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정치론>과 공화주의의 문맥; 단상

Intellectual History 2016. 7. 8. 04:45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을 한번 노트를 달면서 읽었고(황태연 역), 수업 준비를 위한 2차 문헌으로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진태원 역)를 읽다가 결국 <정치론>(_Tractatus politucs_, 한국역은 황태연 역)까지 훑어 읽었다. 원래 나다 수업에서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종교에 관한 부분 및 홉스와 함께 읽을 수 있는 대목만 짚고 넘어가려고 했다. 대충 이 텍스트를 세 대목으로 나눈다면, 서문부터 7장까지가 교권 정치의 기본논거가 되는 예언, 계시와 같은 개념들을 무력화하는 성경해석학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부분이고(물론 인문주의 역사비평의 영향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 8장부터 15장까지가 그 원칙을 적용한 성경 독해, 16장부터 마지막 20장까지가 홉스에 대응하는 스피노자의 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텍스트에서는 처음과 세 번째 부분에만 집중할 생각이고, 원래 계획은 그 뒤에 바로 로크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론>를 읽은 뒤에 계획을 수정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2년 전 사상사를 공부하기 전 처음 봤을 때는 몰랐는데, 포칵의 "마키아벨리적 계기"와 17세기 공화주의 문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난 뒤 다시 읽은 <정치론>은 다른 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특히 <로마사 논고>) 및 타키투스주의 등 16-17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각종 정치 언어의 영향을 크게 받은 공화주의적 텍스트로 읽힌다(당연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는 스피노자만의 것이 아니다). <신학정치론>과 달리 스피노자가 그리스/로마 쪽 고전문헌, 특히 타키투스나 리비우스, 살루스트 등 역사가들을 인용하는 빈도도 눈에 띄게 늘었고, 군주정과 귀족정--사실상 민주정에 대해서는 아주 적은 언급만 남아있다--에 대한 상세한 서술 모두에서 피렌체 공화주의자들의 공통된 목적이었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가의 덕을 유지하고 안정성을 이룩한다는 지향이 명백히 서술되어 있다. <로마사 논고>를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공동체 혹은 인민을 하나의 단위로 간주하는 것, 그것들의 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적의식, 그를 위한 방법 등등 텍스트의 근본적인 전개에서 마키아벨리가 <정치론>의 스피노자에게 끼친 영향을 알아채지 않기가 어려울 정도다.
국가가 따라야 할 이성이란 구성원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른 국가와 맺은 협정도 어떠한 가책 없이 깨트려야 한다는 논리(이것은 절대로 단순한 '마키아벨리주의'가 아니다!)는 귀차르디니 이후 유럽에 유행한 국가이성의 논리를 스피노자 또한 수용함을 보여준다. 그가 민주정 대목의 마지막을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권/우위로 쓴다는 점은 흥미로운데, 나는 스피노자가 과연 가부장-시민이라는 (밀턴과 해링턴이 공유했던) 공화주의적 모델을 생각했을지의 여부가 무척 궁금하다. 어쨌거나 한국에는 귀차르디니나 도나티는 물론이고 해링턴이나 밀턴을 포함해 17세기 공화주의 언어를 엿볼 수 있는 텍스트 자체가 거의 번역되어 있지 않은데(로크는 분명 공화주의적 맥락에서 읽을 수 있긴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스피노자의 미완성 유고가 역설적으로 당시의 사고체계를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어로 접근가능한 텍스트라는 사실엔 양가적인 기분이 든다.

발리바르의 책은, 현재 (원래 독립적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던) 1부를 거의 읽어가는 중인데, 스피노자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중요한 계기들을 잘 짚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상사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충분한 가이드는 아니다. 80년대 프랑스에 케임브리지언들의 작업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나는 70년대 후반의 푸코가 스키너와 포칵의 작업을 읽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그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표한 경의보다 결코 작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매우 궁금하지만, 이건 정말로 "만약 ~라면"의 문제일 뿐이다), 책의 찾아보기를 볼 때 (국역본의 2부에 실린 논문들이 작성된) 90년대에까지도 발리바르는 사상사, 특히 16-17세기의 인문주의, 국가이성 및 공화주의 관련 논의에 대한 맥락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자고 일어난 뒤에야 끝까지 읽을 수 있겠지만, 이 텍스트에서 발리바르는 여전히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역량의 주체로서의 민중/인민이라는 맑스주의적 물음과 스피노자를 연결시키고자 한다. 그것이 유의미한 이론적 작업일 수 있다는 걸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사회계약, 자연상태와 시민상태, 국가이성과 같은 논의들이 범람하는 근세에서 18세기적 시민사회론으로의 이행이라는 맥락에서 읽어봐도 꽤 재미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이 수업은 마키아벨리와 홉스에서 출발했고 원래의 계획은 스피노자(<신학정치론>)-로크(<통치론> 2부)로 끝맺는 것이었는데(시간이 남으면 루소의 <사회계약> 정도는 읽고), 만약 그림을 좀 더 제대로 그리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구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군주론>)-홉스(<리바이어던>)-스피노자(<신학정치론>, <정치론>)-로크(<통치론>, <관용에 대한 서한>)-루소(<사회계약론>, <코르시카 헌법 구상>, 그리고 아마도 <정치경제>?)-스미스(<도덕감정론>)?-시에예스(<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벤담(<판옵티콘>).

; 17-18세기 사상사를 이해하는 분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상상하는 논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맑스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피해가며 짚어보는 과정이다(다소 짖궂은 질문 중 하나로, 국가의 이성에 부합하는 게 개인의 합리성이라면, 과연 스피노자와 벤담 사이에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을지가 떠오른다; 자신의 보존과 안녕을 최대화하는 것이 이성이고, 이성이 곧 자유라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은 벤담의 '최대값'과 과연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 여기에 (아주 파편적으로만 번역된 페늘롱은 고사하고) 몽테스키외와 흄을 집어넣지 못한다는 게 무척 아쉽다--이 저자들의 정치/사회론에 대한 제대로 된 한국어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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