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슨과 서사분석의 방법론에 관한 가설 [131229]

Critique 2014. 3. 18. 12:56


*2013년 12월 29일 페이스북


소쉬르도 안 봤으면서 야콥슨의 <대화록>을 들었다. 순전히 책이 매우 얇고 또 대담이기 때문에...(보통 대담이나 평전이 가장 부담이 없다; 대표적인 예외는 리쾨르 대담집인 <비판과 확신>...) 50쪽 정도 읽는 짧은 시간동안 야콥슨의 연구들을 언젠가 반드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보통 야콥슨의 견해는 이미 교과서에 당연히 정설로 소개되긴 하는데(그래서 결론만 놓고 보면 뭐가 대단한 건지도 모를 정도인데), 어차피 고전은 교과서를 무시하고 직접 읽으면서 이해하는 게 제일 보람있는 일일뿐만 아니라 언제 읽어도 새로 깨우칠 거리를 마련해주지 않던가. 예전 우석훈 박사의 대중강연을 들을 때부터 생각했던 공시적 관점vs통시적 관점의 문제라든가, 사회적 맥락과 언어의 관계 등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야콥슨이 여기에 어떤 종류의 답변 혹은 힌트를 주었는지를 알고싶은 주제들이 있다; 나는 야콥슨을 결정체가 아닌 움직이는 사유-운동으로 파악하고 싶다. 아마 야콥슨=구조주의=텍스트 내재비평의 등식을 외우고 있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솔직히 그런 사람들 중에 구조주의를 제대로 꿰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 난 소수의 철학전공자들 빼고는 구조주의와 수학적 사고방식을 연결할 생각을 하는 사람조차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는 변증법과 함께 구조주의가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연구대상을 관계/맥락에 위치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었다고,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탐구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대목에서 상대 대담자가 아주 짧게 야콥슨과 바흐친을 같은 맥락에 놓고 이야기하는 점은 내 생각이 전혀 근거없지는 않으리라는 걸 보여준다.

내 작업을 협의의 영문학 안에 가두지 않기 위해 두 가지 전제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먼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되었지만, 텍스트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조건=무대에서 태어난다(나는 내게 가능한 최대한도의 섬세함으로 결정론을 피하려 했다). 둘째, 텍스트는, 적어도 소설 혹은 '이야기'의 형태를 띤 텍스트는 복수의(plural) 미시서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흐름=이야기가 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전제들은 아도르노 및 제임슨의 주장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몇 가지 필요한 변용이 가해져 있다. 어쨌든 두 번째 테제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면, 적어도 근대세계 안에 있던 서사-장르 모두에게 저 설명이 적용가능할 경우 서사문학 연구자들은 특정 외국어문학 연구에 국한되지 않는, 이른바 언어의 국경을 (해당 외국어를 구사하지 않고도) 제한적으로나마 넘을 수 있는 길을 부여받는다. 가라타니는 일본어가 부여하는 지식권역의 한계에 갇히지 않기 위해 언어를 초월한 보편성을 갖는 세 가지 주제, 언어, 화폐, 수를 연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 (서사문학에 한정해서라도) 개별 텍스트의 서사적 구조를 탐구하는 방식이 허용된다면, 개별 외국어문학의 연구자들 또한 자신의 작업에서 일종의 보편성을 요구하는 게 가능하다. 나는 모든 서사텍스트가 동일한 서사구조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그것들이 서사들의 구조물이라는 사실이 개별 국가보다 좀 더 넓은 시공간적 범위 안에서 '보편적으로' 주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다시 첫 번째 테제와 두 가지 측면에서 연관된다. 먼저 미시서사 및 미시서사들이 구조화(나는 다소 공시적인 인상을 주는 구조화란 표현을 시간적인, 선적인 통일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서사화'로 대체하고 싶다; 칸트가 인식의 결과물들을 통합하는 기능을 '상상력'에 부여한 것처럼-)하는 방식들은 사실 소설과 같은 협의의 문학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주장, 사회적 인식의 한 방식으로서 (지배적인) 사상을 포함한 좀 더 광범위한 인간의 언어-사유행위물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앨버트 허쉬만(Albert O. Hirschman)은 진보적인/보수적인 담론이 동일한 지평의 수사적 기법을 사용하는 '논리구성체'임을 보여준 바가 있다(<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바꿔말하면 비교적 선명하게 결정된crystalized 문학텍스트와 문학텍스트로부터 구별되어온 다른 논리구성체들의 상호작용을 미시서사의 단위에서, 때로는 좀 더 큰 서사의 단위에서 연구할 수 있다. 내 목표에서 푸코의 언표와 담론에 대한 작업을 떠올린다면 전혀 틀린 게 아니다; 다만 나는 미시단위들이 개별적인 텍스트들에서 어떻게 구조화=서사화되는지를 좀 더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거다--정확히 말하자면 그 구조화=서사화 방식 또한 하나의 논리구성체인 거고. 또 다른 측면이란, 우리가 적어도 18세기 이후의 근대사회를 일국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대신 여러 국가들의 상호작용 혹은 침투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넓은 공간에서 이해한다고 할 때--굳이 세계체제론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 서로 다른 지역적 배경을 가진 문학텍스트 및 논리/서사구성체를 비교하고 연결해서 연구하는 작업이 가능해진다. 곧 한 사회 내의, 때로는 사회들 간의 상이한 서사적 구조물들 속에서 텍스트연구를 맥락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맥락화가 보다 체계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 서사적 구조물의 보편성을 견지할 때 우리가 얻게 되는 장점이다.

위와 같은 작업을 위해, 야콥슨만 아니라...프로프를 포함한 '선배'들의 작업을 언젠가 한 번 경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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