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7일. 극우파의 대중동원/정치세력화와 공적 폭력.

Comment 2014. 9. 7. 02:38

"단식투쟁 앞에 피자 100판 (머니투데이) http://goo.gl/ec37tE

그들이 모여 외친 구호는 (신문고뉴스) http://goo.gl/BLarGQ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성명 http://sewolho416.org/2619 "


아래는 위 기사들에 대한 (페이스북에서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쓴) 코멘트. 문단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글이라기보다는 훨씬 파편적인, 따로 따로인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게 편할 듯 하다.






꽤나 긴장하고 기사를 클릭했는데, 구호를 보고는 맥이 풀려 조금 실소가 나왔다. 확실히 한국사회가 워낙 탈정치화가 진행되다 보니 극우 룸펜들도 이런 수준 밖에 안 되는구나 싶기도 하고. 경찰 추산 500(물론 이런 경우 경찰추산은 종종 뻥튀기가 섞이곤 하지만)이나 모였다는데, 모여서 한 게 겨우 이게 전부고, 구호라고 외친 게 겨우 저 정도인가? 기본적으로 자존감에 문제가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물론, 항상 시작보다는 2파, 3파가 중요하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가진 게 증오, 할 줄 아는 게 조롱밖에 없는, 그러니까 일종의 부정적인 형태로서만 자신의 존재의의를 주장하던 이들의 집단이 조금 더 구체화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극우파들의 역사적 궤적에서 나름의 의의를 가질지도 모른다. 애초에 극우파 룸펜이 광주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을 조롱한 것도 희생자들이 가장 낮은 지점=비국민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신성함을 부여받았다는 면과 무관하지 않다. 즉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의 공식화된 질서를 조롱하면서도(반-신성화, 반-비극), 다른 한편으로는 주권자=우파정부의 반대편에 있다는 점에서 '건드려도 보복당할 염려가 없을' 이들을 공격한다는 것(약자/사회적 타자에 대한 공격)은 '찌질한' 극우파들의 병들고 비천한 심리에서 비롯된 행동양식이다; 당연하지만, 통상의 인간심리에서 개인의 조롱을 표현하기 위해 이 정도의 수고를 들이지는 않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및 그 유족들에 대한 공격도 정확히 이러한 도식에 들어맞는다. 희생자 및 유족들에겐 문자 그대로 비극적인/신성한 가치가 주어지면서도, 동시에 주권자/집권여당과 충돌하기에, 그러니까 경찰이라는 국가적 폭력이 이들을 비국민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타자가 되었다. 분명히 말해, 극우파 룸펜이 어떤 집단적 행동으로 나설 때 자기보다 강한 집단, 혹은 잘못 건드렸다가 보복받을 것 같은 집단을 건드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자--마찬가지로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공격 역시 경찰이 공식적으로 유족을 비국민 취급한 다음에, 그러니까 비국민으로 규정한 다음에 확대되었다.


 그런 점에서 극우파 룸펜이 '거리로 나왔다'는 건 아직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거리로 나왔고, 어쨌든 피자 100판을 돌릴 정도의 소규모 자금은 확보할 수 있었지만 (햄버거까지 쳐서 넉넉잡고 200만원 정도 썼다고 치면, 이 정도 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추적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사실 어버이연합만도 못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이때부터다. 즉 이들을 지속적인 정치적 (테러)조직으로 동원하려는 기획이 성공하는지(변희재나 박성현 등의 존재는 분명히 극우 룸펜들을 활용하려는 기획 및 집단 자체는 존재한다는 걸 뜻한다)의 여부가 갈리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이 분수령이다. 바꿔말하면 지금 단계에서 정치조직화를 가로막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변호사 몇 팀 고용해서 보이는 족족 소송걸면, 기업들이 노조를 분쇄했던 것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이들이 부풀어오르는 걸 막을 수 있다(두산그룹 같은 경우 정말 적을 분쇄하는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지 않았나?). 극우 룸펜의 의식이 자신들을 향한 '실질적'인 공격의 내구성에 그렇게 강하지 않은 건 분명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들은 오로지 '만만한' 집단들만 건드린다. 경찰이 됐든, 변호사가 됐든, 만만하지 않은 것만 보여주면 이들의 의지를 꺾는 건 현 단계에서는 별로 어렵지 않다...하지만 누군가가 지금이라도 해 둬야 나중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인 퍼스펙티브를 취해본다면, 나치든, 파시스트든, (그 자체로 국가의 공식적인 폭력이었던) 일본의 군부든 기본적으로 공식적인 권력=폭력의 방조 또는 협조를 전제로 정치세력화 및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정부가 폭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근대국가에서 우파든 좌파든 대중동원을 통한 정치세력화 및 테러리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공식적인 또는 암묵적인 승인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히틀러가 힌덴부르크에게,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국왕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 상기하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베 극우파들의 심리분석이나 그들에 대한 비난이 아주 쓸모없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개인적인 불만을 표출하거나 학적인 연구를 수행하는데 머무르는 대신 직접적인 정치적 변화에 참여하고 싶다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은 공식적인 권력수단을 움직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들을 방기하고 있는 경찰에 대한 비판도 좋고 (유가족들에 의한) 소송도 좋다. 극우 룸펜들의 웹사이트 자체를 공격하는 게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그리고 어쨌든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중도 및 우파를 막론하고 극우 룸펜 집단을 "합의된 영역을 벗어난 인간들"로 취급하고 있다면, 상식을 벗어난 이들을 제어하지 않고 있는 공식적인 권력을 비판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다; 적어도 극우 룸펜 개개인들은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고 사라질 수 있지만, 경찰청은 그렇게 행동할 수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극우파들의 성장을 러 가지 요소들의 중층결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중에 이 모든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행위자인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래는 누군가 적어준 폭식투쟁 관찰기를 보고 붙인 코멘트.




기본적으로 내 입장은 어제 썼으니 딱히 더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러한 '표출'이 이전과 어떻게 다른 주체화를 제시할 것인가는 지켜보아야 할 문제다. 몇몇 지인들에게 예전에 이야기했지만, 10대~30대 초반까지의 극우파 룸펜들 못지 않게 그 윗 연령대--이들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갖고 참여하고 있을까?--도 제법 많고, 그런 점에서 극우파 룸펜은 결코 단일한 세대현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 상이한 사고를 가진 주체들이 있다고는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상이한 주체들이 있다고 드러내는 걸로 만족해버리는 열등한 사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해 상이한 주체들이 '접합'을 거쳐 마치 동일한 집단적 주체인 것처럼 스스로를 형성하고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게 비판적 연구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극우 룸펜들이 드디어 물리적으로 대중동원 되는가 싶으면서도, 집회를 일종의 '문화적'인 현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러니까 2008 광우병 촛불 때도 나왔던 집회=축제론처럼) 자유주의적 기조가 심지어 극우파들의 집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컬한 기분이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 남아있는 한, 극우 룸펜 웹사이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파들을 위한 대중교육의 '공론장'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매우 중요한 기능이며, 이것이 내가 중도 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이 사이트에 대해 직접적인 제재가 가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장치'의 작동은 언제나 그 표면적인 결과보다 중요하다. 2008년의 촛불이 무언가를 바꿔야만 하는 싸움이었다면, 이들은 현재의 경향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극우 룸펜들의 세력유지/확장은 좀 더 용이하다--몇몇 터무니없는 법적인 요구를 제외하면 우리는 극우 룸펜에게 사실상 유의미한 정치적 의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그래서 지금처럼 다른 입장을 공격하는 오로지 부정적인 형태로만 표출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아마 누구도 손쓰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자연적인' 경로는 다음과 같다. 1) (상대적으로 소수의) 대중동원 -> 2) 사적이고 소규모의 사보타주/테러 -> 3) 일정 규모 이상의 동원이 가능한 극우 정치집단. 지금 이제 막 1번이 시작된 셈이다. 끊을 수 있을 때 끊어야 한다. 2도 상당히 골치아프지만, 3번은 최악이다. 물론 우리가 파시스트 대중동원의 역사적인 경로를 참고한다면 최소 두 가지 요소가 덧붙여져야 한다.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그러므로 이들에게 단순히 무언가에 대한 '반대'가 아닌 '긍정적인' 정치적 의제를 제시할 수 있는 리더(카리스마가 있으면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의 등장. 기존 우파의 방관 및 (특히나 물질적 지원 등을 통한) 협력. 후자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고, 전자는 다행인지(?) 한국 정치에서 저게 가능한 인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는 하다; 죽은 성재기나 지금의 변희재처럼 어딘가 좀 모자란-_-;; 사람들 밖에 나오지 않고 있으니까. 다만 정통적인 극우파에서 한 명이 이쪽 포지션을 잡고 내려올 가능성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 새누리 내에서도 보다 우파적 스탠스를 견지하면서 자신의 지지도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졌음을 (대표적으로, 결론적으로 실패하고 말아먹었지만, 오세훈-) 기억하자. 거시적으로 보면 2010년대의 한국 대중정치는 강용석도 그렇고, 극우파에서 밀려나온 애들이 기존에 극우파 정치활동의 영역이 아니었던 곳을 계속해서 먹어나가고/식민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분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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