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비밀TF 기사에 대한 단상

Comment 2015. 10. 26. 00:57

기사링크: 교육부, 교과서 국정화 비밀TF 운영…"국정화 총괄…청와대에 매일 보고"(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252110461


이하 일부 인용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추진하는 ‘비밀 TF(태스크포스)’를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TF는 교육부 공식조직 체계에 없고 별도의 인사 발령도 공개하지 않은 비선조직이다. 국정화 추진 작업과 여론전을 총괄하면서 청와대에 일일보고를 해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도 의원이 입수한 ‘TF 구성 운영계획(안)’을 보면 이 조직은 단장 1명, 기획팀 10명, 상황관리팀 5명, 홍보팀 5명 등 총 21명으로 구성돼 있다. 단장은 오석환 충북대 사무국장이고, 기획팀장은 김연석 교육부 교과서정책과 역사교육지원팀장이 맡고 있다. 오 사무국장은 교육부의 정식 파견 발령도 받지 않은 채 TF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 교육부 직원들인 다른 팀원들도 별도의 파견 발령 없이 정부세종청사가 아닌 이곳에서 일요일에도 근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운영계획’에 나오는 팀별 소관업무를 보면 기획팀은 ‘집필진 구성 및 교과용도서 편찬심의회 구성’ 등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토록 한 업무와 ‘교과서 분석 및 대응논리 개발’ 업무를 맡아 여론전을 주도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TF가 추진 경과를 청와대에 일일보고하는 정황도 확인됐다. ‘운영계획’의 상황관리팀 소관업무에는 ‘BH 일일점검 회의 지원’이라고 명시돼 있다. 도 의원은 “제보에 따르면 TF는 진행 상황을 청와대에 날마다 보고하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포함한 몇몇 청와대 수석들이 회의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상황관리팀은 ‘교원·학부모·시민단체 동향 파악 및 협력’ 업무도 맡고 있다. 홍보팀은 한발 더 나아가 ‘온라인 뉴스(뉴스·블로그·SNS) 동향 파악 및 쟁점 발굴’과 ‘기획기사 언론 섭외, 기고, 칼럼자 섭외, 패널 발굴’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하 나의 코멘트.


"비선조직"이라는 단어가 총선도 아니고 교과서 국정화 문제 정도로 마이너한 주제에 다시금 등장할 줄은 몰랐다. 국정화 자체의 퇴행적이고 반지성적인 성격이 공익에 얼마나 해로운가를 잠시 괄호쳐두고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만 볼 때,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박근혜 정부와 집권여당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및 (뉴라이트 및 아스팔트 우파를 포함한) 일부 지지자들의 심리적 만족감 뿐이며, 이를 얻기 위해 치를 대가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우파들의 실망을 포함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번 "비선조직"의 존재는 박근혜 정부가 비합리적인 도박에 얼마나 많은 판돈을 걸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겨우 그런 일에 이런 짓까지 한다는 말인가? 이 도박의 중요성과 도박에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에 뒤따르는 리스크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을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이 정부는 합리적 판단능력을 상실했다.


모든 정부는 정책상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정부의 진정한 역량은 실수가능성에 대한 인식능력 및 자기교정능력을 어느 정도로 갖추느냐에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는 친애하는 우리의 통치기구에, 집권여당에 더 이상 그럴 역량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들은 외부의 견제는 물론이고 자기비판조차도 하지 못한다. 그들의 행동은 심지어 권력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핵심적인 주제에 놓여있는 대신 몇몇 실권자들의 자의적인 선호에 끌려간다.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박근혜 정권의 행위와 집단여당의 수장의 언사를 지나치게 공포스럽게, 거미줄처럼 사람들을 감싸는 음모의 연속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적어도 이 케이스에 국한해서는 그러한 거미줄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정교과서 사태를 단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광기와 도박이 적절하다. 엄청난 자원소모와 리스크 감수가 전혀 쓸데없는 목표에 투여되고 있고, 김무성은 "어쨌든 박근혜를 살려야 한다"는 믿음에 입각해 한국인의 60%를 당황스럽게 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 김무성은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다고 자기최면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걸어들어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마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이건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다.


박근혜 정권의 선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정신'을 분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비합리성일 것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이유로 (예컨대 후보자에 대한 동일시나, 한국의 타락에 대한 근거없는 두려움 등등) 투표했고, 이후에도 역시 논의불가능한 이유에 기초해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직업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비합리성을 경멸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게 우리들의 의무다. 그러나 실천적인 관점에서는 좀 더 복잡하다. 국정교과서 사태에서조차도 정권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을 제하고 나면 상당히 많은 수의 '맹목적인' 사람들이 남으며, 아마 이들과는 앞으로도 공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합리적 토론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국정교과서 사태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정책의 효율성과 시민권, 합리적 의사결정과정과 같은 최소한의 합의지점에조차도 동의하기 힘든 이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다음 세대에서 이런 집단의 출현가능성을 최소화할 것인가는 쉽게 답변하기 어렵다.


10. 26이 되었다. 동작 현충원 앞에는 박사모에서 걸어놓은 현수막 여럿이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서가 36주년"을 애도하는 뜻을 표하고 있다. "각하"라는 단어의 용례가 바뀌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각종 읽을거리에서는 "대통령 각하"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김영삼 정권 때 이 단어는 조금 모호해졌던 것 같고, 김대중-노무현 때 각하는 "총독 각하" 등의 역사적 용례를 제외하고나면 정권 수반을 수식하는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이명박 시대는 심지어 반동기로서도 상당히 독특한 시절이었는데, 우리는 당시에 "가카"라는 냉소와 조롱이 섞인 표현이 대중적인 정치적 수사 전면에 등장하는 걸 본다. 오늘날 각하는 바로 다음의 문구에서 특징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한 지인이 10월 26일을 발터PPK 권총 사격음을 딴 "탕탕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헬조선이 "죽창"뿐인 나라임을 감안한다면 권총의 이미지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36년이 지났고 긴 세월을 돌아 우리는 "권총"과 "각하"라는 표현이 서브컬처에서 다시 활발하게 사용되는 걸 본다. "비선조직"이 횡행하는 시절에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