말할 것도 없고, 경우에 따라서 90년대 초반 학번까지도 포함하는) "윗세대"들에게 제대로 된 "공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관점은, 이전 세대에 공적 의식 비슷한 게 있긴 했는데 (조폭식 의리나 군대식 하향적 모델?) 그게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바람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는 쪽. 아직 공적인 것을 대하는 태도가 자리잡히지 않은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인"(homo homini lupus) 홉스적 세계인식이 우세해지기 쉽다면, 옆 사람이든 어른이든 믿을 수 없을 때 그나마 제도적 프로세스와 바로 연결되는 게 낫다는 태도가 일반적인 것으로 자리잡는 상황은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다: "같이 해결하자고? 애초에 네가 대화 가능한 상대이긴 하니? 차라리 경찰서 가는 게 확실하지," 같은 체념적 태도 말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공동체는 문제를 제기해도 어차피 말 안 통하는 인간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상 바뀌지 않을 것이나, 국가제도는 민원을 넣고 언론에 찌르면 어쨌든 바로바로 반응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실제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개인의 접근 및 민원이 훨씬 용이해졌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공공기구의 신뢰성에 대한 감수성이 바뀐 것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나의 헬조선 논문 말미에 언급했듯, 오늘날의 사회에서 공동체적 해결방식이 유의미하게 자리잡으려면 1) 사람들 간에 수평적 인간관계가 확고하게 자리잡아야 하고("개저씨"랑 연대가 가능하다고 믿는 젊은 세대는 없다) 2) 그러한 개별적인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 체계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한 조직모델이 형성되어야 한다. 물론 이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조직모델인 군대식 모델, 짬과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에 기초한 모델에선 힘든 얘기다. 시민단체, 기업, 학교, 정당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곳에서 제대로 된 대안적 모델이 자리잡은 곳은 내가 알기로 아직 없다. 그리고 지금 청년세대가 특히 노동을 조직화하는 모델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육기구는 군대이기 때문에--우리는 허공에서 조직모델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이 상황이 쉽게 바뀔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희망적인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이나 시민단체보다도 군대가 바뀌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2010년대 초부터 군대에서는 병사 간의 유사-수평적 관계를 강요하기 시작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나는 지금은 과제1이 한창 진행 중인 걸로 보고 있고, 이 진행상황에 따라 장기적으로 과제2에 대한 해법이 나올 수 있으며, 그 경우에만 이 두 가지 방향과 다르게 가는 결과가 가능해질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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