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의 교육적 책임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기고와 서언

Critique 2018.06.18 03:38
지난 주 6월 11일 자 <교수신문> '대학원생들의 一聲' 기획연재에 기고한 짧은 글을 올린다.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중앙통제·처벌식 접근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고등교육·대학원교육의 제도적 환경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인권실태·교육연구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까?

2014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의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보고서>에서부터 최근의 대학 내 권력형 성희롱·성폭력 실태 개선방안 논의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 간 한국의 대학원 인권·교육연구환경 관련 담론은 기본적으로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각종 실태조사와 함께 (유감스럽게도 서울대에서 실질적인 진척이 없는) 대학원생 권리장전 등을 통해 대학원생 제도개선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작업이었다. 대학원생 운동이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단기간 내에 공적인 담론·제도망에 진입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대학원생 집단이 바로 이처럼 신속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근거자료·규범적 언어를 공적인 문서의 형태로 구체화시키고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대학원 내 기본권 침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교원 및 그에 대한 감독책임을 지는 대학(원)에 대한 통제를 어떤 식으로 강화할 것이냐에 있었다. 문제의 주 발생원인으로 지목되는 주체의 행위를 어떻게 (주로 처벌·보복을 통해) 억제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한국적 상황에서 대학원생 운동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권리장전이나 인권가이드라인 같은 연성규범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적인 언어는 단기적으로는 다른 제도적 장치·담론과 결합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일반적인 도덕규범으로 자리잡으면서 처음에 그것이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규범적 언어의 공허함을 비웃는 '현실주의자'들은 실제로는 자신들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순박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우 보통 원숙한 '현실주의자'라는 착각이야말로 그들 자신의 인식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한다)

후자의 접근법이 갖는 한계는 대학원생 인권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온 사람들에게 점차 분명해졌다. 물론 기존의 거의 다듬어지지 않은 교원징계과정이 합리화되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명백하다. 하지만 개별대학 내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원들이 제도적 의사결정에 매우 깊게 참여하는 조건에서 매우 쉽지 않은 과제였으며, 입법기구와 교육부를 통해 중앙에서 통제를 가하는 방식에도 적지 않은 난관이 있었다. 고등교육의 복잡한 성격에 대한 대학원생 행위자들의 이해도가 상승하면서 법적·관료적 통제방식의 근본적인 약점, 즉 중앙·상층부에 의한 보편적 규범의 부과가 대학원·연구공간과 같은 전문화된 지식기구에서 각각의 특수성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위험도 고려되었으며, "위에서 정책을 짜면 밑에서는 대책을 짠다"는 경험적 교훈이 한국 대학의 주요 행위자들에 의해 매우 신속하게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간과될 수 없었다. 조금 더 근본적인 수준까지 파고든다면, 처벌을 통한 억제는 그 대상이 어떤 행위를 실천할 가능성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부정적인'(negative)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 제도개선자들이 원하는 방향, 즉 행위자들이 더 좋은 결과물을 '적극적으로'(positive) 추구하도록 만들기는 어렵다.

상기한 약점을 돌파하기 위해 한국 대학원생 인권운동 참여자들이 우선적으로 주목한 지점은 대학 내 행위자들이 속해있는 대학(원) 환경을 재구성하는 방식이었다. 인권센터의 설치 및 '실효적 운영'에 대한 여러 제도적인 아이디어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권센터의 역할을 사건해결에만 두는 대신 관련연구지원·학내교육·자료생산·(미시적 수준의) 규범제공까지 확장시키자는 제안은 인권센터가 장기간에 걸쳐 학내 행위자들의 의식과 행동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환경조성적 행위자로 기능하는 구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계류 중인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의무화법을 포함해 2017-18년 국회 교문위의 입법활동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센터가 저러한 역할을 실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인적·금전적 자원 및 권한을 확보하는 단계까지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제도적인 고민들이 발전한 단계에 비해 현실에서의 실현은 아직 걸음마인 셈이며, 이후의 전개는 입법부와 교육부 등의 움직임에 크게 의존한다.

기고문에서 제안한 내용, 즉 아직 대학원에 들어오지 않은 예비 대학원생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공급하자는 발상은 한편으로 상술한 방향과 다른 방식의 활동을 탐색해야 할 필요성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 대학원 환경을 구성하는 보다 다양한 요소들을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고민의 시야 내에 포함시키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사회이론을 일반상식 수준에서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듯, 이 모델은 대학원 환경을 구매자(예비 대학원생)와 판매자(교수, 전공, 학과, 학교 등)가 거래하는 유사-시장적 환경으로 가정한다. 구매자에게 판매자와 상품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될 때, 구매자들은 합리적 선택을 실천하며 판매자들은 구매자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상태에 돌입한다. 이때 경쟁의 기준에 대학원생 인권·양질의 교육연구환경·행정지원의 합리성 등이 들어간다는 게 이 무척 단순한 모형의 독특함이다. (주로 진보적 성향을 띤) 대학원생 인권운동 참여자들이 시장경쟁을 전제로 한 정책제안에 품을 낯설음과 거부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이 갖고 있는 다음과 같은 장점들까지 부인할 이유는 없다.

첫째, 이 모델은 우리가 지금까지 대학원 환경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행위주체, 즉 예비대학원생이 대학원 환경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둘째, '정보'와 '선택'을 중요한 키워드로 설정한 이 모델은 (예비)대학원생들이 단순히 문제적 교수의 피해자로 남는 대신 역량을 가진 능동적인 행위주체일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셋째, 유사-시장경쟁 하에 놓일 때 교수(랩)·전공·학과·대학은 단지 '더 이상 인권침해를 하지 마'라는 부정적 요구만을 접하는 대신 더 적극적으로 인권 및 교육연구환경을 개선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령 대학원생의 졸업을 늦추고 10년 가까이 프로젝트에 굴리면서 상시적으로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랩과 적절한 퍼포먼스가 있을 때 바로바로 졸업시키는 합리적인 랩이 비교대상에 놓일 때 전자는 시장경쟁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교육지침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권한과 자원을 가진 제도적 행위자들의 역량을 제한하기만 하는 대신 그들이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대학원 바깥의 행위자들에게 역량을 부여함으로써 대학원의 권한과 자원을 보다 합리적으로 운용하도록, 대학원의 공적 행위자들 자신이 제도개선과 합리화를 추구하는 주체가 되도록 만들 수 있다.

물론 기고문에서 제안한 구상이 제도화 추진 여부와 별개로 구체화과정에서 몇 가지 까다로운 고민거리를 포함한다는 사실은 잊혀져서는 안 된다. 대학원 인권·교육연구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어떤 지표가 그 실태를 직간접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 쉽게 지표화될 없는 정보를 어떻게 공급할 수 있는가? 지표는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 의해 추출되어 어떻게 공급되는가? 공적 기구와 사적 기구는 각각 어떤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가? 지표를 측정하고 공개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관여하는 게 필연적이라면, 정보의 왜곡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는가? 정보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가? 정보공개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감소될 수 있는가? 이 모든 물음은 하나하나 무척 까다로우며, 완벽한 답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무척 제한적인 형태로라고 해도 상기한 물음들에 하나씩 대답해가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만한 유인은 존재한다(교수평가공개는 이미 초보적인 형태로나마 김박사넷 등에서 시작되고 있다: http://phdkim.net/). 기고문 마지막 문단에서 이야기했듯, 그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날 때 우리가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영역 또한 늘어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대학원의 교육적 책임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954

대학원생 기본권 실태 및 교육연구환경 개선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언제고 한번쯤은 다음의 물음을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교육자와 교육기관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도록 할 수 있는가? 권한과 자원이 교육자와 기관 측에 집중돼 있는 한국의 대학원 환경에서, 대학원생이 학생·연구자로서 또 인격으로서 지닌 기본적인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전자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바꿔 말하면 지금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대학원생 문제’ 상당수는 일부 교수,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고 감독할 의무를 지닌 교육기관이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또는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방향이 제도적으로 교원과 교육기관의 책임을 명시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 또한 권한과 자원이 특정 행위자에게 집중된 대학원의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난점은 특히 대학원에서 교육적 책임을 강화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고 생산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전문가의 자율성을 요구하며, 이 사실은 대학원의 교육·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설정할 수는 있으나 전문화된 지식과 역량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사전에 지침을 제시하고 감독하기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분명 관료기구에 의한 일괄적인 통제는 최저기준을 강제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등재지 위주의 연구자 실적평가시스템에 대해 제기된 비판에서 참고할 수 있듯, 관료적 통제의 대상이 자율적으로 최고의 성취를 낼 수 있도록 촉진하기란 쉽지 않다는 약점 또한 분명하다. 더불어 교육부 및 유관기관의 중앙집권적 통제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이 축적돼 온 역사적 조건 또한 고려한다면 중앙기구에서 상명하달 식으로 각 교육기관·교원의 교육적 책임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분명 한계가 있다.

최근 대학원생 기본권 및 교육연구환경에 관해 열린 몇몇 논의자리에서 점차 상기한 난점을 우회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이 공유되기 시작했음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된 개선책은 대학원 학과·전공·연구실별 교육·기본권 관련 지표를 설정하고 공개하자는 것이다. 가령 몇 가지 고려해볼만한 물음들을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특정한 학과·전공에서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는 사례는 얼마나 되며, 중도이탈의 주된 사유는 무엇인가? 학위취득까지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며, 학위취득자는 졸업 후에 어떤 직장을 선택하고, 학과·교수는 이에 대해 어떤 교육과 노력을 제공하는가? 조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임금 또는 장학금이 지급되며, 주당 근무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단과대학·학교 내에서 권력형 인권침해 혹은 성폭력이 발생할 때 해당 기구는 그러한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가?

학과·전공·연구실·교수 별로 기본권 및 교육환경 정보를 공개하는 접근에는 몇 가지 측면에서 명백한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접근법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사적인 인맥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대학원을 선택하는 현재의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진학희망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주어질 때 기본권 침해가 자행되거나 제대로 된 지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대학원은 자연스럽게 기피될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학과·연구실에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입학하면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안을 줄일 뿐더러, 각 학교·학과에서 입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학생 기본권 보장 및 교육환경 개선에 투자할 실질적인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더불어 중앙기구에 의한 감독·통제가 아닌 학생들의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교육적 책임을 제고시키는 방식은 감독자와 피감독자 모두가 느끼는 규제의 부담을 상당 부분 줄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며, 여기서 제안한 접근법 또한 실제 적용까지는 상당한 논의와 수정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좋은 환경의 구축은 본래 어느 한 가지 제도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며 복수의 제도·정책·문화의 정교한 결합을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 단지 교육자와 교육기관을 압박하는 대신 (예비)대학원생에게 더 많은 역량을 부여함으로써 교육적 책임을 끌어올리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조속히 진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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