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빌. <빈곤에 대하여>.

Reading 2014. 11. 25. 03:23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짧은 글 <토크빌의 빈곤에 대하여>_Mémoire sur le paupérisme_를 읽었다. 19세기 영국 전공 역사가 거트루드 힘멜파브Gertrude Himmelfarb 여사가 서문을 썼고 Seymour Drescher가 번역한 1997년의 영역본을 기초로 한 중역본이다. 이건 가장 유명한 <미국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고...찾아보니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이 꽤 전부터 번역되었고(2013년에 지만지에서 다시 나왔다) 역자를 볼 때 불어판을 옮긴 듯 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는 기분으로 읽었다. 큼지막한 줄간격 및 글자크기로도 100쪽을 못 넘기고 그중 힘멜파브의 서문, 역자후기, 찾아보기가 절반이다. 솔직히 다른 텍스트들과 묶이거나 아니면 제대로 된 비평적 해설이 하나 붙어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주저 번역부터가 영역인데 더 바라는 게 사치일까나.



힘멜파브의 서문은 그냥 textual criticism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나름 여기저기 언급되는 역사가이긴 한데 내가 극히 제한적으로 접한 텍스트들로는 1급의 사가라고 부르긴 어려울 듯 하다(가장 인상깊은 기억은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에서 톰슨이 힘멜파브를 한번 대차게 까고 넘어가는 부분이다). 주로 빈곤문제를 다루는데 경제사가라고 하기는 힘들고 도덕경제나 자선, 구빈법 같은 대상을 연구한 책을 냈던 걸로 기억한다. 맑시스트들이 싫었던지 서문에서도 홉스봄의 <산업과 제국>_Industry and Empire_을 언급하며 시비거는(?) 부분은 있는데 특별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결국 미국/영국의 신자유주의 정부에서 공적복지 파탄난 걸 언급하면서 개인의 사적 자선이 중요하고 토크빌도 그런 분석을 보여준다고 끌고가는데 내 생각에 힘멜파브는 토크빌의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역자후기는 경제구조 이야기하면서 토크빌이 개인의 도덕성과 자선으로만 문제를 끌고간 게 아쉽다는 짤막한 상식론(?)을 얘기하는데 역시 영양가는 없다.



개인적으로 토크빌의 짧은 글을 읽으며 받은 인상은, 물론 내가 토크빌에 대해 아는 게 없음을 미리 알려야겠지만, 그가 마치 마키아벨리와 같은 식의 공화주의에 무척이나 가까워보인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토크빌의 주장에 기초해서 <빈곤에 대하여>를 읽었을 때 요점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의 설명에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지점은 토지, 농업, 낮은 생산량-적은 빈민으로부터 폭발적인 생산량을 자랑하는 산업사회로의 이행이다. 그가 경제적으로 정치한 수준의 분석을 하는 건 아니지만, 토크빌에게 산업사회의 특징은 생산력만큼이나 높은 불안정성, 즉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선택에 의존하는 "운의 변덕"(58)이다(이 지점은 18세기 영국이 상업사회commercial society로 진입하면서 금융자본 등에 가해졌던 '변덕스럽고 불확실하다'는 '도덕적'인 비판을 연상케한다). 불안정성과 함께 높은 생산력을 배경으로 사회구성원들의 욕구가, 그리고 이어서 사회적으로 빈곤선의 기준 또한 높아지면서 이전의 더 낮은 생산력의 사회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의 인구가 빈곤층으로 편입된다.


첫 번째 글이 일종의 문명사를 기술하면서 어떻게 산업사회가 등장하고 빈민이 늘어났는지를 다룬다면 두 번째 글은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구빈법 이후로 공적 부조의 등장과 제도의 변천을 다룬다(이 글이 1833년 영국의 신구빈법 도입기를 배경으로 한다는 걸 상기하자). 토크빌은 이렇게 폭증한 빈곤층을 공적 부조 혹은 국가적 복지를 통해 먹여살리는 것을 문제삼는데, 그는 공적부조가 스피넘랜드 법이 보여주었듯 타인의 노동에 기생하는 인구수를 늘릴 뿐더러 그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킨다고 주장한다. 물론 토크빌은 애초에 스스로를 먹여살릴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까지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공적부조가 아닌 사적인 자선이 인간의 덕성을 유지시키고 (때론 고양시키고) 동시에 빈곤의 문제를 부작용없이 해결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힘멜파브의 해석처럼 그를 오늘날의 보수주의자와 연결시키는 게 아주 틀리지만은 않다.


 다만 그렇게 해석하고 끝내버리기는 무척이나 아까운 텍스트다. 나는 몇 가지 지점을 추가로 짚고 싶다. 첫째, 토크빌은 힘멜파브를 포함해 토크빌을 통해 우파적 정책의 권위를 보장받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유감스럽게도 사적 자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애초에 사적 자선이 늘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보장이 없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이미 사회 자체가 산업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상황 앞에 개개인들의 자선은 임시방편 이상이 될 수 없음을 토크빌은 두 번째 글 말미에서 분명히 밝힌다. 즉 그는 경제구조 차원에서의 변화를 비록 적절한 언어로 서술하지는 못하면서도 분명히 지각하고 있었고 구조적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조치 없이 자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직시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어설픈 우파들보다 지적으로 실제적이다. 결국 <빈곤에 대하여>는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로 언젠가의 답변만을 예고하면서 끝나는데, 이러한 미완결성을 우리는 토크빌의 지적 성실성의 한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둘째, 토크빌에게 (에드먼드 버크를 포함해 이전 시대의 전통에 민감했던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듯) 덕성virtue은 무척 중요하다. 그가 단순히 빈민들에 의한 재정지출이 증대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빈민들이 사회에서의 어떠한 적극적인 역할도 포기하고 타인의 노동에 기생하는 존재로 타락하게 되는 것, 곧 덕성의 타락과 부패를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음을 잊지 말자.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인다면 토크빌은 결코 토지와 권력을 독점하는 귀족들이 덕성을 보유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그게 토크빌로 하여금 버크와 같은 '낭만적 향수'로 퇴행하지 않도록 하는 제어장치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숲에서 태어난 원초적이고 자랑스러운 덕성"(42)이 사유재산의 독점과 신분격차로 인해 훼손된다는 설명은 그를 루소에 보다 가까이 위치시킨다; 물론 (마키아벨리를 연상케하는 부분인데) 문명사회에서도 시민적 자유와 같은 문명사회 특유의 덕성이 존재한다. 여튼 이 덕성 또는 공화주의적 언어 및 그것이 기초한 관념적 틀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토크빌을 읽으면 힘멜파브나 역자들이 그러하듯 이 텍스트는 지나치게 시시한 이데올로기적 저술에 지나지 않게 된다.


 셋째, 덕성의 개념에서 이어 말하자면, 토크빌은 공적 부조=법적 자선과 개인적 자선을 대비시키고 전자가 덕성을 타락시키며 후자가 덕성 및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킨다고 주장한다(65-71). 이는 단순한 헛소리로 치부하지 말고 곱씹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토크빌이 법적 자선에 우려를 표하는 대목, 즉 개인은 자신의 노동을 통한 덕성의 고양기회를 상실하고 결과적으로 법과 권력의 통제 하에서 시민으로서의 덕성=주체성을 완전히 박탈당한다는 염려는 오늘날 시민들이 역량을 상실하고 국가 및 자본에 의해 관리당하는 탈주체화/대상화 현상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개인적 자선을 부족하게나마 대안으로 내세우는 건 (마치 협동조합을 비롯한 제3섹터의 운동처럼) 국가권력과 자본에 편입되지 않는 '시민사회'를 재구축하려는 오늘날의 일부 대안적 목소리들과 닮아있다. 요컨대 (거스를 수 없는) 산업사회의 통제불가능한 불확실성, 국가권력의 (선의의) 개입에 따른 시민들의 주체성/역량 상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덕성을 고양시키는 시민사회적 대안으로서 개인적 부조들이 얽혀있는 틀로 이해한다면 토크빌의 소품은 단순히 보수적이고 개인적인 '구조맹'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으로 폄하될 수는 없다.


 최종적으로 토크빌의 입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적어도 그를 사려깊게 읽고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결국 <미국의 민주주의>와 <구체제와 혁명> 역시 덕성의 문제, 그리고 덕성의 문제와 결부된 사회적 행위들의 틀을 고민하지 않고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추가로 지적하자면, 덕성의 개념들을 고찰하는 시점에서 토크빌은 적어도 로크적 전통에서의 자유주의자로 부를 수는 없다(시민들의 자유를 확장하자는 모든 주장이 자유주의가 되는 건 아니듯). 로크는 <통치론>에서 결과적으로 덕성의 영역과 (법과 계약이 지배하는) 정치 사회Political Society / 시민사회Civil Society를 대비시키고 후자에 의해 전자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로크에게 있어 자유란 계약의 자유로서 그 안에서 모든 개인은 근본적으로 어떠한 차이도 없이 동일한 원자적 존재로서 평등하다. 그러나 로크가 공적 권력의 판단 및 집행과 관련해 법적 판단--법적 자선이 개인의 덕성을 무너트린다고 본 점에서 토크빌은 로크적 논지의 핵심을 비록 반대 입장에서나마 아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의 우위를 주장했다면, 토크빌의 텍스트는 그와 반대로 시민사회에서 어떻게 법적 통제에 완전히 삼켜지지 않는 덕성의 함양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 들어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절대로 로크의 후예라고 할 수 없으며, 그가 '자유주의자'라고 할 때 그 자유주의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쯤 깊이 따져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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