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광복절/건국절 논쟁에 대하여

Comment 2016. 8. 20. 13:41
(*이 글은 전우용 선생의 칼럼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관>에 대한 코멘트다. 원문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82121015)


광복절과 건국절에 대한 논쟁은 사실상 이 글로 종결된다. 공화국과 헌정주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면, 헌법이 모든 한국인들의 논의에 토대이자 한계선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헌법의 정신을 소환했고, 여기에 반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1) 헌법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2) 헌법을 수정하거나 3) 헌법을 거부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1번 과제를 한국사학자보다 설득력 있게 수행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며(아마 제헌헌법과 현행헌법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가능한 길일텐데, 역시 쉽지 않다...어쨌든 이제부터는 헌법학자들과 한국사학자, 정치사상사가들의 전장이 된다), 2번은 적어도 당분간은 현실적인 선택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건국절로 광복절을 대체하고자 하는 모든 주장은 이 글의 논지 앞에서는 반 헌법적 주장으로 전락한다. 아마도 극우파나 극좌파 정도가 이 포지션을 고집해볼 수 있겠지만,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논쟁의 장 바깥으로 밀려날 것이다.

전우용 선생의 해석을 조금 더 직관적으로 풀어보자면, 헌법이 곧 헌정의 근원으로서 정부가 아닌 민족공동체(혹은 한반도의 인민people)를 지목한다는 주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구도에서 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이야말로 진짜 건국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국가=헌정의 근원을 정부로 설정하는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후자는 전자, 곧 헌법 정신을 위반하는 주장을 하는 셈이 된다. 이는 광복절 지지자들에게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한다: "건국절로 광복절을 대체하자고? 당신은 헌법에, 대한민국의 정신에 반역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내가 느끼는 개인적인 흥미는, 헌법의 소환과 함께 대통령을 "헌법의 수호자"로 명명하는 필자의 언어다--여기서 헌법이 일종의 신학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그리고 내가 어떤 저자를 염두에 두는지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겠다. 헌법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것을 지키는 역할이 누구의 것인지를 말하는 행위 자체가 국가/공화국의 토대를 재확인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지금 이 글이 바로 국가/공화국에 대해서 말하는 글이라는 사실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등장을 어떤 필연성의 맥락 하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도 또한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드디어 국가/공화국이 무엇인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때에 이르렀다.

(부연하자면,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듯, 실제로 8월 15일이나 임시정부가 당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성을 지녔는가의 여부는 헌법의 법적 언어가 의미하는 바 및 그 효력에 본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법의 언어는 종교의 언어와 함께 그 자체로 언어가 강력한 정치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이하 본문 인용.

"1948년 7월17일에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로 시작했다. 글 첫머리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넣은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정이 민족사 전체에서 점하는 위치를 분명히 하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이듬해 10월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은 이 의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이 법률에 따라 국경일로 지정된 날이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인바, 이는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를 법률로 명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환웅이 신시에 도읍한 날(개천절)로부터 시작해 면면부절 이어지다가 1910년 일제 침략으로 일시 국권을 잃었으나, 1919년 3월1일 온 민족의 총의를 모아 독립을 선포하고(삼일절),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주권을 위임받아 영토와 인민을 완전히 수복하기 위해 투쟁한 끝에, 1945년 8월15일 일본을 몰아내고 광복을 이루었으며(광복절), 1948년 7월17일 헌법을 제정함으로써(제헌절) 다시 온전한 국가를 이루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제헌헌법 전문과 국경일에 담긴 역사 계승 의식에 모든 국민이 동의하지는 않았다. 개천절은 1909년부터 대종교인들이 기념해온 종교적 축일이었던 것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경일로 삼은 데에서 기원했다. 개천절 지정의 근거인 단군신화를 둘러싸고는 학문적, 종교적으로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 신화로 각색되었을 뿐 환웅과 단군은 분명히 실재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단군신화는 후대에 날조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단군신화가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강경히 반대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취임 선서를 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조차 개천절 지정을 거부하지 않았다. 자기 개인의 종교적 신념보다는 ‘국민통합’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리하여 단군은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공인되었다.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삼일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의 군대인 광복군이 연합군과 함께 일본군을 격퇴했다고 주장했고, 또 어떤 사람은 임시정부는 일개 독립운동 단체로서 공연한 희생자만 내었을 뿐 독립에 기여한 바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 제헌헌법은 이들 중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는 견해만을 채택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유권해석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공유해야 하는 역사관에 대한 선언이었다. 대한민국은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일본군을 격퇴함으로써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선열들의 피로 세운 나라라고 천명한 것이며, 이런 역사관이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행 헌법 전문 역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제헌헌법에 담긴 역사관을 그대로 승계한 것이다. 헌법은 국민통합의 상징이자 실체이며, 국민이 공유해야 할 역사관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산물이다. 물론 민주국가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또는 학문적 성실성에 기초하여, 헌법에 담긴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 하지만 헌법을 수호할 책임을 지닌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 헌법을 수호하는 것은 곧 헌법에 담긴 역사관을 수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