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가격, 판단, 집밥. [140128]

Comment 2014. 3. 18. 12:40

*2014년 1월 28일 페이스북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여지는 세상에 살다보면, 우리의 입맛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 가격표를 붙이게 된다. 이 요리에 이 가격이 합당한가, 이 요리는 훨씬 비/싼 다른 요리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등등. 당연한 거겠지만 이때 입맛이 판정하는 "가격"은 절대적인 판정치가 아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단순히 입맛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의 입맛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객관적이다; 다만 그 객관성이라는 게 다른 요리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성립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일' 뿐이다. 그리고 화폐들로 돌아가는 세상은 이러한 상대적인 객관성을 기만하고, 마치 어떤 요리에는 어떤 가격이 알맞다는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인다(<자본론> 1권의 화폐의 성립 부분은 의외로 요리-상품이라는 항목에 잘 들어맞을지 모른다). 실제로는 단지 다른 어떤 요리보다 맛있/없다는 정도에 불과하지만(좀 더 섬세한 사람은 "얼마나"라는 한정사를 덧붙일 수 있겠지만), 화폐가격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생각하는 순간부터 요리를 특정한 양의 화폐와 동일시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뒤집어 말한다면, 이 시점에 다다른 문명화된 인간은 이제 요리를 먹으면서 그것이 맛있다를 말하는 대신 더욱 객관화된 기준, 이것은 얼마의 화폐로 환산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다. 물론 일상의 가벼운 식사에서는 화폐세계를 잠시 잊고 살겠지만, 음식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역으로 음식의 맛과 느낌 이전에 이미 그것들을 대체하게 된 화폐의 액수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식사가 끝나고 돈을 지불한 뒤 후회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불한만큼의 혹은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면 좋은 장사=교환을 한 것이고, 자신이 지불한 액수만큼 못 미친다면 교환에서 손해를 본 것처럼 간주한다. 실제로 식사가 끝나고 계산을 마친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아주 빠른 속도로 수식이 돌아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는 맛과 맛없음의 판정 또한 뒤집혀져서, 절대적인 음식의 질이 낮더라도 그만큼 저렴한 액수라면 맛있고 (좀 더 양심적으로 말하는 인간들은) 양심적인 가격이라고 기분좋게 말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맛이 있더라도 불쾌한 기분을 남기면서 나온다. 다시 말해 식사 후의 기분을 요리가 아닌 금액이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대체로 그렇게 뛰어나지 않을 '집밥'이란 것에 환상을 갖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과 관련이 있다. 집밥은 가격표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고 믿는 마지막 영역으로, 단순히 맛을 보고 맛 있는지 없는지만을 이야기하면 된다. 가격없는 집밥 앞에서 인간은 순간적으로나마 화폐로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단지 맛있고 없고, 배부르고 배고프냐만 중요한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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