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Reading 2015. 5. 10. 19:02

몽테스키외(Charles Louis Joseph de Secondat, Baron de la Brède et de Montesquieu). <법의 정신>(Esprit des Lois). 1748. 이영희 역. 전2권. 학원출판공사, 1993. [세계사상대전집 18, 19권]


참고자료: 진병운.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철학사상> 별책 3.14.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4. [맑스주의와 알튀세르와 관점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으며 정념, 덕성과 같은 개념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소 낡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온라인에서 아무런 제약없이 구할 수 있는 가장 긴 길이의 텍스트. 고전적인 문제의식들은 어느 정도 접할 수 있으며 몽테스키외의 생애에 관한 설명도 읽어볼 만하다. http://philosophy.snu.ac.kr/center/analysisPDF/3-14.pdf]


학술논문 접근권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홍태영,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 대한 정치적 독해>, 한국정치학회보41.2(2007): 141-160을 읽어보셔도 좋겠다. 비전공자가 읽으면서 몽테스키외의 개략을 파악하기에 좋은 잘 정리된 논문이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었다. 내가 읽은 판본을 비롯해 사실상 아직까지 한국에서 신뢰할만한 번역본이 없는데다가--결국 프랑스어로 직접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영어로나 봐야 한단 말인가?--텍스트 자체가 워낙 방대한 관심사의 결집체이기에 여기에서 무언가 종합적인 정리를 할 수는 없다(관심있으신 분은 위에 언급한 참고문헌을 보시라). 나는 주로 눈에 들어왔던 요소들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하곘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강조하듯 이 텍스트의 핵심은 법 자체가 아닌 법을 둘러싼 다른 요소들의 총체로서 "법의 정신"이다. '법'이 (민족들 사이의) 만민법,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정법, 피통치자들 혹은 시민들 사이의 시민법과 같이 "관계"에서 유래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도구라면, 법의 '정신'을 통해 몽테스키외는 그가 "사물의 질서"라고 부른 것을 다룬다. 거기에 포함되는 요소들은 국토의 자연조건, 기후, 토지, 민족의 생활양식, 정체government가 허용하는 자유, 민족의 종교, 성향, 부wealth, 숫자, 상업, 풍습, 습관, 법들 사이의 관계를 포함해 매우 다양하기에, 차라리 그가 (비록 이러한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사회'를 다루고자 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3부에서 풍토와 기후를, 4부에서 상업을, 5부에서 종교를 주요한 변인으로 다루었다면, 6부에서 몽테스키외는 상속과 봉건제의 역사적 변천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그가 그리는 총체적 사회체가 공시적 층위의 요인들과 역사적 축적을 결합하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게르만 족의 침입에서 프랑크 왕국의 성립/분할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아프리카, 서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으로부터 사례를 끌어온다.


이처럼 포괄적인 틀 위에서 전개되는 저술을 읽을 때 독자의 의무는 틀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들 사이에 어떤 구조적인--이것이 반드시 공시적인 구성원리로 이해될 필요는 없다--연관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다음과 같이 대략적으로 이해했다. 한 사회/민족/국가에 일차적으로 주어지는 요인들에는 한편으로 풍토, 기후를 포함한 자연적 요건들이, 다른 한편에는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과 같은 정체가 있다. 가장 자연적인 것과 가장 인위적인 것 사이에 민족의 관습/습속(법이 타자를 다스리는 원리라면 습속은 누군가가 "자기 자신에 대해 해야할 바"로 제시된다)이 있고 여기에는 상업, 종교, 조세, 법과 같은 요인들이 작동한다. 모든 것의 핵심에는 몽테스키외가 정체의 "원리"라고 부른 특정한 덕성/정념이 있다; 공화주의에는 정치적 덕성political virtue(덕성은 공동체, 평등, 검약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된다), (공화주의의 한 판본인) 귀족정에는 절제moderation, 군주제에는 (신분에 따른) 명예, 가장 타락한 정체인 전제정에는 군주가 모두를 찍어누르기 위한 공포. 이러한 정념이 건강하게 보전되는가 혹은 부패/타락하느냐에 따라 정체의 운명이 결정된다. 몽테스키외는 덕성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사회에 제 아무리 좋은 법을 도입해도 그 결과는 만족스러울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정체의 덕성 혹은 민족의 '정념'이 사회 혹은 '정신'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이 텍스트의 초점은 그와 같은 정념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있다--바로 법을 통해서 말이다. 몽테스키외는 물론 비교적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집행권(오늘날의 행정권)과 보다 보편적인 규범으로 작용하는 입법권을 구별하지만, 실제로 정념/덕성의 관리 및 통치라는 점에서 양자가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자연적 조건이 민족의 습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작동하고, 정체의 본성("본성"은 다수통치=공화정, 군주가 법에 따라 통치=군주정, 법과 무관한 군주의 통치=전제정과 같은 분류를 가리킨다)에 따라 해당 민족이 온전하게 보전해야 할 원리(감정/정념)가 결정된다. 2부부터 몽테스키외가 사회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과 법의 연관관계를 묻는 것도 결국에는 법이라는 수단을 통해 주어진 요소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설명하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종교가 여기에 포함되는 것, 다시 말해 종교의 실용적 영향력만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몽테스키외의 세속주의는 분명하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추구해야 할 당위, 즉 정체의 원리의 건강함을 이끌어내고 유지하는--공화주의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민족과 통치자의 덕성을 함양하는--것이 통치의 요점이며 법은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그가 비밀투표가 아닌 공개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할 때 여기에는 덕성을 더 갖춘 자가 덜 갖춘 자를 이끌 필요성이 상정되어 있다(2장).


즉 한편으로는 명백한 공화주의적 관심사--4장에서 교육을 강조하는 것, 7장에서 사치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러한 공화주의적 관심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성의 함양 자체가 아닌 법을 통한 통치를 제시하는 시점이 있다. 요컨대 우리는 몽테스키외가 고전적 공화주의의 체계를 일부 수용하면서도 근대적 조건 위에서 자기만의 변용을 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저 유명한 "영국의 군주정"을 다룬 장(11장)에서 볼 수 있듯 그 자체로는 고전적인 시민공화국의 모델이라고 하기 힘든 영국, 오히려 각자의 이해관계 및 정념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영국사회가 근대의 성공적인 사회체의 한 사례로 제시되고 있는 대목에서 덕성의 언어체계는 명백히 축소된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나아가 시민 스스로 공동체를 통치할 수 있는 역량의 강조로 이어지는 모델과 달리 <법의 정신>에서 개개인의 역량은 괄호 속으로 들어가며 수많은 개인들을 조정/관리하는 전체 사회체계의 시점이 새롭게 도입된다. 그가 전제정에 대항해 권력의 상호견제가 가능한 "제한 정체"limited government를 옹호하면서도 인민의 자기통치 역량에 대해 회의감을 견지했음을 기억하자; 그에게 최선의 정체란 가장 탁월한 통치자들을 선출할 수 있는 정체다. 몽테스키외가 최초의 사회학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이는 그가 통치대상으로서의 사회를 사고한 최초의 근대인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화주의적 논리를 빌어 표현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18세기의 사회이론이 처한 전환기적 성격을 목도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몽테스키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부산스러움, 정돈되지 않은 혼란스러움은 통치의 대상으로서 사회 전 영역을 관망하는 봉우리에 막 올라선 선구자, 아직 그와 같은 통치의 패러다임 및 장치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대에 남들보다 먼저 문제를 직시한 선구자가 필연적으로 맞닥트리는 혼란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회의 시점에 서서 구체적인 '정세' 위에서 실천적인 관심사를 만족시키는 게 텍스트의 목적이라고 할 때, <법의 정신>이 홉스나 로크와 같이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다룬 이전의 저작들, 요컨대 사회계약론의 전통과 갖는 차이는 보다 명백해진다. 즉 사회계약론 전통에 있는 저자들이 공적인 권력(정부)의 탄생 및 그것이 시민사회와 갖는 관계를 원리의 차원에서 서술하려고 했다면, 그래서 그들의 텍스트가 보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며 일관된 논리를 제시하고자 했다면, <법의 정신>은 애초에 각 사회가 제반 요소들에 따라 어떤 성격을 갖는지를 기술하고 그러한 조건 위에서 어떠한 법이 적절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지침서에 가까운 텍스트다; 좀 더 세밀하게 바라본다면, <법의 정신>에는 구체적인 역사/사회적 자료들에 의거한 경험적 진술과 이론적 분석이 혼합되어 있다. 이는 홉스와 로크, 루소의 텍스트가 자연법에 할애하는 분량과 비교해볼 때 몽테스키외의 그것이 이 대저에서 매우 적은 분량만을 차지하는 것으로도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체계에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스스로의 취약함을 먼저 인식하기에 제1의 자연법은 "평화"가 되며, 제2의 자연법은 생존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먹을 것의 획득, 제3은 양성 간의 애정, 제4는 사회생활을 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된다(1장). 애초에 사회생활 자체가 자연법의 일부가 되어버릴 때 자연상태와 시민사회의 구별은 무의미해지며 몽테스키외는 양자의 구별을 통해 사회-정부를 위한 당위원칙을 정립하는 사회계약론 전통과 스스로를 분리한다.


나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두 가지 사항만 덧붙여둔다. 첫째, 덕성과 정념의 연결, 그리고 (단순히 순간적으로 작동하는 대신 습속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정념의 통치가 사회의 통치에 핵심적인 영역으로 자리잡은 구도에서 우리는 17-18세기가 서유럽의 사유체계에서 정념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대였음을 떠올릴 수 있다. 뉴턴/로크를 거쳐 자극과 신경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게 된 시점에서부터 정념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직접적인 힘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정념에 어떠한 가능성을 부여할 것인지--가장 좋은 예 중 하나가 도덕감정moral sentiment이 될 것이다--, 정념을 어떠한 체계 안에 위치시킬 것인지(로맨스 소설의 구도에서 본다면 정념의 폭주를 극복하고 덕성에 부합하는 사랑과 정념 자체에 당위적 가치가 부여되는 "열정으로서의 사랑"의 갈등), 그리고 정념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 등이 주요한 물음으로 떠올랐다. 나는 몽테스키외가 가장 공화주의적인 언어, 덕성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조차 그것이 정념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둘째, 상업의 문제. <법의 정신>에서는 상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최소한 세 가지 존재한다. 상업이 하나의 노동으로서 근면, 성실, 정직과 같은 덕성을 함양한다고 보는 입장, 이와 반대로 (18세기의 상업비판자들이 주로 주장하듯) 상업이 사치와 불확실성을 통해 덕성과 습속의 타락/부패를 가져온다고 보는 입장, 마지막으로 18세기 영국의 '상업사회' 이데올로그들(궁정, 도시민)이 주장했듯 상업이 인간에게 사회/사교적인sociable 재능을 발전시킬 기회를 부여해 '세련됨'으로 인도한다는 '부드러운' 상업론. 몽테스키외는 텍스트 내에서 세 가지 입장 모두를 언급하는데, 어쨌거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상업이 민족/국가의 이해관계에 어떻게 부합하느냐이다(<법의 정신>은 아직 본격적인 경제학적 서술로 진입하지는 않고 있지만 스페인의 인플레이션을 거론하며 국민경제의 시점에서 화폐문제를 꽤 중요하게 다룬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 상업사회로 진입한 '선진국' 영국사회를 보면서 몽테스키외는 상업에 대한 고전적인 관점--덕성의 함양 혹은 타락--과는 달리 이해관계의 자유로움이 체제를 몰락시키기는커녕 "건전한 사치"를 통해 사회의 성장에 기여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이하 목차. 목차번역은 읽은 국역본을 따르되 한문표기를 한글표기로 옮김.


1부

1장 법 일반

2장 정체의 본성에서 직접 생기는 법

3장 세 가지 정체의 원리

4장 교육의 법은 정체의 원리와 관계되어야 한다

5장 입법자가 제정하는 법은 정체의 원리와 관련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6장 시민법 및 형법의 단순성, 재판의 수속 및 형의 결정 등에 관한 여러 정체의 원리와 결과

7장 사치금지법, 사치 및 여자의 지위에 관한 세 가지 정체의 여러 원리의 귀결

8장 세 정체의 원리의 부패


2부

9장 법과 방어력과의 관계

10장 법과 공격력과의 관계

11장 국가구조와의 관계에서 정치적 자유를 구성하는 법

12장 정치적 자유를 구성하는 법과 시민과의 관계

13장 조세의 징집과 국가 수입이 자유에 대하여 갖는 관계


3부

14장 법과 풍토의 관계

15장 시민적 노예제의 법은 풍토의 성질과 어떻게 관계되가

16장 가내 노예제의 법은 풍토의 성질과 어떻게 관계되는가

17장 정치적 노예제의 법은 풍토의 성질과 어떻게 관계되는가

18장 법과 토지의 성질과의 관계

19장 국민의 일반정신과 습속 및 도덕을 형성하는 원리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법


4부

20장 상업에 관한 법의 본질 및 특성 고찰

21장 상업에 관한 법의 세계적인 변혁에 의한 고찰

22장 화폐의 사용에 관한 법

23장 주민수와 관계되는 법


5부

24장 교의 및 그 자체에 있어서 고찰된 종교에 관한 법

25장 종교의 설립과 그 대외정책에 관한 법

26장 법이 판정을 내리는 사물의 질서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법


6부

27장 상속에 관한 로마법의 기원 및 변천

28장 프랑스 인에 있어서의 시민법의 기원 및 변천

29장 법을 만드는 방법

30장 군주정치 확립과의 관계에 있어서 프랑크 인의 봉건적 이론

31장 프랑크 인의 봉건적 이론과 그 군주정치의 변천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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