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자들과 공적 영역

Comment 2016. 10. 3. 20:02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http://www.huffingtonpost.kr/woochang-lee/story_b_12280266.html 에 게재되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붙은 반동성애 보수주의 개신교 단체의 인권가이드라인 비판 자보를 읽었다. 지적 수준의 한심함은 말할 것도 없고 팩트부터 줄줄이 틀린 내용이라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다(필요하다면 좀 더 가차없는 반론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애초에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는 것도 아니며 실재하는지부터 의심스러운 "다수의 여론"을 근거로 성소수자 시민을 법적으로 차별할 수 있다는 논리부터가 이들이 단지 자연과학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법과 사회에 대한 감각을 결여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이 집단은 자연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역행으로 조소와 경멸을 받곤 하는데, 내 생각에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우리가 속한 근대 사회의 기본적인 원칙, 곧 모든 시민들의 법적 평등 및 기본권의 보장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국가와 사회, 헌법의 정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단지 반지성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반사회적이다.

반동성애 개신교도들의 난동을 보면서, 한국이 더 이상 이러한 반지성·반합리성 발악이 통하지 않는, 인간의 기본권과 헌법의 가치 위에 정초하는 곳임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이제 중턱을 지난 2010년대 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는다. 이를 위해서 최소한의 합리성과 인권, 시민다움이 우리의 공통된 토대임에 동의할 수 있는 집단을 전통적인 보수적 집단(그게 정치적 우파가 됐든, 기독교계가 됐든)으로부터 분리시키고, 합리적 보수들이 현재 과잉대표되고 있는 보수 내의 반지성·반헌법적 그룹으로부터 발언권과 지도력을 가져오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특히 국가기구를 포함해 각종 공적 영역에 침투하려는 반지성·반헌법적 집단들을 그저 냉소로 대하는 걸 넘어 적극적으로 공적 영역을, 헌법을, 합리성을 수호해야 한다.

가령 반동성애 개신교 그룹은 현재 서울대 본부와 인권센터, 총학생회 등 관련 기구에 항의전화와 면담신청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고전적인 전술을 취하고 있다. 2년 전 서울시 인권헌장 사태를 기억하는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반지성주의자들의 이러한 행위를 방관할 시 한국의 공적 기구는 너무나도 쉽게 이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끌려갈 수 있으며 정확히 그게 이들이 노리는 바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몇몇 이들의 광신에 우리 모두의 권리와 안녕이 위협받는 사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확신하며, 합리적인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결집해 반동성애 개신교 그룹을 적어도 공적 의사결정과정에서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탈동성애 그룹은 동성애자들의 "교정"을 이야기하지만, 혐오·강요·폭력·차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집단, 몇몇 목사나 전도사의 기괴한 말에 어떠한 합리적 논의 없이 좀비처럼 움직여가는 위험한 광신도들의 집단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교정의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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